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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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탈출[出]
이마진이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앞으로 세 걸음, 두 걸음, 한 걸음, 한 뼘. 그렇게 그녀에게 닿을 수 있는 듯했다.
공진희는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이마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꿈에도 그리던 자신의 낭군님 가랑이 두꺼운 창살을 넘어 여기까지 와준 것에 살아 느낀 그 어떠한 감동보다 더 큰 감동을 느꼈다.
이마진은 허리를 숙여 공진희의 볼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허옇게 일어난 볼이 부드럽게 쓰다듬어졌다.
공진희를 매만지는 손길에서 강력한 전류가 흐르듯 감정이 격류되어 이마진에게 쏟아졌다.
공진희의 눈에서 눈물이 또옥 떨어져 이마진의 손에 닿았다.
이마진은 몸을 낮추어 공진희를 살포시 안고 이마에 얕게 입을 맞추었다.
이마진의 눈에서도 눈물이 그렁히 맺혔지만 눈물을 떨어트리지는 않았다. 그는 공진희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러곤 가볍게 속삭였다.
“괜찮아, 모든 게 괜찮아. 자, 여기서 나가자.”
공진희는 이마진과 눈을 마주치고 간신히 고개에 힘을 주어 끄덕였다.
이마진은 허리를 다시 펴서 일어났다. 단검을 쥐고 있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이마진이 공진희의 손에 묶여있는 밧줄을 끊기 위해서 단검을 줄에 가져다 대었을 때, 바로 그때 갑자기 그림자 몇이 쏜살같이 목재 창살 쪽으로 다가왔다.
이마진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 그림자들은 순식간에 창살 앞으로 위치했다.
이마진이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밖을 보려 하자 창살 밖에서 동아줄 여럿이 날아와 이마진의 몸과 목을 옭아매었다.
“크윽?”
이마진은 순간 목으로 매어진 줄을 만져보기 위해 손을 들었다. 그 순간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힘이 이마진을 창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마진은 신음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창살로 날 듯 끌려갔다.
“크카아아!”
목과 갈비뼈가 부러지는 듯한 충격이 창살에 등을 부딪치며 전해졌다. 이마진은 침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했다.
이마진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에서도 힘겹게 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의 손엔 단검이 용케도 떨어지지 않고 들려있었다.
줄을 끊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숨조차 쉬지 못하고 죽을 터였다. 이마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단검이 쥐고 있는 오른손을 들어 목에 묶여있는 줄에 가져갔다.
순간 화로 빛에 반사된 섬광이 번뜩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이마진의 단검 끝이 밧줄에 닿기도 전에 대도 하나가 창살 틈으로 날아들어 이마진의 어깻죽지를 아래에서 위로 섬전처럼 그어 절단했다.
이마진의 팔은 쇄골의 끝부터 깨끗하게 베여 피를 흩뿌리며 공중에 날아들었다. 따듯한 핏방울이 김을 내며 팔에서 쏟아져 나왔다.
목이 밧줄에 심하게 압박되어 있는 상태에서도 이마진의 비명은 처절하게 목구멍에서 튀어나왔다.
공진희는 결박된 상태에서 눈앞의 이마진을 보고 부들부들 떨었다. 이마진의 팔이 절단되면서 그 피가 공진희의 상반신을 덮었다. 그야말로 괴기스러운 장면이었다.
순간에 일어난 일로 인해 탈출하리라는 일말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공진희의 눈은 튀어나올 듯 돌출되었다. 그녀는 입을 한껏 벌려 갈라지고 메마른 비명을 질렀다.
투둑.
끝내 입술이 갈라 터지며 그녀의 입가가 피로 물들었다. 흡사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악을 품고 울렸다.
공진희의 상반신은 심하게 요동치며 이마진에게 전진했다. 하지만 팔과 다리를 단단하게 결박한 줄은 그녀의 움직임을 철저하게 방해했다. 그녀는 좌절하면서도 이마진을 외치며 온몸을 뒤흔들었다.
“가랑, 가랑! 가랑!”
공진희의 입에서 나오는 외침은 단 하나였다. 그녀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해서 울부짖었다.
처절한 몸부림에 그녀를 묶은 줄과 피부가 마찰하여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녀는 고통은 전혀 느끼지 못한 채로 이마진을 위해 몸을 움직였다.
이마진은 고통에 신음하다 목이 완전히 나가버려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반짝이던 그의 눈은 총기를 잃어 흐리멍덩해졌다. 이마진은 눈동자를 굴려 잘려져 피가 흘러나오는 어깨를 흘깃 쳐다보고 천천히 목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목에 걸려있는 줄은 팽팽하긴 했지만 아까처럼 강한 힘으로 당기고 있지는 않았다.
그림자들이 아른거리는 횃불에 비쳐 선명하게 보였다. 호인 대여섯이 창살 밖에서 공진희와 이마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의 피를 무표정하게 털어내는 호인이 보였다. 자신의 팔을 잘라낸 자였다.
이마진은 간신히 숨을 내쉬며 공진희를 바라보았다. 귀가 막힌 것인지, 공진희의 외침이 작은 것인지 입을 쉴 틈 없이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공진희의 말은 전해지지 않았다.
이마진은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았다. 자신을 간절히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이마진은 잠겨오는 눈꺼풀 사이로 공진희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부야…….”
남은 왼쪽 팔을 간신히 들어 그녀에게 뻗었다. 하지만 결박되어 있는 그녀에게 이마진의 팔이 닿을 리는 만무했다.
이마진의 왼편 어깻죽지 아래에 화로 빛에 푸르게 날이 비치는 도신이 들어왔다. 공진희에게 뻗는 이 팔마저 앗아가려 하는 듯했다.
“멈춰라.”
이마진의 울부짖는 소리에 밖이 소란스러워 이소호칸이 직접 나와 말했다.
이마진의 오른팔에 이어 왼팔을 잘라내려 한 것은 고스보치였다. 그는 도를 들어 올리려다 이소호칸이 갑자기 나타나자 도를 회수하고선 도병을 겨드랑이에 껴놓고 권상의 예를 올렸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범인이 고스보치를 따라 예를 올렸다.
“왼팔마저 잘라낸다면 필히 죽을 터. 그에게 아직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러니 잘린 오른 어깻죽지를 지혈하여 살려두어라.”
“예. 명대로 하겠습니다, 어르신.”
고스보치가 자신보다 하급 무사인 듯한 자들에게 손을 휘두르며 이소호칸의 명령을 다시 전했다.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창살 안으로 들어가 창살에 이마진을 결박하고 잘린 오른팔을 지혈했다.
이마진은 눈을 질끈 감고 강력하게 압박해 오는 오른 쪽 어깨의 고통에 저항하다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던 공진희는 광분하여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다른 범인들은 공진희가 아예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그녀의 벗은 사지를 밧줄로 꽁꽁 둘러 싸매었다.
공진희도 한참 이마진을 보면서 울부짖다 못해 실신했다. 그제야 너른 공터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들려오는 것은 오직 장작이 타는 소리뿐.
“음……?”
상황이 정리되는 것을 팔짱을 끼고 보던 이소호칸이 인기척에 건물 골목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자 그는 고개를 갸우뚱 저었다. 쥐라도 있었던 것일까.
이소호칸은 결국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생각을 접고 고스보치에게 다가갔다.
“이번 사건의 주모자를 잡은 거 같군.”
이소호칸이 건조하게 말을 건네자 고스보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혹시 몰라 새벽까지 몰래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제 아이와 여자가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해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반드시 구출하기 위해 올 거라 생각했지요. 물론 저희 정문 방비를 허투루 본 것은 아니지만 체형이 작은 인간이라면 바람을 등져 냄새를 숨기고 얼마든지 쥐새끼처럼 숨어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자네의 선견지명이 대단하군. 설마 나의 장원에 인간이 침입할 걸 대비하고 있을 줄이야.”
고스보치는 이소호칸이 그리 말하자 이소호칸에게 가까이 다가가 작게 말했다.
“필시 혼자는 아닐 것입니다. 공모자가 있을 것입니다. 이번 일은 우리 범족 중에서도 공모자가 있지 않으면 결코 벌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소인은 이전에 말씀드렸지만 수에르를 의심합니다.”
“음…….”
이소호칸은 낮에 무명과 수에르가 찾아온 일을 두고 눈살을 찌푸렸다. 고스보치는 말을 계속 이었다.
“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탈출하는 것을 쫓아 추적하여 공모자를 같이 잡아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으나 그리하면 곧 있을 축제에 누가 될 거 같아 일단 장원 내에서 해결하였습니다. 하지만 차후 수에르를 불러 문책하시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이 일은 수에르와 무명이 같이 얽혀있다고 제 직감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 남자아이가 장원에 들어올 수 있던 것도, 여자아이의 위치를 알 수 있었던 연유도 내통자가 없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소호칸은 고스보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낮에 수에르와 무명이 내게 찾아와 저 임신한 여자아이를 풀어달라 간곡하게 부탁했었지. 그때 어렴풋 느끼긴 했지만 이젠 어느 정도 확신이 가는군.”
이소호칸은 천천히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썹을 구부렸다.
“날이 밝는 대로 수에르와 무명을 내 처소로 불러주게. 오늘 구속한 저 남자아이와 함께 심문할 것이네. 수에르와 무명은 내가 자택에 근신하라 어제 명했으니 내 명을 어기지 않는 이상 자택에 있겠지. 혹 모르니 주변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수에르가 어제 오후 내 근신 명을 어겼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해 보게. 만일 내 명을 어겨서까지 이 남자아이를 도와 장원의 벽을 넘게 했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터.”
이소호칸은 살벌하게 말을 끝마쳤다. 고스보치는 이소호칸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이소호칸은 그렇게 명하고 다시 자신의 처소로 걸음을 옮겼다. 고스보치와 범인들은 돌아가는 이소호칸에게 권상으로 배웅했다.
============================ 작품 후기 ============================
2014-08-07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