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33
24화
도착한 곳은 평지에 덩그러니 박혀 있는 우물 앞이었다.
주변에 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개운포 어쩌구 설명하는 표지판이 딱 하나 옆에 있었다.
설명으로는 조선부터 주민들이 사용해왔던 약수라고 하는데, 고개를 쭉 빼 안을 들여다보자.
‘빠짝 말랐구만.’
우물은 텅텅 비어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깊기도 깊어 내려다본 곳이 까맸다.
작은 돌멩이를 주워 우물 아래로 던졌다.
1, 2, 3, 4,…….
‘8초.’
탁, 타닥. 돌멩이가 끝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입을 짭짭 다셨다.
우물을 들여다보던 몸을 뗐다.
분명 이곳은 처용의 처소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런데.
“직접 뛰어내려 본 적은 없거든요.”
그 흔한 줄도 없고, 지나다니는 인적도 전무하고.
물론 전에도 한 번 건물 5층 높이에서 뛰어내린 전적이 있지만, 그때는 어디든 빠갈나면 날 이송해줄 리오가 있다는 점에서 두렵지 않았다.
딱히 부딪힐 곳이 없다는 것도 지금보다는 나았다.
여기는 좁고 깊어서 자칫 잘못하면 돌벽에 몸을 부딪치고 텅텅 튕겨져 나가다가 처용이고 뭐고 정신을 잃을 확률이…….
‘일자로 뛰어내려야 되나?’
주춤대며 여러 가지 자세를 잡아봤다.
X자로 팔을 교차시켜 파라오처럼 누워보기도 하고, 다이빙하는 것처럼 몸을 숙여보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머리 박살 나는 것보다는 다리 박살 나는 게 훨 나으니까.’
우물 안쪽으로 걸터앉았다.
끝도 없는 밑바닥으로 발이 흔들렸다.
콩짚 날개를 장착한 뒤 가볍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흡!”
몸이 추락했다.
어딘가로 떨어지는 건 몇 번이나 경험해도 익숙해지는 기분은 아니었다.
아찔함을 견디며 혼신의 힘을 다해 눈을 떴다.
‘밑바닥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속도가 붙은 몸은 앞으로 점점 고꾸라졌다.
새우처럼 굽어들기 시작한 자세를 세우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쉽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즉사다.’
뇌진탕 걸려서 즉사라고!
지표면에 닿기까지는 단 몇 초의 시간.
차라리 등을 부딪쳐 고통을 분산하자는 심산으로 몸을 뒤집은 순간.
“끄르르윽!”
소리친 비명은 물에 먹혀 사라졌다.
풍덩!
닿은 우물 끝은 딱딱한 돌바닥이 아닌 바다처럼 사방이 새파란 물속이었다.
어떤 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손과 발이 부유감에 둥둥 뜨고, 위로 비치는 햇빛이 꼭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그러나,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
거센 소용돌이가 나를 휩쓸었다.
속수무책으로 회전하는 몸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수, 숨이…….
“푸하악!”
커헉. 콜록, 콜록콜록.
기침과 함께 이목구비의 모든 구멍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에는 진심으로 죽는 줄 알았다.’
물기로 흥건한 입가를 닦아내며 생각했다.
내동댕이쳐진 몸뚱이가 여기가 어딘 줄도 모르고 일단 폐에 산소를 채우기 바빴다.
헐떡대는 시야 위로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흩날리는 은발.
새초롬한 눈매 아래 붉게 칠한 두 줄의 선.
흑빛 주단이 살랑거렸다.
바람결을 타고 금가루 같은 것이 일렁였다.
“드디어 왔네.”
처용이 지루한 얼굴로 말했다.
***
와하하하!
맞은편 평상에서 터진 도깨비들의 호탕한 웃음에 청사초롱이 나부꼈다.
가볍게 흔들리는 땅덩어리에 사색이 되어 소반을 붙잡았다.
그것뿐만이면 다행이지.
채앵! 쨍그랑!
사방은 술 단지와 접시 깨지는 소리.
음식들이 하늘 위로 마구 날라다녔다.
뭐가 그렇게 흥에 겨운지 북이며 장구 치는 소리가 떠나가질 않았다.
도깨비 놈들은 누구 하나 멱살을 잡으면 싸움 구경이다 즐거워했고, 누구 하나 술기운에 쓰러지면 그것 또한 재미난 구경이라고 좋아했다.
한마디로.
‘개판.’
그것도 완전 어메이징 아수라장 개판이었다.
언제 물에 젖었는지 알 수 없게 마른 옷소매를 죽죽 끌어내리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이것도 처용이 물도깨비들을 부려 건넨 호의였다.
「‘거둬라.’」
그 한마디에 온몸의 물방울들이 위로 솟아나는 건 좀 장관이었지.
거기까진 따악 좋았는데.
「‘같이 저녁이나 하지.’」
그게 문제였다.
처용은 이 소란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도깨비처럼 여상한 표정으로 홀짝홀짝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문득 시선이 마주친 그가 말했다.
“먹어. 마음껏.”
얼굴을 구기고 가만있는 내가 눈치를 본다고 느꼈는지 생각해주듯 턱짓했다.
아, 아하하. 비즈니스적 미소를 흘리며 호박전 하나를 입에 물었다.
물론. 목구멍으로 넘어가진 않았다.
씹는 호박이 모래처럼 깔깔했다.
그 어디에서도 쫄지 않았던 내가 왜 이렇게 쭈구리처럼 구냐 하면.
‘원래 완전 미친놈인데.’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고.
지금은 자약하게 굴고 있지만 내가 애카에서 하는 처용은, 글쎄.
적어도 정상적인 도깨비는 아니었다.
아니, 사실 정상적인 도깨비가 없긴 했다.
언제 입에서 불을 내뿜고 방망이를 휘둘러댈지 모르는 다혈질의 종족.
‘항시 긴장해야 된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때, 처용의 옆으로 까만 고양이 하나가 다가왔다.
이 도깨비 나라에서 생전 처음 보는 동물이었다.
다리에 깔린 옷깃 위에서 옆구리를 비비고, 애교 부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보통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윤기 나는 털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퍽 부드러웠다.
“소원을 빌었지?”
처용이 먼저 운을 뗐다.
“아, 예.”
“우리도 그걸로 먹고살긴 하지만 말이야. 가끔 이렇게 허무맹랑한 소원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단 말이지.”
“예…… 에?”
지금 허무맹랑이라 하셨냐?
번쩍 고개를 들자 처용이 웃고 있었다.
입은 절대 인간이라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찢어져 있었고, 불길 같은 자주색 오오라가 눈가로 번졌다.
송곳니밖에 없는 이빨은 마치 짐승의 발목을 씹어 삼킬 덫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래.
이거다.
‘내가 아는 원래 처용의 모습.’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콧잔등을 긁으며 야차 같은 얼굴을 쳐다봤다.
모니터 너머로 보는 것보다 훨씬 해괴하긴 했지만, 뭐.
“그래서 제가 빈 소원은 못 들어주겠다는 소립니까?”
나한테는 이게 더 중요했다.
처용은 이글거리는 눈길로 한동안 나를 쳐다보았다.
“재미없는 놈이구나.”
심드렁한 표정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비명이라도 질렀어야 호감도 쌓이고 그랬던 거임?
찰나의 후회를 그가 막아섰다.
“도깨비 왕에게 들어줄 수 없는 소원이란 없다. 다만.”
처용이 손을 뻗어 내 턱을 들어 올렸다.
고양이처럼 세로로 길어진 동공이 나를 꿰뚫어 보았다.
“나를 나서게 한 대가는 충분히 치러야 하겠지.”
“…….”
“거래할 것이냐?”
턱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을 힘주어 붙잡아 내렸다.
뻔한 걸 묻는 질문에 시간 끌 필요는 없었다.
“딜.”
흐흠.
처용이 나지막한 소리로 웃었다.
#
【MISSION】
▷ ‘도깨비의 부탁’ -1
― 분류 : ??
도깨비 왕의 하나뿐인 반려를 지켜내야 합니다.
성공 시, ‘도깨비의 부탁’ -2 진행
실패 시, 도깨비 영지 진입 불가
#
…… 예?
미션창과 그 너머에 있는 처용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는 앓던 이를 빼낸 듯 더없이 상쾌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드디어 저승사자 그놈의 아구창을 후려 패줄 수 있겠어.”
저승사자요?
아구창이요?
그의 품위로 폴짝, 고양이가 뛰어들었다.
미야오.
우는 소리에 불길한 소름이 돋아났다.
“막아라. 이 아이를 쫓아오는 죽음의 집행자를.”
아홉 개의 검은 꼬리가 하늘하늘 처용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아직까지 사태가 파악되지 않은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저승사자랑 맞짱을 뜨라고?
“음.”
처용이 잘 알아들었다는 것처럼 흡족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허.
헛웃음을 터트렸다.
산 넘어 산.
안 그래도 처용 찾으러 우물 바닥으로 떨어져 들어왔는데, 고 투 헤븐도 아니고 이제 더 아래.
고 투 헬을 해보라는 당당한 말투에 기가 찼다.
따져들 듯 그에게 물었다.
“저승사자랑 파이트 뜨려면 뭐가 필요한지 알고는 계시고?”
“명계의 음식을 하나 먹어야겠지.”
“그걸 아는 도깨비가 그래?!”
왈칵 성이 치밀어 잔칫상을 뒤집을 것처럼 일어섰다.
처용은 뭐가 문제냐는 것처럼 눈썹을 까딱거렸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그만한 ‘대가’가 필요할 거라고.
턱. 할 말이 막혔다.
그래. 애초에 소원을 빈 건 나였다.
이럴 줄 알면서도 넘어간 건 나긴 한데……!
망부석처럼 굳은 몸이 뭘 할 수도 없어 선 채로 멈칫거렸다.
처용이 반려묘의 머리를 긁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보다시피 이 아이는 영물이다. 내 힘으로 순회를 거칠 기회를 얻었지만, 그것도 아홉 번. 세계율에 배척되지 않는 한계로는 이번 생이 마지막이야. 불멸의 삶을 사는 나에게는…….”
그의 얼굴이 씁쓸함으로 구겨졌다.
“함께 있을 그 시간이 너무나도 짧게 느껴져.”
“…….”
“몇백 년 동안 충분히 준비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쉽지 않더군. 거기다 그 저승사자 놈들이 자연의 금기를 깨트렸다고 얼마나 설쳐대던지. 시시때때로 이 아이의 목숨을 훔쳐 가려고 발버둥 쳐대는 꼴이.”
처용이 으득, 이를 씹었다.
그 분기를 느꼈는지 검은 고양이가 먀옹대며 그의 무릎으로 머리를 비볐다.
“아주 조금만 더 유예 시간을 벌고 싶어.”
순간 누그러진 얼굴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승사자와 도깨비는 상성이 최악이야. 서로를 열 받게 하는 방법은 아주 잘 알고 있지만, 결코 해칠 순 없지. 그래서 다른 종족의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게…….”
희미한 웃음소리가 나를 옭아맸다.
“명계를 넘나들 수 있는 인간이면 더 좋고 말이야.”
잘못 걸렸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부터 이 도깨비는 기다리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적당한 인간이 자신의 손아귀에 떨어지기를.’
처용이 느린 몸짓으로 일어섰다.
가까이 다가온 그가 속살거렸다.
“내게 소원을 빌었다는 건…… 도깨비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일이라는 뜻 아닌가?”
꼬시는 목소리에 이를 악물었다.
“나는 네가 원하는 걸 줄 수 있어. 너도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있고.”
“…….”
“어떤가? 인간.”
그렇다면야.
【MISSION을 수락하셨습니다.】
“확실히 준비해 놓으셔야 될 겁니다.”
그를 툭 밀쳐내며 사납게 말했다.
처용이 웃으며 도포 자락을 흩날렸다.
【‘명계의 티켓’을 얻으셨습니다!】
【티켓 사용 시, 명계에 진입할 수 있는 권한이 생깁니다.】
내 멱살을 쥐어 들고 위로 던져 돌려보내려는 그의 손목을 황급히 붙잡았다.
“잠깐, 잠깐, 잠깐!”
“뭐지?”
코를 킁. 훔쳤다.
“한 장만 더 주세요.”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