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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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순응[順]
“대족장 어르신, 큰일입니다. 정문의 초병을 맡고 있던 마하루가 현재 공격을 받아 중태에 빠져 있습니다. 외람되오나 장원에 침입자가 있는 듯합니다. 서둘러 이 자리를 정리하시고 전투 태세에 돌입할 것을 간언 드립니다. 현재 고스보치 님도 병력을 정비하여 이곳으로 오신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장원의 병력들로 정문에 쓰러져있던 마하루를 보고 서둘러 이소호칸의 신병을 위해 보내진 자들이었다.
이소호칸은 선고우가 힘으로 뚫고 이곳에 당도했다는 이전 말을 상기하고 동생이 마하루를 그렇게 쓰러트렸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아우야, 네가 한 일이냐?”
선고우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유지했다. 그 침묵은 이번 사태의 긍정을 뜻했다.
“아우인 선고우가 장원에 들어오려는 것을 마하루가 제지하여 힘으로 뚫고 들어온 일이다. 너희는 호들갑 떨지 말고 너희 중 한 명은 고스보치에게 가 이 일을 전하고 비상사태가 아님을 알려라. 그리고 너희 넷은…….”
이소호칸은 선고우를 흘깃 바라보았다. 예장을 원한다면 그것을 들어주는 것이 당연한 순리였다. 하지만 이소호칸은 선고우의 뜻을 들어줄 수 없었다.
대족장이 허락한 예장이 아닌 죽음은 개죽음이나 마찬가지였고 선고우도 그렇기에 지금까지 구차하게라도 살아왔다. 자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선고우는 어쩔 수 없이 살 수밖에 없었다.
“아우를 자신의 처소로 보내라. 다소 다툼이 있어도 상관없다. 포박 또한 허락한다.”
“형님!”
이소호칸의 냉대 어린 명령에 선고우는 고개를 들고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이소호칸을 바라보았다.
다섯 중 하나는 바로 대열을 이탈해 돌아갔고 넷은 이소호칸의 명령을 받아 선고우에게로 다가갔다.
“영감, 순순히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하루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넷 중 하나가 다가가는데 선고우가 일어나 그를 후려쳤다. 그는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팔을 들어 간신히 막아냈다. 하지만 선고우의 무시무시한 괴력을 막아내는 데에도 몸이 붕 뜰 정도였다.
“큿.”
“나와 결투할 것이냐! 내 결투라면 받아들여 주마. 넷 전부 덤벼도 좋다. 더 많은 인원을 불러도 좋다. 결투로 죽는다면 그 또한 여한이 없을 터!”
선고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두 다리를 대지에 고정시키고 외쳤다. 이소호칸은 그런 선고우에게 말했다.
“이것은 결투가 아니다. 너는 마하루를 힘으로 제압하고 장원에 온 것에 대해 근신을 명받은 것이다. 너희는 선고우의 발을 노려라. 밧줄을 사용해서 던져 그를 잡아라.”
그들은 모두 허리춤에 밧줄을 달고 있었다. 완전 무장은 아니었지만 적을 포박하는 용도로 챙겨왔던 것이었다.
이소호칸의 명령에 그들은 밧줄을 꺼내 들었다. 선고우는 이를 갈며 허리를 숙였다.
“다리가 다쳤으니 직선적인 움직임밖에 보이지 못할 것이다. 횡으로 이동하면 쉽게 피할 수 있다. 도약 후 다음 동작이 상대적으로 굼뜰 수밖에 없으니 그때 잡도록 해라.”
선고우가 허리를 숙이는 움직임은 이소호칸이 익히 봐오던 공격 동작이었다. 그 동작은 선고우가 단숨에 지근거리로 도약하여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적을 덮쳐 무기력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였다.
하지만 선고우의 저 다리로는 해봤자 단 한 번의 도약만이 가능했다. 약점이 빤하게 보이는 공격. 본래의 몸이었다면 도약 후에도 상하좌우 발과 다리로 방향을 전환하고 허리를 틀어 다각도로 공격을 연계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저 몸으로는 그런 연계는 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소호칸은 약점을 정확히 꼬집어 병사들에게 알렸다.
“형님, 저를 능멸하는 것입니까?”
선고우가 입을 벌리며 원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선고우에게 이소호칸의 말은 조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던져라.”
선고우가 허망하게 이소호칸을 바라볼 때 이소호칸의 말을 필두로 밧줄 하나가 날아들었다. 선고우는 몸을 돌려 그 밧줄을 피했다.
“몸이 틀어졌을 때를 이용해 각 팔을 노려 던져라.”
하지만 그 이후 다른 밧줄 두 개가 날아오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다리를 움직여 자리를 이동해야 했지만 의족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 또한 각 방향에서 날아오는 밧줄 중 하나는 오른손으로 쳐낼 수 있었지만 결국 왼팔에 밧줄이 걸렸다.
“왼팔에 셋이 달려들어 밧줄을 당겨라.”
밧줄이 걸리자마자 세 명의 범인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밧줄을 당겼다. 밧줄에 힘이 걸리면서 선고우의 왼팔이 팽팽히 당겨졌다.
선고우는 왼팔에 힘을 주어 세 명과 맞섰다. 온 힘을 주지 않으면 넘어지게 될 것이 뻔했다. 완력만큼은 아직까지도 건실한 그였기에 세 명이나 달려들어 줄을 당겼지만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온 신경을 그쪽에 쏟고 있는 와중 이소호칸의 말을 시작으로 나머지 한 명의 밧줄이 선고우에게 날아들었다.
“밧줄을 의족에 감아라.”
한 명의 범인이 줄을 던져 의족에 감았다. 이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리를 놀릴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쉽게 줄이 의족에 감기자 이소호칸은 묵묵히 말했다.
“둘은 왼팔을 둘은 의족을 당겨라.”
이소호칸의 명령에 그들은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의족을 두 명이 당기자 선고우의 거체가 균형을 잃고 오른쪽으로 벌렁 넘어졌다.
스무 명의 범인이 달라붙어도 이기기는커녕 동귀어진하여도 잘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량을 가진 선고우를 단 네 명이서 넘어트려 포박한 것이었다.
그것은 모두 이소호칸이 그의 약점을 너무나도 잘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리가 정상이었다면 결코 이리 쉽게 잡히진 않았을 터였다.
“형님! 형님!”
선고우는 넘어진 상태로 포박당해 일으켜 세워졌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서 이소호칸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입으로는 이소호칸을 증오하며 부르짖고 있었다.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대우를 하는 것이오! 어찌하여! 나에게 예장을 허락하지 않고 나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가면서까지 이 아우를 능멸하는 것이오! 형님! 내가, 내가 이렇게 추레하게 잡히고 묶이는 것을 보고 싶소이까!”
절규가 메아리쳤다.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 나를 죽여주시오! 칼에 죽게 해주오. 그녀와의 약속 때문에 나를 이렇게 살려두는 것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형님!”
선고우가 그녀를 언급하자 이소호칸은 미간을 깊이 구부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를 언급하는 것은 선고우와 이소호칸에겐 금기시된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재갈을 물려 서둘러 장원 바깥으로 데려가라.”
마지막까지 이소호칸은 선고우에게 냉대했다.
선고우는 그런 이소호칸의 차가운 시선과 행보에 분노를 넘어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어찌, 어찌 나를 이리 대할 수 있는 겁니까.”
그 중얼거림을 마지막으로 선고우의 입에는 재갈이 물렸다.
선고우는 그렇게 네 명의 범인에 의해 인파를 뚫고 끌려 나갔다. 백모의 한 시대를 빛낼 수 있던 기재의 명성은 초라하게 땅바닥에 떨어져 완전히 사그라졌다.
* * *
축제는 온전히 마무리되었다. 보름가량을 더 있던 슴베마저도 흑모 지파로 되돌아갔고, 어지럽던 장원은 다시 깨끗하게 손질되고 있었다.
모두 즐겁게 마시고 먹을 수 있는 축제로 기억에 남을 터였지만 무명과 수에르에게는 악몽 같은 나날일 뿐이었다.
수에르는 축제의 날 이후로 피리를 더 이상 입에 대지 않았다. 그의 입으로 피리 부는 수에르는 죽었다고 무명에게 말했다. 대체로 즐겁고 신나는 음색을 내뿜던 그의 피리가 방구석에 처박혔고 그 이후로 결코 나오지 않았다.
수에르는 그토록 좋아하던 피리의 음색을 버리고 다른 악기를 꺼내 들었다. 수에르가 일전에 여러 악기를 수집하고 공부하면서 무명에게 잠깐 보여주었던 악기였다.
분명 그는 무명에게 그 악기를 들고 이렇게 말했었다.
“이 악기의 음색은 정말 다양하고 좋아. 두 개의 현에서 나오는 음은 다른 악기들을 초월한다 할 수 있지. 북부로 여행을 떠났을 때 이 악기를 얻고 연주하는 법을 배울 수 있던 건 거의 천운이었어. 나처럼 음악을 좋아하던 노인이었는데 그도 과거 인간 마을에서 이 같은 악기를 세 개 얻어왔는데 오랜 시간 동안 혼자 노력해서 연주법을 알아내었지. 지금은 아마 죽고 없을 테니 범족을 통틀어 이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것은 나뿐일 거야. 하나만 준다는 걸 억지로 두 갤 받아왔지.”
그때 수에르가 자랑스럽게 치켜든 악기는 생김새가 괴상했다. 기다란 막대에 활처럼 줄이 달려 있었는데 그 줄은 두 줄이었고 막대 밑에는 통이 달려있어 통 끝에 줄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냥 보면 망치처럼 생긴 생김새였다. 그 두 개의 현 가운데 줄이 여러 가닥이 들어있었고 줄의 끝과 끝이 나무 막대기로 걸쳐져 있었다.
수에르는 무명에게 장난 식으로 이 악기가 어찌 연주되는지 물었지만 무명은 도저히 보는 것만으로는 악기의 연주법을 알 수 없었다.
수에르는 그런 무명을 보며 웃고는 악기 연주법을 무명에게 보여주었다. 두 개의 현 가운데 여러 가닥의 줄이 현과 현 사이를 마찰하여 망치처럼 생긴 통을 통하여 소리를 울리는 형식이었다. 매우 신기한 울림이었다.
“어, 너 우냐?”
음악을 온전히 연주한 것도 아닌데 그 음색을 듣는 것만으로 무명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었다.
무명은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줄도 몰랐다. 수에르의 말에 볼을 훔쳐보니 소매에 스며드는 물기로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야, 야. 이건 못 가르쳐 주겠는데. 연주할 때마다 울면 어쩌냐?”
수에르는 웃으며 악기를 놓고 말했다. 무명은 왜 자신이 눈물을 흘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소매를 보며 골몰했다.
수에르는 한참 동안이나 눈물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에 빠진 무명을 보며 말했다.
“솔직히 이 악기가 정말 매력 있지만 배워놓고 거의 연주하지 않아. 왜인 줄 알아? 너처럼 울 정도는 아니지만 음색이 너무 슬프거든. 아무리 빠르게 기쁘게 연주를 해도 음악이 신나게 연주되지 않아. 천연적으로 슬픈 음색을 만드는 악기임이 틀림없다.”
수에르의 말을 듣고 무명은 자신이 울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악기에서 나는 소리는 자체로 슬픔을 가져왔다. 가슴이 뭉클하고 추억을 회상할 새도 없이 무명이 가지고 있는 깊은 슬픔을 온전히 드러내게 한 악기였다.
“나는 슬픈 게 싫거든. 신나고 즐거운 게 좋아. 그래서 배워놓고도 이 악기는 연주하지 않고 있어. 피리야말로 나한테 딱 맞는 거 같거든. 너도 나와 피리부터 배우자.”
그렇게 피리 소리를 좋아하고 음미했던 수에르는 피리를 버렸다. 그는 슬픔의 소리를 내는 악기를 꺼내 들었다.
그 악기의 이름은 해금(奚琴). 수에르가 피리를 버리고 해금을 연주하자 구슬픈 해금 소리는 메마른 하늘 가득히 울려 퍼졌다.
============================ 작품 후기 ============================
2014-08-07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