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16
214화 구마전쟁(7)
정도맹의 전력은 강력했다.
화산의 검은 날카로웠고 무당의 검은 부드러웠으며 소림의 무공은 웅혼했다.
어디 그뿐일까.
“무기를 버리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촤학!
“무기를 버리래도!”
서걱!
“어허, 자비를 베푸는데도 항복하는 놈들이 없다니……. 실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구나!”
푹.
“원시천존!”
푸욱!
입으로는 항복을 권하지만, 그 항복을 할 시간을 주지 않는 정도맹주의 자비 없는 검은 그들의 진형을 순식간에 박살 냈다.
그 뒤를 받치는 쉰 명이 넘는 초절정의 고수들 역시 자비 없기는 마찬가지였고.
그중 가장 가장 눈에 띄는 이는 정도맹주의 수제자 진궁이었는데.
“자!”
“축!”
“인!”
“묘!”
꾸러기 수비대의 종족을 하나씩 외치면서 혈매화검을 펼치는 게 아니겠는가.
입으로라도 항복을 권하는 정도맹주와는 다르게 아예 처음부터 살검을 펼치면서 말이다.
‘역시 미친놈이었어.’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아마 죽어서 다시 태어날 때 12간지로 환생하라고 명령하는 듯 보였다.
여하튼, 그런 정도맹의 활약에 힘입어 전왕문의 무사들은 적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무전이의 무림 환생 이후 최고의 위기가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 * *
전투가 끝난 후.
나는 지원군을 이끌고 달려온 정도맹주와 독대를 했다.
급수로 치면 내가 한참 밑이었으나, 지금 전장에서 구룡성의 입장을 대표할 만한 이는 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네 이놈! 그 알량한 자신감 때문에 수많은 백성이 죽을 뻔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불호령이 떨어졌다는 거지.
“잘 싸우고 있었는데 전력 차가 워낙 많이 나서 어쩔 수가…….”
“일 문의 문주라는 놈이, 그것도 한 지역의 위정자라는 자가 이리도 어리석다니! 화산이었으면 면벽 삼십 년을 때렸을 거다. 죽은 네 할아비가 봤다면 통탄을 금치 못했을 거고!”
빠직.
할아버지가 여기서 왜 나와?
“아니! 사흘이나 늦게 온 주제에 뭐 그렇게 불만이 많습니까?! 말마따나 정도맹이 제시간에 왔으면 이런 일이 생겼겠습니까?!”
구룡성과 정도맹은 구정동맹이라는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나는 전쟁 시작 전, 하오문의 전서구를 빌려 정도맹과 앞으로의 작전을 합의했다.
우리 전왕문이 시간을 끌고 있을 테니 몇 월 며칠까지 지원군을 보내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정도맹의 전력은 제시간에 도달하지 못했고, 나는 합류 시간을 조금이나마 앞당기기 위해 용마산을 통해 그들을 감숙으로 불렀다.
“제가 대머리에게 부탁해 재촉하지 않았으면 우리 애들은 전부 죽었습니다. 맹주님이야말로 이번 사태의 주범입니다!”
“이, 이놈이!”
할 말이 떨어졌는지 정도맹주가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크흠, 무릇 전쟁이란 준비가 완벽해야 하는 법이라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출발이 늦어진 것뿐이다.”
“…….”
“…….”
잠시간의 적막이 지나고 정도맹주는 전황을 물었다.
“그래,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이냐? 올 적에 보니 한중에 양민들이 바글바글하던데…….”
“아, 그게 말입니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아주 자세하게 지난 일을 설명했다.
한중의 모두가 전쟁 준비를 도와준 일, 적의 보급을 방해하기 위해 난주를 비롯한 감숙 이남을 불태운 작전, 그리고 적의 선봉대와 별동대를 궤멸시킨 전투에 관해서까지 말이다.
약 삼십 분에 걸친 설명을 듣고 정도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고생했구나. 그만한 전력을 상대로 이렇게나 선전하다니 공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전쟁이 끝나는 대로 성에 그 말 그대로 다시 말해 주십시오. 죽은 우리 애들 목숨값이라도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마.”
“고맙습니다.”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걸 왜 제게 묻습니까? 맹주님이 결정하셔야죠.”
여태까지야 우리밖에 없었으니 내 마음대로 했지. 하지만 정도맹의 전력이 도착한 지금, 앞으로의 명령권자는 맹주가 된다.
내가 아무리 불세출의 지휘관에 떠오르는 고수라 해도 나이 지긋한 정도맹의 원로들과 맹도들이 내 말을 따라 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도맹주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여태껏 전장에 나가 목숨 걸고 싸운 이 말고 누구의 말을 듣겠느냐. 기탄없이 말해 보거라.”
“……뭐, 그렇다면야.”
차라리 잘됐다. 도사들과 승려들 모임이라 삽질할까 봐 불안했거든.
나는 품에 있던 지도를 꺼내 펼치며 우리가 있는 지점을 가리켰다.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이곳부터 한중까지 천천히 후퇴하면서요.”
“여태 끌지 않았더냐? 우리가 왔으니 그 목적도 달성했고. 차라리 이 기세를 몰아 놈들을…….”
“맹주님께선 며칠이나 굶으실 수 있습니까?”
“흐음, 두 달 정도는…….”
“거짓말하지 마시고요.”
어디 전직 입벌구 앞에서 구라를 치고 있어.
“운기행공으로 자연지기를 얻는다면 한 달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밖에 있는 맹도들은요?”
“경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굶으면서 수행하는 데 익숙한 불문과 도문의 제자들이니 못해도 보름은 버티겠지.”
“그럼 평생 굶어 본 역사가 없는 십마련의 마구니들은 어떻겠습니까?”
“설마?!”
“맞습니다. 논밭은 불태우고 짐승들은 눈에 띄는 대로 죽여 마구니들을 쫄쫄 굶게 하는 겁니다.”
세계사를 살펴보면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건 미친놈이라고.
히틀러가 그랬고 칭기즈 칸의 몽골군이 그랬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될 거다.
* * *
천산산맥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십마련 총타의 모습은 고즈넉하기 그지없었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 온 천마신교의 전각들을 그대로 사용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초대 천마가 직접 제련하고 천 년이나 총타의 정문을 지켜 온 두꺼운 강철 문은 십마련의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그 자랑거리는 바로 오늘, 무참히 박살 나고 있었다.
꾸웅!
정문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특유의 진동 덕분에 괴기스럽게까지 들렸다.
“…….”
꿀꺽.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십마련도 하나가 두려워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어디 그뿐이랴.
“천마신께서 우리를 지켜 주실 터이니 겁먹을 필요 없다!”
십마련도들을 지휘하는 이 역시 목소리를 떨며 외칠 정도였다.
그러기도 잠시.
꾸웅!
몇 번의 타격이 계속되자 정문에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십마련도들은 몸으로라도 막고 싶어 몸을 움찔거렸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치이익.
무슨 수를 썼는지 정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극양의 심법을 익힌 십마련도들이 문을 막으려고 달려들었다가 녹아 버린 게 조금 전이었다.
꾸웅!
또다시 울려 퍼지는 굉음.
그리고.
쿠왕!
더는 버티지 못한 강철 문이 녹아내리며 사람 여럿이 지나갈 만한 구멍이 뚫렸다.
저벅저벅.
중년의 남성이 지옥에서 올라온 마왕 같은 위용을 내뿜으며 걸어 들어왔다.
바로 천지투왕이라 불리며 이번 전쟁에서 가장 많은 마도를 학살한 북궁백이었다.
그가 시뻘건 눈으로 장내를 돌아봤다.
“련주는 어딨나?”
“…….”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다급함이 느껴지는 물음.
십마련의 검종주가 자신의 검을 빼 들었다.
“뭣들 하고 있느냐! 저 시건방진 놈을 잡아 죽이지 않고.”
군마영세 신교불패-!
화르륵.
지옥 불처럼 뜨거운 고열의 화염이 총타를 뒤덮었다.
* * *
결과만 따지자면, 지연작전은 제대로 맞아 들어갔다.
십마련 놈들의 얼굴에 하루가 다르게 굶주림의 고통이 서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했다.
놈들이 출발한 천산에서 이곳 섬서까지는 오천 리 길.
아무리 챙겨 온 식량이 많았어도 식량이 떨어질 때가 됐으니까.
그걸 예방하기 위해 난주에 보급품을 모아 뒀지만, 도착하기 전에 내게 털렸고.
작전 자체의 효과는 확실했다. 문제는.
“평생을 농사짓던 땅을 두고 어디로 가란 말씀이십니까?!”
“불을 놓는다니요! 안 됩니다! 차라리 저를 죽이십시오!”
“안 된다, 이놈들아! 아악!”
멀쩡한 논밭을 불태운 탓에 백성들이 목뒤를 잡고 쓰러졌다는 거지.
“……거참, 씁쓸하구만.”
더 큰 문제는, 이 일을 맡은 게 나라는 거다.
전왕문 전부를 후송 보낸 탓에 내가 할 일이 없었거든.
덕분에 욕이란 욕은 전부 들어 먹는 욕받이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어쩌겠나.
“자자, 너무 화내지들 마시고 내 말 좀…….”
퍼억!
날아오는 돌을 붙잡으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럴 때는 위엄 있는 목소리가 어울리거든.
“아, 내 정신 좀 봐. 소개가 늦었소. 나 전왕문의 문주 진무전이오.”
신분을 증명하는 패를 내밀며 말하자 백성들이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물론 세금도 내지 않는 화전민이 내가 누군지 알 리가 없다.
그저 높은 사람인가 싶어 굽신대는 것뿐이다.
그들이 눈물을 터뜨리며 자신들의 처지를 읍소했다.
“아이고! 나으리, 어찌……. 어찌 이러십니까요. 세금이 문제면 내년부터는…….”
“세금이 문제가 아니오. 이제 곧 십마련의 마도들이 들이닥칠 테니 떠나라고 하는 거요.”
사실, 청야 작전도 청야 작전이지만 백성들을 피신시키려는 의도도 있다.
인터넷은커녕 신문도 없는 시대, 심산유곡에 처박혀 전쟁 소식도 못 들었을 테니까.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도…….”
“한중에 가면 내년 수확기까지 버틸 곡식은 물론, 비옥한 토지와 살 만한 집을 내줄 것이오. 앞으로 힘들게 화전을 놓지 않아도 되오.”
“지금 즉시 식구들을 챙겨 한중으로 가겠습니다요.”
화전민촌이 아닌 강가 마을은 비우기가 조금 더 쉬웠다.
“……벌써 갔군.”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아무도 없었거든.
화르륵.
덕분에 경작지에 불을 놓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했다.
그렇게 다섯 개 마을을 불태운 뒤 정도맹의 진영에 도착했다.
아침보다 오십 리쯤 밀린 것 같았다.
“선방했네.”
지금 우리 목표는 하나였다.
바로 시간을 끄는 것.
그렇기에 정도맹의 전력은 십마련의 본대에 맞서지 않고 철저히 피해 다녔다.
상대가 진군하려 하면 맞서 싸우는 척 시간을 끌다 후퇴했고.
기습전이라도 펼치려 하면 곧장 후방으로 물러났다.
그렇다고 그냥 도망치면 안 된다.
‘도망도 기술이지.’
언제든 공격할 수 있다는 페이크를 걸어 마구니 놈들을 긴장시켰다.
덕분에 십마련 놈들은 긴장감을 유지한 채 천천히 진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냥 싸워도 이긴다.
우리에겐 절대 고수 정도맹주가 있으니까.
솔직히 그가 자하강기를 두른 채 돌진하기만 해도, 놈들은 그의 내공이 바닥나길 기다리며 제발 살려 달라고 하늘에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뭐, 일종의 핵무기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데도 이런 번거로운 작전을 펼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목숨.
최대한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마도들을 물리치기 위함이다.
좋은 방법이 있는데 굳이 생목숨을 갈아 넣을 필요는 없으니까.
겸사겸사 십마련 놈들이 많이 항복하면 좋고.
‘단전을 파괴하고 십 년 정도만 무보수로 부려 먹는 게 좋겠어.’
이런 자비가 넘치는 관대한 처분까지 생각해 놨으니깐 말이다.
그렇게 모든 게 뜻대로 되는 것 같았으나, 변수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