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54
45화
똑똑.
먼저 현관문을 작게 노크했다.
포탈 용병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동의 없이 주인 있는 집에 쳐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곧 찹찹 다가오는 작은 발소리.
틈새로 밖을 내다보는 까만 눈동자가 불쑥 등장했다.
한참 밑에 있는 시선을 맞추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안녕, 꼬마야.”
끼기기긱.
그 순간 거친 마찰음을 내며 끌어당겨진 문이 곧 닫힐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면전에서 거절당한 심장이 찢기는 것 같았다.
‘최대한의 다정함을 뽑아낸 인사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누가 봐도 경계심이 그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인간 취급도 해주지 않는 태도에 내가 뭘 잘못했냐는 듯이 슬쩍 리오를 돌아보자, 그는 전전긍긍한 손짓으로 본인의 하관을 가리켰다.
턱? 턱이 뭐…….
아.
‘이 미친 비주얼.’
첫인상 완전 망했다.
정신이 팔려 변장한 걸 잠시 까먹었다.
허겁지겁 뒤돌아 수염을 떼고, 도둑 같은 비니도 벗어젖혔다.
이 와중에도 포기할 수 없는 선글라스를 추켜올리며 멋쩍게 웃자 문이 다시 살짝 열렸다.
약간의 성공.
“아줌마도 용병이에요?”
뒤이어 불신 가득한 목소리로 작게 묻기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원래 계시던 분들은 쉬시라고 잠깐 보냈어. 이름이 뭐야?”
“우리 선생님이 상대방 이름을 묻기 전에 자기 먼저 말하는 거라고 그랬어요.”
쪼그만 게 냉철하기가 송곳과 같다.
풀풀 풍기는 만만치 않음에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붙잡았다.
예의범절을 챙겨 정중히 우리를 소개했다.
“나는 이모아고, 이쪽은…….”
“윤산영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리오라고 할까, 윤산영이라고 할까. 고민하는 내 맘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그가 먼저 말했다.
둘 다 오랜만에 가면 쓴 이름을 깠지만, ‘이모아’라는 이름에도 큰 반응이 없는 아이 덕분에 내심 마음이 놓였다.
이겸이라고 했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아이는 그 인사가 마음에 들었는지 조금 더 몸으로 문을 밀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찬민이에요. 정찬민.”
내뱉는 이름을 듣자마자 휘둥그레진 눈으로 되물었다.
“네가 찬민이라고?”
“아는 아이입니까?”
“아니,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한 답변에 윤산영이 의아해했다.
어안이 벙벙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는 ‘찬민’이란 NPC는…….
‘못 해도 중학생.’
적어도 사춘기를 거치고 있는 소년이었다.
따지자면 키도 이모아와 엇비슷했고, 어딘가 음울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인물이라 그런지 나오는 스크립트 대부분은 말줄임표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미션을 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인물이라 만날 거라 예상은 했었는데. 글쎄.
‘아무리 본편이랑 이, 삼 년 정도 시간 차이가 난다고 해도.’
남의 애는 쑥쑥 큰다더니.
아무리 대조해 보아도 쉽게 매치가 되질 않았다.
똘망하고 생기 가득한 아이의 얼굴을 보니 입이 바싹 말라왔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세상의 풍파를 고스란히 맞았나 상상하면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그러나.
“잠깐 포탈에 확인할 게 있어서 들어가도 될까?”
할 일은 해야지.
아이는 우리를 제대로 포탈 관리원들로 인식했는지, 아까보다 순순히 문을 열어주었다.
이런 일이 익숙한 것처럼 ‘여기예요.’ 하며 방으로 우리를 안내해주기까지 했다.
찬민이를 따라 걷는 동안 곁눈질로 집안을 살폈다.
여타 가정집과 다를 것 없는 배경이었다.
물론 군데군데 전투의 흔적이나 부서진 부분이 남아 있긴 했지만, 여기저기 낙서 된 벽지나 밥 냄새가 느껴지는 부엌.
장난감과 인형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거실까지.
‘다르다.’
내가 알던 본래 찬민이의 집과는 딴판이었다.
말해보자면, 여기는 재앙 중에서도 –희망편- 같은 느낌이었고, 애카는 –절망편- 스러웠다.
온기 같은 건 없고, 오히려 모든 게 죽어 있다는 감각만 느껴지던 그 집.
포탈을 집 안 한가운데 박아두고 살고 있으니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싸한데.’
직감이 썩 좋지 않았다.
포탈 앞으로 다가가자, 찬민이는 우리를 감시하듯 방 바깥에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 위로 손을 올렸다.
#
【MISSION】
▷ 영원한 포탈
― 분류 : 서브
모든 문은 열리고 닫히기 마련이나, 가끔은 방법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이 미션은 성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잘못된 방법으로 포탈 해제를 시도할 시, 폭주 확률이 상승합니다.)
성공 시, 현상금 보상 획득.
실패 시, 포탈 폭주.
#
【MISSION을 수락하셨습니다.】
#
【MISSION】
▷ 주변 주민들에게 소문 묻기
― 분류 : 서브
#
#
【MISSION】
▷ 포탈 안으로 잡동사니 던져 넣기
― 분류 : 서브
#
……,
…….
수많은 연계 미션들이 발생했지만, 창을 싹 다 내리는 것으로 내 의사를 대신했다.
방법만 알고 있다면 마수의 흔적을 찾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일단 약간의 조건과 조금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찬민아, 이 포탈에서 마지막으로 언제 괴물들이 나왔었어?”
본인을 향한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랐는지,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몸을 배배 꼬았다.
문틀에 머리를 박고 팽이처럼 도는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말할까 말까, 눈치 보는 배를 장난치듯 콕콕 찌르자 한바탕 간지럼을 타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세 달?”
“세 달…….”
“아니, 아니. 네 달? 다섯 달?”
쉽게 답해주지 않은 내복 입은 등이 다른 방으로 도망쳤다.
그거면 충분했다.
꼬맹이의 거짓말이라고 해봤자 범위 내에서 떠올렸을 테니, 적어도.
‘반년 전.’
폭주 수치가 꽤 쌓여 있을 만한 시간이었다.
잘못 건드리면 진흙탕 싸움이다.
품 안에 숨겨 놓았던 나침반을 꺼내 바닥에 두고, 그 위로 켈라의 뼛가루를 조금씩 뿌렸다.
선 성향 쌓자고 온 미션에서 이런 말 하기는 뭐한데.
‘이거 다 블랙마켓에서 샀다.’
신성함이 땅 밑으로 떨어진 건 떨어진 거고.
아직 뒷골목의 왕이라는 명성을 쥐고 있으니, 사재기는 할 수 있을 때 듬뿍 해놔야 했다.
‘물건 좀 산다고 성향이 변동되는 것도 아니고.’
음음, 그럼. 이건 합리적인 선택이다.
“어떻게 하시려구요?”
함께 옆에 쭈그려 앉은 리오가 물어왔다.
이번엔 뼛가루로 범벅이 된 나침반 유리 위로 만개화의 뿌리를 섞어 넣었다.
무심하게 말했다.
“포탈 안에 한 번 들어갔다 나와야겠어요.”
리오는 놀란 눈으로 시꺼먼 허공을 한 번, 나를 한 번 돌아보았다.
“안에요? 그렇지만 다시 나올 때는 출구가…….”
“통로가 계속 열린 상태기도 하고, 나침반이 있어서 괜찮아요. 같은 마수 종을 인식시켜야 되는데, 그렇다고 폭주를 일으킬 순 없는 노릇이니까.”
도망간 마수를 쫓기 위해선 똑같은 유전 형질이 필요했다.
이 아이템 조합법과 작동 방법이 꽤 복잡할 뿐이지, 신호를 잡기만 하면 주거지 한복판을 배회하고 있을 열쇠석 마수를 잡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물론, 당연히 다른 정석 루트도 존재했다.
‘원래는 뺑이치다가 포탈 폭주도 한 번 터트리고. 집 안 몇 개 박살 내다가…… 찬민이 녀석이 알려주는 위치로 가서 마수 써는 게 끝이었는데.’
다른 방법을 익히고 있었던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리오에게 이어 설명했다.
“바깥을 돌아다니는 데 잡히지 않았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분명 이 근방 산이라든가 인간들 눈에 안 띌 공간에 숨어 있을 건데, 보이면 그냥 바로 죽여…….”
쿠당탕탕, 와그락.
순간, 등 뒤에서 뭔가 쏟아진 것처럼 큰 소리가 났다.
휙 고개를 돌리자 어딘가 불안한 얼굴로 우뚝 서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친 게 첫 번째.
그다음에는 바닥에 엎어진 레고 박스를 발견한 게 두 번째였다.
흩뿌려진 블록들은 지뢰밭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찬민아, 왜…….”
묻기도 전에 아이는 다시 후다닥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발로 대충 레고들을 치우며 고개를 내밀었더니 와당탕, 쿵쿵!
뭘 하는지 계속해서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리오와 어리둥절한 눈을 마주쳤다.
심심하기라도 한 건가?
“제가 가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리오가 블록들을 치우고 나가기도 전에, 카장창.
이번에는 변신 로봇이나 인형이 내던져졌다.
툭, 툭. 몸을 맞고 떨어지는 장난감을 주워들며 한 발자국 다가갈 때마다 날아드는 잡동사니가 늘어났다.
마치.
‘우리가 다가오는 걸 막기라도 하는 것처럼.’
왜?
아까까지만 해도 얌전히 포탈로 데려다준 건 본인이었다.
찬민이는 요 몇 년간 익숙해졌는지, 포탈을 지키는 용병들에게 경계심은 있을 지라도 거부감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오지마! 저리 가아!”
필사적이었다.
미묘한 직감이 스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뭔가 있구나, 얘한테.’
애카의 찬민이처럼 이 아이에게도 뭔가 비밀이 있는 게 분명했다.
다만 사춘기 소년은 아무리 캐물어도 말할 것과 말하지 않을 것을 가릴 줄 알게 된 것뿐이고…….
‘이 애는 어려서 숨기는 게 서툴 뿐인 거지.’
결국 둘은 같은 정찬민이었다.
물건 벼락을 맞아내는 리오를 방으로 다시 들어오게 했다.
비명은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집 안을 돌아다니는 작은 발걸음은 분주했다.
“여기 있어요.”
작게 속삭이고는 [콩짚 날개]를 장착했다.
부유 효과 덕분에 소리 하나 내지 않고 펼쳐진 레고 밭을 넘어간 뒤, 냉장고 벽 쪽에 숨어 아이가 하는 행동을 염탐했다.
“가만히 있어.”
찬민이가 허공에 조근거렸다.
작은 이불이 펼쳐진 안방에서 찬민이는 자꾸만 옷장을 열었다, 닫았다.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아이는 계속해서 뭔가를 조심스럽게 들춰보고 있었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불쑥 고개를 밀어 넣었다.
“찬민아, 뭐 찾아?”
히끅! 깜짝 놀란 아이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입가에 가루가 잔뜩 묻어 있는데 과자를 먹지 않았다고 우기는 아이처럼 눈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도망갈 곳을 찾아 휙휙 돌아가는 고개.
뒷걸음질 치던 아이의 발이 장롱 위로 닿은 순간.
쿵!
농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찬민이는 황급히 뒤돌아 장롱 위를 팔 벌려 끌어안았다.
그건 내 입장에선 자수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한 번쯤 의심해 보았어야 했다.
‘어떻게 정찬민이 마수의 위치를 알고 있었는지.’
포기하듯 말해주면서도, 왜 내내 플레이어를 뺑이 치게 만들었는지.
아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롱 문짝은 곧 터질 화산처럼 들썩거렸다.
그리고.
삐이이익!
높은 고주파 소리와 함께 튀어나온 솜뭉치가 찬민이의 몸 위를 덮쳐 넘어뜨렸다.
순간 지팡이를 쥐고 마수를 조준했으나.
“하지 마요!”
날카로운 비명이 방 안에 울렸다.
마수를 끌어안고 상체를 웅크리는 아이의 등.
그 위로 간절하게 파묻는 작은 머리통.
천천히 팔을 떨궜다.
A급 마수, 퓨나.
동그란 몸체에 달린 날개 같은 귀가 찬민이에게 매달려 펄럭거렸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