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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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검단성[城]
마진츠는 막사 구석에 기대어있던 선봉의 깃발을 집어 들고 말했다.
“선봉을 넘겨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고스보치는 마진츠의 의견에 내색하지 않았으나 주위에 있는 백인대장들은 고개를 저으며 반대 의견을 표했다.
“선봉을 넘겨주다니요, 그렇게 되어선 안 됩니다!”
“선봉은 우리의 자존심과 같은 것입니다. 쉽게 주어선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아직 선봉으로서 실적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더 많은 전과를 올려야만 대족장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
다양한 반대 의견이 쏟아졌지만 고스보치는 묵묵히 그 말을 다 들어준 후 입을 열었다.
“네가 이런 의견을 피력한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마진츠?”
고스보치가 점잖게 말하자 마진츠는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현재 저들의 전략을 전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저 성을 무리하게 공략하는 것은 큰 희생이 따를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약탈에 있지 성을 공략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는 적의 지원군이 온다면 그 수를 현재로서는 알 방도가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성을 점령하는 데 선봉으로서 우리 지파의 병력을 다수 잃고 그 후에 지원군과도 다시 싸우게 된다면 그 손실은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가 될 것입니다.”
마진츠가 슬쩍 선봉의 깃발을 바라보았다. 깃발은 황금색 실로 마감되어 있는 세로로 긴 천이었다.
천에 쓰여있는 글자는 염의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자랑스러워할 만한 첫째를 뜻하는 선(先)이었다. 그 칭호는 영광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아버지인 이소호칸이 모든 군량을 내주면서 얻어낸 것과 같았다.
“자네 말은… 선봉을 내줌으로 인해 우리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차후를 노리겠다는 것인가?”
“네.”
마진츠는 고스보치의 물음에 뜸 들이지 않고 빠르게 답했다.
고스보치가 잠시 생각에 잠기자 주변의 백인대장들도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마진츠, 자네는 선봉의 깃발을 내주면서도 이 선택이 옳다는 것을 자신하는가?”
고스보치가 미간을 살짝 구부리며 말했다. 그의 물음은 선봉의 깃발을 이리 쉽게 넘겨줘도 되는지에 대한 불만이 섞여있었다.
마진츠는 뜻을 굽히지 않고 대답했다.
“저희 지파에 실질적 이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선봉의 깃발은 분명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자랑스러운 명예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명예보다 저는 실리를 취하고 싶습니다.”
고스보치는 입술을 살짝 실룩이며 무언가 더 말하고자 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이 깃발은 자네의 것, 뜻대로 하게나. 다른 백부장들도 나와 뜻을 맞추길 바라네. 선봉은 우리 부대의 것이기보다는 마진츠의 것이니 그의 뜻을 따르도록 합세.”
고스보치의 말에 대부분 동의했지만 몇몇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깃발이 상징하는 것은 염의 용맹 그 자체이기에 미련이 크게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울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깃발을 거저 주겠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마진츠는 그들을 보며 슬며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 * *
모진오는 눈살을 찌푸렸다. 전력으로 병력을 부추기며 행군을 하는데도 하루에 백 리(40km)를 가지 못했다. 이대로 간다면 도착하는 데 열흘이 훌쩍 넘을 것이 자명했다.
11월 10일. 출발한 지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모진오는 굳은 결심을 했다.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보병의 진군 대열을 보고 한숨을 깊게 내쉰 그는 각 부대의 기마병만을 차출했다.
오만의 군세 중 기마를 탄 기마병은 병과를 구분 없이 사천 기가 전부였다. 부대의 모든 기마를 끌어모은 것으로 심지어 파발의 말까지 포함한 수였다.
“보병은 이 속도로 계속 행군하고 기마대는 먼저 말을 달려 아군을 지원하러 간다.”
모진오가 생각해 낸 것은 바로 기마병만을 이용해 빠른 지원군의 합류였다.
검단성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진오는 매우 서둘렀다. 검단이 뚫린다면 바로 유단 평야였기에 조국으로서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했다.
“식사와 잠을 최소한으로 한다. 달음을 멈추는 일은 오직 기마를 휴식할 때만이다. 모두 이를 악물고 따라올 수 있도록 하라!”
모진오는 가슴을 탕탕 치며 제장(諸將)과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휘하 기마병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후군인 보병들은 부사령(副司令) 육선(陸先)에게 맡기고 모진오는 기마병들과 전력으로 검단성을 향해 내달렸다.
어마어마한 흙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사천의 기마가 빠른 속도로 거리를 내달렸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사흘을 내리 달렸다. 하루에 약 이백에서 이백오십 리를 주파했다. 이는 엄청난 속도였다. 이를 견뎌낼 수 없는 다소 약한 말들과 병사 삼백여 명이 도태되었다.
그들은 사흘 만에 검단성에서 백팔십 리가량 떨어져있는 소맥성(所脈城)에 도착했다.
15일 새벽이 밝아올 때 소맥성에 도착한 그들은 모진오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노곤함이 쌓여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15일 저녁, 그들은 다시 말을 달렸다. 모진오가 급히 쉬고 있는 이들을 다시 일으켰다. 검단성에서 적의 습격에 대한 파발이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는 못했으나 소식을 마주한 그들은 바로 검단을 향해 전신전령으로 달려갔다.
* * *
11월 14일 저녁. 마진츠는 선봉기를 서쪽 지파의 군세를 이끌고 있는 항마레에게 넘겨주었다.
천 명씩 두 개의 단으로 나뉜 염의 군은 본래 서쪽과 동쪽으로 따로 약탈하려 했으나 적의 빠른 대처에 결국 검단에서 다시 모이게 되었다.
검단을 뚫고 나아가야 그들이 바란 대로 원활한 약탈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진츠의 백모 지파는 그름타와 함께 첫 번째 단에 소속되어 있었고, 항마레는 두 번째 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항마레는 속히 선봉기를 넘겨받길 원하였으나 마진츠는 일부러 단의 소속을 문제로 그름타와 상의해야 한다며 기를 넘기는 것을 미뤘다.
그렇게 결정적으로 조바심이 나게 한 상태로 마진츠는 꾀를 부렸다. 선봉기를 넘기는 대가를 요구한 것이었다. 대가는 약탈물의 분배에서 조금 우위에 서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몸이 달아올라 안달한 항마레는 마진츠의 꾀에 넘어가 그리하겠다고 정하고 기를 넘겨받았다.
다음 날이 밝아온 직후 항마레는 검단성의 공략을 명령했다. 순전히 적모 지파 400여 명으로 이루어진 선봉대였다.
적모 지파의 선봉대가 성벽에 올라 성벽 위를 무력화시킨 후 두 번째 단이 무력화된 성벽을 통해 내부를 공략하고 문이 열리면 첫 번째 단이 잔당을 공격하는 형식이었다.
본래 이러한 전략을 세우지 않고 모조리 돌진하는 것이 그들의 성미에 맞는 일이었지만 선봉기를 들먹이며 항마레가 400기로 성을 공략하여 공을 세우겠다고 청하여 정해진 전략이었다.
15일 정오가 느지막하게 지날 무렵, 항마레의 병력이 움직였다. 타오를 듯한 붉은 갈기가 물결처럼 성으로 다가갔다.
검단성은 그들의 침략에 소맥성으로 빠르게 파발을 보냈다. 그러곤 항마레의 선봉을 맞을 준비를 하였다. 약 이만의 병력은 고작 사백밖에 되지 않는 염의 병력에 침을 꼴깍 삼키며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남부 통제사 곽권준은 검단성의 망루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오늘은 저들이 전심으로 공격해 올 것이다. 지금까지는 백 기도 못 되는 소규모 병력이 성벽 아래에서 깔짝이다가 후퇴했지만 저 선봉의 사백 기가 이 성벽을 무력화시키면 적들이 모두 몰려올 것이 분명하다. 검단이 무너지면 우리 조국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생각하라! 적은 무섭게 용맹한 호인들이지만 우리에겐 성이 있다. 이 이점을 살려서 수성한다면 충분히 적을 격퇴하리라!”
곽권준의 말을 필두로 병사들은 바삐 성벽 위로 움직였다. 활을 준비하고 기다란 창과 기름을 벽에 뿌렸다.
일만 오천의 병력이 성벽에 도열해 아래에 물결치듯 다가오는 군세에 맞섰다. 나머지 오천의 병사들은 성벽 아래에서 문 앞을 지키며 수비 태세를 굳건히 다졌다.
곽권준의 지휘봉이 높게 휘둘러지자 천인대장들이 백인대장들에게 활을 쏘라 명령했다. 워낙에 빠른 속도로 전진해 오는 탓에 금세 사거리에 닿았다. 활들이 빼곡히 하늘을 수놓으며 날아들었다.
이러한 화살에 당해주는 미련한 호인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늘 가득히 궁사들이 화살을 쏟아부었지만 맞는 것은 극히 소수뿐이었다.
설사 맞는다 해도 타격은 전혀 없는 듯했다. 병장기로 화살을 전부 쳐내며 호인들은 가소롭다는 듯 전진해 왔다.
“불화살을 쏘아라!”
화살 대부분이 촉에 똥물을 먹여놓은 것이라서 단 한 발이라도 맞게 된다면 인간에겐 치명적인 부상을 야기했을 터였지만 두터운 털과 가죽을 가지고 있는 범인에게는 소용이 없는 듯했다.
결국 그들이 더욱 가깝게 달려오자 수성을 하는 궁수들에게 불화살을 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촉 주위, 기름을 먹인 둥근 천에 불을 붙이기 위해 화살 깃을 잡고 그 끝을 횃불에 넣자 맹렬히 불이 붙으며 화살은 바로 불을 머금었다.
빨갛게 타오르는 화살들이 사백의 호인에게 떨어져 내렸다.
불화살은 확실히 그들의 걸음을 늦추는 데 효과가 있었다. 땅에 떨어져 주변을 태우면서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는 역할도 해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상자는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화살을 쏘았는데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화살에 피해를 입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일반 화살은 몇 대 맞아주는 것이 있었으나 불화살의 경우에는 단 한 명도 맞지 않았다.
그들 사백 명 모두가 한 덩이처럼 움직이며 모든 불화살을 쳐내었다. 일반 화살의 경우에는 전진하면서 각자 자신에게 쏟아지는 화살을 쳐내었기에 일부 실력이 달리는 자들은 우연찮게 몇 대가 몸에 꽂혔으나 일반 화살 때와 달리 전부가 작정하고 서로에게 떨어지는 화살을 쳐내니 불길이 그들 곁에 닿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들을 정체한 것은 불화살이 땅에 떨어져 간간히 일어난 불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군 속도만 조금 늦춘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직선으로 달려오던 게 장애물을 회피해서 달려가는 것으로 바뀐 것뿐이었다.
불화살은 계속 날아들며 전진을 막았으나 결국 반 시진도 되지 않아 염의 선봉대가 성벽 아래에 모두 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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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