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8
0008 / 0124 ———————————————-
1. 침노[侵]
등편은 수레에서 내려 무릎을 꿇은 이후 한참을 호인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의 말을 갓 배우기 시작한 터라 그들이 대화 나누는 것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살짝살짝 들어 경황을 살펴보니 자신들을 여기까지 끌고 온 호인들은 단지 부하였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장원 끝의 기다란 저택에서 나온 백색의 늙은 호인에게 극도의 존경을 취하고 있었다. 모두의 털색이 희었지만 늙은 호인의 털은 유난히 더 희고 길었다.
등편은 짧은 시간이지만 호인들의 대장이 바로 그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행동거지와 다른 호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명백하게 하급자를 대우하는 행실이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그들은 대화했다.
아이들은 무릎이 꿇려 상당히 괴로운 듯했으나 섣불리 불편을 토로하진 못했다.
장원 내의 엄숙한 분위기에 물들어있던 탓일까, 등편마저도 불편을 잊고 그들이 서로 대화하는 것을 흘깃거리며 아는 단어가 나오면 듣고 추론하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차륵.
대장 호인이 넘겨받은 서찰을 접었다. 긴 대화가 끝난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그들이 으르렁거리는 것으로만 들렸지만, 등편은 그 음절과 단어들을 조금이나마 유추해볼 재량이 있었으므로 그들이 상당 시간 동안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장 호인이 다시 장원 내 저택으로 모습을 감추자 호인들은 일제히 장원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나누어 분류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횃불을 들고 아이들 쪽으로 다가와 일일이 눈으로 살피며 아이들을 하나하나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 보이고 건강해 보이는 아이들을 하나둘씩 끄집어내어 따로 세웠다.
그 와중 여러 아이가 겁에 질려 소변을 지리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호인들은 그런 아이들의 입에 요령껏 재갈을 물리고 심할 경우 기절시켜 끌고 갔다.
아이들은 지금 선택된 아이들이 죽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 어떤 반항도, 꼼짝도 못했다. 괜스레 그들의 눈에 들었다가 뽑아가기라도 한다면 죽음이 더 빨리 찾아온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등편 곁으로도 횃불 하나가 지나갔다. 그 호인은 등편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등편이 내심 속으로 안도하고 있을 때, 갑자기 두 번째 횃불이 다가와 등편이 묶인 동아줄을 낚아챘다.
그 호인은 등편을 충분히 다 자란 건장한 아이로 보았던 것이다.
확실히 등편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성장이 빨랐고 건장했다. 무엇보다 그는 처음부터 수레를 타고 이동했으므로 긴 이동의 피곤함도 거의 없었다.
그것을 호인 하나가 횃불 사이로 보고 알아낸 것이다.
등편은 이를 악물었다. 그 또한 이렇게 선별되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등편은 동아줄에 끌려가면서 최대한 힘을 주어 발버둥 쳤다. 호인은 그런 등편을 귀찮게 생각했는지 다가와 옷을 잡아 쥐었다.
등편은 다른 생각할 틈도 없이 그 두툼하고 흰 털에 싸여있는 팔을 물어재꼈다.
“킁?!”
작은 녀석이 힘을 주어 손등을 깨물자 호인이 순간 놀랐다. 두터운 가죽 때문에 바늘에 찔린 듯 따끔한 감각밖에 느끼지 못하였으나, 이가 제법 날카로워 상처를 내기에는 충분했다.
빨간 피가 아이의 이에 고여 털을 타고 떨어졌다. 하지만 호인은 짜증이 나기보단 이 소년의 강한 반발력에 깜짝 놀랐다.
다른 아이 같았으면 울거나 대소변을 지리며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녀석은 되레 자신을 공격한 것이다.
호인은 겁쟁이를 가장 경멸했으며 아무리 약한 상대라도 강한 의지를 지녔다면 존경하고 배울 점을 찾았다. 그렇기에 이 호인은 다른 겁쟁이와 달리 용감한 소년에게 아주 약간의 호감을 느꼈다.
그러나 어찌하리. 소년은 강제께 보내야 할 예물로 적당했기에 호인은 다른 쪽 손으로 그의 목덜미를 내려쳤다. 죽지 않을 정도의 충격이었지만 기절하기엔 충분했다.
곧 소년의 몸이 축 늘어짐을 느꼈다. 팔과 다리는 힘을 잃어 땅을 향하고 있었지만 소년의 입은 그의 손 가죽을 질기게 물어 잡고 있었다.
“어이, 이것을 보게나.”
그 호인은 자신의 손등에 매달린 소년을 들어보았다. 인형처럼 대롱대롱 매달린 소년을 보고 다른 아이들은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아이들은 호인이 마치 소년의 목을 쥐어 부러트린 것처럼 보였기에 침울했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무슨 일인데?”
앞쪽에서 횃불을 든 호인 하나가 다가왔다. 그는 이죽거리며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야, 죽인 거야?”
소년을 들어 올린 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소년의 머리를 두터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것을 유심히 본 호인이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 돌렸다.
“물렸나?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건데?”
“날 물기에 기절시켰는데 계속 물고 있네. 웃기지 않은가?”
그 말을 듣자 호인이 껄껄거리며 웃어젖혔다. 그러고는 물린 그 손으로 소년을 툭툭 쳤다.
“웃기고 말고! 이 녀석, 완전히 기절했지 않은가? 그런데도 물고 있다고? 고놈 참, 가상한 놈이로군. 이봐들! 여기 좀 와보게나.”
그가 주변 호인들을 부르자 금세 주변에 있던 여러 호인들이 소년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들은 손등에 매달려있는 소년을 보고는 클클거리며 웃었다. 기절하고도 손등을 문 턱을 놓지 않다니, 이런 경우는 전례가 없었을뿐더러 상당히 희귀한 장면이었다.
손을 몇 번 휘저어도 소년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재밌구먼, 이참에 달고 다니게나.”
“자네 농담이 심한데?”
그가 손을 세차게 빙글 돌렸다. 두 바퀴 정도 돌리자 소년이 떨어져 나갔고, 공중으로 붕 뜬 소년을 호인 하나가 안전하게 잡았다.
하지만 안전하게 잡았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그게 마치 소년의 시체를 가지고 장난을 하는 것으로 보였을 터였다.
“아, 떨어졌다. 아쉽구먼.”
“큭큭, 좋은 구경했어.”
“자자, 그만들 놀고 마저 선별합시다. 어서 구분해놔야 오랜만에 집에 가서 푹 쉴 것 아니겠소.”
호인들은 흩어졌고, 소년은 따로 뽑힌 아이들 무리에 뉘어졌다.
그렇게 그날 밤은 예물을 선별함으로써 끝나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2014-07-30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