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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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침노[侵]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땅거미가 길게 드리워지는 때 행렬은 멈추었다.
아이들은 초췌해지다 못해 비렁뱅이가 다 되어있었다. 옷은 흙먼지가 진득하게 덮었고, 보름 이상 씻지 못하자 심한 냄새가 나면서 파리가 들러붙었다.
몸 하나 성하게 도착한 아이들이 없었다. 죄다 무릎이며 팔꿈치며 살갗이 까져 피가 흘러내리다가 말라붙었다.
거기다 모기들은 얼마나 득세를 부리는지 각자 수십 군데를 물려 온몸을 벅벅 긁다가 피고름 자국들이 수두룩해진 아이들도 많았다.
그러던 중 고되고 고된 행군이 그 끝을 알렸다. 매미들도 해가 뉘엿뉘엿 지자 그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하나의 번화한 마을이었다.
마을 어귀를 빙 돌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도착한 그곳은 거대한 장원으로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었지만 크다 못해 음산하기까지 했다.
그 장원에 속속들이 아이들이 들어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레가 들어왔다.
호인들은 인간 아이들을 줄줄이 세우더니 일일이 무릎을 꿇리고 고개를 숙이게 했다.
수레에 있던 아이들도 도저히 상태가 나빠 몸을 움직일 정도가 아닌 아이들을 제외하고선 모두 내려 장원에 도열해 꿇려졌다.
그들 앞에 차곡차곡 재물이 쌓였다. 비단, 곡식, 금편, 은전, 심지어는 생활에 필요한 잡다한 도구들까지 차례로 쌓여갔다.
다행히 훈제한 인간의 사체를 쌓아 올리진 않았다. 만일 그런 것까지 이 장원에 놓았다면 아이들은 일제히 혼란 상태에 빠져 제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잠시 후 해가 완연히 지자 장원 안에 있는 화로에 불이 붙여졌다. 아이들은 꼼짝도 못하고 약탈한 물건들이 다 쌓일 때까지 조용히 앉아있었다.
불은 기름을 먹인 장작에 힘차게 타올랐다.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불은 좌우로 일렁이며 아이들의 얼굴에 각양각색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었다.
그림자는 침묵했고, 고요했으며 우울했다.
물건이 모두 쌓이자 호인 무리가 물건 좌우편에 서서 대열했다.
징 소리가 두 번 울렸다. 갑작스레 울린 징 소리여서 흠칫 놀란 아이들도 있었으나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징 소리가 울린 직후 장원 안쪽 건물에서 호인 한 명이 걸어 나왔다. 그 풍채가 매우 위풍당당하여 존재만으로도 이 장원 가득히 거대한 위압감을 만들어 내었다.
불이 비치는 곳으로 나오자 그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백년설처럼 흰 갈기, 그리고 얼기설기 드리워진 검정색의 줄무늬, 수북이 덮인 눈썹 아래 날카로운 옥빛 동공이 번득였고 수염은 길게 자라 가슴을 덮었다.
그것은 늙었지만 전형적이고 현명한 호랑이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단정하게 차린 복식 사이로 뻗어 내린 팔과 다리는 그가 늙고 지쳐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호인을 통틀어도 그보다 강인한 육체를 지닌 호인은 없었다.
가슴 근육은 터질 듯 탄탄하게 부풀어 올라있었고 허리는 황소의 몸뚱어리보다 굵어 보였다.
길게 자란 하얀 털들이 그의 근육을 가려주고는 있었지만 옷을 입은 곳에는 털이 눌려 근육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났다. 단단하게 잡혀있는 근육 뭉치들이 마치 철갑옷을 입은 듯했다.
불빛 아래 빛나는 털들은 윤기 나면서도 살며시 바람에 휘날려 그의 분위기를 한층 더 깊게 자아냈다.
그의 깊고도 날카로운 눈은 자신의 앞에 도열해있는 호인들을 지나 꿇려있는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그는 동쪽 백모(白毛) 지파의 대족장인 이소호칸이었다.
북쪽 황모(黃毛) 지파의 대족장인 그름타가 남쪽 흑모(黑毛) 지파의 대족장이며 강제(姜帝)인 미탄마호를 설득해 각 대족장의 병력을 소수 차출해 인간을 약탈해오자 주장해 출진한 것이 열여드레 전이었다.
백모 지파는 전쟁에 익숙한 노련한 병사 이백오십 명을 보내었다. 그들은 강인하게 싸웠고 수많은 약탈품을 가지고 이소호칸의 앞에 당당히 서있었다.
“수고했다, 백모 지파의 아들들이여.”
이소호칸이 말하자 그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이소호칸에게 깊은 존경심을 내비치는 행동이었다.
“내 친우 다한마의 아들 고스보치여, 보고하라.”
고스보치는 자신과 친하게 지냈던 다한마의 아들이었다. 다한마는 작년 대족장 선출 경기에서 눈먼 상대의 칼에 맞아 죽었다.
대족장을 선출하고 강제를 선출하는 무를 겨루는 경기는 실전으로 이루어진다. 때문에 죽거나 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그 경기에서 자신은 살아남아 대족장이 되었지만 다한마는 자신이 대족장이 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다.
호인은 무를 숭상하는 만큼 친우에 대한 예를 지키는 것을 중요시했다. 대족장이 된 이소호칸은 다한마의 식솔을 전부 맡아 거두었다.
그리고 그의 훌륭한 아들인 고스보치를 이번 전장의 장수로 임명했다.
“백모 지파의 아버지인 이소호칸 님이여, 8월 10일에서 22일까지 벌어진 크고 작은 전쟁을 우리는 속전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합은 인간의 국경을 분쇄하고 철저히 유린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두 발 아래 철저히 밟혔습니다. 그들의 저항은 지푸라기를 베는 것만 못했습니다.”
고스보치가 대열 앞에 나와 공손히 자신의 오른쪽 주먹을 왼쪽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오른 주먹을 왼쪽 손바닥에 손가락이 보이도록 올려 인사하는 방법은 권상(拳仩)이라 하여 호인들이 공손을 표하며 내보이는 그들만의 독특한 인사 방법 중 하나였다.
고스보치의 권상에 이소호칸도 따라 권상의 예를 취했다.
“이어 말하라.”
“백모 지파의 용맹한 이백오십의 용사들은 수십 배의 적들 사이에서도 확실히 눈여겨볼 정도로 전공이 뛰어났습니다. 부디 그들에게 은상을 내려주시길 간청하나이다.”
이소호칸은 권상의 예를 풀고 말했지만 고스보치는 예를 풀지 않았다. 이는 이소호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 백모 지파가 염에서 가장 뛰어나다 들으니 기쁘구나. 좋다, 내 은상을 내리도록 하마.”
고스보치가 그제야 두 손을 내렸다. 두 호인 사이에서 깊은 유대가 느껴졌다.
“하나 네가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있구나. 아무리 용맹히 싸웠다 할지라도 피해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 터. 소상히 말해다오.”
이소호칸이 표정을 굳히며 말하자 고스보치는 두 눈을 굳게 감았다.
피해란 자신 측의 전사자를 말함이고, 전사자를 말한다는 것은 장수에게 큰 어려움을 동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천오백사십사의 연합군 중에 예순두 명이 죽었습니다. 개중 백모 지파는 단 여섯이 전장에서 죽었습니다. 타 지파에선 전장 경험이 없는 녀석들을 많이 차출해서 눈먼 창이나 돌에 많이 죽었습니다.”
“여섯의 이름을 말하고, 어떻게 죽었는지 보고하라.”
고스보치가 차례로 그들의 이름을 읊었다. 고요한 정적이 호인들 사이에서 흐르며 엄숙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금테주의 아들 라흔가, 11일 묘시에 여덟의 인간과 맞서 싸우다가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이상입니다. 그들의 이름을 전은록(戰恩錄)에 올려 넋을 기려주시길 바랍니다.”
긴 설명이 끝났다. 이소호칸은 한참을 듣고 있다 고스보치의 말이 끝나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내 그들을 전은록에 올리도록 하겠다. 가시아누의 죽음과 진추나의 죽음이 너무나도 아쉽구나. 그들은 나와도 함께 전장에 선 적이 있는 용맹한 전사들이고, 앞으로도 더욱 강해질 수 있던 자들이었다. 약하다면 죽는 것이 옳은 이치나, 그들의 약한 운에 아쉬움이 크구나. 이어서 너희의 전공과 전리품을 말해보아라. 내 그것들을 전투에 선 너희에게 충분히 나누어 주리라.”
이소호칸이 전공을 말하고 전리품을 말하라 하자 고스보치가 기다란 천을 가져와 거기에 쓰여있는 것을 읽기 시작했다. 일견컨대 상당히 많은 수의 재화를 노획한 듯했다.
여기 앞에 쌓인 것이 산과 같은데 그것 또한 넷으로 나눈 것이었다.
“…소 1,780마리를 노획하여 저희에게 온 것이 582마리, 염소 860마리 노획하여 저희에게 온 것이 282마리, …어린 인간 총 4,865명 중 이송 중에 죽은 것이 81명, 저희에게 온 것이 남자 인간 519명, 여자 인간 577명입니다.”
모든 것을 듣고 목록을 넘겨받은 이소호칸은 그것을 찬찬히 살펴보고 고스보치에게 답했다.
“승전을 축하하며 연회를 열어야겠지만 오늘은 밤이 늦었고 병사들 또한 피로함이 찌를 듯할 테니 내일 저녁 연회를 열도록 하겠다. 금일은 푹 쉬도록 하라. 그리고 금일 해산하기 전에 강제께 드릴 예물을 지정해 둘 테니 따로 빼어 보관할 수 있도록 해라. 그 예물은…….”
다섯 지파의 대족장은 3년 동안 싸워 개중 염을 이끌 강제를 뽑는데, 강제의 지파는 강제가 통치하는 동안 다른 지파의 생산물과 습득한 재물을 일정량 배분받게 되어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인간에게 약탈한 재물을 넷으로 나누어 일단 자신들의 지파에 가지고 간 후 일부를 강제에게 주었다.
이소호칸도 그 예를 위해 지금 강제에게 줄 예물을 바로 지정했다.
“마지막으로 힘 좋고 건강해 보이는 열 살 이상의 남자 인간 164명, 당장 일을 부여해도 수월하게 해낼 만한 여자아이 180명을 선별하여 장원에 남겨놓고 차후 강제께 보내도록 하여라.”
호인들이 그 말을 듣고 모두 이소호칸에게 권상의 예를 올렸다. 이소호칸은 예를 받아들이고 뒤돌아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호인들은 이소호칸에게 들은 대로 강제께 보낼 예물을 추려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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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0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