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3
13화
“그냥 휘말렸다는 말씀이시죠?”
“네.”
“같이 계셨다는 헌터는 모르는 사람이구요.”
“…… 그렇다니까요.”
“알겠습니다. 혹시 귀가 서비스가 필요하십니까?”
“아니요. 혼자 갈게요.”
“예. 그럼.”
방탄복 같은 유니폼을 걸친 채본 공무원이 작게 경례하고 떠났다.
긴장했던 숨이 탁 터졌다.
폴리스라인이 덕지덕지 붙여진 주변이 노랗고 검붉었다.
마네킹 파츠처럼 조각난 시체들이 낭자한 거리.
나는 윤산영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다가 붙들려 조사나 받았다.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는지.
어디서 왔느냐, 어딜 가는 길이었냐, 헌터냐, 이름이 뭐냐.
당할 수 있는 호구 조사란 조사는 죄다 받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아직도 패닉에 잠긴 심장이 덜거덕거렸다.
방패.
박도운은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아까 그 공무원에게 물어보니 연락을 받고 수습을 하러 온 건 채본 뿐이라고 그랬다.
확실히 바뀌었다.
미리 정해져 있던 과거가.
그것도 누가 봐도 나 때문에.
“나비효과 뭐 그런 건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막무가내로 스토리를 휘젓고 다니면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누군가에게 경고를 한 대 빠악, 얻어맞은 것 같기도 했다.
그나마 마석 하나 쌔빈 거라 다행이지.
멋모르고 막 나가는 척, 죽일 수 있는 놈들은 죄다 죽이고 뭘 뺏고, 내가 먹고 했었더라면.
‘어우.’
소름이 쫙 끼쳤다. 팔을 끌어안고 마구 쓰다듬었다.
‘그래도 확실히 알았어.’
서사가 변해야 다이아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크게 미래가 바뀌지 않을 만큼.
두 번의 실수는 없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을 수 있는 중도 전략이 필요했다.
이런 사태가 또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니 최대한 빠르고,
강하게.
“아니, 그나저나 윤산영…….”
아까 그 공무원이 되게 꼬치꼬치 캐물어 보던데.
초조하게 입술을 잘근거렸다.
산 넘어 산이라고.
한 가지 문제가 더 남아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발을 내디뎠다.
나는 가야만 했다.
앞으로.
***
“더워.”
조금 걸었을 뿐인데 목덜미가 땀에 흠뻑 젖었다.
손등으로 대충 땀을 훔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사계절은 좀 덜 구현해도 되는 거 아니냐?
투덜대며 작열하는 8월의 태양 아래서 손으로 차양을 만들었다.
하늘을 찌르는 높은 첨탑을 허리가 꺾일 정도로 구경했다.
.
계획대로, 이모아에게 찰떡인 무기를 구해줄 생각이었다.
‘조금 번거로워도 이왕이면 속성 붙은 게 좋지.’
그냥 법사용 무기를 구할 거였으면 돈도 있겠다.
그냥 아무 경매장에서나 구매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이모아는 성향 중에서도 특별 취급받는 신성계.
이 특징을 안 써먹기엔 고인물의 이름이 운다고나 할까.
물론 스킬을 뚫은 다음에야 돌릴 수 있는 행복회로이긴 하지만…….
어차피 지팡이가 필요한 거.
겸사겸사 미래 대비도 해놓을 겸 선택한 사안이었다.
서울에서 신성 무기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
이 명동 대성당뿐이다.
선 성향을 쌓을 수 있는 미션도 몇 개 없고, 미친 듯이 선 미션을 끌어모은다고 해도 스토리 중반쯤 지나야 가능한 상급 무기 퀘스트에 속했다.
한마디로,
‘이모아한테 완전 개꿀 퀘스트.’
이모아의 레벨보다 좋은 무기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가끔 성지순례를 한답시고 애카를 구매해 둘러보는 외국인들도 있다고 하던데.
하나님이고 부처님이고 신에게 별다른 유감이 없는 무교 윤채희에겐 그저 좀 웅장한 아이템 상점일 뿐.
근데. 이건 좀.
“…… 박력 미쳤네.”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는 건 분위기가 남달랐다.
막상 도착은 했는데, 괜한 긴장감에 바짝 마른 입술을 앙다물었다.
성당 바깥까지 새어 나오는 묘한 향냄새와 적막함에 조금 기가 죽었다.
‘죽을 위기도 넘기고 왔는데 가야지.’
용기를 내 성전 안으로 들어섰다.
발소리 한번 내기도 어색해 걷는 모습이 뚝딱거렸다.
내부는 지하실처럼 시원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 어딘가 찜찜한 서늘함.
정면으로 마주한 거대 십자가의 압박을 견뎌내고 긴 의자 끝에 엉덩이를 살포시 걸쳤다.
그 흔한 기도하는 사람이나 성직자도 없는 텅 빈 성당 안.
스테인드글라스로 쏟아지는 색채 가득한 빛과 성스러운 분위기에 질식할 것 같았다.
‘빨리 처리하자.’
이런 비장함에는 조금 알레르기가 있다.
태어나서 생일 촛불 앞에서도 뭘 빌어본 적이 없지만, 굳게 두 손을 모아 쥐고 눈을 꼭 감는 모션을 취했다.
명동 성당의 사제는 특수한 모션을 취해야만 등장하는 NPC 중 하나였다.
“신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오셨습니까?”
왔다.
슬그머니 눈을 뜨고 앞에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
사제복 차림의 중년 여성이 상냥히 미소 짓고 있었다.
‘미카엘라 수녀님.’
그녀의 손목에 십자가가 달린 묵주 팔찌가 달랑거렸다.
“신께서는 어떤 방랑자의 말씀도 듣고 계실 겁니다. 마음 편히 모든 걸 고해하고 용서를 빌어도 좋습니다.”
“아니, 저는…….”
“아, 혹시 세례를 받기 위해……?”
“무기 구하러 왔는데요.”
그리고 그 온화한 사제의 얼굴이 일순 굳었다.
너무 시작부터 본론만 내뱉었나?
순식간에 퍼지는 냉랭한 분위기에 어금니를 꽉 씹었다.
신성계 무기를 얻기 위한 첫 번째 관문.
‘첫인상 테스트.’
거창하게 테스트라고 해봤자 시스템으로 선악 성향치를 체크하는 게 다긴 했다.
뭐, 물론 이모아는 기본적으로 선 성향이 90% 이상이어야 유지할 수 있는 신성계니까.
가볍게 넘어갈 거라고 예상은 하는데.
그래도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그녀의 판단을 기다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이 커져갔다.
에, 에이. 모태 신성인데 설마…….
팍!
미카엘라 수녀가 별안간 내 손을 강하게 잡아채 턱밑까지 들어 올렸다.
얼떨떨하게 붙잡힌 두 손과 수녀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감싸 쥔 손등 위로 점점 더 압력이 가해졌다.
“아, 아픈데요…….”
“이 세상에 신은 정말로 존재합니까?”
하나의 빛도 존재하지 않는 검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등줄기에 싸늘함이 번졌다.
이해할 수 없는 불쾌함이 천천히 이성을 갉아 들었다.
게임에서 한 번도 나온 적 없던 대화 이벤트다.
심지어 선 성향이 100%를 찍었던 캐릭터로 왔을 때에도…….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차마 떼지 못하는 입이 뻐끔거렸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혹시 뭔가 또 바뀌었나?
여기에 오면 안 됐나?
한번 당하니까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아무것도 답하지 못하는 끔찍한 시간이 흘렀다.
“후후.”
그 작은 웃음소리에 당긴 고무줄처럼 팽팽하던 공기의 흐름이 탁. 끊어졌다.
미카엘라 수녀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천천히 내 손을 놓았다.
한 발자국 떨어져 다시금 온화한 모습으로 돌아간 그녀의 위로 흐릿한 홀로그램 창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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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 명동 대성당의 성물 되돌려 놓기.
― 분류 : 서브
스스로를 신이라 떠들고 다니는 자들에게 성물을 약탈당했습니다. 가만히 둔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는 뜻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성공 시, 지급.
실패 시, 모든 신성계 NPC의 호감도 대폭 하락.
#
“우리들의 신을 위해서.”
미카엘라가 머리 위로 성호를 그었다.
“…… 아무래도 상당히 정신이 나간 거 같은데.”
성당을 뒤로하며 중얼거렸다.
뎅그렁. 뎅그렁.
첨탑 꼭대기에서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눈앞으로 미카엘라 수녀의 얼굴이 스쳐간다.
그 광기 어린 눈빛하며 휙휙 바뀌던 표정, 초면인 사이에 지나치게 선보인 악력까지.
‘원래 저런 캐릭터였나?’
생각해보면 뭐,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신성계가 아니면 그닥 마주칠 일이 없어서 신경 쓰지 않긴 했지만, 멸망이 가까워진 세계 속.
무너진 종교를 끝까지 지키고 있는 단 하나의 사제.
그게 미카엘라 수녀의 이야기였으니까.
쩝. 멋쩍게 볼을 긁으며 우다다다 쌓인 알림창들을 하나씩 휙휙 지워나갔다.
많기도 많았다.
이게 다 무슨 내용이냐면…….
#
【MISSION】
▷ 성물의 행방 쫓기.
― 분류 : 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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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 명동 골목의 노숙자와 대화하기.
― 분류 : 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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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 근처 점집에서 타로점 보며 소문 듣기.
― 분류 : 서브
#
등등.
죄다 무기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한 연계 미션들이었다.
물론 처음 하는 유저면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니까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가야 한다.
하면서 스토리도 좀 느껴보고,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보고, 시간 낭비도 하고 그게 재미지.
하지만 나는.
‘이미 다 아는 거 뭐하러 하냐.’
즉각 성물 침탈범들의 근거지에 쳐들어갈 생각이었다.
일명, 천문(天門)전능진리회.
이름부터 진한 사이비의 냄새가 나는 놈들은 각성자들을 ‘신의 부름을 받은 사제’라 일컬으며 스스로를 칭송하는 자아 비대증 환자들이었다.
한마디로 능력주의 사이비.
오로지 힘으로 권력을 잡고 싶은 각성자들 사이에서 세력을 넓혀가는 더러운 놈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마주칠 악의 세력들은 모두 등급이 낮아봤자 B, A, 더하면 S급 각성자들이었다.
그 소굴을 뚫고 성물을 안전히 가지고 나와야 성공하는 미션.
말만 들으면 C급짜리 이모아가 해낼 수 있는 퀘스트일 리 없다.
그러므로.
‘나에게 정면 돌파는 없다.’
고인물의 전유물.
개구멍으로 들어갔다 나올 예정이었다.
***
“아, 맞다. 너 이번에 올릴 제물 얘기 들었냐?”
“들었지 당근. 천지성령님께서 특별히 준비했다고 제사부 애들이 자랑, 자랑을. 매번 염 올리면서 성 받는다나 뭐라나.”
“그런다고 지들한테 이미 닫힌 천문이 다시 열릴 것 같나. 웃긴 새끼들.”
우스갯소리로 흐르는 비난 사이 희여멀건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천문전능진리회 건물의 뒷길.
겉으로는 낡은 철학관의 탈을 쓰고 있지만, 철창살로 빠져나갈 구멍 하나 없이 막힌 골목 앞은 뒷담화와 온갖 소문의 근원지였다.
안 그래도 바쁜데 그 제물이 뭐라고.
후미진 골목 경비를 서는 말단 사제 둘은 투덜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투두둑.
“무슨 소리 안 났어?”
“쉿.”
뚝 그친 말소리 사이로 바람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만 들렸다.
눈을 홉뜨고 주위를 살피던 둘은 이내 싱겁게 긴장을 풀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래. 솔직히 우리 요즘 너무 예민해. 보초 서는 동안 뭔 별일이 있었다고.”
주절주절 다시 담화 소리가 새어 나오자,
후우.
있는 힘껏 참았던 숨이 함께 터져 나왔다.
‘와. 들킬 뻔했네.’
아슬아슬.
건물 바깥 창문틀에 까치발을 들고 서 있던 나는 쥐가 날 것 같은 종아리를 몇 번 주물렀다.
정말, 정말.
‘쉽지 않다.’
개구멍 플레이를 우습게 봤던 과거의 나를 잠시 쥐어박고 싶다.
왜 자꾸 까먹을까.
여긴 뛰어다니는 것도, 매달리는 것도.
전부 내가 해야 된다는 걸.
‘심지어 여긴 세이브 로드도 없어. 걍 한방이야.’
지붕 끝을 붙잡은 팔이 바들거렸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척척 건물을 올라가 작게 튀어나와 있는 실외기 받침대를 밟았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작은 창문을 깬 다음에, 진리회 놈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손님방 안으로 진입한 후였단 말이야.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내가 즐겨 쓰던 루트.
하지만 현실은.
“끄으윽…….”
힘겹게 지붕을 올라타 넙죽 엎드렸다.
송골송골 땀이 맺힌 이마가 뜨끈했다.
혹시나 들킬까, 고개만 쭈욱 빼 주위를 살폈다.
밟아야 하는 실외기는 딱 보기에도 죽음을 각오하고 낙하 정도는 해 줘야, 그다음 단계가 가능해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젠장.’
작게 욕지거리를 씹으며 꾸물꾸물 몸을 일으켰다.
여기까지 와선 어쨌든, 뭐가 됐던.
‘간다.’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닌 사람 윤채희는 정신 차리도록 아프게 이를 악물었다.
‘하나, 두울, 세엣……!!’
안쓰러운 발끝이 허공에서 몇 번 파닥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