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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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감옥[獄]
유기이는 집 안에서 수에르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유기이 또한 그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랐으며 이야기에 끝에는 무명을 안아주며 같이 울었다.
무명이 왜 이리 슬피 울부짖고 있는지 유기이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둘 다 근신 명령을 받게 된 거야?”
유기이가 묻자 수에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명은 아예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이소호칸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절망적인 이 상황을 결코 철회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들의 마음 가득히 수심을 안게 했다.
“그럼 이 일은 그렇게 결론이 나게 된 거야? 이 일에 대해 이마진은 알고 있어?”
유기이가 이어 묻자 무명이 고개를 푹 수그린 상태에서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러고 보니 이마진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터였다. 그에게는 전달조차 하지 않고 바로 이소호칸에게 갔으니 말이다.
순간 둘의 머릿속에서는 이마진에게 이 일을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필시 최악 중의 최악의 소식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마진에게는 말해 주지 않을 거야?”
유기이가 수에르에게 다가와 물었다. 수에르의 인상이 어두운 가운데 한결 더 으슥해지면서 미간이 찌푸려졌다.
“모르겠어, 이 일을 알려줘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편이 좋을 거 같기도 하고…….”
무명 또한 수에르의 말에 공감했다. 괜스레 이마진에게 이 일을 알려 주었다가 혹여 화를 자초하게 될지도 몰라 여러 불안감이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기이는 수에르의 자신 없는 말을 끊고 단박에 말했다.
“그래서는 안 돼. 아무리 그래도 사실을 숨겨서는 안 돼는 거야. 또 늦게 알려줘서도 안 돼. 이마진은 알 권리가 있어.”
“하지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닌걸. 혹여 일이 잘못 벌어지게 된다면 유기이, 너와 무명 그리고 나와 우리의 아이 온주로까지 생명을 장담할 수 없어…….”
수에르가 나약하게 말을 읊조리자 유기이가 돌연하여 수에르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그녀의 행동에 품의 온주로가 울음을 터트렸다. 무명은 그 울음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고 둘을 쳐다보았다. 유기이는 명명백백히 분노하고 있었다.
“이봐! 수에르! 너는 그런 남자야? 그런 초라하고 나약한 남자였냐고! 내가 그런 너의 모습을 좋아하여 네 아내가 된 거 같아? 정신 차려! 이마진은 너의 뭐지? 뭐냐고! 대답해! 그는 수에르, 나의 남편의 뭐냔 말이야!”
“이마진은, 이마진은 나의… 나의 친구다.”
수에르가 유기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로 대답했다.
수에르의 마음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듯했지만 가장 듣고 싶은 대답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유기이는 그 대답을 듣고 분을 삭이고 사근하게 말했다.
“수에르, 너는 다른 남자와는 달라. 너는 가부장적인 이 사회에서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 주었어. 내가 너를 이렇게 동등하게 대할 수 있는 이유도 네가 나를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지. 다른 가정에서 여자가 이렇게 드세게 자기주장을 피력할 수는 결코 없을 거야. 염(染)은 남성 우월주의가 팽배한 곳이니까.”
유기이는 수에르의 멱살을 놓고 품 안의 온주로를 달래며 말했다. 온주로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해서 울음을 터트렸지만 또 금세 울음을 멈추었다.
확실히 범족의 가정에서 유기이는 매우 독특했다. 무명이 보기에 범족의 결혼한 여성은 모두 남자의 시녀처럼 부려지고 말조차 함부로 붙이지 못했다. 유독 유기이만이 수에르와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하는 여성이었다. 그 모든 게 수에르가 유기이를 배려한 것이라는 사실을 무명은 유기이의 말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은 인간을 결코 친구라고 말하지 못하겠지만 너는 할 수 있어. 수에르, 나의 자랑스러운 남편아. 너는 자애롭고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존중하며 음악을 사랑하지. 나는 그런 네 모습에 반하고 만 거야. 그런 내 남편이 이렇게 초라해지는 것은 가슴이 아파. 다시 묻겠어, 이마진은 네게 뭐지?”
“이마진은 내 친구다.”
유기이의 말에 수에르의 눈빛이 살아났다. 수에르가 마음을 잡은 것이었다.
수에르의 말에 무명도 마음을 움직였다. 이마진에게 이 일은 그 어떠한 것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이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터였다.
“친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의 남편은 아주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믿어. 비록 네가 근신 처분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지만 이마진에게 이 일을 전달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야.”
유기이의 말에 수에르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는, 붕우는 의(義)를 저버리지 않는다. 유기이,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이마진에게 그 소식을 전달하지? 근신 처분을 받았기에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붕우의 의를 지킨다 하더라도 대족장님의 명령 또한 충(忠)의 의로 지켜야 하는 법.”
“나는 근신을 받지 않았잖아?”
유기이가 그 와중에도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수에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유기이 누나가 전해주실 건가요?”
그제야 둘의 대화를 곤히 듣고 있던 무명이 물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아 눈물 자국은 그대로였지만 무명은 둘의 대화를 듣고 한결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 너희 둘이 근신이라면 내가 전해줄게. 무명, 네가 인간의 언어로 편지를 써줘.”
“하지만 유기이 누나, 수에르 형 말대로 자칫 잘못하면 모두가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시간을 두고 전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요. 그 편이 이마진 형을 위해서 더 나을지도 모르구요.”
무명이 신중히 생각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유기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명아, 나 또한 수에르의 마음과 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야. 하지만 간과하는 게 있어. 그것은 바로 이마진의 입장이야. 자고로 친구란 친구의 입장을 이해하고 생각해 줄 줄 알아야 해. 이마진에게 이 일을 나중에 알려주게 된다면 그 행위만으로도 친구를 배신하게 되는 거야. 너와 수에르가 배려라고 생각했던 일은 결국 자기 자신의 안위를 챙기게 되는 얄팍한 것이 되어버릴 수가 있어. 네가 이마진이라면 그 말을 이해해 줄 수 있겠니?”
유기이의 말에 무명은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렇다. 자신은 간과한 것이었다. 자신의 잣대로 이마진을 배려한 것은 이마진의 입장에서는 배려가 아닐 수 있었다. 무명은 이마진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했다.
이마진이라면, 형이라면 공진희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따질 것이다. 둘은 사랑하고 있으니까. 둘의 사랑을 곁에서 지켜본 무명은 순간 그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무명은 뒷목부터 허리에 이르기까지 짜릿한 전율이 척추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무명이 눈을 뜨자 유기이는 어느새 붓과 먹, 종이를 가져와 무명 앞에 깔아놓고 있었다.
“네가 이마진이라면 지금 당장 알고 싶은 것을 써주렴. 거짓 없이, 소상하게. 그것이 친구가 할 일이야. 붕우라면 의에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
무명은 유기이가 건네준 붓을 받아 들었다. 붓에는 이미 먹이 적당히 배어져 있었다. 무명은 종이 앞에서 붓을 들어 한참을 고민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무명 자신이 거짓으로 꾸며 쓴다 해도 유기이나 수에르는 인간의 언어를 읽지 못하기에 충분히 서신의 내용을 조작할 수 있었다.
사실대로 쓰느냐, 아니면 거짓으로 쓰느냐에 무명은 심하게 갈등했다.
무명 자신도 작금에야 입장을 전환하여 알아차린 사실이지만 이마진에게 사실이 담긴 편지는 매우 절실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수에르와 유기이, 자신의 삶이 매여있는 편지이기도 했다.
무명이 붓을 들고서도 한참이나 한 글자를 써내려가지 못하자 수에르가 한마디를 건넸다.
“써라.”
아주 짧은 단어의 외침이었지만 그 외침을 시작으로 무명의 손이 움직였다.
무명은 입술을 굳게 닫은 채 편지를 완성시키기 위해 빠르게 붓을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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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7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