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4
35화
뒷골목에는 ‘Q가 자기 아래로 들어온 애들 뒤를 봐준다더라’ 하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어떤 이들은 부러워했고, 또 어떤 이들은 불공평하다 떠들어댔다.
견제하는 무리가 생겨나며 전보다 의뢰가 줄기도 했다.
거래자들은 오래전부터 유구하게 반복되어왔던 ‘도구’의 오만함을 미리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변함없이, 뒷골목은 Q의 이야기로 야단이었다.
‘Q의 밑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느냐’, ‘Q가 누구냐’, ‘뽑는 기준이 뭐냐’.
씹어대며 퍼지는 이름값은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더 이상 Q를 대항할 적수가 없으니까.’
종종 한미래의 이야기가 Q와 엮여 들려오기도 했으나 그것 또한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힘과 권력만을 좇는 세계답게 추락한 이름은 두 번 다시 수면 위로 떠 오르지 않았다.
이제 P의 뒤로 가끔 따라붙는 수식은 몰락, 침몰 그런 게 전부였다.
그러나 여전히.
‘한미래는 위의 의뢰를 받고 있다.’
그 말은 아직까지 윗놈들에게 아이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방증과도 같았다.
나는 그 조심성이 좀 엿 같았다.
“나한테 맡기기엔 믿음이 부족하시다는 거지.”
가죽 의자에 걸터앉아 바깥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Q는 속도 면에서나 정보 면에서나 다른 꾼들보다 월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쌓인 신뢰와 명성을 이용하면 뒷골목에 거물이라고 소문난 몇 놈쯤은 구워삶을 수 있는 입지에 올라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님, 이 B급 의뢰들은 어디에 놔둘까요.”
“지금 줘. 싸인할 테니까.”
“옙.”
‘위’에서 내려오는 의뢰들은 쓸모없는 것들뿐이었다.
A, B, 가뭄에 콩나듯 S급.
이름값만 보고도 턱턱 S급 의뢰를 건네는 순진한 부호들과는 달랐다.
윗놈들은 아직까지도 간을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 의도를 눈치챈 게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지만, 꾸준히 동업 관계를 유지하는 걸 보면 그건 또 아니고.
세력을 모으는 게 슬슬 맘에 들지 않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럼 진작 와해시켰겠지.’
잔혹성으로 이 뒷골목을 다스려온 ‘위’는 그런 존재였다.
놈들이 지지부진 시간을 끌수록 나는 더더욱 뒷골목의 질서에 충성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의뢰를 단 하나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라 밑에 놈들을 쪼아대기 바빴다.
입이 늘어나면 적만 늘어난다는 모토 아래, 소수 정예로 운영되는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불만을 품을 만도 한 업무 강도였지만.
“혀, 형님. 저 이번 주에 어머니 환갑…….”
“어, 어. 가져가.”
“형님, 저는 조카 돌잔치가 있는데…….”
“그래. 꺼내 가라.”
뿅뿅. 뿅뿅뿅.
관심 없는 표정으로 화면 속 동그란 풍선들을 터트렸다.
얼마를 꺼내 가든, 몇 번을 타내 가든 상관없이 턱턱 지폐를 건네주니 최고의 복지가 아닐 수 없었다.
‘역시 치료는 금융 치료.’
뒷골목에서 뜯어낸 돈을 다시 뒷골목에 뿌리는 것 정도야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였다.
용태는 금고 안에 쌓이는 의뢰비를 보며 개처럼 침을 흘려댔다.
시간이 지날수록 입가가 허옇게 번질 정도로 나를 칭찬하고,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준 신처럼 모셨다.
내가 가져가는 돈은 한 푼도 없으니 더 그래 보였을 만도 했다.
혹시 또 모르지.
겉은 저렇게 빌빌 기면서 속으로는 ‘하던 일만 잘하면 돈 퍼주는 놈’으로 호구 잡고 있을지도.
‘근데 그러든지 말든지.’
그렇게 웃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모쪼록 한 집단을 속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장미 애들은 어때.”
게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군기가 바짝 든 용태가 바로 허리를 숙이며 보고했다.
“밑에 날파리들이 좀 깝치는 것 같았는데 돈 좀 쥐여주니까 알아서 처리했습니다.”
“그래. 잘했네.”
장미는 앞서 소개했던 2번과 같은 부류로, 돈에 살고 돈에 죽는 인간이었다.
물론 쩐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꾼들이 뒷골목에 깔려 있지만 그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위에서 떼인 돈이 좀 있다길래.’
뚜렷한 갑과 을의 관계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려니, 순종적으로 넘어가는 다른 놈들과 달리 장미는 사사건건 그 덜 받은 보상을 따내기 위해 위와의 접촉을 엿보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배짱이 대단한 건지, 아니면 미친놈인 건지.
그래서 얼만데? 하고 용태 녀석한테 물어봤더니…….
「“3만원이요.”」
바로 찾아가 돈으로 인수해왔다.
어쨌든 그 뒤로도 공식적 Q의 세력, 비공식 반反 윗대가리 그룹은 차곡차곡 모여왔다.
수수료도 떼지 않고 적선하듯 나눠줬던 하급 의뢰에 숭배하듯 Q를 따르기 시작하는 자들도 생겨났다.
여론도 나쁘지 않고, 전력도 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때가 왔다는 거지.’
드르륵.
의자를 밀고 일어나 슬슬 뒷짐 진 채 사무실 안을 돌아다녔다.
시대가 어느 땐데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주먹구구식 아날로그 돈 계산을 하고있는 (무늬만) 회계 직원들의 등 뒤에 섰다.
“뭘 그렇게 쫄아. 뭐 삥땅쳤냐?”
“아, 아닙니다.”
지나치게 움찔대는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묻자 목이 똑 떨어질 것처럼 홱홱 고개가 내저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을 내뱉었다.
“왜. 지금 마음껏 해놔.”
이제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일인데.
발걸음이 멀어지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쿵쾅쿵쾅!
이번에는 계단을 오르는 거친 발소리가 적막한 사무실의 공기를 깼다.
벌컥 철제문을 열고 들어온 용태는 코앞에서 인자하게 맞이하는 나를 마주치곤 경기를 일으켰다.
“혀, 형님.”
“왔냐.”
내 시선은 놈이 든 먹빛 종이에 박혀 있었다.
쏟아지는 의뢰들 사이에서 ‘위’의 것을 걸러 가져오는 게 이곳에서 맡은 용태의 유일하고도 중요한 일거리였다.
구 실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게 의뢰서 뭉치를 건넸다.
“예. 이번에는 A급 의뢰구요, 물품은 누룩버섯, 기한은 오늘 6시까지. B급도 2개 있고, 그리고 이거는…….”
부산스럽게 브리핑하던 용태의 손이 뒷주머니를 헤집었다.
엉덩이에 소중히 감춰온 종이학 한 마리가 내 손 위에 얹혔다.
“형님이 보셔야겠습니다.”
아니, 왜 하필 엉덩이……?
왠지 모르게 뜨끈한 것 같은 종이학 온도에 용태를 한 대 후릴까 말까 고민했다.
놈은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밀하게 속삭여왔다.
“무슨 주문을 걸어놨는지 저는 펴지지도 않더라고요. 분명 위에서 내려온 것 같긴 한데, 혹시 몰라서요.”
“떨어져.”
“예?”
“얼굴.”
아핫핫. 용태가 머쓱하게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한껏 더러워진 기분으로 학의 날개 끄트머리를 살짝 붙잡았다.
스르륵 펼쳐지는 종잇장의 내부를 살핀 뒤 구 실장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는 안 보이는데, 의뢰입니까?”
“음.”
궁금하다, 설명해 달라 말하고 있는 얼굴을 짧은 침음으로 넘겼다.
적힌 글자들을 살피는 눈동자가 바쁘게 오르내렸다.
갑 과 을. 주인과 종을 지칭하는 단어가 끊임없이 적혀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때가 왔다.
나는 빈 상태 그대로 용태에게 종이를 넘겼다.
“형님. 서명 안 하셨는데요?”
용태는 깜빡하셨다는 듯 굽실거리는 자세로 다시 내게 의뢰서를 내밀었다.
그러나 그 종이를 받아들지 않았다. 대신.
“그대로 보내.”
신호탄을 쏘아 올릴 차례였다.
예?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는 용태를 무표정으로 되받아쳤다.
“거절하라고.”
“아니, 하, 하지만 형님.”
“언제부터 내 지시에 하지만을 붙였을까.”
싸늘한 기로 대꾸하자 구 실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의뢰를 거절한다는 것은 ‘위’에게 반기를 드는 행위.
그건 곧, 이 뒷골목의 질서에 거역한다는 뜻.
울상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용태를 지나쳤다.
다른 의뢰서들에 가볍게 싸인을 적어 날리는 날 보며 그는 더더욱 황당해했다.
상관없었다. 내가 거절한 건 의뢰가 아니었다.
어떤 위배도, 위반도 아니었다.
단지.
‘계약.’
내가 거절한 건 계약이었다.
수많은 꾼들을 개처럼 부리고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기 위한 ‘위’의 수단.
더 이상 도망칠 길 없는 인간들에게, 네가 네 발목을 자르라 말하는 그 ‘부당 계약서.’
그러니까, 한미래를 이 시궁창 속에 영원히 가두게 한 원인이었다.
***
통. 통통통.
반복적인 소음이 귀를 두드렸다.
어두운 방 안, 소파 위에 늘어져 있던 인영이 몸을 한 번 뒤척였다.
통통. 통통통! 통!
“아이씨.”
벌떡 상체를 일으킨 탓에 가슴 위로 올려놓았던 하얀 가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어나기 싫어 질척이는 발걸음이 비틀비틀 창가로 향한다.
겨우 빛 한 줄기 새어 들어갈 정도로 작게 열어놓은 창문 틈 사이.
“문 좀 닫지 말라니까.”
종이 새 하나가 맹목적으로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가벼운 한숨과 함께 활짝 창문을 열어젖혔다.
쏟아지는 빛과 폐부까지 얼릴 찬 공기.
눈살을 잔뜩 찌푸리는 남자의 손등 위로 포르르. 안착한 종이학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양 날개를 몇 번 퍼덕거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손이,
와그작.
“간지러워.”
처참하게 학을 구겼다.
납작해진 종잇장이 몇 번 파들거리다 남자의 손에 의해 꾸깃꾸깃 펼쳐졌다.
그때, 등 뒤에서 문이 열렸다.
“웬일로 일어나 있지?”
“이거 네가 보냈어?”
동문서답이 익숙한 양, 아무렇지 않게 다가온 가면 하나가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아까 폰이 보내는 걸 봤는데.”
“또 멍청하게 위치 잘못 설정한 거 아니야? 빈 종이잖아.”
“그럴 리가.”
손에서 홱 빼앗은 계약서를 앞으로, 뒤로 뒤집어 살피던 와중.
파르륵!
종이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낙엽이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몇 번 공중을 맴돌던 물체는 누군가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대장.”
하얀 가면들이 일순 경배의 자세를 갖췄다.
밑 부근이 부서진 가면 사이로 보이는 다부진 턱.
목덜미를 문 짐승의 살을 발라내듯 야만스러운 시선이 종이를 핥았다.
비뚜름한 입매에 호선이 걸렸다.
“하룻강아지들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 그렇지?”
“어떻게 할까요?”
명령을 바라는 머리들을 보며 그들의 우두머리가 낮게 읊조렸다.
“기고만장한 머리를 눌러줄 필요는 있겠지.”
손안의 검은 종이가 붉은빛을 발하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찾아.”
명을 받든 판 위의 말들이 망설임 없이 발돋움했다.
그 순간.
쿠웅.
묵직한 굉음이 건물 내벽을 흔들었다.
무언가 폭발이라도 하는 것처럼 연속적인 소리가 점점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짧게 시선을 마주친 가면들이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
콰아아아앙!
박살 난 철제가 낙엽처럼 나뒹굴었다.
뭉게뭉게 솟아오른 먼지폭풍 사이 잿빛 그림자가 우뚝 섰다.
콜록. 기침 소리가 정적을 뚫었다.
“어우, 청소 좀 하고 살지.”
무광의 검은 헬멧이 손날로 휘휘 공기를 환기시키며 등장했다.
어둠 속, 둥둥 떠 있는 세 개의 흰 가면을 보며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찾았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