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8
39화
‘82%라고.’
정보창을 살피며 씁쓸한 입맛을 되삼켰다.
그새 5%가 훅 떨어지다니.
어느 정도 가늠은 했던 수치지만 실제로 숫자가 다가오니 조금 충격이었다.
빈대 하나 잡자고 초가삼간 불태우는 일은 절대 사절이었다.
Q의 이름은 어떤 상징 격으로 뒷골목에 남아 있겠지만, 그 영향력을 받아먹는 게 꼭 나일 필요는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뭐, 원래도 Q는 한 명이 아니었고.’
권한을 여기저기 찢어 건넬 테니 ‘위’처럼 권력을 독점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다만.
“용태야.”
마지막으로 이 낡고 오래된 철제문을 나서기 전,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의뢰와 계약이 얽히지 않는 이상 영원한 신뢰 관계 같은 건 뒷골목에 없다.
룩과의 전투에서 더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무명에게 큰 지분을 넘겨준 대신, 사장(이라고 해봤자 바지사장 느낌이지만)직을 가지게 된 용태는 큰 불만이 없어 보여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적당히 해라. 자꾸 나 찾아오게 하지 말고.”
믿을 수가 있어야지.
어색하게 웃는 놈을 보며 경고를 마치고 뒤를 돌았다.
이제 낮 이모아 밤 Q의 찝찝한 이중생활도 끝이었다.
‘……1% 정도는.’
아직도 속해 있겠지만.
【주인의 권한을 배분하시겠습니까? Y/N】
홀가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Yes.
***
어두컴컴한 골목을 헤쳤다.
점차 걷는 발걸음이 빨라지고, 인적 드문 길가를 지나쳤다.
몇 블록 지나지 않아 달라지는 풍경.
평범한 사람들과 평범한 거리…….
아직 떼지 않은 크리스마스 장식이 즐비한 익숙한 배경의 대로로 나섰을 때.
‘드디어.’
조심스레 헬멧을 벗었다.
비치는 햇살이 처음 맞는 양 신선하고 따사롭게 느껴졌다.
비로소 이모아로 돌아온 낮을 만끽했다.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풀어야 할 의문들도 수십 가지였으나.
“이게 얼마 만이냐…….”
일단은 제대로 숨을 내쉬는 것이 먼저였다.
–
【상태】
이름 : 이모아 / 16세
칭호 : ‘시작에 선 자’, ‘■■■■의 해방자’
종합 헌터 등급: A
근력 : B
지능 : A
민첩 : BBB
전용 스킬 : 미약한 온기(Lv.2)(잠금)
–
가장 먼저 살핀 것은 상태창이었다.
‘칭호.’
계약을 해지한 그 순간 얻었던 낯선 글자가 창 위로 번쩍거렸다.
처음 얻었을 때에는 넋이 좀 나가 있었던 상태라.
그 뒤로는.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좀 남아 있던 터라.’
쩝쩝대며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결국 제대로 살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 기억상 애카에 저런 칭호들은 존재하지를 않았다.
더군다나 는 그렇다 쳐도.
‘?’
“뭐라는 거야? 대체 뭘 해방한다는 거야?”
어이없는 심정뿐이었다.
저렇게 까맣게 칠해진 사각형은 오류 났을 때가 아니면 보기 드문 문자였다.
시스템이 드디어 미친 건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정보를 제한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머리는 미친 듯이 후자라고 외치고 있었다) 아무리 추측해도 생각나는 단어가 없었다.
뒷골목? 은 세 글자고.
그림자…… 도 세 글자고. 한미래도, P도 아니고, 그럼 대체 뭐…….
“에이씨.”
머리를 벅벅 긁었다.
본래 ‘칭호’라는 것은 캐릭터의 주요한 설정들을 거칠 때마다 부여되는 이름이었다.
예를 들어 윤산영으로 플레이할 때, 기사 직업을 버리고 마법사로 전직하면 받는 .
물과 불, 대지와 빙속성처럼 상극인 성향으로 게임을 진행하면 얻게 되는 등.
그리고 이렇게 시스템이 정해놓은 기본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것 외에도 칭호를 얻는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엔딩의 분기가 나뉠 때.’
라는 칭호를 얻은 것만 보아도 그랬다.
글자가 가려져 있는 이상 아직까진 재단할 수 없었지만, 기분이 미묘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정말 무언가 분기가 나뉘고 있다면.’
내가 걷는 루트들이 차곡차곡 쌓여 엔딩이 정해지고 있다면…….
‘한미래를 구한 게 영향을 미친 건가?’
그게 아니라면 이모아의 몸으로 뒷골목에 난입한 자체가?
선 성향이 떨어지고, 그림자의 주인이란 타이틀을 얻은 것이?
뭐가 됐든 썩 좋은 타이밍에 얻은 칭호는 아니었다.
볼이 불룩 튀어나올 정도로 혀를 굴렸다.
찜찜하긴 하지만.
‘지금은 이 답 없는 문제를 붙들고 늘어질 때가 아니다.’
어떤 힌트를 얻게 되는 순간부터 고민해도 늦지 않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결국 엔딩을 만드는 건 나고, 제대로 된 해피엔딩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면.
‘할 일이 아주 많으니까.’
작은 그림자가 오후의 노란빛을 시원스레 가로질렀다.
***
【계약이 해지되었습니다.】
【의뢰가 자동 종료됩니다.】
그리고, 먼지 쌓인 창고 위로 한 줄기 빛이 비추었다.
팔이 꺾이고 다리가 돌아가 신음하는 경비병들 사이.
무심하고도 거침없이 발을 내딛던 침입자의 눈이 일순 감정을 실었다.
파도치는 동요.
검은 눈동자 위로 일렁이는…….
‘햇살.’
오후의 먼지가 눈처럼 내렸다.
그 얇디얇은 광명 앞에서, 검은 인영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위대한 적을 앞에 둔 것처럼 주춤거렸다.
얼굴을 감춘 스카프 밑으로 숨이 부풀어 올랐다.
“그럴…….”
그럴 리가.
미처 끝마치지 못한 문장은 물에 녹아내리는 휴지처럼 흩어졌다.
어둠은 여전히 자신이 쓰러트린 사람들 사이에서 우뚝 서 있었다.
돌아온 뒷골목은 여전히 비릿하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작은 몸이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헤쳤다.
무엇도 바뀌지 않은 풍경에 가슴이 내려앉다가도 웅성대며 모여 있는 검은 머리들을 보면 관자놀이까지 두근거렸다.
제대로 사고가 되질 않았다. 설명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적어도, 머릿속을 꽉 채운 생각을 멈춰줄 수 있도록.
누군가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아 돌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어떤 말도 없이 코앞에 처박힌 단말기 화면을 본 여자는 알 것 같다는 얼굴로 눈썹을 까딱거렸다.
시퍼런 핸드폰을 밀어내며 웃었다.
“P. 너도 왔구나.”
너‘도’.
이 상황을 전부 안다는 것처럼 붙이는 느긋한 수식어에 바짝 갈증이 나기 시작했다.
계약명, 스톰.
그녀는 가끔 ‘위’에서 의뢰를 받던 꾼 중 하나로, 그나마 이 골목에서 교류를 유지하고 있던 여자였다.
내 무시에도 꾸준히 인사를 걸어오던 밝은 얼굴.
어디서든 날 발견하면 먼저 달려오던…….
「“미래야!”」
그만.
그만 생각하자.
눈앞의 그녀가 자꾸만 다른 사람으로 겹쳐 보이려 들었다.
현실을 자각하듯 더 거칠게 몰아붙였다.
[계약이 해지 되다니]“그게…….”
[룩은] [죽었나? 그럼 윗놈들은]“잠깐만, 아, 아파! 이것 좀 놓고 말해라?”
무의식적으로 으스러트릴 정도의 힘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손목을 놓자 금세 붉어진 자국을 문지르던 스톰이 볼멘 목소리로 꿍얼거렸다.
“뭐가 그렇게 초조해?”
초조?
나는 지금 초조한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그것조차 알 수 없었다.
쉴 새 없이 의뢰창을 불러오려 시도하는 눈앞에 [찾을 수 없다]는 알림이 쌓여갔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기 전까지 간헐적으로 목구멍을 치는 심장 박동을 ‘초조’라고 일컫는다면 동조할 의향도 있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곧 끊어질 현처럼 서슬 퍼런 시선이 공기를 갈랐다.
꿀꺽.
감당할 수 없는 위압감 앞에서, 본능적으로 침을 한 번 삼킨 스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뒷골목은 무너졌어.”
“…….”
“그리고, 다시 조립되는 중이지.”
그녀가 내민 두 장의 종이는 모두 새카만 의뢰서였다.
그중 하나는 적혀 있어야 할 의뢰인의 서명이 지워진 채 텅 비어 있었고, 또 나머지 하나는…….
“Q.”
한 글자만이 적혀 있었다.
내 건 아니지만.
다시 의뢰서를 돌돌 말아 가지고 있던 꾼에게로 돌려준 스톰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도 이름은 들어본 적 있지? 이 사람이 새로운 ‘주인’이야.”
“…….”
“룩이 맺었던 계약들은 다 날린 것 같더라. 썩어빠진 질서를 답습하지 않겠다나, 뭐라나. 원래도 발닦개처럼 굴었던 몇 애새끼들은 벌써 Q 밑으로 들어가겠다고 아우성이지만…….”
힐긋. 눈치를 살핀 스톰이 옅게 숨을 터트렸다.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잠시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더 이상의 설명이 다 무슨 소용이냐는 것처럼 손을 내저었다.
이내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는 첫 가르침을 내게 주었듯이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웃기지.”
짓무르고 썩어빠져 곰팡이 냄새가 나는 웃음과 함께.
“허망하기도 하고. 평생을 가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놈이 뒷골목을 들쑤시고 너무 쉽게 자유를 줬잖아. 지 먹잇감 챙기느라 서로 물어뜯기 바빴던 인간들을 한곳에 모이게 했고, 그건…….”
“…….”
“이건 백 퍼센트 확신인데.”
쟤는 돌아갈 곳이 있었을 거야.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우리와는 달리.
조근거리는 목소리에 찬바람이 덧씌워졌다.
“고맙긴 한데, 좀 재수는 없지.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다 털어낸 것처럼 홀가분한 투로 스톰이 물었다.
불거진 뼈가 희게 질릴 정도로 핸드폰을 붙잡은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
각성이라는 끔찍한 힘을 얻었을 때부터.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나를 이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 단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는 지옥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풀려난 족쇄.
던져진 희망.
눈앞의 빛.
어느새 어둠보다 나는 그런 것들이 더 두려웠다.
가지지 못해 바라보던 순간보다, 가지게 되어 실망할 순간들이 무서웠다.
평생을 염원하던 그 낮에 속하지 못해…….
‘타들어 죽어갈 괴로움이.’
몸에 배긴 뒷골목의 냄새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건 어느새 내 향과 같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물었다.
[Q] [어디로 가야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지?]***
[노고산 4-97 –발신자표시제한]문자창과 파란 도로명주소를 비교하며 몇 번이나 고개를 까딱거렸다.
때가 덕지덕지 낀 낡은 3층짜리 건물.
그보다 더 낡아 보이는…….
『五行철학관』
간판.
창문마다 붙여져 있는 ‘철’, ‘학’, ‘관’ 스티커는 가뭄 난 땅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콧등을 손으로 마구 비볐다.
“이거 또…….”
사이비의 냄새가 나네.
“하여간 팔자, 운명 이런 건 다 망해야 돼.”
투덜대며 발을 옮겼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