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83
73화
“상봉 3팀, 진입 완료했습니다. 인질은 약 스무 명, 포탈도 존재합니다.”
―「확인. 추가 지원이 필요합니까.」
“아…….”
귀에 꽂은 마력 통신기에 손을 댄 채 잠시 주위를 둘러본 남자가 눈망울을 순하게 껌뻑였다.
눈앞에 뜬 미션창을 천천히 읽어 내렸다.
#
【MISSION】
▷ 포탈 조사 및 돌파
― 분류 : 포탈 / B
성공 시, 80,000 원 지급.
실패 시, 사망.
#
“아니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천벌 받을 놈!”
바닥을 나뒹굴던 사제 하나가 우레 같은 목소리로 일갈했다.
벌떡 일어나 돌진하는 몸과 함께, 끝이 뾰족한 창이 상대를 노리고 내질러오기 시작했다.
까자장! 잘 벼려진 금속과 날이 부딪히는 소리.
목표를 꿰뚫는 데 실패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창살의 궤적이 계속해서 방패를 따라붙는다.
―「인질 확보 후 조심히 복귀 바랍니다.」
노이즈 낀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끊긴 통신을 뒤로하고 산영은 방패를 단단히 고쳐 쥐었다.
“뒤로 물러나 계세요!”
당부하듯 소리치는 목소리에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세워져 있던 일렬의 줄이 조금 흐트러졌다.
상황 파악이 되질 않아 눈만 굴리던 사람들도, 무기력에 복종하듯 감정 없는 얼굴로 서 있던 사람들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구원자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랜 기대와 반복된 실망으로 굳은 발들은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서요!”
산영이 재차 ‘도망쳐도 된다’ 일러주기 전까지는.
으, 으아아! 겁 많은 누군가가 신음하며 가장 먼저 등을 돌렸다.
그 뒤를 따라 다른 발걸음.
또 다른 발걸음이 삐져나간 싸인펜 선처럼 줄을 이탈하고, 악을 지르는 사제의 소리가 왱왱 지하실을 울렸다.
“이 새끼들 가만히 안 있어?”
그러나 이미 포탈과 가장 먼 곳에 숨어든 인적들은 제 발로 감옥 속에 돌아가지 않았다.
덜덜 떠는 숨들이 마침내 말소되었다고 여겼던 욕망을 조심스레 입에 담았다.
“살아서…….”
살아서 나갈 수 있는가.
독백 같은 질문은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열음에 묻혀들었다.
정조준한 창날에 방패 중앙이 움푹 패여 들어가고, 까앙! 힘 겨루듯 맞붙은 두 무기 사이에서 노여운 시선이 오갔다.
“당신이 지금 방해하고 있는 게 뭔지 알고 있나?”
“알고 싶지도, 묻고 싶지도 않습니다.”
펌프질처럼 밀쳐낸 방패의 힘에 사제의 뒤축에서 작은 먼지가 일었다.
잠시 거리가 벌어진 틈을 타 산영의 시선이 뒤쪽을 훑었다.
‘포탈.’
역시 이곳에도 상부에 보고되지 않은 불법 포탈이 점거하고 있었다.
바닥에 끌린 처절한 발자국을 보아 벌써 몇 명은 산채로 저 안에 집어넣어 졌을 것이다.
다른 현장에서 그러했듯이, 포탈 안에는 아직 살아 있는 사람도.
혹은 막 죽음에 쫓기기 시작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빨리 진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시급한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였다.
한쪽 구석에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뭉쳐 있는 민간인들.
반대편에는 돌덩이에 깔려 신음하며 쓰러져 있는 몇 명의 적들.
비상 경고등이 시끄럽게 머릿속을 울리고, 바깥에선 종종 머리를 뒤흔드는 폭발음이 터졌다.
함께 진입한 동료들 역시 제 몫을 다하기 위해 싸우고 있을 테니 민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결연한 얼굴로 입술을 사리물자, 그 눈길과 초조함을 눈치챈 사제가 명백한 조소의 의미를 띄며 웃었다.
“원하는 대로 순순히 놔두진 않지.”
하압! 기합 소리와 함께 다시 달려드는 일격의 창살.
직선으로 곧게 뻗어오는 공격을 몇 합이나 막아낸 뒤, 산영은 징징 울려오는 손목을 움켜쥐었다.
‘강하다.’
기세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지만, 백골에게 도움을 받기 시작하고 세상 물정에도 조금씩 눈을 키워나간 산영에게 새로이 보이는 정보들이 있었다.
전체적인 장비의 수준은 못 해도 B등급 이상.
피부도 경험한 스킬 운용 방식이나, 즉사할 수 있는 약점만 노려 꽂혀오는 공격의 궤를 보면, 마수가 아니라 인간을 도륙하기 위해 힘을 사용했던 티가 났다.
한마디로 이 사람은.
‘숙련된 살인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죄악.
그 때.
“놔요! 우리 할아버지 찾으러 가야 한다구요! 할아버지! 할아버지이!”
뒤쪽에서 목 놓아 우는 어린 아이의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시선이 끌리는 걸 두려워하는 것처럼 아이를 붙잡아 달래고, 힐끔힐끔 산영의 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산영은 그 불안한 눈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어냈다.
이미 죽었거나, 어디론가 끌려갔거나, 혹은.
‘저 안에.’
“상봉 3팀. 죄송합니다, 지원이 한 명 필요할 것 같습니다.”
통신기에 조용히 속삭인 산영이 사제와 대치하듯 마주 선 채로 옆구리를 더듬었다.
스르릉.
검초에서 뽑아 든 날붙이가 청명한 소리를 내며 잘게 진동했다.
화려한 방패에 비해 남루해 보이는 검을 바라보며 사제는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산영의 굳은 얼굴은 무언가를 결심하듯 사뭇 비장했다.
‘장검이긴 해도 창에 비해 사거리가 짧아 근접전에는 불리하다. 평소처럼 막아가며 싸운다면 분명 안전하겠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거야.’
그러므로 그는 목표를 조금 수정하기로 했다.
상대를 베는 수단 외에도, 산영이 사용하는 대전 방식은 몇 가지가 더 있었다.
예를 들어.
“크윽!”
이렇게.
옆구리를 찔러오는 창대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붙잡자 놀란 사제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무식한 방법을 쓸 줄 몰랐다는 듯 당황한 손길이 어떻게든 무기를 빼내기 위해 자루를 당길 때마다, 울컥,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쏟아졌다.
그러나 산영은 도망치지 않았다.
작열하는 통증 사이에서도 방패로 사제의 시야를 가린 뒤, 몸을 돌려 움직임을 봉쇄하고 머리 위로 드높게 검을 쳐들었다.
그대로 내리쳤다.
서걱.
말끔히 잘려나간 창대 단면을 보며 그가 말했다.
“여분의 장비가 있으셔야 할 텐데요.”
하나를 내주고, 더 큰 하나를 빼앗아오는 방법.
산영에게 가르침을 주던 백골의 사수들이 본다면 뒤로 넘어갈 일이지만, 지금 그에게는 이보다 더 효율적인 수단을 떠올릴 수 없었다.
손아귀에서 동강 난 창대를 벙긋거리는 입으로 내려다보던 사제는 이윽고 잘린 창대를 내팽개쳤다.
산영 역시 옆구리에 꽂힌 창살을 힘을 줘 뽑아냈다.
아찔한 고통이 등골을 타고 올랐지만 망설일 틈은 없었다.
품에 숨겨 놓았던 단도를 꺼낸 사제가 날을 치켜든 채 발광하듯 구석으로 달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깡, 깡, 까앙!
내리치는 검기를 서둘러 막아낸 산영은 살기 어린 눈을 마주쳤다.
생득적인 두려움에 부들부들 떠는 사람들을 등으로 감싸 안은 채, 분노에 딱딱하게 굳은 혀로 대답했다.
“이곳이 지옥과 무엇이 다릅니까.”
비단 이 지하실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파악!
산영이 사제를 밀쳐낸 순간, 닫혀 있던 지하실의 문이 폭발하듯 나가떨어졌다.
백골의 판금 갑옷이 붉은 조명에도 우아한 빛을 발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짧은 인사를 마친 산영은, 그대로 사제를 끌어안곤 함께 포탈 속으로 떨어졌다.
***
“수고했어요.”
“아, 수고하셨습니다.”
피와 땀에 절어 가닥가닥 달라붙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내는 산영에게 누군가 인사를 건넸다.
얼굴은 알지 못해도, 팔뚝 위에 붙인 노란 다이아몬드 문장을 보아 구조 팀에 속한 각성자임이 분명했다.
산영은 잠시 숨을 돌리며 웅성거리는 강당 안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종로구의 한 학교 안.
길드들이 합심해 만들었던 민간 구출 팀을 임시 구호 본부의 주축으로 설정한 뒤, 각 마스터들은 관할 구 가까운 곳에 대피소를 세우고 사람들을 구출해내기 위해 용을 쓰고 있었다.
총 관리자를 잃고 기능을 상실한 채본 대신, 헌터들이 알아서 피난처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봤자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시켜주는 것이 전부지만.’
딱딱한 바닥 위.
얇은 담요만을 깔고 누워 신음하는 부상자들을 보며 산영은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포탈들은 쏟아졌고, 그 모든 것들을 막아낼 각성자들의 숫자는 부족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생과 사를 달리하고 있을 것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살려 달라, 도와 달라 허공에 빌어대고 있을 것이다.
산영은 진입했던 포탈 속에서 수도 없이 마주쳤던 얼굴들을 떠올렸다.
박제된 표본처럼 고통스러운 표정 그대로, 눈도 감지 못하고 굳어 쓰러진 사람들.
텅 빈 눈동자가 본인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면 그는 가만히 엉덩이를 붙여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베인 상처가 벌어지고 곪아 진물이 흘러도 움직여야만 했다.
그리고 곧 덜걱이는 다리에 힘을 줬을 때, 산영은 무언가를 찾는 사람처럼 한참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원하는 것은 발견하지 못하고, 대신 눈에 띄는 익숙한 갑옷 차림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저, 혹시…….”
“찾았어. 저기.”
미처 질문을 끝마치기도 전, 알고 있다는 얼굴로 웃는 백골 길드원이 손으로 강당 한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잠이 든 건지 축 처진 아이를 안고 토닥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그림자를 발견한 시선이 서서히 위를 향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산영이 죄책감을 느끼며 허리를 굽히자, 쪼글한 손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허공을 휘휘 내저었다.
“내가 고맙지. 덕분에 또 목숨을 부지하게 됐구먼.”
“아닙니다. 사제들에게 둘러싸인 상태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셨다고 이야기 들었는데요.”
말 그대로였다.
산영의 통신을 받고 지원군이 도착했을 때, 아이의 울부짖음을 따라 샅샅이 뒤진 곳에는 혼자 쏟아지는 공격을 피해 구르고, 공중을 걷어차는 할아버지가 있었다고 전해 받았다.
가만히 있었다면 그대로 당했을 게 뻔한 상황이었다고 덧붙이는 목소리에는 미약한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산영의 말에 아이의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칼을 다정히 쓸던 손이 잠시 멈칫거렸다.
곧 회상하듯 아득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누가 아이한테 알려줘서 말이야. 그 작은 희망이라도 지켜주려면 할애비로서 본보기를 보여야지.”
또 이 작은 애를 두고 나 혼자 어떻게 가겠나.
소곤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희망.’
그 단어에, 산영은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채희 씨.’
온이헌이 나타난 후부터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은 지 오래였다.
이겸이 머물고 있는 아파트의 보호막이 열렸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채희 씨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괜찮은 건지. 어디 계신 건지.
‘그녀로부터 시작된 이 작은 팀이, 계속해서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는 걸 알면 자랑스러워할는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산영은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했다.
아이의 자그마한 머리통을 한 번 눈에 담은 그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곤 물러났다.
스스로의 희망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더러워진 방패를 다시 쥐어야만 했다.
***
그리고 무너진 돌 아래에서 나긋한 목소리가 울렸다.
깔린 팔이 살아난 시체처럼 기괴하게 비틀어지고, 이내 재생되듯 따각따각 관절을 맞추기 시작했다.
“선택과 집중.”
반쯤 근육이 드러난 얼굴로 그가 웃고 있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