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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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손실[失]
이마진은 고통에 오열하기 시작했다. 배를 땅바닥에 붙이고 얼굴을 좌우로 흔들면서 땅에 코를 비볐다. 방금 뿌린 물기 때문인지 모래 입자들이 들러붙어 가여운 이마진의 모습이 더욱 추레하게 변했다.
“일으켜 세워 주십시오. 그리고 무명은 다시 물어봐다오.”
마진츠가 말했다. 그의 말에 동아줄이 들려 이마진의 상체가 끌어 올려졌다. 이미 이마진은 한계에 도달한 듯했다. 검은자위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눈이 하얗게 뒤집혀 있었고 입에서는 침이 흘러내렸다.
무명은 동아줄에 의지하여 상체를 일으킨 이마진에게 다시 입술을 떼었다.
“어제 저녁 장원을 넘은 이유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이마진은 무명이 재차 묻자 정신이 증발해 버릴 거 같은 상황에서도 질문의 의중을 살며시 느낄 수 있었다.
무명이 자신에게 묻는 그 질문에는 평소 이마진에게 말해 주던 친근함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었다. 삭막하고 거친 의문, 배려가 없는 갈라진 목소리.
이마진은 미약하게 머리를 떨었다. 그러고는 잘려나간 자신의 오른 어깨를 슬쩍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건장한 오른팔이 달려있던 자리가 휑하게 비어있었다. 아직도 팔이 끊어지지 않고 달려있는 느낌이 들었다. 팔이 없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심지어 오른팔은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현실이었다. 밤사이 고문으로 저며진 오른 다리는 미쳐버릴 거 같은 고통을 끊임없이 주고 있었다.
발가락과 다리뼈가 토막이 날 때마다 이마진은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호인들은 이마진의 얼굴을 시린 물에 담가 정신을 차리게 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정보를 요구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마진은 다리 한쪽이 완전히 못쓰게 되는 작금까지 단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고통이 골수까지 파고들었지만 이마진은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이를 물고 버텼다.
자신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고통 속에서도 입을 열지 않은 이유는 단 한 가지.
여기서 혀를 잘못 놀리다간 자신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피해를 입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혼미해지는 가냘픈 정신 속에서 단 하나 끈을 새겨 놓았다면 그것은 남아있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 마음은 고문하던 호인이나 그것을 지시한 이소호칸까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직했다. 어린 인간이 이토록 고통을 감내하고 입도 뻥긋하지 않았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이마진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더욱 강도가 높아졌다.
이소호칸이 어떻게든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어 했기에 입을 열지 않는 이마진은 그만큼 호된 고문을 당했다.
결국 이소호칸은 이마진의 대답을 듣기 위해 무명을 불렀다. 둘이 연관이 있다면 분명 심리적인 흔들림이 존재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마진은 오히려 무명의 태도를 보고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무명의 눈빛과 행동에서 이마진은 자신의 마음가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다른 이를 지킨다, 오직 이 한 단어가 이마진의 마음속에 가득 들어찼다.
“어제 장원을 넘은 연유가 무엇입니까?”
무명이 다시 이마진을 향해 물었다.
이마진은 무명의 물음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오로지 무명만이 볼 수 있는 미소였다. 이미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어 다른 이는 고통스러워하는 걸로밖에 안 보이겠지만 무명은 어렵지 않게 그 미소를 잡아낼 수 있었다.
이마진은 무명에게 슬쩍 웃음을 지었다가 바로 다시 감추었다. 그러고는 영원히 열지 않을 것 같은 입을 열었다.
말라붙어 쇠처럼 날카롭고 건조한 목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날 죽여라, 어서.”
그 목소리를 듣고 마진츠는 고개를 쑥 빼어 이마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을 할 줄 아는군? 그 모진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아 벙어리인가 했다. 무명, 소년이 무슨 말을 했는지 나에게 알려다오.”
마진츠가 무명에게 부탁하자 무명이 표정을 굳히며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자신을 죽여달라 대답했습니다.”
마진츠는 무명의 말을 듣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심지가 굳은 녀석인 줄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죽음을 자초할 정도로 의기를 굳히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죽고 싶어도 곱게 죽일 순 없는 노릇이지. 알고 있는 것을 소상히 말하지 않는 이상 쉽게 죽지 못할 것이야.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 않다면 숨기고 있는 것들을 전부 토해 내라 전해다오.”
마진츠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무명에게 말했다. 무명은 고개를 돌려 다시 이마진을 바라보고 마진츠의 말을 전했다.
이마진은 더 이상 말하기를 거부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마진츠는 미간을 구부리며 짜증 섞인 말을 내뱉었다.
“나는 지금 저 소년의 인내심을 보고자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대리인으로서 저자에게 장원 침입 경로를 추궁하는 것이지요. 아무래도 이렇게 뭉그적거리다간 어떠한 소득도 없을 거 같군요.”
짜증을 내며 으르렁거려도 이마진의 행동에 변화가 전혀 없자 마진츠는 이가 드러날 정도로 입술을 드러내며 불쾌함을 표시했다.
“그렇다면 먼저 눈을 뽑는 것이 좋겠군요.”
마진츠는 무미건조하게 동아줄을 잡고 있는 범인에게 말했다.
범인은 마진츠의 말을 듣고 허리춤에서 조그마한 조각칼을 꺼내 들었다. 무명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곧 이마진의 턱이 범인의 손에 의해 들렸다. 왼쪽의 퉁퉁 부은 눈꺼풀이 칼로 도려내지고 홍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마진은 저항하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으나 그의 힘으로는 범인의 강력한 악력에 대항할 수 없었다.
결국 이마진의 동공 위로 범인의 손톱이 길게 뻗어 나오더니 둥그런 왼쪽 동공을 빼내었다. 그러곤 이어진 시신경을 잘라내었다.
이마진은 온몸을 뒤틀며 몸부림을 쳤지만 그 행위를 막을 수 없었다.
수에르는 그 광경을 담담히 쳐다보았고 무명은 있는 대로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왼쪽 눈이 검붉게 물든 이마진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오른쪽 눈과 코에서는 물이 쏟아져 나왔고 낮게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이마진은 왼쪽 시야가 완연히 검게 물들었다. 핏물이 볼 아래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서 마진츠는 다시 무명에게 말했다.
“입을 열지 않으면 앞으로 더욱 큰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전해다오. 결코 편히 죽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지.”
마진츠가 말하자 무명은 말을 전하기 위해 이마진에게 다시 몸을 돌렸다.
휑해진 이마진의 얼굴을 보니 무명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팔을 잃고 다리는 너덜거리며 눈을 잃은 이마진의 모습은 진실로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일전 도망친 어린아이들이 솥에 처참히 끓여질 때에도 눈을 돌리지 않았던 무명이 그만 이마진의 모습에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눈앞에서 지인이 고문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이토록 처참히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은 탓도 있었다.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고 무명은 입을 열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마진츠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더 고통스러울 겁니다.”
무명은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마진츠의 말을 통역해 전달했다.
이마진은 숨을 가쁘게 고르다가 입안에서 핏물을 한 줌 뱉어내었다. 눈에서 흘러나온 피가 입안에 흘러들어간 듯했다. 눈이 뽑힌 충격으로 이마진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허리를 완만히 굽혔다. 고통과 육체의 상실로 견딜 수 없이 힘든 듯했다.
“이야기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편하게 죽게 해줄 수 있다.”
마진츠가 무미건조하게 뒤에서 말했다. 무명은 마진츠의 말을 듣고 허리를 숙여 이마진의 얼굴 앞에 말했다.
“질문에 대답만 한다면 편하게 죽을 수 있습니다.”
무명의 말에 이마진은 눈 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이겨내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더니 피로 번들거리는 혀로 마른 입술을 핥고선 말했다.
“편하게 죽는가, 고통스럽게 죽는가. 결과는 똑같은 것이다. 내가 죽는 것엔 변함이 없다. 죽음의 방식은 너희가 정하겠지만 어떻게 죽을지는 내가 정할 것이다.”
이마진은 무명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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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7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