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0
10화
눈이 부시다 못해 따가운 햇빛이 피부를 찔렀다.
2F, 쥐 마수, 래츠.
3F, 하급 돌 골렘.
마침내, 4F.
【4F에 입장하셨습니다.】
【은경빌딩 4F 남은 시간…… 01:29:59】
인상을 찡그리며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가렸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방금 빠져나온 철문과 밟히는 모래를 몇 번이나 다시 쳐다봤다.
새파랗고 광활한 하늘.
발밑으로 느껴지는 버석한 모래.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바싹한 공기와…….
‘모래바람.’
휘이잉―.
부는 바람에 속절없이 안면을 후려 맞은 나와 강민형은 한동안 입에 들어간 모래를 퉤퉤 내뱉느라 바빴다.
계단조차 없는 망망대해 사막.
지평선 끝없이 이어진 모래 한가운데에 우리는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어두침침한 건물 안에 갇혀 있던 것이라고 예상조차 안 되는 배경이었다.
‘결국 완전히 집어 먹혔구나.’
포탈화(化).
시간이 흐르면 점점 더 채널의 간섭이 심해져 다른 차원과 연결 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빠른 변화 속도였다.
그래도 3층까지는 아직 스터디카페의 모양을 잃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는데.
“여기, 진짜, 사막…….”
또 패닉이 온 강민형을 보며 미간 사이를 꾹꾹 눌렀다.
놈에게 티 내진 않았지만, 이모아의 연약한 몸뚱이는 슬슬 여기저기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포탈에 입성한 지 이제 1시간 40분째.
‘언제 오냐.’
구조대는 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세이프티 존인 5층을 클리어하고 빠져나가려면 지금…… 아니, 한참 전에 도착했어도 모자를 시간이다.’
심지어 이것도 최대한 층마다 존버한 건데…….
예상대로라면 3층 부근에서 진작 구조대를 만나 해피보상라이프를 즐겼어야 했다.
설마.
‘내가 예정된 서사를 바꾼 것 때문에, 구조대의 진입도 달라졌다면.’
고민하는 새에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푹푹 빠지는 발을 건지며 힘겹게 걸었다.
고요하고 뜨거운 모래밭 위.
쉴 새 없이 머리 위로 날아드는 사막 박쥐들의 사체가 발치에 툭툭 채였다.
“…… 구조대가 많이 늦네요.”
강민형 역시 그 생각 중이었는지 급격히 어두워진 낯빛으로 중얼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평균적으로 포탈이 터졌을 때 구조대가 도착하는 시간은 늦어도 30분.
여기까지는 어찌저찌 잘 살아남아서 꾹 참았을 텐데, 갑자기 포탈 속이라는 게 실감이 난 것 같았다.
나야 벌어질 일을 아니까 버틴다 쳐도…….
짭. 입맛을 다시며 볼을 긁적였다.
“올 거예요.”
딱히 해줄 말이 이것뿐이었다.
강민형은 대답하지 않고 이동할 때 대충 묶어놓았던 셔츠 소매를 조금 더 짧게 잡았다.
그래도 여러 번 목숨을 구해줬으니 미약한 신뢰도가 쌓인 모양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번 층에서는 반드시 와줘야 하는데.’
층을 오를수록 조금씩 더 깨기 어려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특히나 세이프티 플로어의 난도 격상은 국룰이었다.
내가 아는 마수, 아는 미션이 주어져도 버거울 확률이 높았다.
그쯤 가면 나 혼자 살기도 바쁠 판에 강민형을 지키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다.
다이아를 얻는 건 또 다른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놈을 곁눈질로 살폈다.
눈이 마주치자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살짝 웃는다.
그냥 고개를 돌렸다.
또다시 침묵의 횡보가 시작됐다.
사아악―. 사악―.
그렇게 몇 분이나 더 걸었을까.
‘개더워.’
땀이 밴 손을 바지에 슥슥 문질렀다.
그늘 하나 없는 땡볕을 걷고 있자니 숨이 거칠어지고 현기증이 몰려왔다.
밟고 온 길도 다시 다 모래에 파묻혀 내가 걷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내 긴장하고 있는 게 무색하게 모래 쓸리는 소리만 지겹게 들린다.
‘사람 쫄리게.’
원래 무슨 일이던지 폭풍전야가 가장 두려운 법이다.
조용히 뒤따라오는 강민형의 상태도 가히 좋지 않다.
열이 올라 시뻘건 얼굴로 헥헥거리고 있었다.
이럴 때 바람이라도 불면 좋을…….
‘…… 잠깐.’
모래가 움직이고 있다.
단 한 점의 바람도 불지 않는데도.
눈치챈 순간 강민형의 손목을 붙잡았다.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깜짝 놀라 쳐다보던 놈의 표정이 점차 아연실색해진다.
무작정 달렸다.
조금이라도 더 벗어나기 위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모래가 기둥을 세우며 펑! 퍼엉! 솟구쳤다.
‘모래 병사.’
C급 인간형 마수로 공격력이나 방어력이 뛰어난 수준은 아니다.
다만 문제는 병사라는 이름답게 무리를 지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는 점, 다른 마수들과 다르게 무기를 다루는 데 뛰어나다는 점.
그리고.
‘언데드계.’
녀석들이 일반적인 공격으론 죽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
검이 병사의 목을 댕강 썰었다.
파스슥!
떨어진 모래 대가리가 산산조각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부서진 그 모래가 또다시 몸통을 기어올라…….
‘재생된다.’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다.
혈혈단신으로 적장에 나선 장군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악!”
“두들겨 맞지만 말고 좀 잘 피해 봐요!!”
“그게 되면 안 맞았죠!”
그거참 맞는 말이네. 처맞는 말.
머리를 감싸 쥔 강민형이 애처롭게 소리쳤다.
병사가 내리치는 칼날을 막아내며 방패로 밀어냈다.
이 검도, 방패도 전부 다 모래 병사들에게서 뺏은 것들뿐이다.
놈들은 장비한 무기도 가지가지였는데 칼들은 전부 쳐내고 둔기 종류는 그냥 냅뒀다.
맞아도 좀 아플 뿐이지 한 방에 죽지는 않으니까.
‘그것보다는 이 죽음의 다구리에서 빠져나가는 게 먼저다.’
체격이 커 별안간 탱커처럼 몸빵을 하고 있는 강민형에게 체력 포션을 물려주고 이를 악물었다.
검에 미약한 마나를 흘려도 그것 역시 재생 시간을 몇 초 더 늘릴 뿐, 본질적인 공략 방법은 아니다.
모래 병사의 약점은 물.
그것도 폭포수 같은 물로 모래를 다 적셔 놓고 후려쳐야 완벽한 죽음이었다.
‘근데 여기 물이 어디 있냐고.’
나는 가진 거라곤 불밖에 없는데.
심지어 모래와 불의 상성은 극악이다.
아무리 스킬을 사용해도 몸만 떨리지, 공격이 먹힌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였다.
침이라도 뱉어야 하나 고민할 지경.
게다가 놈들은 분열이라도 하는지 점점 더 숫자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한 부대도 아니고 그냥 모래 군대와 싸우게 될 것 같았다.
입에서 비릿한 쇠 맛이 나기 시작했다.
온몸을 두드려 맞으면서도 꿋꿋이 길을 냈다.
모래 기둥이 솟구치는 소리와, 후두둑 떨어지는 잔해들과, 온몸 안에서 버석거리는 모래, 모래, 모래…….
쿠르릉.
“!”
지축이 무너지는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땅이 거세게 흔들렸다.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고.
#
【MISSION】
▷ 모래 유사에서 살아남아라.
― 분류 : Floor
성공 시, 2,000 다이아 추가 지급.
실패 시, 사망.
#
‘하필 이럴 때.’
눈앞에 뜬 시퍼런 미션창을 보며 심장이 가라앉았다.
절망할 시간도 없이 발밑이 끌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달려!!”
뒤를 보고 소리쳤다.
이미 거대한 유사에 휩쓸린 모래 병사들은 형체도 남기지 않고 분해되는 중이었다.
소용돌이치는 중심은 하나의 토네이도 같았다.
어느새 무릎 아래까지 빠진 몸이 힘겹게 버둥거렸다.
아주 당연하게도, 뛰는 속도보다 유사가 가라앉는 속도가 빨랐다.
‘X됐네.’
이대로 모래 무덤 엔딩은 싫었다.
안간힘을 써 이를 악물고 포복 자세로 기었다.
나는 푹신한 침대에서 자다 가는 호상이 꿈이다.
이런 곳에서 바짝 마른 미라로 발견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단 말이다.
‘대쉬라도 있었으면!’
스킬로 빠져나갈 방법이 천 갈래 만 갈래 떠올랐지만 죄다 그림의 떡일 뿐이다.
눈 딱 감고 앞을 헤쳤다.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남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미친 듯이 모래를 쥐어뜯으며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바닥이…… 있다.’
유사의 범위가 끝난 것 같았다.
“강민형 씨……!”
허겁지겁 몸을 일으켰다.
살았음에 안도와 환희를 가득 담아 뒤를 돌았다.
헐겁게 풀어진 소매가 손목에서 힘없이 달랑거렸다.
“…… X발.”
머리가 새하얗게 비었다.
잘 따라오고 있을 거란 생각은 나만의 과오.
강민형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유사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붙잡히지 않는 모래를 벅벅 긁는 게 점점 클로즈업 되어 보인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텅 비어가고 있었다.
“살려, 살려줘어…….”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요! 최대한 움직이지 마요!”
일단 놈을 멈춰 세우고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팔이 아슬아슬하게 닿을 거리.
이미 상체가 반쯤 파묻혔으니 힘으로 꺼내려다간 체급차이로 나까지 고꾸라질 가능성이 높다.
도구를 사용해 버티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사 가까이는 지반이 약해 함께 쓸려갈 수 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구조대를 기다리며 한나절 그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강민형을 꺼내려면 반동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한 놈은 살고, 한 놈은 죽어야 하는 방법이었다.
심장이 아프게 쿵쿵 뛰었다.
숨쉬기도 어려운 압박감이 온몸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이건 진짜가 아닌데.
여긴 내가 하던 게임 속인데.
자꾸만 공포와 죄책감, 무기력이 온몸을 마비시킨다.
나는, 난…….
“미안하다.”
이모아의 몸뚱이를 작게 토닥였다.
“정신 차리고 내 손 잡아요!”
“아…….”
“빨리!”
아무리 가짜라고 여기려 해도 살갗에 와 닿는 모든 감각은 진짜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세상을 부정하고 싶은 내가 만든 환상.
그런 게 아니었다.
강민형은 내 눈앞에서 살아 움직였다.
두려워하고, 웃었고, 또 누구보다.
‘살고 싶어 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버리고 가.
놈에게 내민 손가락 끝이 절박했다.
강민형은 내가 크게 소리치자 번쩍 정신이 들었는지 체념하듯 가라앉던 몸을 낑낑거렸다.
움직일수록 가라앉는 속도가 빨라졌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지금!!”
있는 힘껏 붙잡은 강민형을 끌어 올렸다.
반동에 이끌려 몸이 앞으로 구른다. 미끄러지듯 유사 한가운데로 빠지는 게 느껴진다.
더 깊이 빠지지 않으려 발로, 손으로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역시 먹히지 않았다.
‘가는구나.’
예상했던 일이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순식간에 명치끝까지 뒤덮인 모래가 뜨끈했다.
안전지대로 빠진 강민형과 눈을 마주쳤다.
“모아 씨……!! 기, 기다려요. 지금, 내가 어떻게든…….”
“빨리 도망이나 가요. 가만히 있다가 마수한테 걸려서 죽지나 말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절대 안 가요. 아니, 못 가요. 이거라도 찢어서…….”
눈으로 보기에도 달달 떨리는 손이 셔츠를 찢으려 움켜쥐었다.
잘되지 않는지 무릎까지 꿇고 주저앉아 패대기치다가 반팔 상의까지 냅다 벗어 셔츠와 엮으려 했다.
카우보이처럼 줄을 빙빙 휘둘러 던졌지만, 당연히 길이는 한참 모자랐다.
상황에 맞지 않게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모든 걸 체념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였다.
‘이랬는데 둘 다 죽으면 그건 진짜 개죽음이거든.’
모래가 몸을 뻐근히 짓눌렀다.
점점 호흡하기가 어려웠다.
열기와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시야가 흐려졌다.
설상가상으로 강민형의 뒤쪽에 부글거리는 모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제발 가라고 이 우유부단한 새끼야!’
이제 코밑까지 차오른 모래 때문에 말할 수도 없었다.
진짜 이대로 다 끝인가?
정말 ‘엔딩’이라는 걸 볼 수 있는 건가?
절망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헐떡이는 숨으로 그다음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무렵…….
퍼엉―!!
어디서 물풍선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나에겐 폭죽 터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마지막 힘을 짜내 있는 힘껏 고개를 쳐들자 내가 썰어도 썰어도 끝나지 않던 모래병사들이 풀썩 쓰러지고 있었다.
몸 한가운데.
짙은 갈색으로 뚫린 구멍이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왜 이제 와, 이 새끼들아아!”
울컥 소리친 목소리가 떨렸다.
인형 뽑기처럼 붙잡힌 뒷덜미가 유사 속에서 건져 내졌다.
강민형 구조대가 드디어 도착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