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10
1화
―[사건 발생 일주일가량이 흘렀으나 정부 측에서는 여전히 “조사를 진행 중이다”라는 입장 외에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에 오늘 8시, 채널 대책 본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안전’, ‘생명권’ 등의 피켓을 든 시민들이 크게 반발했으며…….]
“쯔쯔쯔, 세상이 영 말세여, 말세.”
말끔함과는 거리가 먼 동네 슈퍼마켓 안.
카운터 맞은편에서 노이즈 낀 티비를 보던 주인아저씨가 혀를 끌끌 차며 혼잣말했다.
과자 봉지 사이에서 멍하니 뉴스를 보던 나는 대화를 바라는 말이 아님을 알면서도 조용히 동조했다.
“그러게요.”
고작 두 개밖에 없는 매대 사이를 수십 바퀴나 빙빙 돌아놓고선, 손에 들고 나온 건 달랑 200원짜리 막대사탕 하나.
천 원짜리 지폐를 내미는 나를 흘끔 곁눈질로 살핀 아저씨가 거스름돈을 챙기며 불퉁하게 말을 걸었다.
“교복 입고 땡땡이쳤어?”
“아니요. 단축 수업이요.”
몇 번 이어지는 바스락 소리 뒤, 입안에 달콤함이 감돌았다.
먼지 냄새나는 가게를 벗어나자 겨울 특유의 희멀건 한 햇살이 눈 위로 비쳤다.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거리는 한산했고, 낯선 빛의 각도에 모든 광경이 처음인 양 신선했다.
단축 수업이라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 전 짧은 기간.
교복은 입었으나 규칙은 사라졌고, 교실에 존재하나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는 여백의 날들.
윤채희의 시간 역시 어딘가 붕 뜬 듯 그사이에 끼어 있었다.
지난 한 주는 설명하자면 뭐랄까.
‘무덤.’
세상이 무덤 같았다.
처참하고 끔찍했다.
사방에서 들리는 곡소리가 멈춘 날이 없었다.
명일 연구소에서 발견된 인체 실험 명단으로 인해 언젠가 가족이 품으로 돌아올 거라 믿고 있던 사람들의 희망은 산산조각 났다.
시청 앞에 차려진 작은 분향소에는 조문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각성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겸 씨, 여기 좀 봐주세요!」
「이번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랭킹 1위로써 책임을 통감하십니까?」
「천문진리회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있었나요? 말씀 좀 해주십시오!」
그들에게는 통과의례 같은 질문이었겠지만, 카메라 사이를 묵묵히 뚫고 지나가는 이겸의 모습을 뉴스로 확인했을 때에는 어쩐지 가슴 한쪽이 싸늘해졌다.
미디어는 사람들의 애도하는 모습을 제멋대로 편집하고, 송출하고, 재생산해댔다.
거리, 가게, 식당…… 어딜 가도 흘러나오는 같은 내용의 뉴스들.
그리고 이 사태를 일으킨 유일한 주인공, 윤채희는.
“거 참 더럽게 노네.”
서울 한복판에서 자조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분향소에서 한참 떨어진 나무에 기대 검은 복장의 사람들이 오가는 걸 지켜봤다.
조그만 꼬투리라도 잡히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이겸의 조언에 동의해 나는 저 조문 장소에 발을 붙인 적도 없었다.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저 사람들의 명복을 가장 오래 빌어준 건 연구소에 불을 내던 나일 테니까.
그러나 매번 이곳까지 발길을 이끄는 감정은 아마도.
‘묘한 죄책감.’
부채감.
그런 것들이 나를 자주 멈춰 서게 만들었다.
나는 1분 1초마다 자문했다.
내 계획은.
‘성공했는가.’
달그락.
뺨 위로 볼록 튀어나온 사탕을 반대쪽 볼로 굴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목표했던 바는 달성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천문진리회에 대해 의문을 품고, 씹게 하는 것.
그 배후에 뭐가 있을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
드러나지 않은 검은 세계가 분명히 있음을 자각하게 만드는 것.
그러나 성공과 실패를 따지자면 매번 답하기가 망설여졌다.
‘명암은 결국 이름조차 언급 안 된다 이거지.’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채본이 사람들의 분노에 공감하며 빡세게 조사하는 ‘척’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기는 쉬웠다.
명암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무수한 가능성은 하나도 빠짐없이 배제된 채 수사는 진행됐다.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맞힐 수 있는 0점짜리 시험지.
심증으로만 가지고 있던 채본과 명암의 유착 관계가 생생히 펼쳐지는 광경이었다.
천문진리회는 심판대로 올랐지만 그건 단순한 꼬리 자르기에 불과했다.
‘반쪽짜리 성공.’
그 생각만 하면 속이 쓰렸다.
느적느적한 발걸음으로 돌아온 길드 탑층.
가방을 내팽개치고 온 힘을 다해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평소 같으면 ‘아가씨, 매트리스 무너진다니까요!’ 하는 구서복의 잔소리가 따라붙었어야 했겠지만 집안은 고요했다.
세상의 혼란으로 바빠진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겸을 비롯한 화랑 사람들, 혹은 다른 친구들과도 편히 대화한 지 꽤 됐다.
탄력으로 둥둥 울리는 쿠션감에 흰 천장이 요동쳤다.
눈을 감았다.
시곗바늘 소리가 삽시간에 몸을 뒤덮는다.
‘공허하다.’
한기가 드는 몸을 팔로 감쌌다.
최근, 종종 사방이 고요해지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망망대해를 부유하는 것처럼 현실감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면 욱신거리는 팔목의 고통과 잔손 떨림은 자연스럽게 뒤따라왔다.
순식간에 눈앞이 핏빛으로 번지고, 곧 익숙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소리치기 시작한다.
「“너는 누구지?”」
벼락같은 소리에 누웠던 상체가 벌떡 세워졌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불호령이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똑, 딱, 똑, 딱 일정한 초침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알고 있었다.
‘가짜.’
예민해진 신경이 만들어낸 허상 같은 것.
까칠해진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몸이 좀 편하다 싶으면 강박적으로 찾아오는 불안함이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눈을 감기가 쉽지 않았다.
뻑뻑한 눈을 끔뻑이며 멍하게 있을 새도 없이, 이번엔 텅 빈 허공 위를 글자들이 와다다닥 뒤덮었다.
이를 닦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는 발을 닦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문장들은 그런 것들이 전부였다.
‘하…… 나 이 대가리 평평한 새끼들을 어떻게 조져야 되나.’
채본, 명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원 플러스 원으로 찰싹 들러붙은 악의 축들.
“이 새끼들을 어떻게 조져야 잘 조졌다고 소문이 나냔 말이야.”
이를 악물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밋밋하게 깔아뭉개는 것 정도로 성에 찰리가 없었다.
분명히 하자면, 내가 지금까지 놈들을 대충 놔둔 이유는 ‘이모아에게 적극적인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였을 뿐.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흐릿하게 뜬 홀로그램 창을 노려보았다.
#
【MISSION】
▷ 플레이어블 ‘이모아’의 최종 엔딩을 완성 시켜라.
― 분류 : 메인
성공 시, ???
실패 시, 사망.
#
이제 목표는 엔딩.
그것도 플레이어블 ‘이모아’로서의 엔딩이었다.
“이런 쌰앙…….”
듣기만 해도 팍팍한 된소리가 한숨과 뒤섞였다.
최종 엔딩을 보라는 메인 미션은 즉, 이모아 루트.
새로운 주인공의 길이 뚫렸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사실 제정신을 챙기고 봤을 때,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약간의 설렘도 있었다.
이미 100% 달성한 게임에 새 에피소드가 업데이트됐다는 기쁨.
아무도 발견 못 한 첫눈 같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짜릿함!
다만 문제는.
‘내가 아무것도 몰라.’
진작 죽었어야 했을 애를 데리고 게임을 진행해 봤을 리가 없었다.
‘이모아 루트’라는 건 에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마디로.
‘완전 처음.’
갈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여기는 현실이었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생사의 갈림길이 되는 현실.
게임처럼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분기를 저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시작하면 되돌아갈 길이 없는 게임.
“중압감 미쳤다…….”
얼굴을 벅벅 비비며 마른세수를 했다.
호랑이 굴에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 채로 먹히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아니, 이거 아니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전히 스타트 시점과 차이가 나긴 해도 이곳이 의 세계라는 점이었다.
유유히 구름이 흐르는 창문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히든템 위치랑 쓸 만한 미션 같은 건 크게 안 바뀌었을 거고.”
최종 엔딩을 보기 위한 조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동안은 일부러 메인 주인공들의 루트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움직였는데, 이모아가 중심이 된 이상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마음대로 날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만은 참 좋았다.
단지.
“저 물음표가 어마어마하게 거슬려.”
【성공 시, ???】
미션창의 저 문구가 나를 영 찝찌입, 하게 만들었다.
이미 한 번 뒤통수를 맞은 입장으로(내 착각이긴 했지만) 상당히 불쾌한 보상 명이었다.
개고생해서 엔딩을 봤으면 이라든가, 이라든가.
“희망 같은 거라도 좀 보여줘야 의욕이 팍팍 솟고 그런 거 아니겠냐.”
죽이겠다는 소리는 떡하니 걸어놓고, 떼잉, 쯧…….
바싹 마른 입가를 집게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그러나 달리 어쩔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님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최종 엔딩.’
그곳까지 나는 도달해야만 했다.
손톱 끝을 딱딱 깨물었다.
애카의 최종.
그러니까, 보통 진엔딩으로 여겨지는 루트에는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보스가 둘 있었다.
첫째, 중간 보스 이겸.
둘째.
‘윤산영을 이 세계로 전송하고, 채널을 연결시킨 재앙 같은 새끼.’
.
물론 유저들은 이 멋들어진 이명 대신 ‘미친새끼’쯤으로 통칭해 불렀다.
놈은 딱 보기에도 알 수 있지만 이 차원 바깥에 존재하는 신神이었다.
장기 말처럼 선택한 인간들로 판을 짠 뒤 관조하는 존재.
보통의 격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무형의 힘.
게임에서는 부수라고 있는 보스고, 몇천 번 상대해본 놈이니 특성이나 패턴.
약점쯤은 빠삭하게 꿰고 있지만…….
‘그 최종 보스가 어떻게 현실이 돼 있을지.’
진짜 신 같은 존재를 만나면 맞짱을 뜰 수나 있는 건지.
이모아가 산 덕에 이겸이 개과천선한 상태니, 중간 보스는 어떻게 되는 건지.
한 번 생각하면 꼬리에 꼬리를 문 문제가 산더미처럼 딸려왔다.
그러나 분명.
‘불리한 상황만은 아니다.’
내게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변수가 있으니까.
애프터 카네이션에서는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었던 변수들이.
‘동료들.’
이겸을 비롯해 한미래, 윤산영, 주서윤…….
내가 운명을 바꾼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백만 다이아.’
날카로운 시선이 허공을 배회했다.
사건이 끝나고 며칠이 지난 시점.
기억 보고, 뭐 사고, 홀라당 날릴 수 있었을 백만 다이아가 아직까지 인벤토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상점.”
외침과 동시에 휘황찬란한 배너가 눈앞으로 착착 펼쳐졌다.
【‘이모아의 기억’ #1 ~ #80 / 개당 1,000 다이아】
【!중급 버프 패키지! – 남은 수량 5개 / 50,000 다이아】
여기까지는 기존 상점 내용과 별반 다를 바 없었으나.
【전투력 측정기 / 개당 1,000 다이아】
【거짓말 탐지기 / 개당 1,500 다이아】
…….
…….
【지역 DLC – 상세 정보를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보다시피 새 루트가 뚫리고 업데이트된 나만의 상점 내역.
그리고.
‘이 사라졌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