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18
216화 마도 종결
야생 동물은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한눈에 알아보는 재주가 있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포식자를 피해 다니는 습성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인간 역시 동물이라는 걸 몸으로 깨달았다.
십마련주를 처음 보자마자 느껴지는 감정이 그러했으니까.
‘죽음.’
만약, 죽음이란 개념이 육체를 갖는다면 딱 저러할 것이다.
덜덜덜.
후들거리는 무릎을 쥐고 억지로 서서 겨우 정신을 붙잡고 있을 때, 맹주가 입을 열었다.
“괄목상대라는 말이 절로 떠오는구려. 근래 커다란 성취가 있으셨나 보오.”
“보다시피.”
“혈겁을 일으키시는 연유를 묻고 싶소만.”
“벌레를 죽이는 데도 이유가 필요한가?”
“십마련의 련도들도 죽고 있소.”
“그들도 벌레이긴 마찬가지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정도맹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천하의 강자는 많소이다.”
모래알처럼 퍼져 있는 정파 무림의 기인이사를 예로 든 협박.
하지만, 십마련주는 비웃음에 가까운 조소를 지을 뿐이었다.
“강함이란 상대적인 것, 당신이 말한 그들은 내게 있어 강자가 아니다.”
“결국 스러져 간 과거의 마교주들 역시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겠소?”
“그거야 보면 알겠지.”
말을 마친 그가 걸음을 내디뎠다.
쿠웅!
실제로는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그의 걸음에선 태산 같은 압력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맹주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도망가거라!] [싫습니다.] [네가 살아야 한중 백성들도 산다.] [맹주님!] [어서!]“어린 주제에 기세가 날카롭더니만 네가 전왕문주였군.”
“……!”
전음을 엿듣다니.
직접 겪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기사에 눈이 크게 뜨였다.
꽈악.
“컥!”
그가 이형환위를 펼쳐 내 목을 붙잡았다.
맹주가 움직인 것도 그때였다.
“련주!”
화악!
아까와도 같은 검법.
단순함에서 만변의 변화를 꽃피우는 그의 검이 커다란 매화를 그려 냈고.
쾅!
십마련주가 단순한 손짓으로 그 매화를 터뜨렸다.
“으음!”
“역시 화산이로군. 날카로워.”
어느새 내 목을 놓은 그가 맹주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파앗.
이형환위.
나는 온 힘을 다해야 겨우 한 번 펼치는 최상승의 보신경을 그는 겨우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으로 펼쳐 냈다.
스악.
맹주의 검이 움직이며 공간을 갈랐다.
꿀렁거리는 공간 바로 앞에 멈춰선 십마련주.
“자연지기를 흩어 버리다니. 역시 정파의 무공은 신기하군.”
옥색으로 물든 그의 손이 닿자 잘린 공간이 순식간에 메워졌다.
파아아.
맹주의 몸에 보랏빛 노을이 깃들기 시작했다.
자하강기.
“끄아악!”
“키에……!”
화산 최후의 비전이 펼쳐지자 주변에 있던 마도들의 몸이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사람의 마음이 없어진 걸까.
자신의 부하들이 떼죽음을 당했음에도 십마련주는 시종일관 흥미 어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것 역시 재미있군.”
“더는 재미가 없을 것이오!”
무언가를 결심한 듯 비장함까지 느껴지는 목소리.
콰앙!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절기를 쏟아 냈다.
푸화! 쾅쾅쾅쾅!
보랏빛 노을에 휩싸인 검이 만변하며 주변을 가득 채웠고, 십마련주의 옥색 손이 그런 검을 후려쳤다.
‘이건…….’
마치 반신 간의 싸움이 이러할까.
보이지도 않는 속도의 공격들 하나하나가 산을 쪼갤 만한 위력을 품고 있었다.
끄아악-!
사, 살려 줘…….
충격파가 퍼지며 주변이 초토화되며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쿠아아아!
나 역시 그런 충격파를 버티기 위해 전룡기를 끌어올렸다.
‘사람이 맞나?’
절대고수를 처음 본 건 아니다.
성주를 봤었고 북궁 사부를 봤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대결을 본 건 처음이었다.
정확히는 절대고수가 전력을 다해 펼치는 무공의 위력을 처음 봤다.
“으음.”
수십 초의 공방 끝에 맹주가 뒤로 물러섰다.
수비만 하던 십마련주가 공세로 전환했던 탓이다.
“이게 끝인가?”
“그럴 리가 있겠소?”
맹주가 자신의 검을 바로 세우며 작게 웃음을 지었다.
“왜 웃지?”
“모든 걸 쏟아 낼 만한 상대를 만난 게 즐거워서 그렇소. 강자존의 규칙 속에 사는 당신들 역시 마찬가지 아니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십마련주가 검을 빼 들었다.
“흡!”
아까와는 또 다른 느낌의 강렬한 기도에 숨이 막혀 왔다.
숨을 몰아쉬는 맹주의 눈빛이 내게 향했다.
도망쳐.
눈빛에 담긴 의미가 너무도 선명했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어 내 달렸다.
* * *
“허억, 허억…….”
턱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나를 비롯한 정도맹의 무사들은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달려 나갔다.
그렇게 세 시진, 두 개의 산을 지나자 누가 명령하지 않았음에도 다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격렬한 전투를 치르다 도망친 탓에 체력이 바닥난 것이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훔치며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
그런 열기를 식혀 주려는 건가?
꽈릉, 쏴아아.
때마침, 천둥이 몰아치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으흑……. 으허허…….
사방에서 비통에 가득 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참아 왔던 눈물이 터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쾅! 쾅! 쾅!
“시발! 시발! 시바알!”
속 깊은 곳에서 치솟은 울화를 참지 못하고 눈앞의 나무를 때려 부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내가 무력하게 느껴졌고, 목숨을 거는 맹주를 말리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그랬다.
우리는 패배했다.
그것도 대패하여 삼백이란 무사들을 허무하게 잃어버렸다.
무엇보다, 맹주가 죽었다.
무사들을 살리기 위해 십마련주를 붙잡고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인 것이다.
만약 그가 후퇴를 명령하지 않았다면, 목숨을 내던지며 맹주를 막아서지 않았다면 정도맹은 오늘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십마련주는 강했으니까.
그리고.
맹주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검법의 마지막 초식은 과연 그가 사람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두려움을 떨쳐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중이 머지않았습니다. 계속 갑시다.”
그러나 무력감에 빠진 정도맹의 무사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후우…….”
숨을 들이쉬고 다시 외쳤다.
“맹주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맹주의 죽음을 거론하자 분노에 찬 수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
“죽더라도 십마련주 배때기에 칼은 꽂아 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사와 불제자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만, 효과는 있었는지 무사들의 눈빛에 힘이 감돌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정도맹의 아홉 장로가 무사들을 다독였다.
“정도맹의 제자들은 일어나거라. 죽더라도 원수는 갚고 죽어야 하지 않겠느냐!”
때마침 먹구름이 몰려가며 저 멀리 있는 한중이 보였다.
* * *
한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모두를 불러 모아 풍전등화의 현 상황을 공유했다.
“미, 믿을 수가 없군. 정도맹주께서 이리 허무하게 가시다니…….”
비록 십마련주의 강함은 직접 보지 못했어도 그만큼 정도맹주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은 대단했던바.
전왕문의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 십마련주를 막느냐는 거다.
그리고 그 열쇠는 내가 아닌 정도맹이 쥐고 있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
잠시간의 침묵 끝에 아홉 장로 중 소림의 대표가 손을 들었다.
“탑림에 계신 광야 사조님께 연락을 하겠소이다. 소림으로 가는 전서구를 구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전전대 소림 방장이었던 광야대사의 이름에 모두가 탄식을 내질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서구를 구해 주실 거면 우리 것도 구해 주시구려. 노군암에 계신 사백님께 연락을 취하겠소.”
무당의 장로가 손을 들었고.
“우리 화산의 것도 구해 주시구려.”
화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역시.’
이게 바로 십마련주를 막을 유일한 키였다.
천 년 역사를 이어 온 삼파의 저력.
드러나지 않은 절대고수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정파의 강호에는 모래알처럼 많은 기인이사가 있으니까.
그들이 올 때까지 시간만 끈다면 한중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전왕문의 모두는 목숨을 바쳐 십마련을 막아 내겠습니다.”
“우리 역시 최선을 다해 힘을 보태겠소이다.”
“그럼 수비의 역할 분담부터…….”
“우리 정도맹이 여기를…….”
“차라리 이렇게는 어떨까…….”
* * *
반나절이 넘는 회의 끝에 각자의 역할이 정해졌다.
가장 중요한 성벽은 가장 강력한 전력을 자랑하는 정도맹의 무사들이 맡았다.
흑룡문과 한중의 무인들로 이루어진 한중 수비대는 성벽 안쪽에서 그들을 돕기로 했다.
무림인 간의 싸움에선 성문은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바, 그들은 성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적들을 상대할 것이다.
앞선 두 전력의 역할이 방패라면 전왕문은 창이었다.
며칠 사이 어느 정도 부상을 치료하고 체력을 회복한 그들은 적들의 빈틈을 보이면 언제고 튀어 나갈 것이다.
‘이게 최선이다.’
텅텅 빈 전왕전을 돌아다니다 문득 창밖을 바라봤다.
시비들도, 하인들도, 성안에 살던 백성들도, 천하 곳곳에서 몰려들던 상인들도, 감숙성에서 소개한 민초들도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전부 피난을 보내 놨던 탓이다.
묘향과 청소소, 적화란을 포함해서 말이다.
피식.
끝까지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던 모습을 생각하니 헛웃음이 지어졌다.
누가 데려갈는지 모르겠지만, 고생 좀 해야 할 것 같다.
‘아……. 한 명은…….’
묘향을 떠올리다 곧 고개를 저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명확할수록 죽을 확률이 커지는 게 전쟁이니까.
‘스스로 플래그를 세울 순 없지.’
지도를 펴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예상했다.
‘간단하게 생각하자.’
하오문의 도움을 받아 전서구를 날린 게 어제니 앞으로 이틀이면 소식이 들어갈 것이다.
절대고수가 전력을 다해 달려온다고 가정한다면, 소식이 들어가고 나서 사흘 정도면 화산파의 지원군이 도착할 것이다.
아무리 절대고수라도 혼자서 십마련주를 상대하기엔 턱도 없겠지만, 한중으로서는 그때까지만 버텨도 일단은 안심이다.
그를 중심으로 이틀만 더 방어하면 호북과 하남에서도 사람이 올 테니까.
즉.
‘오 일.’
우리가 이 시간을 버티느냐, 버티지 못하느냐에 이번 전쟁의 승패가 달려 있다.
문제는.
‘방법이 없다.’
십마련주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거다.
그가 보여 준 무(武)는 인간의 것이라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그럼에도 정도맹의 아홉 장로들은 직접 나서서 합공을 펼치기로 했다.
자신보다 상위의 고수를 상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머릿수.
실제로 합격술을 수련한 절정고수 일곱이 모이면 초절정고수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게 강호의 정설로 통했다.
그렇다면 절대고수를 상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 역시 마찬가지다.
초절정 고수 일곱이 적절한 합격술을 펼치면 절대고수도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화경을 벗어났다고 추정되는 십마련주.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정도맹의 아홉 장로들로는 어림도 없다. 나를 포함해도 말이다.
애초에 그게 가능했다면 죽은 정도맹주가 목숨까지 바쳐 가며 우리가 도망칠 시간을 벌지도 않았겠지.
즉.
정도맹의 장로들이 나선 것도 목숨을 담보로 시간을 끌겠다는 뜻이었다.
본산의 절대고수가 이곳에 도달할 때까지 말이다.
숭고하고 고마웠다.
한중을 지키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해 준 것이.
그들이 이대로 후퇴하여 화산에서 십마련을 막는다면 정도맹 사람들은 아무도 죽지 않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의자에 앉아 쉬고 있던 차.
“문주님! 전방에 십마련의 마도들이 접근 중입니다.”
“가자.”
이번 전쟁의 최종장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