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16
7화
“에구구, 삭신이야…….”
종일 고생한 어깨며 허리를 한 번 쭉 폈다.
영업 종료를 알리는 녹색 바깥 비닐을 치고 나서야 얼굴을 가리고 있던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어 던질 수 있었다.
멍청하게 새까만 걸 쓰고 와서 팥이랑 슈크림이랑 분간이 안 될 땐 얼마나 빡이 치던지.
‘그나마 리오가 도와줘서 다행이지.’
힐끔 그를 돌아봤다.
갑자기 체험 삶의 현장, 붕어빵 편에 투입된 리오는 짤주머니며 빈 팥통을 정리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뭐 때문에 부르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10시까지 이 앞으로 와라’ 주소만 찍었는데, 약속한 시간보다 한참 빨리 와서는 군말 없이 조수 역할을 해냈다.
딱히 이걸 목적으로 부른 건 아니었지만.
‘정말 성실한 꼬붕이야.’
그 등을 보고 있자면 흐뭇한 미소가 입매에 피었다.
시선이 느껴졌는지 무의식적으로 내 쪽을 돌아본 리오와 눈이 마주쳤다.
한 치의 경계도 느껴지지 않는 선한 눈빛이 유리알처럼 반짝거렸다.
무조건적인 신뢰.
무엇이 그가 나를 저런 눈으로 쳐다보게 만든 건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아무도 빗겨나가지 않는 시선을 빤히 나눴다.
뭔가 말하기 위해 리오의 입술이 달싹인 순간.
“많이 팔었어?”
누군가 비닐을 걷고 불쑥 천막 뒤쪽으로 들어왔다.
이 붕어빵 가게의 본 주인, 김 할머니였다.
리오의 용기는 허공으로 흩날렸다.
나는 몸을 돌아 세우며 익숙하게 그녀를 반겼다.
“할무니. 진짜 돈 통 열 거면 심장 마사지하고 여세요. 열면 깜짝 놀란다.”
“아이구, 쪼끄만한 게 허풍만 늘어가지구.”
누가 있든 말든 관심 없는 김 할머니 옆에서 리오가 쩔쩔맸다.
나가 있을까요.
눈빛으로 묻기에 그냥 있으라고 대충 손짓한 뒤, 돈 통 자물쇠를 뜯는 할머니 옆에 바짝 붙어 섰다.
오늘 하루의 하이라이트.
제일 두근두근하고 짜릿한 순간이었다.
쪼글쪼글한 손이 철 뚜껑을 열어젖혔다.
그와 동시에.
“어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짧은 탄성.
그리고.
【MISSION을 클리어하셨습니다!】
【50,000원을 얻으셨습니다.】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겉바속달!)】
【추가보상 500 다이아를 얻으셨습니다.】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위대한 붕어들의 어버이)】
【추가보상 2,000 다이아를 얻으셨습니다.】
챠르르륵.
다이아 쌓이는 소리가 귓가에서 서라운드로 울리는 것 같았다.
눈앞을 가로막는 알림창들이 하나도 번거롭지 않았다.
이 화려한 업적 보상.
이게 바로.
‘타이쿤의 달인 윤채희 님의 힘이시다.’
그렇다. 내가 한 건 푼돈이나 벌자고 시작한 붕어빵 아르바이트가 아니었다.
업적으로 다이아를 얻기 위한 고도의 작전 수행.
‘채희에겐 다 계획이 있구나? 라고 지금.’
애카의 업적은 주로 서브 미션에서 얻기 쉬웠다.
이런 일회성 잡심부름 느낌의 뺑이형 미션은 해봤자 고작 한두 개 업적이 전부이긴 했지만, 단기간에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자투리 시간에 활용하기 좋은 미션.
딱 그 정도.
‘대신 좀 번거롭긴 한데.’
지금 물불 가릴 처지가 어디 있냐고.
어떤 서브 미션에서 업적을 주고, 뭘 해야 희귀 추가 업적을 얻을 수 있는지 정도는 꿰고 있으니 닥치는 대로 다이아를 쓸어 모아야 했다.
마음만 먹으면 업적으로 다이아 버는 건 전보다 훨씬 쉽겠지만, 글쎄.
이제부터 시작될 나의 문제는 조금 결이 달랐다.
찬바람 새어드는 비닐 앞을 몸빵하고 있는 리오를 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진정성 있게 윤산영 키우기 프로젝트를 해야 될 때가 온 거지…….”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김 할매에게 어설프게 인사하고 나오는 등을 보며 입매를 쓸어내렸다.
어떤 얼굴로 웃고 있었는지 돌아본 리오가 흠칫 놀라는 게 느껴졌다.
내 나름대로 표정 관리를 한다고 했지만 음험한 눈빛을 숨길 수 없었던 게 분명했다.
‘윤산영.’
최종보스까지 도달하기 위해 꼭 데려가야 할 열쇠이자 통로.
얘를 왜 이렇게 부르냐면, 그게 문자 그대로 한 글자도 빠짐없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애카 세계관 자체가 그렇게 되먹어 있었다.
태초에 창조자님이 계셨고, 그 보스 놈께서 윤산영을 이 세계로 전송하셨고.
그때 다중채널이란 게 열렸는데 모든 게 전지전능하진 않으셨던 그가 살짝 삐끗한 나머지 윤산영과 본인을 미약한 신호, 주파수로 연결시켜 버렸다…….
‘는 이야기.’
그 덕에 윤산영은 딱 한 번 생명을 불태워 보스를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됐다.
어느 루트를 타도 후반부에 다다르면 윤산영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였다.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그의 성장이 필요했다.
다만.
‘그땐 내가 키우는 게 아니었는데.’
다른 플레이어블의 메인 미션을 따라가다 보면, 윤산영은 자기 루트가 아님에도 자연스럽게 합류하는 캐릭터였다.
그것도, 무려.
‘S급 성기사로.’
“채희 님?”
맹한 얼굴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팍 한숨이 새어 나왔다.
S급은 개뿔.
애카 시점으로 세계가 갑자기 팍 튀지 않는 한 리오는 리오였다.
전에는 약간의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멱살 잡고 끌어 올렸다면, 이제는 그냥 들쳐 메고 버스 태워야 하는 파티원.
잠깐 상상하기만 해도 고난과 역경이 짜릿하게 예상되는 플레이였다.
리오를 이 붕어빵집 앞으로 부른 이유도 하나뿐이었다.
나는.
‘윤산영을 키워야만 한다.’
최소 A.
그 정도까지는 올려놔야, 적어도 최종 관문 가는 길목에서 개죽음당할 일은 없을 거니까.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 지압했다.
이 세계에서는 일단 무슨 일을 시작하려거든 제대로 된 스펙 파악이 먼저였다.
가늘게 뜬 눈으로 리오의 외관을 훑었다.
처음 만났을 때 추정치는 C등급 정도.
그래도 그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고, 리오도 그 사이에서 꽤 많이 굴렀을 테니 B-, 혹은 B까지는 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회로가 마구 불탔다.
잠시 상점에 있던 스카우터가 번쩍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지만.
“등급 몇이에요?”
그냥 물어보면 답해주는 양반인데 뭐.
예상과 같이 리오는 일말의 의문도 품지 않고 즉각 대답했다.
“C+예요.”
쓋.
작은 욕지거리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아니, 안다.
등급 올리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온갖 꼼수를 끌어모은 내가 비상식적으로 빨리 큰 것이라는 것도.
특히나 윤산영은 우직하게 칼 휘두르는 것만으로 등급을 올릴 수 있는 놈이라는 것도.
근데.
‘멀다.’
내 살길도 팍팍한데 갈 길이 너무 멀었다.
애써 끌어당긴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리오의 어깨를 토닥이며 선심 쓰듯 물었다.
윤산영 키우기 프로젝트, 제 1장.
“소문 좋아해요?”
==
[자유][우리동네 요즘ㅈㄴ흉흉] (38)사거리 한복판에 공사중지된 아파트하나 있거든
동네사람들 안그래도 흉물스럽다 저거 언제뿌시나 이러고있는데
거기서 요즘 귀신나온다고 난리남
새벽에 지나가다가 누가 네발로 기어다니는거 봤다더라…… 눈 새빨간애들이 돌아다닌다더라 말개많음
근데 요즘 분위기ㅇㅇ…… 알잖냐
엄마한테 밤에 나돌아다니지 말라고 갑자기등짝맞음
이럴수있는거임?서른살도?
└ 등짝엔딩 개웃기네ㅋㅋㅋㅋㅋ
└ 혹시 주변에 대학교있음? 걍 밤샘하다 미친 대학원생아니냐
└ ㅅㅂㅜㅜ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뜬금없이 패버리네
└ 네발로 좀 걸어 다닐수 있지 나도 가끔 네발로 다니는데
└ 왜;;그런짓을?;;
└ 편해 한번해봐
└ 늑데인간 ㄷ ㄷ ㄷ.
└ 늑대인간 ezr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
…….
…….
└ 작성자가 삭제한 댓글입니다.
└ ?? ㅅㅇㅌㄴ이뭐임?
└ 2 나도이생각함
└ 관리자에 의해 규제당한 댓글입니다.
└ 관리자에 의해 규제당한 댓글입니다.
└ 33 그거 부작용 개쩐다던데
==
“이게…… 뭐예요?”
이걸 보여주는 저의를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물음이었다.
리오는 외계인 같은 문장들을 해석이라도 해보겠다는 것처럼 좁힌 미간을 화면에서 떼지 않았다.
나는 택시를 잡기 위해 휘두르던 주먹을 잠시 내려두고 핸드폰을 넘겨받았다.
최신 글 목록을 몇 개 더 확인했지만, 딱히 구미가 당길 새 정보는 없고.
심드렁한 얼굴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처박았다.
“다 봤어요? 미션 떴어요?”
“네.”
“그럼 됐어요.”
“아니…….”
때마침 발 앞에 선 택시에 리오를 구겨 넣었다.
그는 (어김없이) 당황해했지만 나는 쌈박한 얼굴로 한 번 웃어준 뒤, 담백하게 목적지를 내뱉었다.
“아저씨, 대조동이요.”
#
【MISSION】
▷ 소문의 근원지 찾기
― 분류 : 서브
#
야밤의 택시는 유독 쌩쌩 내달렸다.
휙휙 바뀌는 차창 밖 풍경을 보며 하릴없이 미션창을 여닫았다.
처음에는 납치와 다름없는 상황에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그렁그렁 쳐다보던 리오도 이제 체념한 얼굴로 바깥 구경을 하고 있었다.
가로등밖에 없는데 뭐가 재밌나.
심심한 얼굴로 생각하던 나는 글에 적혀 있던 정보들을 다시 되새겼다.
‘네발로 기어 다니고 눈이 새빨갛다.’
적어도 내가 아는 애카에 괴물은 있어도 귀신은 없으니 이건 인재人災였다.
사실 현실에서도 대부분의 괴담이란 게 그랬다.
불법적인 사건 쪽으로 넘어갈 확률이 100%.
플러스.
‘부작용이라고 했지.’
그러면 약 쪽 문제일 확률이 90% 이상.
애매하게 퍼센티지를 잡은 이유는 내가 알고 있던 일명 서브 미션과 내용이 완벽히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떠도는 ‘소문’이 미션으로 연결되거나 진행되는 방식은 같았는데, 제보 글이나 부작용 같은 사소한 세부 사항들이 달라져 있었다.
근데, 뭐.
‘아무래도 여기는 과거고.’
시점이 달라져 변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이니 크게 신경 쓸 거리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루트는 뻔했다.
이대로 간다면 어떤 불법적인 일을 하는 새끼들의 꼬리가 밟힐 거고, 물건의 정체도 드러날 것이다.
나는 그걸 진두지휘하는 대가리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 뒤, 주는 업적만 꿀떡꿀떡 받아 삼키면 됐다.
‘살짝 내로남불이긴 한데.’
머쓱하게 턱을 문질렀다.
나 역시 불법 루트로 들어오는 물건들을 꾸준히 애용한 고객 중 하나였다.
귀찮으면 뒷골목 가서 미션 아이템 쟁이고.
금지 약초 돈 찔러줘서 구하고.
하지만.
‘과한 놈들은 손 봐줘야지.’
안 그래도 그놈의 ‘불법’.
감춰진 응달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세상과 윤채희의 속이 뒤집힌 판에 분풀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할 만한 서브 미션을 간추려보다 이 미션에 꽂힌 까닭이기도 했다.
이끼는 그늘에서만 자라야 한다.
어차피 다이아는 벌어야 될 거, 멋모르고 자꾸 뭍으로 튀어 오르려는 잔챙이들을 한 번 싸악 물갈이해 줄 생각이었다.
‘경고도 하고.’
나는 이제 시작이라고.
어둠과 어둠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그 ‘불법’들 속에 명암 역시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뭐, 이런 스토리가 섞인 연계형 서브 미션은 시작만 해도 네다섯 개 업적은 먹고 들어가는 거니까 그건 그것대로 또 좋았다.
귀찮은 일은?
‘얘 시키고.’
“여기가 어디…….”
헤벌레한 얼굴로 철골밖에 없는 공사판을 올려보는 리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꿩 먹고 알 먹기.
일석이조, 아니, 사조쯤 되는 계획이었다.
“올라가자고요.”
언제나처럼 내 맘대로 될진 모르겠으나.
앙상한 건물 뼈대 위로 발을 내디뎠다.
어둠이 지척으로 깔렸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