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dow Bird RAW novel - Chapter 128
제 목 : [암천명조] 4 권 제 28 장 – 4
“전혀.”
“무정한 놈! 철비연이 네놈에게 지어 준 옷이다. 세상은 참
불공평해.”
노검은 검을 들어 노야를 겨눴다.
“끼끼끼……”
노야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상대할 가치가 없다. 검을 드는 자세,
기도만 보아도 어떤 상대인지 분간할 수 있다.
“죽엇!”
노검은 맹렬히 검을 휘둘러 짓쳐 들었다.
“끼끼끼……”
노야는 가만히 대기했다. 그러다 노검이 지척에 이른 순간 검광을
번뜩였다. 노검은 단 일 검에 목을 허공으로 띄웠다. 순간,
콰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노검의 살과 피와 뼈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진천뢰(震天雷).
사천 당문 화약의 결정체 진천뢰가 터졌다.
암실은 짙은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자욱한 먼지, 비산된 핏방울,
살점들……
“끼끼끼……”
간신히 몸을 추스르던 녹무수는 다시 들려 오는 괴음을 듣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바로 곁에서 진천뢰가 터졌건만 무사하다니. 정말
사람이 아닌 신이란 말인가.
뿌연 먼지 저편에서 노야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무사하지만은 않았다. 화약의 그을음이 전신을 덮었고, 가슴까지
내려오던 은염은 절반이나 타버렸다.
쉬익!
비도를 던졌다. 극성의 태을진기를 실은 비도는 섬전처럼 날았다. 그
뒤를 이어 박도 한 자루가 덮쳐 들었다.
“끼끼끼! 이따위……”
말을 하던 노야는 황급히 검을 들어 비도 열 자루를 쳐내기 시작했다.
정확히 한 자루도 남김없이.
마지막 열 번째 비도를 튕겨 냈을 때 노야는 면전에 다가온 박도를
보았다.
창! 창! 창창창……!
박도와 검은 순식간에 십여 합을 주고받았다.
“끼끼끼! 제법 버티는군.”
괴음을 터뜨린 노야는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섬전처럼 다가섰다.
천외신산의 귀동명왕보는 상대가 안 될 빠름이었다.
“차앗!”
녹무수는 우렁찬 사자후를 터뜨리며 박도를 쳐냈다.
창!
검과 박도가 다시 부딪치는 순간, 밑으로 뚝 떨어진 검은 다리를 베어
왔다.
‘헉!’
이런 허점이 있을 줄은 몰랐다. 박도가 전신 모든 요혈을 보호했다고
생각했는데, 검이 짓쳐 드는 곳은 막을 방도가 없다.
퍼억!
다리를 벤 검은 복부를 쑤셔 왔다.
‘틀렸다!’
암울한 절망이 앞을 가린다. 순간,
쩌`─`엉!
맑은 검명이 울리며 노야의 검이 튕겨져 나갔다.
“이제 그만 하시지요.”
구원자의 말에 노야는 멈칫했다.
‘틈이다.’
녹무수는 태을진기를 최대한으로 일으키며, 불패검왕이 전수해 준
이름 모를 신법을 펼쳤다. 박도는 이미 노야의 머리에 이르렀다.
“안 돼!”
구원자의 입에서 절규에 가까운 음성이 터져 나왔다. 순간, 움찔하는
노야의 눈동자, 주춤거리는 검. 박도가 심장을 가르기에는 충분한
틈이었다.
휘익!
“커억!”
찰나, 한달음에 달려온 구원자는 녹무수를 밀치고 노야를
부둥켜안았다.
“끄끄끄! 나를…… 이길 자는 없어.”
“아, 아버님!”
아버지? 구원자가 노야의 아들이란 말인가!
“미완성의 난등신공……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 머리를 쉴 수가
없어. 쉬고 싶은데, 자꾸만…… 자꾸만…… 쉬지 못하게 해. 저주의
마공……”
“아버님, 이제 편안하십니까?”
“끄끄끄! 편안해……”
노야는 진정 편안한 듯 눈까풀을 내렸다.
녹무수는 고목에 등을 대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밖에 할 일이 없었다.
허무한 마음이다. 통쾌할 줄 알았는데……
불패검왕, 그가 구원자였다. 노야의 아들이었다. 부지런히 달려온 것이
아버지의 임종을 불렀다. 달려오면서도 아버지가 살 방도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목격할 일은 아니었다. 미쳤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불패검왕은 노야, 산화노인의 시신을 정봉의 양지바른 곳에 안장했다.
항시 눈으로 덮여 있는 정봉에 붉은 봉분은 어울리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면 눈 속에 동화되리라.
“혈귀옹은 인간의 정신을 연구했네. 정신을 극도로 발달시키면 어떤
무공이라도 파해하고 펼칠 수 있다는 생각이었지. 상당한 진척도
있었네. 하지만 발달된 정신을 다시 돌릴 수는 없었네. 사람에게서
휴식을 빼앗아 보게. 허허허! 아버님은 흥미를 가졌지. 산화노인이란
명호도 무림맹주란 직위도 헌신짝처럼 던지고 난등신공에 매달렸네.
혈귀옹은 아버님이 위험함을 알고 기련산으로 숨어들었지. 하지만
그때 이미 아버님은 난등신공을 오 수나 익히고 있었네. 그대로 두면
위험했지. 그래서 대천진도를 흘린 거라네. 완성된 난등신공, 머리를
쉬게 할 수 있는 난등신공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뿐이라면 산화노인은 너무 오래 참았소.”
“그것뿐이 아니지. 나는 아버님의 야욕을 알았네. 무림을 제거하고
새로운 정신을 가진 무인들을 거느리고 싶어했지.”
불패검왕은 다시 지전(紙錢) 한 장을 살랐다.
“휴우! 아버님과 약속했네. 난등신공이 아닌 다른 무예로
무신(武神)이 되겠다고…… 이십 년만 달라고 했지. 그 당시 나와
천마맹주의 무공을 합한다면 난등신공 구 수를 막을 수 있었네.”
불패검왕은 노야의 무덤에 잔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했지. 나와 천마맹주의 합공을 일수에 꺾는다면 아버님의
손발이 되겠다고…… 난등신공 십이 수를 익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지. 무예는 계속 발전할 테니까.”
“그렇군…… 가겠소.”
“어디로 가려는가?”
“발길 닿는 대로……”
“단 소저는 보지 않을 참인가?”
“이런 몰골로…… 도와 주시오.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불패검왕은 떠나는 녹무수를 잡지 못했다.
단혜련과 연청운은 하루가 더 지난 다음에야 도착했다.
“떠나겠어요. 그를 찾아야 해요.”
단혜련은 잠시도 쉬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할아버지, 편히 쉬세요.”
연청운은 절을 하면서 오열을 터뜨렸다.
자상했던 기억밖에 없었으니까.
불패검왕은 선친이 거둔 연청운에게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것이 살아 가기에 편할 테니까.
* * *
정통이년(正統二年) 십일월(十一月) 초이틀.
녹무수는 길을 막는 무인을 바라보았다.
“나는 검을 버렸다.”
“그런 것 같아서 두 자루를 가지고 왔지.”
“싸우고 싶지 않다. 공동파하고는 원한이 없다.”
“하하하! 나도 그렇게 속 좁은 놈은 아냐. 겨루고 싶은 이유는
무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인도 아냐. 복수하기 위해 검을 들었고, 복수를 했기에 검을
버렸다.”
“세상일이란 인과(因果)가 있지. 지금 그 싹이 자랐다고 생각하게.”
광천 진인이었다.
녹무수는 광천 진인이 건네 준 박도를 받았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촉이군.”
“후후후! 그런 기분은 무인만이 느끼지.”
“나도 무인인가?”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광천 진인은 검을 수평으로 뉘였다.
그 동안 실전검예를 통하여 더욱 정련한 복마검법.
“타앗!”
광천 진인은 허공으로 몸을 띄워 복마현신(伏魔現身)을 펼쳤다. 그리고
보았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을 훑고 지나간 박도를……
박도는 옷자락만을 베어 냈다. 살은 한 푼도 깎지 않고……
정통삼년(正統三年) 삼월(三月) 열이레.
녹무수는 사천성(四川省) 아미산(峨嵋山)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만났다.
사천 당문의 당비.
“만천화우를 이겨 낼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네 목을
자르지 않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