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dow Bird RAW novel - Chapter 129
제 목 : [암천명조] 4 권 제 28 장 – 5
“후회하나?”
“아니. 덕분에 만천화우를 재검토할 수 있었지. 지금은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다행이군.”
“백부의 비도술, 견식하고 싶다. 네 덕분에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의
칭송을 받는 것이 모멸스럽다.”
“비도가 없어.”
“준비했지.”
녹무수는 낯익은 감촉을 느꼈다.
“시작하지.”
목소리는 극히 평온했다.
당비는 추혼침을 육십사 개씩 나눠 양손에 거머쥐었다.
“조심해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추혼침은 하늘을 가렸다.
녹무수는 비도를 던지지 않았다.
몸은 벌집이 되었고, 신형은 만장단애로 떨어져 내렸다.
* * *
녹무수가 죽었다는 소문은 중원천하에 퍼져 나갔다.
섭섭해하는 사람도 있고, 애통해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무인들은 무덤덤했다.
무림은 평온했다.
3
엔 향 유 단 뜩 강산은 검
십 년이 흘렀다.
단혜련은 기련산 중턱에서 한숨 돌린 다음, 정봉까지 한달음에
치달았다.
넓게 펼쳐진 설원.
많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죽음의 공포에 짓눌렸던 얼굴들. 천잠사를 묶어대던 사람들.
따뜻한 작설차 한잔은 뱃속을 훈훈하게 해주었지.
그래, 저 자리야. 그는 저기서 외롭게 차 한잔을 홀짝였어.
많은 사람들의 족적이 담긴 설원은 밋밋했다.
세월이 흘렀고, 중년 티가 흐르는 단혜련도 그때의 청순한 모습은
아니다. 조금은 세월을 얼굴에 담았고, 그래서 보는 풍경도 예전과
다르다.
쉬익!
절정에 이른 유성추혼이 펼쳐졌다.
강호일미(江湖一美).
중원무림을 떨쳐 울리는 삼대고수 중 일 인이 됐다.
비검은 독비검객(獨臂劍客)이란 명호를 사용했다. 녹무수에 대한
끝없는 도전이었다. 그도 삼대고수 중 일 인이다.
귀제갈은 천마맹주로 위엄을 떨쳤다.
당분간 천마맹을 어찌할 사람은 없으리라.
삼대고수 중 한 사람인 풍여위가 그녀의 부군이니까. 아니, 그녀의
지략만으로도 능히 마도를 통치할 수 있으니까.
애석한 것은 연청운의 죽음이었다.
난등신공은 점점 발전했고, 스스로 나머지 무리를 깨달아 갔다. 심성이
독해짐을 느꼈고, 산화노인의 고뇌를 절감했다. 연청운은 불패검왕
앞에서 자진했다.
불패검왕은 분루를 삼키면서 연청운의 시신을 수습했다.
이제 저주의 난등신공은 영원히 사라졌다. 비로소 안심했는가!
불패검왕은 속세를 떠나 불도에 전념했다. 무석선사(無石禪師),
불패검왕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유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던 암곡도 그대로였다.
조그만 빙로에 박힌 철못이 파진대가 역사의 한구석에 있었음을 말해
주었다.
쉬익!
단혜련은 거침없이 빙로를 건넜다.
대천진.
조그만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들었다.
대천진은 한번 펼쳐지면 영구히 거둘 수 없다. 그 점은 흑거에서 이미
경험한 적 있다. 지금도 숭산 옥주봉 절곡은 무림금지였다. 화진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녹무수는 조심조심 걸었지.
단혜련은 녹무수가 하던 대로 나뭇가지 하나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걸었다.
대천일진을 통과했다.
쉬익!
신형은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금상진.
여기서 팔 하나를 잃었다.
그때의 암울함은 생각하기도 싫다.
대천진을 들어섬에 병기는 필요없었다.
금상진을 거리낄 이유가 없었다. 서슴없이 신형을 날렸고, 파로를 찾아
눈 속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물이 고여 있다.
온천수, 외항충이 번식하던 곳이다.
단혜련은 문득 신형을 멈췄다.
눈물이 핑 돈다. 전신에 기력이 빠지며 한꺼번에 십 년은 늙은
기분이다.
저쪽도 보았는가?
들고 있던 통나무 더미를 놓쳐 버린다.
‘있을 줄 알았어. 살아 있을 줄 알았어.’
단혜련은 한걸음, 한걸음 힘들게 떼어 놓았다.
그 얼마간의 세월이었던가!
“오랜만이군.”
조금은 생소하게 들린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 모양이다.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지냈나?”
“그저 그렇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십 년 세월 동안 중원천하를 뒤졌다.
있을 만한 곳은 전부……
“여기는 어떻게?”
“그냥…… 오고 싶었어요.”
“기억하기도 싫을 텐데……”
많이 늙었다. 십 년 만인데 몇백 년은 지난 것 같다.
“보고 싶지 않았나요?”
“……!”
녹무수는 고개를 들어 맑은 창공을 바라보았다.
“결혼은?”
“자식이 하나 있어요.”
“잘했군.”
“못난 자식이에요.”
“허허허! 그럴 리가 있나. 당신을 닮았으면 똑똑하겠지.”
정말 많이 변했다. 옛날의 기도가 사라지고 온후한 기풍이 전신을
맴돈다.
“저를 닮은 데는 한구석도 없거든요.”
“허허허!”
“이름을 녹무수라 지었어요.”
“응? 하필이면……”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저 아니면 돌봐 줄 사람이 하나도 없거든요.
바로 당신……, 유일한 남편이고 철없는 자식이에요.”
단혜련은 널찍한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미련한 여자군. 당신은……”
“그런 말, 기억나요. 그때는 남해일봉으로 불렸죠? 지금은
강호일미예요.”
녹무수는 감정을 참지 못했다. 힘주어 껴안았다. 얼마나 그립던
여인인가. 행복하기를 바랬는데……, 못난 놈은 잊어 주기를
바랬는데……, 아니, 이렇게 찾아오기를 십 년 세월 동안
학수고대했었지.
녹무수는 단혜련의 고운 입술을 탐했다.
하늘은 맑았다.
맑아도 너무 맑았다. 바로 사랑하는 여인의 눈망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