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less martial arts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83
382화 인간 진무전
후루룩.
무황성주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들이켰다.
그를 따라 차를 들이켠 북해천주가 갑자기 찻잔을 집어던졌다.
“앗 뜨거워! 이봐, 당신은 이게 안 뜨거워?”
“……추위가 싫어서 중원으로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고 뜨거운 걸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선선한 날씨를 좋아하는 거지.”
“까다롭기도 하군.”
“남이야.”
찻상 위에 놓여 있던 다과를 한 움큼 집어먹은 북해천주가 물었다.
“그나저나, 사자맹주랑 붙어 본 소감은 어때?”
“인간이 아니더군.”
“그것 봐. 내가 그랬잖아. 인간을 초월…….”
“아니, 정말로 인간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목이 갈라져도 회복되는데 어찌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나.”
“……그걸 어떻게 이겼데?”
“나는 도움만 줬지. 구 할은 신임 구룡성주가 해낸 것이다.”
“합공으로 이긴 줄 알았는데?”
“전혀.”
북해천주의 눈빛이 깊어졌다.
“……진정한 천하제일인이 탄생했군. 나이가 이립이 조금 넘었다고 했나?”
“그래.”
“앞으로 백 년간은 구룡성의 시대겠구먼.”
“왜 그렇게 생각하지?”
“탄탄한 세력, 가히 무신이라고 할 수 있는 무공. 뛰어난 지략까지 갖춘 인물이야. 마음만 먹으면 천하를 일통하는 것도 가능하겠는데?”
“그것도 본인이 의지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음?”
북해천주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무황성주를 쳐다봤다.
“사자맹을 항복시키며 선언하더군. 남은 일생을 민생과 무림을 분리하는 데 쓰겠다고.”
“……미쳤군. 스스로 왕조를 세우겠다는 건가?”
“나야 모르지. 한데 기대가 된다. 그가 마음을 먹으면 왠지 이루어질 것 같아서 말이야.”
“이상하군. 관과 무림을 분리하면 당신네에겐 안 좋은 거 아닌가? 한데 왜 기대가 된다는 거지?”
무황성주가 작게 웃었다.
“그래야 천하가 바로 설 테니까.”
“음……?”
“평생을 검만 잡은 우리가 백성을 볼 줄이나 알까. 제대로 된 지자(智者)가 목민을 하는 게 백번 낫지. 하여, 우리와 정도맹은 신임 구룡성주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무황성의 힘이 약해질 텐데?”
“약해지면 어떤가? 새로 세워질 나라가 무황성을 대신하여 장성을 방어해 줄 텐데.”
“그거야 그렇지만…… 휴전이 끝나면 어쩌려고? 우리의 남하를 막을 수 있을 거라 보는 건가?”
“구룡성주를 감당할 수 있으면 어디 해 보든가.”
“쳇,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다니…… 비겁하구먼.”
“정파다운 거지.”
“한데 그거 아나?”
북해천주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차기 천주가 될 내 조카 놈이 이번 중원행에서 구룡성주의 의제가 되었다는 걸. 듣기로는 구룡성주의 부인들의 목숨을 구했다는데?”
“……우리 막내는 그의 오른팔 되는 인물과 혼인이 예정되어 있다.”
“한 다리 건너뛴 인맥이 무슨 인맥이라고…….”
“나는 성주 본인과 함께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운 사이기도 하지.”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내 누님의 남편 되는 사람이 구룡성주의 사조 되는 인물이야.”
“흥, 북해천의 문화를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나? 씨만 받을 뿐 일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래서 이번부터 바꿨지. 중원의 관습대로 한집에 살고 애도 키우게.”
“……내가 돕지 않았다면 구룡성주는 사자맹주를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아까 구 할은 그가 했다고 하지 않았나? 당신은 그저 옆에서 깔짝대기만 했다고.”
“겸손이었다.”
북방을 지배하는 두 절대자의 말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 * *
“화산의 사십팔 대 제자, 진궁. 신물을 받듭니다!”
무릎을 꿇은 진궁에게 검양자가 자애로운 웃음을 지은 채 매화신검을 넘겨주었다.
“가까이로는 제자들을 돌보고 멀리로는 백성들을 살펴야 하는 것을 잊지 말거라.”
“예.”
“그래, 잘해 주리라 믿는다.”
검양자가 화산의 제자들을 내려다보며 외쳤다.
“오늘 진자 배의 진궁에게 진운자라는 도호를 내리고, 화산의 장문인으로 추대하겠다. 제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새로운 장문인을 따라 화산의 정기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하거라.”
예-!
그렇게 간단한 취임식이 끝난 후, 진궁은 스승을 따라 들어갔다.
이제부터 자신이 기거할 상청궁이었다.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으냐?”
“그저 똑같이 하고자 합니다.”
“구룡성주가 뜻을 밝혔는데도?”
“천하가 안정되기 전까진 누군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날이 오도록 도와야 한다고 봅니다.”
“도와야 한다라…….”
“예, 천하가 올바르게 되어야 하니까요.”
“허허. 좋은 선택이구나.”
“그리고 개인적인 욕심이 있습니다.”
“욕심? 네가?”
“예.”
진궁이 창문 너머의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최근 화산에 입적한 사대 제자들이었다.
“화산의 무공으로 무신을 키워 보려 합니다. 훗날 구룡성주가 없어도 천하를 지킬 수 있도록.”
“그건 더욱 좋은 생각이구나.”
검양자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진궁을 바라봤다.
* * *
“정말 같이 안 가셔도 괜찮으시겠소?”
“전룡당에 남아 스승님의 유지를 이으려고 한다.”
“고향에 돌아가는 게 꿈이었잖소?”
종극린이 작게 웃으며 주위를 돌아봤다.
“이제는 이곳이 내 고향이다.”
“흐음, 어쩔 수 없구려. 알겠소. 하면 우리는 이만 떠나 보겠소.”
“잘 지내시오. 대형.”
“나무 관세음보살…….”
“보중하십시오. 대형.”
만풍의 뒤로 서인청과 덕산, 이금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냐. 너희들도 보중해라.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고.”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말처럼 오랜 기간 함께했던 그들은 전룡당을 떠나 고향으로 향했다.
당양강이 떠나는 이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당진형과 당팔에게 물었다.
“우리도 갈까?”
“어딜요?”
“……어……디?”
“자유를 찾아서.”
“거참, 큰일 날 소리 좀 마십시오. 형수님이 아시면 난리 납니다. 그리고 꼬박꼬박 잘 나오는 월봉을 포기하긴 왜 포기합니까. 애들 키우고 가르치는 데 어디 한두 푼 들어갑니까?”
끄덕끄덕.
“크흠,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이제는 유부남이 되어 버린 탓에 현실에서 도피할 수 없는 당과삼괴였다.
* * *
“……아버지.”
남궁유룡이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장검을 착잡한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남궁무영이 아닌, 그에게 생명력을 빨아 먹혀 죽은 진짜 아버지의 유품.
그나마 무전에게 설명을 듣지 못했다면 이조차도 찾지 못했을 터이다.
휘오오.
그가 한때 찬란했던 사자맹의 본단을 살펴봤다.
본단을 채웠던 수많은 무인은 온데간데없었고 재물이 가득 들어찼던 창고는 모조리 약탈당해 텅텅 비었다.
“사파란…….”
허무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남궁유룡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번 전쟁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든든했던 형제들도, 가문의 혈족들도, 맹주가의 무사들도.
공허함에 빠진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죽어야 하나?’
멍하니 걷던 그때, 성벽 위에 위태로이 서 있던 여인이 몸을 날리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남궁유룡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형환위를 펼쳐 떨어지는 여인을 잡아챘다.
“총군사?”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그가 경악했다.
바로 이여령이었기 때문이다.
“……이 공자.”
“대체 왜 이런 짓을 하신 것이오.”
이여령이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모든 게 끝났으니까요. 봐요. 평생을 바쳐 온 사자맹도, 평생을 충성한 맹주님도 없어요.”
울컥.
남궁유룡은 이여령의 모습에서 조금 전의 나약한 자신을 보았다.
“해서 죽으려 했단 말이오? 어찌 그런!”
“천하 어디를 가도 손가락질당할 게 뻔하고 가진 건 모두 잃었어요. 언제 어디서 객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팔자라고요. 이제 산들 뭐 하겠어요.”
“……차라리, 나와 함께 가시는 건 어떻겠소?”
“……어딜요?”
“천하가 얼마나 넓은데 우리 몸 하나 누일 곳이 없겠소. 걷다 보면 정착할 만한 곳이 나오겠지요.”
강렬한 눈빛에 이여령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어디든 이곳보다는 낫겠죠.”
“그럼 갑시다.”
두 사람의 긴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전왕 북궁십과 신백이 느긋하게 산을 올랐다.
서로의 존재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부자 사이였으나 두 사람은 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아버지.”
“왜 부르느냐?”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러는데, 저번에 왜 격체전력으로 평생을 키운 내공을 건네주셨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왜 이렇게 멀쩡하세요? 아니, 보면 볼수록 건강해지시는 것 같으신데요?”
“그야…….”
북궁십은 말문이 막혀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 자신도 왜 이러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궁의 피는 하늘이 내린 것이라서 그렇다.”
급하게 지어냈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에 기초한 내용이었다.
당장 그의 아들 북궁백만 봐도 천금지체가 아닐 뿐이지 천고의 무골이었으니까.
“그럼 저도 마찬가지겠네요?”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있다. 북궁가의 튼튼한 몸과 신가의 천부적인 감각을 함께 타고난 셈이니까.”
“와…… 그럼, 저도 노력하면 무전이 형님처럼 될 수 있는 겁니까?”
“그건 좀 힘들지 싶은데.”
“아니, 왜요? 저도 재능있다면서요.”
“그건 재능의 영역이 아니라서 말이다.”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부자는 커다랗고 화려한 묘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우와아…….”
마치 왕묘와도 같은 모습.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신백과 달리 북궁십은 묘비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고생 많았다.”
‘언제부터 아비 노릇을 했다고. 귀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십시오.’
북궁백은 쓴웃음을 지었다. 마치 북궁백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 * *
안휘성 무한으로 하오문을 이전한 용마산은 눈코 뜰 새가 없이 바쁘게 지냈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밤새 쌓인 전서를 확인했으며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각 지부에 명령을 하달했다.
그래도 그가 버틸 수 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오셨어요.”
묘향의 전담 시비였던 매란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별일 없었소?”
“별일이 있을 리가 있나요? 일이야 시비가 알아서 해 주고, 제가 하는 일은 겨우 식사 준비뿐인데요. 배고프시죠. 앉으세요. 얼른 차려 드릴게요.”
“항상 고맙소.”
“당연한 일인데요. 뭘.”
“그나저나 머리카락이 정말 많이 길어지셨네요. 처음 뵈었을 때와는 비교도 하기 힘들어요.”
“당신이 기르라고 한 날부터 한 번도 자르지 않았소.”
“어머.”
“크흠.”
아직 신혼인 탓인지 별거 아닌 말에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심상치 않았다.
“저어…….”
“저기…….”
“크흠, 먼저 말씀하시오.”
“아, 아녜요. 상공께서 먼저 하세요.”
매란이 얼굴을 붉히며 눈을 내리깔았다.
용마산이 헛기침을 하며 그런 매란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나도 나이가 있으니 슬슬 자식을 봐야 할 것 같은데…….”
“어머?”
“크흠. 큼!”
뜨거운 신혼을 불태우러 용마산이 매란의 손을 잡아끌었다.
* * *
구룡성 내원, 성주전.
얼마나 잠을 못 잤는지 눈 밑이 새까만 유소평이 제 상체만 한 서류 더미를 들고 들어갔다.
“성주님, 이번 달에 처리할 안건들입니다. 가장 먼저 운남 쪽의 도로를 먼저 손보셔야 하는데 예산이…….”
“유 문상이 알아서 해.”
“아무리 제가 처리한다 해도 확인은 좀 하셔야 합니다.”
“어허! 일하라고 월봉 받는 거 아냐. 누가 보면 공으로 부려 먹히는 줄 알겠어?”
“아니, 제가 안 한다는 게 아니라…….”
“나는 이만 퇴근해 볼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아! 도장 거기 서랍에 있으니까 알아서 찍어.”
“절차라는 게 있는데 어떻게……. 성주님! 거기 서십시오!”
유소평을 뒤로한 무전이 허공을 척척 밟으며 달려 나갔다.
“저기 봐! 성주님이셔!”
“오늘도 하늘을 날아다니시는군.”
“성주님, 만수무강하십시오!”
“이 사람아, 이미 하늘의 신장이나 다름없는 분이신데 병마가 찾아오겠나?”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를 알아본 성의 백성들이 냅다 머리를 박았다.
그중 몇몇은 무전과 닮은 나무 조각을 어루만지며 소원을 빌기까지 했다.
서천 내에서 무전은 무신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무전을 신으로 모시는 진제묘의 숫자가 관제묘의 숫자를 앞질렀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의 무전은 그런 것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아빠 왔다!”
“빠-!”
묘향이 낳은 아들만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아이고, 우리 산이 오늘은 뭐 하고 놀았쪄용.”
“상공, 체통이 있으신데…….”
“아비가 되어 아들을 이뻐하는 게 무슨 흠이 된다고……. 에베베 까꿍!”
묘향이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흥, 이제 우리는 보이지도 않나 보네요.”
“정말 너무하세요. 무거워 죽겠는데…….”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아 배가 산만 한 적화란과 청소소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무전이 황급히 태세 전환을 시도했다.
“크흠, 그럴 리가 있겠어? 자나 깨나 우리 부인들 생각뿐인데.”
“말이라도 못하면…….”
“낭군님은 물에 빠져도 입만 뜰 거예요.”
“자자, 어서 가서 식사들 하자고.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하는 거 알지?”
“청가장 최고의 의원이 여기 있는데 그걸 모를 리가 있겠어요?”
그렇게 모두와 함께 저녁을 먹은 무전은 묘향의 침실에 들었고.
여느 때처럼 잠을 자던 중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음……?’
마치 몸이 붕 뜨는 느낌.
특이한 감각에 그가 눈을 뜨니 주변이 밝은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게 뭐지?’
고민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고민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좋다……!’
마치 세상의 평온이란 평온을 모조리 가진 듯한 느낌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평생 이 순간이 지속되었으면.
그렇게 무전은 눈을 감고 순간을 즐겼고.
곧이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 처음 보는 산골짜기에 도착해 있었다.
“꿈인가…….”
“꿈이 아니다.”
“어?”
바로 옆에 있음에도 전혀 느끼지 못한 기척.
그를 본 순간 무전은 알 수 있었다.
‘인간이 아니야.’
남궁무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자라고.
“……아저씨는 누구십니까?”
“신.”
“구라 치지 마시고요.”
“너를 환생시킨 존재기도 하지.”
“……진짜군요.”
“앉아라.”
자리에 앉자 그가 술을 따라 줬다.
“상이다.”
“상이요? 겨우 술 한잔으로 보이는데…….”
“선도로 만든 술이다.”
“……마시면 어떻게 됩니까?”
“신이 되는 것이지.”
“그럼 안 마시겠습니다.”
“왜지?”
“인간으로 살고 싶으니까요.”
“나는 기회를 두 번 주지 않는다.”
“열 번을 주셔도 제 결정은 안 바뀝니다.”
“이해할 수 없군. 신이 될 기회를 줬음에도 스스로 거절하다니.”
“뭐, 이렇게 생겨 먹은 놈도 있고 저렇게 생겨 먹은 놈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알았다. 너의 선택을 존중하겠다.”
스스로를 신이라 칭한 이가 손을 휘젓자 술잔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무전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 이쪽 세상은 지낼 만했나?”
“다 괜찮았는데 초반에 뒤질 뻔했습니다. 기왕 환생 시켜 주실 거면 부잣집으로 보내 주시지 왜 거지로 태어나게 해서…… 하여간 일 처리 하고는……. 쯧쯧.”
“…….”
무전이 고개를 젓자 신이 다시 물었다.
“하계의 인과율을 안정시킨 네 공로가 만만치 않으니 다른 상을 줄 수도 있다.”
“괜찮습니다. 이미 과분하게 받았거든요.”
“음?”
“신은 전지전능하다더니 그것도 아니군요.”
“…….”
“여우 같은 마누라들과 토끼 같은 자식들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들은 너 스스로 얻은 인연이다.”
“…….”
“하계 인간들의 삶에는 신이 관여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신의 무공을 익힐 수 있는 너를 골라 이곳으로 환생시킨 것이기도 하고.”
“……그래도 뭐, 죽은 놈을 이리로 환생시켜 주셨으니 50%의 지분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겠지.”
“그나저나, 집엔 어떻게 돌아갑니까? 나 없는 거 알면 우리 마누라들이 깜짝 놀랄 거 같은데.”
신이 다시 한번 손을 휘젓자 검은색 구멍이 생겼다.
“저곳으로 내려가면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무전이 엉덩이를 털며 물었다.
“그런데 가기 전에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
“딱 보니 창조신 같은 느낌은 아니신 거 같고…… 하계에서 깨달음을 얻어 신이 되신 거 같은데 그때 불리던 이름이 있으실 거 아닙니까?”
“…….”
“곤란하시면 말씀 안 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한참이나 입을 다물고 있던 신이 작게 중얼거렸다.
“치우.”
“어쩐지 그분이실 것 같았습니다.”
무전이 활짝 웃으며 몸을 날렸다.
인간 진무전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
― 완(完)
완결 후기
음… 후기가 본문을 쓰는 것보다 어렵네요.
(세 번이나 쓰고 지웠다는…)
작품을 연재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네요. 하던 매장을 폐업하기도 했고 건강이 안 좋아져서 시골로 요양을 가기도 했고요. ㅎㅎ
작품 이야기를 하자면 시작은 감평부터였습니다.
전작 회귀 3회차 재벌빌런을 완결한 저는 차기작으로 무협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소장한 무협지만 오백 권이 넘을 정도로 매니아이기도 했고 많이 읽어서 수월하게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이게 웬걸? 10화까지 써서 보여 줬는데 진부하고 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솔직히, 절망했습니다. 근자감 뿜뿜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책장의 책을 다시 꺼내어 읽었고 약간의 개그를 넣어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멋있는 무협도 좋지만 웃긴 무협을 더 좋아해서였습니다. (월영신 작가님의 천하제일 이인자를 정말 재밌게 봤거든요.)
그리고 연재를 시작했고 생각보다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독자님들 사랑합니다.)
그 뒤로부턴… 예. 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즐거웠던 파트도 분명 있고 그렇지 못한 파트도 있었습니다. TMI 기질을 꺼내서 설명드리자면 가장 재밌었던 파트는 천하제일 면왕대회였고 괴로웠던 파트는 사자전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무거운 것보다 가벼운 내용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ㅎㅎ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정말 아쉬운 점 투성이네요. 캐릭터 공기화에 허술한 에피소드 마무리에 오히려 힘을 줘야 할 때는 늘어져 버렸고요.
그래도 가끔은 잘 쓴 것 같을 때도 있긴 했습니다. 정말 가끔이라는 게 문제지만요.
뭐, 종합하자면…
좋았습니다. 십 년이 지나도 지금 후기를 쓰는 지금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한 일 년을 보냈습니다.
부족한 작가, 키나애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