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29
20화
【근원의 파괴로 포탈이 소멸됩니다.】
【공적치를 24.8% 얻으셨습니다.】
【최초 근원 파괴자!】
【공적치를 5.5% 추가로 얻습니다.】
‘끝났다.’
쥐고 있던 장산범의 손톱이 푸른 근원 사이로 녹아내렸다.
무수히 떠오르는 알림창 사이로 시선을 빗겨 밤하늘을 바라봤다.
어둠 가운데 달처럼 떠 있던 폭주 포탈은 깨진 거울처럼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우우웅.
낮게 떨리는 공기의 진동과 함께 조각난 포탈 잔해가 눈가루처럼 흩날렸다.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이걸…… 아름답다고 해도 되나.’
멍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체력 물약을 쏟아부어 살이 차오른 등을 손으로 매만졌다.
크레이터 같은 자국이 남아 있다.
장산범에게 꿰뚫린 곳이 그제야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제한 시간이 사라졌어.”
누군가의 감탄하는 소리침이 무의미한 감상을 깨웠다.
그 말이 시발점이라도 된 듯 웅성거리는 소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끝난 건가?”
“포탈도 부서졌으니…….”
“그럼 저 애가…….”
그 소란의 끝이 향하는 건 결국 나였다.
내가 아직 이모아인 걸 모르는지 각성자들의 시선이 나를 샅샅이 훑어댔다.
앞에 서 있는 이겸 역시 아직도 얼떨떨한 얼굴로.
네가 진짜 이 상황을 해결한 게 맞냐고 캐묻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요. 그게 바로 나예요.’
고마움의 표시는 다이아로 부탁드립니다.
콧잔등을 찡그리며 미션창을 열었다.
솔직히, 이 정도 굴렀으면 80%는 거뜬히 넘기고도 남았.
#
【MISSION】
▷ 새해 이벤트에서 공적치 차지하기.
― 분류 : 돌발
80% 이상 – 30,000 다이아
50% 이상 – 10,000 다이아
10% 이상 – 1,000 다이아
공적치 합계: 79%
#
어야 되는 거 아니냐?
“장난해?”
경악한 비명을 허공에 내질렀다.
아무리 봐도 거짓말 같은 상황.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스템 이 자식이 무슨 수작을 썼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나는 다급히 얻었던 공적치들을 하나하나 직접 셈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얻은 게 0.8에 추가 공적치가 0.5 그다음이 1,0 또오…….
‘맞다.’
몇 번이나 다시 계산해 봐도 총 얻은 공적치는 79%였다.
절망적이었다.
‘오늘 내 세상이 무너졌어.’
그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고작 1% 때문에 3만 다이아를 놓친다는 건 윤채희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생각해보면 기회가 없던 것도 아니라 분한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힌트 최초 공적치만 한 번 더 먹었어도!’
그러나 이제 와 후회하면 무엇하리.
이미 떠난 버스에 흘려보낸 기회였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 내 시험지를 보며 혀를 쯧쯧 차던 국어 선생님의 목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려왔다.
「‘채희야. 너는 꼭 사소한 걸 놓쳐. 전체적인 흐름을 빨리 읽는 것도 좋은데, 가끔은 꼼꼼히 봐야 하는 문제도 있는 거야.’」
그때는 어쩌라고 답만 맞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 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
아아, 나 쌤. 당신은 참스승이셨습니다.
스승의 말을 귓등으로 안 듣던 제자 윤채희는 결국 이렇게 갑니다아아…….
팡! 파바방!
내 절망을 날려주기라도 하듯 축포가 밤하늘을 수놓았다.
사람들의 눈동자 위로 오색찬란한 불꽃이 비쳤다.
이벤트의 막바지 퍼레이드.
엔딩이라는 걸 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화려한 배경이었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저, 저기!”
누군가의 외침에 수많은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일제히 돌아가는 고개.
거기에는.
‘저게 뭐냐.’
좌우로 매섭게 요동치는 근원이 있었다.
여전히 오묘한 푸른빛을 잃지 않던 둥근 표면 위로 시커먼 얼룩이 졌다.
쩌적, 쩍.
금이.
#
【MISSION】
▷ HAPPY NEW YEAR! (2) – 액막이
― 분류 : 이벤트
― 지역 : 서울
축하합니다!
근원의 재앙을 막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세요.
#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축포였음을.
“전투가 가능한 S급 이상 각성자는 근원 앞으로 모이도록. 나머지는 배치된 자리를 유지한다.”
멍때리는 사이 내려진 이겸의 짧은 명령에 흩어져 있던 헌터들이 전열을 갖췄다.
연락을 받은 무장 헌터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중에는 아주 당연하게도 주서윤과 구서복도 있었다.
그들은 나를 발견한 순간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눈을 크게 치켜떴다.
“아니, 아가씨!?”
“모아가 여기 왜 있어? 행사에는 참석 안 했잖아.”
“어…… 그게…….”
뭔가 답변을 내놓기도 전에 우우웅. 우우우웅.
허벅지에 진동이 울렸다.
팡! 파바방!
하늘에서는 여전히 불꽃이 터졌다.
한마디로 쌩난리였다.
몰아치는 소음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다음 미션이 있다는 것.
1%의 공적치가 모자랐던 나에게는 기회임이 분명했다.
기회, 기회는 맞는데.
‘그냥 폭주 터지게 놔뒀어야 했나?’
내가 저 근원을 깨운 게 잘한 일인지 아닌지 판단할 가늠이 없었다.
뭘 먼저 처리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본능적으로 울리는 핸드폰을 집어 들려던 순간.
“모아야. 넌 집에 가 있어.”
이겸이 어깨를 붙잡았다.
“아니, 나…….”
“재앙 급이라고 명시된 이상 어떤 마수가 나타나질 아무도 몰라. 널 지키기 어려울 수도 있어.”
“그래요, 아가씨. 나도 튀고 싶은 거 꾹 참고 있는데 기회 될 때 얼른 가요.”
우웅. 우우우웅.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이번 한 번은 내 말 들어줘. 시간 없어. 얼른 자리를 벗어나야…….”
“곧 깨지겠어.”
우웅. 우우우웅.
“모아야, 그러니까 얼른.”
“잠까안!”
잠깐.
잠시만 다 입 다물어.
예민하게 소리친 덕분에 옆에서 종알대던 세 사람의 입이 딱 다물렸다.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정신없어 뒤지겠다고.’
일단 하나의 소음을 해결한 다음, 신경질적인 손길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전화할 사람이라고는 일반적으로 리오나 하나.
아니면 Q에게 오는 용태의 연락밖에 없는데.
‘리오는 이렇게 끈질기게 전화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하나도? 안 받으면 문자로 용건을 남겨놓을 때가 더 많고.
‘용태면 진짜 반 죽여 놓는다.’
분노에 찬 시선으로 화면을 봤더니 떠 있는 글자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생전 본 적이 없는 11자의 숫자.
“누구야?”
내가 하는 행동을 빤히 보고 있던 이겸이 물었다.
양옆의 두 사람 역시 궁금한 시선이었다.
방금까지 잠깐이라도 지체하면 죽을 것처럼 있는 호들갑, 없는 호들갑은 다 떨어놓고.
이게 무슨.
“알아서 갈 테니까 일들 해.”
물론 그냥 갈 생각은 없다.
자리를 벗어나기 위한 변명일 뿐이다.
팔을 휘저으며 사람이 좀 덜 해 보이는 공간으로 향했다.
미심쩍은 눈길이 따라붙었지만 뒤쫓아 오는 발길은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웅, 우우우웅―.
“진짜 누구야?”
나 역시 전화의 수신자가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
고민해보기도 전에 부재중으로 알림이 넘어갔다.
같은 번호로 9건.
용무가 없다면 이렇게 지겹도록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 리가 없다.
뒷목을 싸하게 스치는 불길한 기운에 직접 전화를 걸어보려던 때, 다시 그쪽에서 수신이 걸려왔다.
진동하는 화면을 엄지로 밀었다.
“여보세요?”
상대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뭐야. 받은 거야?
잠시 귀를 떨어트려 화면을 살폈지만, 통화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여보세요? 들리세요?”
재차 되묻자 지지직. 노이즈 낀 소리가 되돌아왔다.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문장은 아니었다.
평소 같았으면 뭔 장난질이냐 생각하며 냅다 끊어 버렸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퍼억! 전자 튀는 소음을 몇 번 인내심 있게 참아냈을 때.
―『사, 살려, 우리 좀, 여기서…….』
선명하게 잡힌 목소리 속에서 들려온 건 헐떡이는 숨.
뚝뚝 끊기는 애원.
“아저씨?”
그건 불과 반나절 전, 내가 직접 찢어 번호를 건네줬던 공사장 김 씨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쿠르르르릉!
지축이 강하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균형을 잃은 몸들이 몽땅 바닥으로 무너지고 쓰러졌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떠밀리듯 몸이 땅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러나 그건 전조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사위의 모든 빛이 휩쓸려 가듯 근원 안으로 먹혀들어 갔다.
시각을 지배한 완벽한 어둠.
의지할 수 있는 빛이라곤 달빛밖에 남지 않은 때.
빠드득.
근원의 알이 깨졌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모두 사라졌다.
낙엽 쓸리듯 주인을 벗어난 그림자들은 이내 허공에 뭉쳐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더 어두울 곳 없는 도시 위로 그림자가 진 순간.
우우우우.
지하 깊은 곳에서 새어 나오는 바람 같은 소리를 내며 놈이 일어났다.
‘SS급 설화 마수, 그슨대.’
나는 깨어난 재앙의 마수를 알고 있다.
액막이라는 이름에는 아주 걸맞은 종류였다.
허공에 흐릿하게 떠오른 그림자 악귀를 보며 생각했다.
‘1%.’
굴러떨어져 내 손을 벗어난 핸드폰은 액정에 금이 간 채로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
뚝.
끊어진 화면을 보며 김 씨의 손이 허망하게 떨어졌다.
사방이 켜켜이 시멘트 덩이로 막힌 덕분에 간당간당한 한 칸짜리 신호로 겨우 붙잡은 마지막 전화였다.
119며 112, 심지어는 114, 110까지.
온갖 기관 신고 번호를 눌렀지만 모두 연결 중이거나 갑작스런 통화량 증가로 잠시 후 전화를 걸어 달라는 안내 음성만이 흘러나왔을 뿐이다.
도와주세요, 살려 주세요.
목에 피 맛이 나도록 외치던 걸 ‘형님이라도 살아나가려면 에너지 낭비 말라’ 질책하는 홍도필이 덕분에 멈춘 지 오래였다.
그때, 왜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나중에 무슨 일 생기시면 연락 주세요.”」
구깃구깃 뒷주머니에 구겨놓았던 쪽지.
어떤 역경도 모를 것 같은 말간 얼굴로 함부로 돕겠다 내민 손.
무슨 사연으로 막노동까지 뛰어들었나 모르겠지만 참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김 씨가 보여준 호의라고는 고작 쉬라고 건넨 몇 마디.
변명을 위한 배웅.
그게 다였다.
당연한 도리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일을 빌미로 냉큼 들러붙는다는 건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전화를 할 일도, 다시 그 아이를 볼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발, 제발 제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건 전화였다.
지금으로선 그 아이가 김 씨가 아는 유일한 각성자였다.
그 사실이 이 상황을 해결해 줄 단 하나의 구명줄처럼 느껴졌다.
한 번 만이다. 생각하며 시도한 연결은 점점 더 길어졌다.
두 번, 세 번.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익숙한 음성안내가 지나갈 때마다 희망은 조금씩 깎여나갔다.
‘딱 열 번.’
그게 김 씨가 내세운 마지막 양심이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은 요즘 같은 세상에 통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열 손가락만 채우고 정말 그만둘 셈이었다.
마침내, 아홉 번째 통화 연결음까지 음성 메시지로 돌아간 뒤.
‘그래. 그런 행운이 내게 주어질 리 없다.’
김 씨의 손이 까드득 타일 위를 긁었다.
남들보다 아득바득 살아야 겨우 보통을 유지하는 삶이었다.
얼떨결에, 갑자기.
불행이면 모를까, 그렇게 찾아오는 행운은 이 인생에 해당 되지 않는 말이었다.
세상의 판도가 뒤바뀌었을 때도 김 씨가 여전히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런 삶이니까.
원래 그런 놈이니까, 나는.
‘한 번도 비참한 적 없었는데.’
무탈하게.
이런 세상에 가늘고 길게 살아남는 것도 재능이라고 자위하던 마음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이토록 보잘것없고 무능한 인생이라니.
고작 이런 패배감을 맛보기 위해 살아왔던 거라니.
숨이 멎어가는 앞에서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죽고 싶을 정도로 끔찍했다.
애써 꾹꾹 눌러왔던 열패감이 몸뚱이를 뒤덮었다.
나는, 왜 이다지도.
“발버둥 쳐야만…….”
―『“여보세요?”』
그리고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머릿속에 끼어들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