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59
50화
입가를 틀어막은 손 틈새로 뜨겁고 비린 액체가 툭, 툭 덩어리져 떨어졌다.
“채……!”
나를 다급히 부르려는 리오의 목소리를 검지 하나로 멈추게 만들었다.
파스스슷.
거대한 밤송이처럼 털을 곤두세운 퓨나들의 몸집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스으, 스으…… 낮게 깔리는 마수들의 숨소리가 시한폭탄 타이머 소리처럼 느껴졌다.
마수들이 먼저 움직이지 않는 것은, 분명 본인들의 유리함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아주 조심히 손을 털어냈다.
‘더럽게 아프네.’
아직도 역류할 게 남은 목구멍이 꿀렁거렸다.
몸속에 돋친 자잘한 가시가 혈관 내벽들을 죽죽 긁고 지나가는 기분.
투명한 물에 떨어진 검은 물감 한 방울처럼, 귀 끝부터 흑옥의 기운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할퀴어지는 내부가 엉망이었다.
이모아의 성질을 이루고 있는 신성력은 어둠의 침입에 자연스럽게 방어 기제를 내세웠다.
갉아 먹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상충하는 두 기운이 부딪쳐 죽어나는 건 몸뚱이의 현 주인인 나였다.
누군가 1초에 5번씩 급소만을 피해 두드려 패는 것 같은 둔통을 느끼며 등줄기를 꼿꼿이 세웠다.
그래도.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다.’
고통에 반사적으로 떨리는 입술을 감춰 물며 주먹을 그러쥐었다.
참을 만했다.
아니, 참아내야만 했다.
아릿함을 한 꺼풀 걷어내고, 그 속을 예민하게 파고들면 느껴지는 또 다른 감각이 있었다.
톡톡 쏘는 탄산처럼 청량하게 회오리치는 마나 줄기.
역동하는 회로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구석도 놓치지 않고 온몸을 순회했다.
넓어지는 그릇을 호흡으로도 따라잡지 못해 뱃속은 텅 빈 듯 허기짐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나만 정신줄 붙잡으면 돼.’
희석된 흑옥의 기운정도는 악으로, 깡으로 충분히 억누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망할 귀걸이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지만 않는다면 수적으로 100% 불리한 이 전투에도 승산은 있었다.
약한 모습은 보일 수 없다.
지배할 것이다.
군림할 것이다.
끈적한 턱을 손등으로 대충 닦아내며 결의했다.
얼어 버린 조각상처럼 멈춰있는 리오에게 눈짓했다.
“이겨내 보자고. 이번에도.”
어차피 이런 성장통은 아주 찰나.
나중에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금세 지나가 버리기 마련이다.
펜타곤 지팡이를 곧게 뻗었다.
후두둑. 갑작스레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공격할 기세를 느낀 퓨나들이 일제히 뛰어올랐다.
네 주제를 알라는 듯 머리를 짓눌러오는 그림자가 점점 거대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항했다.
무수한 알림창이 눈앞을 가렸다.
【현재 장비에 맞지 않는 스킬 ‘빛무리’의 발동이 취소됩니다.】
【현재 장비에 맞지 않는 스킬 ‘빛무리’의 발동이 취소됩니다.】
…….
…….
그나마 남아 있는 신성 스킬, [빛무리]를 사용하려고 할 때마다 손끝이 새까맣게 물들어갔다.
기이하게 돋아난 혈관 아래로 뭉친 검은 피가 불룩 통과하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이정도면 포기하라는 듯이 흉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손목을 붙잡았다.
검붉은 빛깔은 썩어가는 시체의 것을 닮아 있었다.
내 의지가 아닌 채로 기괴하게 꺾이는 손가락.
리오의 방패가 내 앞을 막아서듯 허공으로 펼쳐지고, 퓨나가 아가리를 벌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설 수 없었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제대로 알려주어야 했다.
“너를 다루는 건 나야.”
절대 시답잖은 악에는 물들지 않을 거라고.
내가 죽지 않는 한 네가 활개 칠 수 있는 건 내 통제 아래에서 일 뿐이라고.
나는 절대.
‘지지 않는다고.’
그 순간. 요동치던 흑옥의 기운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엿가락처럼 늘어진 손가락도, 썩은 것처럼 검게 물들었던 손톱도 원래의 상태대로 돌아왔다.
한순간에 싹 물러간 적의 동태에 몸부림치던 당사자도 당황할 무렵.
오망성의 지팡이 끄트머리가 거세게 진동했다.
한 치의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빛이 고였다.
파아아앙―!!
하늘에 그어지는 유성의 흔적처럼,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
“……피피야.”
“피이!”
조그만 머리통이 새하얀 솜뭉치 위로 코를 박았다.
그 포근한 털 위로 마구 뺨을 부비고, 힘껏 숨을 들이쉬었다.
피피에게서는 잘 말린 햇볕의 냄새가 났다.
이 향기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찬민은 확신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알려고 하지도 않는지.’
왜 무조건 피피를 나쁜 마수 취급하며 없애려고만 하는지, 그게 너무 미웠다.
우우우웅.
바람이 삼켜 들어가는 소리.
아이의 시선이 365일 시퍼런 기운을 내뿜고 있는 포탈 쪽으로 향했다.
용병이라는 그 아줌마, 아저씨가 저 안에 들어간 지도 일곱 시간 째.
밝았던 하늘은 어느덧 깜깜해졌고, 바깥으로 보이는 창문들은 돌아온 사람들로 인해 하나둘씩 불이 켜졌지만, 찬민이의 집 안만은 여전히 휑했다.
원래도 부모님이 집에 왔다는 흔적은 아침에 차려진 작은 밥상으로만 확인하곤 했었으나, 포탈이 생긴 후로 그 빈도가 잦아진 건 분명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는 건 찬민이가 더 이상 학원을 다니지 않아서 일지도 몰랐다.
포탈집 애.
거지 괴물.
마수 새끼.
소문이 난 뒤로 아이를 부르는 호칭은 가지각색이었다.
헌터 놀이를 하겠다며 낄낄대는 아이들에게 붙잡혀 놀이터 중앙에 꿇어앉고, 무차별적으로 얻어맞던 일을 엄마 아빠가 알게 된 뒤로 찬민이는 완벽히 혼자가 되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곁에 있어 주는 온기.
부르면 대답해주는 목소리가 딱 하나 남아 있었으니까.
아무도 없는 텅 빈 집.
모든 방 안의 불을 켜놓아도 쉬이 잠들 수 없었던 두려움에서 꺼내준 건 피피였다.
찬민이는 피피가 나타난 뒤로 더는 벽장 귀신이 무섭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로, 만약.
“너는 돌아가고 싶어?”
피피가 그걸 바라고 있다면.
삐이. 피피가 울었다.
콩알 같은 눈을 깜빡이며 피이, 피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계속 들려주었다.
아이는 문득 그 사실이 너무 슬펐다.
무릎을 세워 끌어안고, 그 사이로 머리를 파묻었다.
“너도 가버리면 나는 어떡해.”
“피이이.”
“그 아줌마 말이 진짜야? 너도 조금 더 크면…… 무섭게 변해서 사람들 막 잡아먹을 거야?”
“삐! 피잇.”
“피피 거리지만 말고 말 좀 해봐, 바보야…….”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간절했다.
찬민은 피피의 모든 게 알고 싶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마수라면서, 왜 내 책상 밑에 숨어 있었는지.
나를 마주치고도 왜 눈만 깜빡거렸는지.
왜 던져주는 사과를 같이 나눠 먹었고, 왜.
“피피야…….”
자꾸만 친구가 되어주는지.
무릎 사이를 낑낑대며 파고들던 피피가 아이의 품에 안겨들었다.
그 보드라운 솜뭉치를 꽈악 끌어안은 찬민이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는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구구구궁. 구우웅.
육중한 포탈이 잔파동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번뜩 고개를 쳐들고 시계를 확인했다.
큰 바늘은 어느새 8자를 넘어 9에 가까운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용병들일까? 아니면.
사고 회로가 멈춘 아이는 고작 그 자리에 멈춰 포탈을 쳐다보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긴장감에 굳은 몸이 품 안의 마수를 조금 더 끌어당겼다.
삐이.
둥, 둥, 둥. 빨라지는 공기의 진동.
찬민은 이 공포감을 알고 있었다.
‘뭔가 나온다.’
숨어 버리듯 질끈 감은 두 눈앞은 깜깜했다.
피피가 품속에서 바둥거렸다.
그리고.
후욱.
머리칼을 날리는 바람이 불었다.
“잘 있었어?”
머리 위를 감싼 미지근한 손이 뒤통수를 쓱쓱 쓰다듬었다.
***
‘죽는 줄 알았네.’
현실로 넘어왔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마음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었다.
일말의 뻥도 섞을 필요 없이 죽을 뻔했다.
뭐가 제일 열 받는 지점이었냐면, 그러니까.
‘딱 한 마리 남긴 퓨나를 얌전히 포탈 입구까지 모셔와야 하는 게.’
흑옥이 안정화 된 후의 전투는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칼날처럼 흩날리는 빛의 궤적 한 번에도 퓨나들은 먼지가 되어 부스러졌다.
불꽃이 바다처럼 일렁이고, 마수들의 둥지는 처참히 무너졌다.
그러나, 딱 하나.
「“그륵. 그르르르…….”」
선택받은 최후의 마수가 맹렬하게 입질했다.
피피를 죽이지 않고 돌려보내기 위해서라면 포탈은 연결되어 있는 상태여야 했다.
찬민이의 의사를 다시 한번 물어보기로 한 건 약속이었으니, 그 어수선한 전투 속에서도 내내 그 사실을 신경 쓰느라 멈칫거렸다.
게다가.
답을 듣자마자 포탈을 처리하려면 편한 위치에 묶어두어야 했는데, 발광하는 퓨나를 얌전히 데려오기가 쉽지 않았다.
무슨 생난리를 쳤는지.
「“……혹시 비치발리볼이라고 알아요?”」
「“아니요, 처음 들어봅니다.”」
「“자, 그럼 설명해 줄 테니까 들어봐요. 이 퓨나를 이렇게 들어서, 피부가 까지기 전에 냅다 통, 통 주고받는 거지. 그러면서 입구까지.”」
「“…….”」
「“미안요.”」
평범한 밧줄로 묶어도 녹아버리고.
그렇다고 손 가죽이 벗겨지는걸 감안하면서 안아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우리가 채택한 방법은 무식하게 한 사람이 미끼가 되는 것뿐이었다.
이러면 좀 더 표적이 되지 않겠냐며 웜의 사체를 머리 위로 짊어진 리오를 봤을 때에는 조금 눈물이 고일 뻔했다.
어찌 됐든.
‘개고생은 끝났다.’
60년처럼 느껴지던 반나절이 지나고, 모든 절망을 끝낼 준비는 완료되었다.
남은 건 한 사람의 선택뿐이었다.
그 많은 것들이 변했는데, 피피를 끌어안은 찬민이의 팔만큼은 아침과 같아서.
나는 어쩌면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 같은 착각마저 느낄 정도였다.
울상을 짓고 있는 아이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귀에 달린 태환이식이 절그럭거렸다.
“고민해 봤어?”
묻자, 아이는 여전히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래. 알았어.”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담백하게 일어섰다.
어물쩡거리며 피피를 등 뒤로 숨기려고 하는 태도가 답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떤 설득도 없이 일어나는 내 몸을 아이의 시선이 쭈욱 따라 올라왔다.
얼굴에는 정말이냐고 묻는 듯한 물음표가 한가득 떠 있었다.
나는 작게 웃으며 다시 포탈 안으로 진입할 준비를 했다.
어차피, 더 이상 열쇠석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었다.
포탈 안의 마지막 마수를 처리하고, 리오를 꺼내 탈출하기만 하면 미션은 완성이었다.
문제는…….
‘이 아이의 미래.’
결국 또 혼자 남겨질.
캄캄한 방 안에서 고요히 침잠해가던, 내가 아는 찬민이의 연쇄.
그 굴레를 끊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찾아내기로 했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결말을 위해.
【MISSION 내용에 변동이 있습니다.】
【상세 정보는 ‘정보’ 창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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