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97
87화
꿈을 꿨다.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 여유롭게 몸을 뒤척이고 있었고, 발치에 놓인 커튼 사이로 하얀 햇살이 쏟아졌다.
거실에서는 김치찌개 냄새가 솔솔 퍼졌다.
완벽하게 평화롭고 일상적인 주말 아침.
그 안온함을 깨운 것은 단 하나의 숨소리였다.
헥헥! 헥헥헥!
“……코코야. 너 언제 이렇게 커졌어?”
베개맡에 뚝뚝 침을 흘리는 녀석 덕분에 차가워 눈을 떴다.
턱을 몇 번 긁어주며 웅얼거렸다.
다 커봤자 내 팔뚝만 했던 코코가 천장에 닿을 듯이 자란 채 촉촉한 깜장코를 움칫거렸다.
부드러운 털을 결대로 쓰다듬으며 졸린 기를 떨치지 못한 고개를 흔들거렸다.
언니 좀만 더 자자아.
늘어지는 목소리로 부탁해도 코코는 머리를 들이밀며 부빗거렸다.
비키라고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보아도 고집을 부리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짜 조금만 더 잘게…… 한 10분만. 응?”
“컹! 컹컹!”
“착하지, 우리 코코.”
“컹컹컹!”
쉬이이이.
입으로 소리를 내자 그제야 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원래 이렇게 안 짖는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래.
편안한 자세를 찾아 뒤척이며 다시 아득히 잠에 빠지려던 순간.
끼잉! 끼이잉!
누군가 또 울어댔다.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가 이번에는 확실히 코코의 것은 아니었다.
바깥에서 짖는 건가…… 무시하고 두 눈을 꾸욱 감았을 때, 우짖는 소리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 님!…… 니임!
덩달아 죽어도 나를 깨우려는 듯 거칠게 흔드는 손길.
인상을 팍 찌푸린 채 날파리를 내쫓듯이 손을 휘저어댔다.
그 몸놀림에 무식하게 등을 앞뒤로 움직여대던 손이 잠시 멈추는 듯하더니…….
흔들흔들. 흔들흔들.
눈과 귀를 틀어막았다.
나는 잘 수 있다. 졸리다, 낑낑, 컹컹컹! 이 편안함에서 깨고 싶지 않다, 여기는 침대다, ……희 님! ……씨! 내 방 안의 침대…….
“채희 씨!”
“아이씨, 시끄럽다고!!”
두 귀로 명확하게 꽂힌 외침에 눈을 번쩍 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새하얀 햇살이 아닌 곧 동이 터오를 것처럼 시푸른 하늘.
깜빡거리는 놀이공원의 낡은 조명.
그리고,
울 것 같은 얼굴의 리오.
나를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윤채희라 불러주는 그가 내 눈앞에 있었다.
나는 또다시 리오가 먼지처럼 날아가 버릴까봐 본능적으로 팔목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았다.
이모아가 아닌 윤채희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손에 잡히는 곳에 윤산영이 있었다.
리오 역시 내 손등을 움켜쥐었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나 못지않게 너덜거리는 모습으로 웅얼거렸다.
“죽는 줄 알았어요…….”
채희 님이 그대로 죽어 버리는 줄 알았어요.
손바닥에 파묻는 얼굴을 보자 그제야 정신이 좀 든다.
동시에 꿈에 마취처럼 취해 잊고 있던 고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작열감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날 선 칼로 베인 것처럼 차갑게. 속이 쇠로 꽉 찬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둔탁한 아픔이 번갈아 몸을 내리쳤다.
으으으윽.
가장 극심하게 아려오는 심장 부근을 붙잡고 앓는 소리를 내자, 화들짝 놀란 리오가 황급히 체력 물약을 쏟아부었다.
이미 몇 병이나 사용했는지 바닥에는 굴러다니는 빈 유리병들로 흥건했다.
입으로, 몸에 뚫린 구멍으로 새어드는 기운을 느끼며 작은 숨을 토해냈다.
“대체 뭘 하신 거예요?”
그가 척척하게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슬쩍 바라보자 리오는 왕창 말라 붙어 있는 피딱지나 생채기들을 바라보며 자기가 더 아픈 표정을 지었다.
미묘한 원망이 섞인 목소리에는 딱히 변명거리를 찾지 못하고 답을 회피했다.
그도 그럴게, 리오의 연락을 죄다 씹고 돌아다닌 건 나였다.
어디서 뭘 하고 계시는 거냐. 계획이 있다면 귀띔이라도 해주시면 안 되냐.
구구절절한 문자에도 답하지 않고, 수없이 남겨진 부재중 전화를 보면서도 모르는 체 했다.
리오에게 말하면 이렇게 찾아올 게 뻔한 일이라 일부러 좀 피했던 건 사실이었다.
‘안 그래도 신경 쓸 게 너무 많았으니까.’
이제 혼자서도 잘 크고 있는 중인 리오를 괜히 방해할 생각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고.
그러니까.
“어떻게 찾았어요?”
곤란한 질문에는 질문으로 회피하기.
말을 돌린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도 별로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는지, 리오는 곧장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말했다.
“핸드폰이요.”
그의 손에 들려나온 건 다 박살난 단말기였다.
익숙한 모양의 기계를 건네받으며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그 때는 가짜고, 지금은 진짜인 장면.
그런데 리오는 내가 화가 났다고 생각한 건지 눈썹을 팔자로 추욱 늘어트리며 변명을 덧붙였다.
“채희 님을 찾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서 오 사장님한테 갔었어요. 마지막 신호가 울린 장소 정도라면 가능할 것 같다고 하셔서…….”
그 목소리에 골이 띵하게 울렸다.
마수들이랑 싸울 때보다 쓰러질 것 같은 어지러움은 처음이다.
곧 죽을 듯이 희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사람이 얼만데 니가 그걸 써…….”
윤산영 다 컸나 싶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잠깐 방심한 사이 사채보다 더한 오 사장 일수를 타오다니.
내 말 뜻을 아는 건지 어쩐 건지, 눈치를 보는 리오의 눈이 아까보다 조금 더 흔들렸다.
그게, 실은.
“아직 채희 님한테 받아야 될 게 있어서 그 쪽에 달아두겠다고…….”
“뭐?”
놀라 벌떡 일으킨 몸이 뼈마디마다 으스러질 것처럼 아팠다.
으으윽. 다시 비명을 지르며 눕자 리오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저, 제가 어떻게든 비용을 충당해 볼 테니까 채희 님은 너무 걱정 마세요. 저번에도 저 그냥 도와주셨고, 인정이 없으신 분 같진 않으니까 사정을 말씀 드리면…….”
인정? 사정?
오 사장이?
“니가 하긴 뭘 해…….”
그녀가 내 이름을 꺼낸 순간부터 이 거래는 이미 내게 전달된 것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결과론적으로 따지자면 힘을 합세해 나를 살려준 건 고맙긴 한데.
그런데.
‘오 사장. 이 장사 수완 좋은 여자 같으니.’
목숨값이라 치고 내야지, 뭐.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돈이라면 이제 부르는 대로 지불할 수 있었다.
‘그걸 아주 잘 알고서 리오를 보낸 거겠지만.’
그리고 그 뒤는 뻔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나를 뒤쫓아 온 리오가 놀이공원 내부를 뒤지다 누가 봐도 산산조각 난 마수의 시체를 발견했고, 그 주변의 흔적을 찾다 차원 안에 진입(여기에도 긴 사건이 있었다고 그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자신이 들어갔을 때에는 물에 녹은 잉크처럼 차원이 흐려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투명해진 마수는 물리적인 공격이 하나도 통하지 않아 애 먹었다.
입구도 물에 잠겨 있어 겨우겨우 잠수해 진입했다 주절주절 쏟아내는 회상에 고개를 주억거려주며 심장 위로 손을 올렸다.
거울조각이 박혔던 그대로 우툴두툴하게 채워진 살점을 매만졌다.
‘다행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예상대로 차원이 클리어 되어서 다행이라는 건지, 내 방법이 먹혀서 다행이라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나를 찔러 죽인 게 다행이라는 건지.’
그래도 리오가 쩔쩔매며 치료해 준 덕분에 이제 삐그덕대며 움직일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외상은 거의 아물었지만 부러진 뼈는 어쩔 수 없어 좀비처럼 흐물텅대는 모습이긴 했다.
어떻게 부축해야 할지 몰라 허공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리오의 팔을 붙잡아 지탱했다.
“그래서 지금 몇 시예요?”
묻자, 리오는 황급히 본인의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생채기 하나도 없이 반짝거리는 게 꼭 내가 던져줬던 처음 모습과 같았다.
“6시 30분이에요.”
“그거 밖에 안 됐나? 그래도 차원 안에서 꽤 오래 헤맸다고 생각했는데.”
코에 닿는 식은 바람이 저녁 공기는 아니었으니 새벽이라 생각하는 게 옳았다.
내가 안으로 진입한 것이 근 자정쯤 이었는데, 끽해봤자 7시간 정도 밖에 흐르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하루 정도는 지났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리오는 어딘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앙다문 입으로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아니에요, 채희 님. 채희 님이 사라지신 건…….”
벌써 삼일 전이에요.
그 목소리가 녹음기처럼 귓가에 반복됐다.
삼일, 삼일, 삼이일…….
“미친.”
삼일?
『선발전 시작 시간까지…… 2일 10시간 28분』
황급히 전체 알림창을 확인하자 그건 실화였다.
선발전이 오기 전까지 저질러야 할 소중한 시간 절반 이상을 차원 안에서 날린 것과 다름없었다.
시간과 공간의 방에 갇히기라도 했던 건가?
차원 내부의 시간보다 바깥 세계의 시간이 빨리 흐르는 건 종종 있는 일이긴 했다.
그건 맞는데, 아니 그러니까, 차원을 꼭 들어갔다 나오긴 했어야 했는데. 근데!
“개오바네 이거.”
창백한 낯빛으로 걷기 시작했다.
주머니 속에 찔러 넣어둔 프리즘을 습관처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사실 이것만 있으면 대부분의 계획이 끝마쳐진 것이긴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수적인 준비를 할 시간이 촉박했다.
아프다고 쓰러져 있을 시간 같은 건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리오는 자꾸만 팔을 붙잡아 뜯어 말렸다.
처음 팔과 다리를 가져본 사람처럼 삐걱대는 나를 앞지르기란 쉬운 일이었다.
“채희 님, 제발요. 지금 그 상태로 가시면 안 돼요.”
그 일렁이는 시선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내가 아는 윤산영이라면 머쓱하게 고개를 돌릴 법도 한데,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가 낯빛에 서렸다.
나보다 내 상태를 걱정하는 얼굴.
그것만이 일생일대의 목표라는 것처럼 굳은 그에게 툭, 물었다.
“나 믿어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는 것처럼 리오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그러나 곧 아주 단순하게.
아주 강한 의지가 담긴 눈으로 답했다.
“네.”
더할 나위 없는 대답이었다.
어떤 군더더기도, 더 더하고 뺄 것도 없는 명료한 답변.
그 오롯하게 빛나는 낯을 보며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말았다.
입매가 슬프게도 일그러졌다.
“그거 잊어버리면 안 돼요.”
내가 못 믿어서 혹시나 리오를 배신해 버릴 때에도.
그 속삭임에는 어떤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리오에게 기대 유원지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서서히 동이 터 오르고 있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