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
14화
“그렇게 돼서 이제 사제 분들이…….”
“아아, 그렇군요. 그럼 오후 제식 때…….”
말소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청소용품 캐비닛 뒤에 몸을 숨겼던 나는 복도가 고요해질 때까지 몸을 숨겼다가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긴장감에 뒷덜미가 뻐근했다.
현재 위치, 천문전능진리회 건물 B3F.
여기까지 진입에는 여차저차 성공했으나, 안전히 성물을 가지고 빠져나갈 생각을 하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생명줄이라도 찾듯 가슴팍에 달린 자켓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흰 가루가 담긴 비닐 팩을 꽈악 쥐었다.
정체는 환각 효과가 첨가된 수면제.
‘정말 한결같이 구린 새끼들.’
이런 건 시중에서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 안에는 널려 있다.
오는 길에 꼭 지나쳐야 하는 조제실에서 조금 훔쳐온 것이었다.
사이비답게 여기저기 불법적인 일에 손을 뻗치고 있는 게 좀 웃겼지만 뭐.
지금 나한테 도움이 된다면 뭐라도 써줄 의향이 있었다.
다만 쓰러진 NPC를 처리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이 사이비들은 기가 막히게 한 사람, 한 사람을 통제하기 때문에 누군가 그 시간에, 그 공간에 있어야 하는데 없다?
그러면 바로 침입 경보가 떴다.
그래서.
‘이건 최후의 수단이다.’
깽판을 쳐서라도 나가보겠다는 나의 의지.
그래도 믿을 구석이 하나라도 있다는 게 어디냐.
숨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주위를 살폈다.
조심조심 발을 뻗었다.
성물이 전시된 곳은 이 지하 3층, 성령실.
복도를 꺾어 참회실이라 부르고, 실질적으론 고문실인 그 방을 지나가기만 하면 이제 코앞인데.
“…… 를…… 지 않나.”
헉.
갑작스러운 말소리에 숨을 집어삼켰다.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사실상 1, 2층이나 좀 위험했지, 이 층은 허락된 고위급 사제들만 출입이 가능해서 돌아다니는 놈들이 거의 없었다.
지금 떠드는 놈은 이 사이비 교단의 주축을 떠맡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소리였다.
들키면, X된다.
“강동 지부는 요즘 좀 지진부진 하던데.”
“그, 그래도 꾸준히 신도들이 모여드는 추세입니다. 거긴 특히나 강철 놈들 세력이 너무 강해서…….”
“핑계나 듣자고 말한 건 아닌데.”
어디에 놈들이 있나 파악하기 위해 슬금슬금 움직였더니 온 길과 정반대인 원장실 안쪽이었다.
그러니까, 이 사이비 교단의 교주, 천지신령인지 뭔지의 방.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교주로 추정되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심드렁해 보이는 젊은 남성에게 쩔쩔매고 있었다.
‘…… 뭐지?’
이거 지금 완전 뭐 있다.
사건의 냄새를 맡은 나는 바닥 가까이로 납작 몸을 낮췄다.
반쯤 열려 있는 문 밑 틈새로 안을 확인했다.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감청색 의복.
황금 자수가 있는 걸 보니 바닥에 찌그러져 있는 건 교주 놈이 맞았다.
그럼 그 앞에 있는 놈은…….
‘뭔 죄다 시커먼 옷만 입고 있냐.’
발끝부터 올 블랙인 일상복 차림이었다.
좀만 더 내려가면 얼굴도 보일 것 같은데……!
있는 힘껏 바닥에 붙은 볼을 짓눌렀다.
서서히 시선이 올라갔다.
누가 봐도 거들먹거리는 자세로 테이블을 짚고 있는 손, 팔.
그리고.
‘저 표시.’
팔목에 언뜻 비치는 감은 눈 모양.
‘명암.’
쿵.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선연했다.
길드, .
사실 길드라고 불러주기도 뭐한 그 집단은 어느 스토리에나 존재하는 악역 역할을 모조리 떠맡고 있는 존재였다.
포탈 닫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 안에 있는 값비싼 마석이나 장비팔이가 중요한 이익집단.
각성자들이 민간인보다 우세한 종족이며 하등한 종족은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상을 가진 미친 싸이코들.
하지만 그런 정황과 동시에, 어디까지 수렁에 발을 뻗치고 있는지 모를 베일에 싸인 길드이기도 했다.
명암은 검은 안개 같은 놈들이었다.
길드 마스터? 누군지 모름.
길드 본거지? 어딘지 모름.
유일하게 알려진 건 명암의 행동 대장으로 알려진 이태환.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일은 모두 다 그놈이 진행했지만, 그 누구도 그가 진짜 명암의 대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근데 쟤가 왜 여기에?’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사실, 심증만 있긴 했지만, 이 천문진리회와 명암의 결이 비슷해 둘의 유착 관계를 추측하는 고찰 글들도 종종 올라오긴 했었다.
근데, 그래 봤자 사이비가 그냥 사이비지, 뭐.
메인 스토리에는 큰 영향도 없고.
땅땅땅 공식으로 나온 얘기도 아니고.
몇 개 없는 설정이라도 탈탈 빨아먹고 사는 고인물들이 아니면 관심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뒤에 진짜 명암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왜냐면 명암은…….
‘어쨌든 반드시 한 번은, 내가 박살 내야 될 놈들.’
놈들은 이겸과 딱 대척점 위에 서 있었다.
사사건건 랭킹 1위에다, 민간인들에게 영웅 취급받는 이겸과 화랑을 무너뜨리려고 안달이 난 상태였다.
미친놈들이 미친 짓 하는 데엔 이유가 없다지만…….
‘특히나 이태환.’
놈은 대놓고 살의를 드러내는 인간 종류 중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모아를 죽여야 하는 이유를 말하라면 그 자리에서 백 가지 정도는 말할 수 있을 놈들.
이겸을 무너뜨리기 위해 아주 당연하게 이모아를 이용할 수 있을 놈들.
앞으로 내 생존에 방해가 된다면 가차 없이 상대해야 하는 놈들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순간, 발소리.
어깨가 움찔 튀었다.
황급히 몸을 세우고 사각지대로 숨었다.
또 누군가 온다.
“…… 비가…… 서.”
“제대로…….”
“…… 가지.”
간다.
웅얼거려 말소리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여러 개의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 모든 복도가 고요해졌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재빨리 발걸음을 움직였다.
‘조사하고 갈까?’
꾹 닫힌 원장실 앞에서 잠시 멈칫했다.
애카에서도 건질 수 없었던 명암의 ‘진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위험해.’
도대체 뭔 날인지 교주 놈도 왔다 갔다 하는 판에 굳이 새로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
성물을 훔쳐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었다.
비록 발걸음이 개운하게 떼어지진 않았지만.
‘에이씨, 그래. 그냥 가자.’
일단 성물 얻고 나서 생각해도 되는 거잖아.
복잡한 심경을 애써 털고 곧장 성령실로 향했다.
기척을 살피며 조심히 문고리를 당겼다.
달칵.
“어휴우…….”
어둑한 벨벳 벽지를 보자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됐다.
창고처럼 빽빽하게 쌓여 있는 전시장들.
심지어는 내 키만 한 관짝도 있었다.
어떻게, 그래도 안 들키고 잘 왔구나.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도 잠시, 곧장 유러피안 문양의 금고 상자로 향했다.
다른 건 확인할 필요도 없다.
성물은 여기에 있다.
“됐다.”
자물쇠 따는 게 제일 쉬웠어요.
미리 준비해온 핀으로 공식대로 몇 번 찔러주자 잠금장치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고생하며 온 게 허무할 정도로 빠른 진행이었다.
그 안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흑요석 성배.
뭐, 맨날 보던 거라 딱히 큰 성취감이 들진 않았다.
어쨌든 인벤토리에 잘 챙겨 넣고, 다시 얌전히 금고를 봉인해뒀다.
반절은 왔다.
이제 조심히 잘 나가기만 하면…….
“어.”
“엥.”
다짐과 무색하게 성령실 문을 열자마자 사제놈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죄송.”
문답무용.
상대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하얀 가루가 흩날렸다.
털썩 쓰러진 놈을 보며 코를 막은 팔뚝을 천천히 내렸다.
‘X됐다.’
***
“거기 누구야!”
주변 경비를 돌던 사제 한 명이 낯선 움직임에 날카롭게 소리쳤다.
꾸물꾸물.
들키기라도 했다는 듯이 덤불이 거세게 움직였다.
풀들 사이에 파묻혀 있던 사제 로브 하나가 뒤로 빠져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죄송합니다. 귀걸이 한 짝을 떨어트려서요…….”
앳된 얼굴의 사제가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진심으로 곤란해하는 얼굴에 경비는 소리친 게 무안하다는 듯, 몇 번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래도 제식 시간이 다 되었는데 여기서 이러고 계시면 어떡합니까, 형제님. 어서 돌아가세요.”
“시간까지는 제대로 맞춰 가겠습니다. 처음 성령 받을 때 대모님이 주신 소중한 장식이라…….”
“크흐음…… 조금만 더 찾다 가셔야 합니다.”
“네.”
그는 별다른 의심 없이 자리를 떴다.
저벅저벅, 멀어지는 흙 소리를 들으며 심장께를 부여잡았다.
“미친.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평소에 주워들은 스크립트 대사들로 대충 씨부렸더니 그게 딱 먹힌 모양이었다.
하필이면 여기가 안식방과 연결 된 개구멍 출구라, 나올 때 딱 걸릴 줄은 몰랐다.
“뭐 이딴 데까지 경비를 돌고 난리야.”
궁시렁대며 로브에 묻은 잔디들을 툭툭 털었다.
하여간 사이비 놈들.
혹시나 싶어서 가져온 건데, 아까 그놈한테 로브 벗겨오길 잘했다.
주위를 경계하며 풀들을 헤쳤다.
누가 봐도 똑, 떨어질 것 같이 생긴 가벼운 철창살을 뜯어냈다.
‘탈출이다.’
꽤 높은 벽돌 턱을 폴짝 뛰어 내렸다.
발에 닿는 평범한 도로 골목.
인적이 드물어 다행이었다.
품에 숨긴 로브를 조금씩 불태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찝찝하네.”
하필이면 그 순간에 사제 놈이랑 따악 마주쳐서 원장실 조사를 하지 못한 게 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다시 저곳에 침입할 번거로움과 위험도를 감수할 마음 역시 제로였다.
‘그냥 가다 보면 만나겠지, 뭐.’
명암 놈들과는 반드시 마주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옷매무새를 한번 추스르고, 아무렇지 않게 걸었다.
재 붙은 머리를 탈탈 털어 내렸다.
***
“…….”
“…… 크흠.”
여기는 다시, 명동 대성당.
사이비 교단이고 여기고.
종일 맡는 이 지독한 향냄새에 코가 마비될 것 같았다.
미카엘라 수녀는 여전히 온화한 얼굴로 벌써 몇 분째 가만히 성물을 살피는 중이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늠해보려는 듯 빛에 비춰보는 눈길.
손으로도 쓸어보고, 밑바닥도 확인해보더니 알록달록한 스테인드글라스 그림자 위 성배를 올려뒀다.
“해내셨군요.”
그녀가 단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MISSION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보상, ‘펜타곤 지팡이’를 획득하셨습니다.】
‘마침내.’
은으로 세공된 지팡이를 두 손에 쥐자 작은 감동이 밀려왔다.
신성 쪽에서 은은 또 굉장히 상징적인 광물.
쉽게 얻을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무교고 뭐고 당장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할 판이었다.
이걸 위해 나는 그 개고생을 해왔다.
오각형으로 정교하게 깎인 장식 중앙에 박힌 빛이 퍼져 나가는 모양까지.
‘완벽 신성템.’
그냥 보기만 해도 사람이 홀리해지는 기분이었다.
여기다 따악, 강화 보석 하나만 구해서 달아주면 한 A급 까지는…….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이 은은한 기분을 느끼며 손바닥 두 뼘 정도의 지팡이를 휙휙 휘둘러보고 있는데.
‘으음.’
미카엘라 수녀가 정말 소중한 손길로 성배를 닦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애틋한 눈빛이 보는 사람마저도 뭔가 가슴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텅 빈 성당 안.
내리쬐는 색색의 빛.
성스럽다.
그 단어의 뜻이 딱 이 장면에 어울리는 느낌일까.
그러나 어딘가 쓸쓸했다.
세상에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진 어딘가의 누구 씨의 고독이 또 떠오를 지경이었다.
사무치게.
“생각해봤는데요.”
내가 작게 운을 떼자 미카엘라 수녀의 시선이 잠시 맞닿았다.
“신은 있는 거 같아요.”
“…… 그렇군요.”
“대신 날 구원해주지 않는 것뿐이지.”
“…….”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미칠 거 같잖아요. 이 모든 상황이.”
미카엘라 수녀는 답하지 않고 대신 작은 미소로 화답했다.
고개를 까딱하고 성당을 빠져나왔다.
사실 신이 있든 없든 그런 건 상관없다.
구원은 셀프.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나일 뿐.
쓸 만한 무기도 구했겠다, 이제 진짜 해야 할 건…….
‘빡세게 강해지는 것뿐이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형형한 안광이 날카롭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