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62
261화 혼례식(2)
지역 간 이동이 힘든 무림에서 치르는 혼례식은 현대의 결혼식에 비하면 조촐하기 짝이 없다.
대충 친척들을 불러 놓고 음식을 나눠 먹는 소규모의 잔치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구룡성이 낳은 셀럽인 나와 구룡성 최고의 섬유 회사인 서천상단의 CEO인 묘향의 결혼식이 그리 단출해서야 쓰겠는가.
나는 곳간을 털어 누구든지 와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대규모 잔치를 열었다.
‘쓸 때는 써야지.’
그러려고 돈을 버는 거니까.
일 인당 백성소득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구룡성의 백성들이지만 그렇다고 쌀밥에 고깃국을 자주 접하는 건 아니다.
어디 잔치 때나 초청받아 한 번씩 먹는 정도였지.
심지어, 오늘의 메인 요리는 보통의 고깃국이 아니었다.
제1회 천하제일 면왕대회의 우승자 묘향이 레시피를 짜고, 3위에 입상한 내가 보완한 사천식 장칼국수였던 바.
백성들은 음식을 먹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 같은 천것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시다니……. 묘 부인의 마음씨가 참으로 곱구먼.”
“허어, 자네는 서천상단도 모르나?”
“응? 서천상단이라면……. 상행 중 배곯는 이를 지나치는 법이 없다는 대상단이 아닌가?”
“그곳의 주인 되시는 분이 바로 묘 부인일세.”
“이런! 내가 몰랐구먼그래. 내 앞으로 평생 서천상단의 옷감만을 사서 쓸 것이네!”
이런 훌륭한 홍보 효과까지 있었으니 들어간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맛있게 먹는 백성들을 바라보고 있던 차, 초대한 손님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혼인 축하드려요.”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별거 아녜요. 풍유……. 아니, 환단 하나를 개발하느라 피곤해서 그래요.”
가장 먼저 피곤함에 찌들어 있는 청소소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연회장에 들어와 아무렇게나 앉았다.
“가가.”
“화, 화란이구나.”
“혼인 축하드려요.”
“그, 그래.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고 가라.”
“지켜보겠다.”
“……아니.”
왜인지 모르겠지만 차분한 적화란과 적대적인 적일이삼 형제들이 청소소의 바로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 뒤로도 손님들은 끝없이 쏟아졌다.
각 당의 후계자들을 비롯한 무인들, 묘향과 거래하는 상단의 단주들, 외당 시절의 동료들 등.
하나같이 구룡성에서 만나 친분을 쌓고 얼굴을 익힌 이들 뿐이었다.
‘그나저나 대머리 놈은 대체 왜 안 온다는 거야?’
친한 친구 결혼식 날 편지 한 장 겨우 보내 놓고 잠적하다니.
정말 안될 놈이 틀림없다.
그렇게 용마산을 생각하며 고개를 휘휘 젓고 있으니 내성의 당주들이 도착했다.
“으핫핫핫! 진 당주! 혼인을 축하하네! 일단 배가 고프니 밥 좀 먹고 옴세.”
광산에서 단련한 커다란 덩치와 악마의 등을 자랑하는 백룡당주와.
“혼인 상대가 그 묘 단주라니. 전룡당의 부가 날로 커지는 게 이제 이해가 가는군.”
금빛의 최고급 옷감으로 몸을 휘감은 금룡당주.
“운이 녀석이 보낸 혼인 선물이네.”
“예? 갑자기 검을 왜…….”
웬 검을 가지고 온 청룡당주.
“허허, 네가 혼인을 하다니……. 이제는 도사가 되라고 말도 못 하겠구나.”
“아니.”
여전히 나를 도사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던 묵룡당주.
“혼인 축하하네. 여기 부탁한 폭화통침이네. 더는 재장전이 불가하니 신중하게 쓰게.”
“아이고! 큰 형님!”
내 마음속 유일한 큰 형님이신 녹룡당주가 커다란 결혼 선물을 가져왔다.
그리고.
“흥, 어디 얼마나 잘사는지 보겠네.”
“아니, 혼례식 날에 무슨 저주를…….”
단단히 삐친 적룡당주까지.
이렇게 여섯 당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저 멀리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으음.”
구룡성 전체에서 저런 불길한 기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사부.”
별자리 운세마저 벌벌 떨게 하는 희대의 마두, 북궁 마신뿐.
물론, 개인의 행실이 어떻든 간에 정파의 하늘 구룡성주다.
사부가 나타나자 무사들과 백성들이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나 역시 달려 나가 사부와 문상을 맞이했고.
“아이고! 오셨습니까?! 상을 봐 놨으니 어서 안쪽으로 드시죠. 스승님께서 좋아하시는 흑사로의 죽엽청을 깔아 놨습니다.”
“으음.”
사부가 상당히 만족하는 눈치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싸구려 죽엽청이냐고 할 수도 있는데,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라도 입맛은 똑같은 법이다.
아무리 사회적인 성공을 거뒀다 해도 삼겹살에 소주는 못 참는 법이 아니던가.
그렇게 손님맞이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고 있으니 정문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묘향이 탄 붉은색 꽃가마가 온 것이다.
“저는 이만 부인 될 사람을 맞으러 가겠습니다.”
긴장한 채 자리에서 일어서자 여섯 당주들과 사부, 문상이 체통도 잊은 채 껄껄거리며 웃었다.
“십마련의 마도들을 개 잡듯이 때려잡은 천하의 투패(鬪敗)도 긴장이 되나 보구려.”
“허허허, 그러게나 말이오. 전룡당주의 어린 시절이 눈에 훤하거늘.”
“남천궁의 사마외도들 머리통을 깨부순 손이 아녀자의 손을 잡는 데 쓰이다니. 으핫핫핫.”
“…….”
당주들을 무시하고 꽃가마에 다가서니 가마를 이고 온 서천상단의 일꾼들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화려한 모습을 한 묘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평소의 수수한 모습만 봐서 그런지 순간 심장이 멈출 뻔했다.
“뭘 그리 놀라요?”
“아, 아니…… 너무 예뻐서…….”
“어맛…….”
몸속의 황소가 날뛰기 시작했던바, 더는 시간을 끌기가 싫었다.
“가자.”
“……네.”
그녀가 내민 새하얀 손을 힘 있게 붙잡고 단상 위로 걸어갔다.
그 모습에 구룡성의 백성들과 무인들이 크게 웃었지만, 무슨 상관이랴.
나만 좋으면 된 거지.
단상 위에 오르자 오늘의 사회자인 북궁창이 긴장된 얼굴로 서 있었다.
본인은 하기 싫어했지만, 노총각들이 넘쳐나는 전룡당에서 홀로 혼인을 세 번이나 한 베테랑이라 억지로 사회를 맡겼다.
곡식이 산처럼 쌓여 있는 탁상 앞에 도착하자 그가 크게 외쳤다.
“일배천지(一拜天地)!”
천지 신령께 앞날을 비는 절을 하고 나니 북궁창이 다시 외쳤다.
“이배고당(二拜高堂)!”
부모님께 절을 하라는 뜻.
나는 묘향과 함께 북궁 사부가 있는 쪽을 향해 절을 했다.
“부처대배(夫妻对拜)!”
마지막 삼배에 나와 묘향은 서로를 향해 절을 했다.
서로를 잘 부탁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삼배를 마치자 사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축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허, 허공답보!”
“가히 천신과도 같은 위용이시다.”
사부가 허공을 밟으며 단상 위로 걸어왔다.
제발 오버 좀 하지 말라는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으나 내뱉지는 못했다.
사부의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였거든.
“크흠. 큼.”
잠시 후, 좌중이 조용해지자 사부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축사가 시작되려는 순간.
‘제발 쓰여 있는 대로만 읽어 주세요.’
얼마 전, 나는 장원 급제 출신인 묘산에게 축사의 작성을 부탁했다.
도무지 사부를 믿을 수가 없어서였는데.
“싸우지 말고 잘 살도록.”
역시나 믿을 수 없는 인간이 확실했다.
“아니…….”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고.
* * *
적화란이 눈물을 흘리며 나가 버리고 술에 취한 회룡도가 도를 뽑아 들고 내게 도전을 하는 등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혼례식은 아주 잘 마무리되었다.
원래 함께 살았던 덕분에 혼인 후에 어색한 기류 역시 없었다.
그저 약간의 호칭 변화만 있었을 뿐.
“부인.”
“예, 상공.”
나는 누이라는 호칭 대신 부인이라는 호칭을, 묘향은 직급 대신 상공이라는 호칭으로 서로를 불렀다.
손이 약간 오그라들긴 했지만, 아직 신혼이니 이 정도는 넘어가자.
여하튼, 그렇게 성공적인 결혼식을 마친 후 나는 묘향을 잡아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 갑자기 여행이라니요? 일이 이렇게나 밀렸는데…….’
묘향이 상당히 당황했지만, 아녀자의 덕목 중 제일은 하늘 같은 남편의 뜻을 따르는 것.
‘아니, 그러지 말고 가자. 지금이 아니면 언제 둘이 놀러 갈 수 있을지 모르잖아.’
‘아무리 그래도…….’
‘몰라! 허락해 줄 때까지 여기 누워서 안 일어날 거야!’
‘무슨 애도 아니고 정말…….’
나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묘향을 휘어잡은 채 동정호로 가는 마차에 올라탔다.
사실, 그동안 계속 시달렸던 터라 며칠 쉬고 싶기도 했거든.
아, 참고로 묘산은 실무 체험을 해 보라는 핑계로 군사부로 보내 버렸다.
혹시나 따라와서 남경으로 간다고 하면 묘향이 기절할 거 같아서 말이다.
그렇게 마차 안에서 묘향과 오붓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호위대를 맡은 우제준이 다가왔다.
“출발하시겠습니까?”
“그러엄.”
피식.
한 차례 웃음을 지은 그가 모두에게 외쳤다.
“출발한다!”
우르르.
우제준의 외침에 일백의 육로가 말을 몰고 출발했다.
신혼여행에 무슨 백 명이나 동원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내가 사는 하드보일드 무림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최소한의 치안조차 확보되지 않은 이곳에선 언제 어디서 싸움이 걸려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 같은 경우는 그 스케일이 남다르지 않던가.
‘처남을 구하러 갔다가 황궁에 불을 지르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을 정도다.
히이잉-!
우리의 결혼을 축하하려는지 마차의 선두를 이끄는 흰둥이가 마중지왕(馬中之王)의 포스를 뿜으며 울음을 내뱉었다.
“어엇!”
“말이 이상하다!”
“살기가……!”
뭐, 조금 오해의 여지는 있었지만 말이다.
* * *
여행의 목적지로 삼은 곳은 동정호.
조금 멀리 가는 거 같기도 하지만, 이곳을 고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가까운 곳을 가면 빨리 돌아와야 하니까.’
그렇다.
평생에 걸쳐 몇 번의 결혼을 할지는 모르는 지금, 이번 신혼여행을 최대한 길게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평생 놀고먹고 싶다……!’
다행히 묘향은 처음 떠나 보는 마차 여행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어머? 저 꽃 좀 봐요. 처음 보는 꽃이네요?”
“저 전각은 참 특이하게 생겼네요. 아주 옛적에 지어졌나 봐요.”
“음…… 음식이 아주 특이하네요. 사천성에서와는 다른 향신료를 쓴 거 같아요.”
뭐가 그리 신기한지 몰라도 묘향은 조금만 낯선 게 보이면 눈을 빛내며 웃음꽃을 피웠다.
“저 나무 정말 우람하지 않아요? 어쩜 저렇게 크고 곧을까요. 꼭…….”
“크흠…… 이따 밤에 보자고…….”
물론, 신혼 기분도 내면서 말이다.
이런 게 무림에서 즐기는 여행 아니겠는가.
사실, 항상 사건을 수습하러 전력을 다해 달려만 봤지, 이렇게 느긋하게 다녀 본 건 나도 처음이었다.
뭐랄까.
꼭 완행열차를 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오 일.
우리는 귀주의 끄트머리에 있는 철산(鐵山)에 도착했다.
예로부터 철광석이 많이 난다고 하여 철산이라 이름 붙은 민둥산.
아무것도 볼 게 없는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어서 오시오. 진 문주……. 아니, 이제는 진 당주라고 해야 옳겠군.”
하룻밤 신세도 질 겸, 태모산성의 성주인 우중천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성주님께선 하나도 늙지 않으셨군요.”
“진 당주 덕에 제자들이 배불리 먹는 걸 보니 날이 갈수록 젊어지는 기분이오. 아, 혼례식은 어떠했소? 내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외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우 성주님 바쁘신 건 천하가 다 아는데요, 뭐. 대신 백년삼을 꽉꽉 채워서 보내 주셨으니 탓하지 않겠습니다.”
하하하하.
한 차례 호탕하게 웃은 그가 안쪽으로 손짓했다.
“자자. 안으로 드십시다. 내 진 당주와 묘 부인이 온다는 소식에 힘을 좀 쏟았다네. 아마 만족할 것이오.”
“그것참 침이 고이는군요.”
그렇게 나는 우중천을 따라 태모산성의 안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무슨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