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08
98화
“크윽……!!”
참지 못한 신음성이 꽉 깨문 잇새로 새어 나왔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 뛰는 소리가 뇌를 마구 주물렀다.
누군가 혈관 하나하나를 붙잡아 한계까지 늘리고 있는 감각.
내 몸을 한주먹에 집어넣을 것처럼 꽈악 뭉쳤다가 펴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눈앞의 시야가 두 개, 세 개로 벌어졌다 간신히 초점을 되찾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눈을 치떴을 때 보이는 건.
‘빛.’
손끝과 발끝.
벌어진 입에서도, 눈에서도, 온갖 구멍이란 구멍에선 죄다 무지갯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토해내고 있다는 말이 더 올바른 말일지도 몰랐다.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찬란한 일렁임과 함께.
【‘프리즘’의 효과로 사용 중인 스킬이 강화됩니다.】
파르르르륵!
안 그래도 거칠었던 풍속이 더더욱 거세지며 내 주변을 둘러쌓았다.
주전자가 끓는 소리같이 높은 휘파람 같은 게 귓가를 가득 채웠다.
누가 머리 한구석을 작은 도끼로 쪼개고 있는 것마냥 강렬한 통증 역시 일기 시작했다.
온몸을 후드려 패듯이 북처럼 둥둥 울리는 고통.
그리고 마침내.
빠각.
뒤통수 한 부분이 아주 작게 조각났다고 생각했을 때.
“……!”
몸 속에서 폭발하던 빛줄기가 머리 틈새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곧 찢어질 것 같던 혈관도, 주체할 수 없이 구멍에서 토해내던 무지갯빛도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공중에 떠 있었다.
순결한 빛으로만 가득 찬 몸이 중력을 무시한 채 풍선처럼 떠 오르고 있었다.
잠시 허둥대던 발길질은 곧 빠르게 적응해 물속에서 부유하듯 허공을 헤엄쳤다.
그 순간, 이유는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확고한 생각 하나가 치고 들었다.
‘여기는 내 [세계]다.’
알고 있는 어떤 법칙도 통용되지 않는 진정한 세계.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법이 되고, 옳게 되는 그런 세계.
그러므로.
“【가자】.”
말하자, 내 명령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 공기가 잠시 잘게 떨렸다.
곧 주인을 맞이하는 왕궁처럼 은하수 깔린 길을 따라 걸었다.
손바닥만 한 우주에서 통창 정도 크기로 진화한 [유니버스]의 입구는 여전히 세계의 이물질을 제거해내기 위해 지글거렸다.
보고 있지 않아도 느껴졌다.
온이헌은 아까보다 꽤 여유를 잃은 모습으로 내 마력들을 쳐내고 있었다.
다른 사령체를 소환해 내려는 듯 놈의 몸을 감싼 검은 파동들이 부글거렸지만, 그런 건 좋은 먹잇감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우주가 그의 어둠을 한 입, 한 입 삼켜냈다.
하지만 결국.
‘오른다.’
바닥에 딱 붙어 있던 온이헌의 발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절대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던 그가 내 통제 안으로.
폭발하는 힘을 이기지 못해 아주 조금씩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뭘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처럼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횡으로 펼쳐진 우주의 연기들이 장막같이 온이헌의 몸을 감싸고 물어 뜯어댔다.
나를 올려다보는 선득한 얼굴 위로 무지갯빛이 어룽거렸다.
그 순간.
드드드드득. 드드득, 득.
돌바닥을 긁어내는 소리와 함께 흑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물에 먹이 퍼지듯 천천히 빛을 좀먹어오는 감각에 이를 악물고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지금은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절대.
태환이식이 없다면 이 엄청난 마나의 충격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순도 깊은 빛에 저항하듯, 서서히 자신의 영역을 넓혀오는 흑옥의 기운 때문에 몰아치는 바람의 속도가 일순 더뎌지고 있었다.
이를 악물며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만 더.’
온이헌은 이제 손만 뻗으면 맞닿을 곳에 서 있었다.
‘아주 조금만 더.’
그를 내 [유니버스] 안에 집어넣기만 한다면 모든 일이 수월해질 것이다.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듯 발광하는 무지갯빛에서 파지직. 작은 소음을 내며 불티가 튀었다.
벌레처럼 기어 나온 우주의 손아귀들이 조금씩 온이헌에게로 달라붙었다.
놈은 검은 연기를 사방에 뿌려대며 대항했지만 아주 미약한 발버둥일 뿐.
족쇄처럼 양 손발에 찬 암흑이 사슬처럼 딱딱하게 응고되고 있었다.
이제 끝이다.
정말로 저 새카만 사각형의 경계로 발을 넘기기만 하면.
‘그러면 온이헌은.’
그리고 몸 반쪽이 검게 잠식된 온이헌의 한쪽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순진하긴.”
서걱.
그가 문을 갈랐다.
종잇장이 깔끔하게 찢어지듯 반으로 나눠진 [유니버스]가 서서히 가루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엄청난 중력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허억, 컥……!”
케엑!
마른기침 한 번에 검은 피들이 후두둑 쏟아졌다.
나를 이루고 있던 무지갯빛 오오라들이 몸 속에서 조각나 유리 파편처럼 장기 내부를 찌르고 뱉어지고 있었다.
갑작스레 몰아닥친 반동.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목 부근을 벅벅 긁어대며 나동그라진 내 위로, 온이헌의 그림자가 졌다.
몸 반쪽에 스며든 검은 반점을 지워내지 못한 그가 달빛 아래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자, 똑똑히 봐요.”
온이헌이 흐트러진 내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들어 올렸다.
“이게 신께서 원하신 장면이니까.”
빛은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
“이겸!”
부르는 목소리에 응답하듯 빠른 발걸음이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바턴터치 하는 선수처럼 서윤이 뒤로 물러나면 겸의 전격이 마수의 머리 정중앙을 꿰뚫었다.
꽈아아아앙!
지축을 흔드는 충격파.
뱀 같은 꼬리는 마비되듯 딱딱하게 경직되고, 염소의 모습을 닮은 대가리가 마지막 비명을 내뿜는다.
퀘애애액!
쏟아지는 누런 체액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겸은 새빨간 눈동자로 번개를 내리꽂았다.
분수처럼 흩뿌려지는 피 속에서 이겸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괜찮아?”
약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겨우 사체와 모든 주변을 정리한 서윤이 다가와 물었다.
치열한 교전에 폐허가 된 도로 위에서 겸은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서늘한 눈은 더 처리해야 할 일이 없는지 상황을 스캔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방울로 생성된 포탈들은 약 마흔여 개.
종종 B, C정도 되는 하급 포탈들도 열려 있었지만, 대부분의 포탈 등급은 S. 그리고.
‘그 이상.’
세계가 마수와 각성자 밭으로 물든 뒤에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하늘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처럼 징그러웠다.
알면서도 노린 건지, 보호구역 앞에 발생한 다량의 포탈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아수라장이었다.
지구의 종말이다, 인류의 멸망이다 소란스럽게 비명 지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서윤은 무작정 창공으로 몸을 들이박았다.
다행히 재빨리 정신을 차린 구조팀의 통신과 체계 덕분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힐금 겸을 곁눈질했다.
‘갑작스레 건물 위로 솟아난 시체들의 산.’
그리고.
‘그 위에 있었을 이겸.’
귀를 찢을 것처럼 울리는 우렛소리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한 건 서윤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뒤로 우후죽순 생겨난 포탈들 역시 겸의 사태와 연관이 있다는 것도 자명한 일이었다.
곧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사색이 된 얼굴로 지표면에 내려왔으니 더더욱.
“그거 뭐였어?”
애써 긴장감을 감춘 얼굴로 물었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와 같은 일을 몇 번이나 감당해내야 이 긴 전투가 끝날지 모르는 사람들은 조금씩 희망을 잃어갔다.
전장에서 사기가 떨어지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서윤은 자기도 모르게 이 싸움을 끝낼 실마리를 이겸이 쥐고 있길 바랐다.
그가 낮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입을 떼었다.
“온이헌이…… 왔었어.”
“뭐?”
그 딸랑이는 방울 소리와 질서를 망가트리고 터져대는 포탈이 명암의 소행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놈이 직접 겸을 찾아 왔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움에 사시나무처럼 흔들리는 서윤의 눈을 피하며 겸은 설명했다.
“모아가 있는 곳을 안다고 했어. 만나고 싶으면 따라오라고 했지. 말하는 기색이나 태도를 보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런데…….”
“근데.”
겸이 또다시 망설이는 말꼬리로 입을 다물기 시작하니 서윤이 재촉했다.
근데.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모아가 있는 곳은 어디고, 너는 또 왜 그렇게…….
“이겸.”
울컥하는 목구멍을 눌러 삼키며 단호한 음성을 냈다.
화랑의 부길드장으로서.
그의 오랜 친구로서, 서윤은 상황을 알아야 했다.
결국 겸은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온이헌이 가지고 있던 방울을 다 쏟아냈어.”
서윤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리고 싶었다.
그다음은 그녀도 아주 잘 아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포탈이 터졌고,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았던 사람은 결국 이겸이었고, 그리고…….
무언가를 억누르느라 쩍쩍 갈라진 목소리로 그가 덧붙였다.
“선택하라는 뜻이었겠지. 모아냐, 사람들이냐. 동생이냐 세상이냐. 네게 중요한 게 진짜 뭐냐고 그 사람이 시험한 거겠지.”
그런데 서윤아.
“너도 알잖아. 나한테 중요한 건 모아밖에 없다고. 그 애를 위해서라면 난 세계도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
“그런데 더 미움받긴 싫더라.”
일그러진 얼굴로 입꼬리만 겨우 올린 그가 웃었다.
“내가 이대로 모아한테 가버리면, 걔가 실망해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어. 왜 한 번도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 거냐고. 그게 진짜 자기를 위한 사랑이냐고 타박할까 봐…… 참았어.”
우르르르릉.
하늘이 깊게 울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만약 내 한 번의 선택으로 그 애가 잘못되면, 나도 죽을 거야.
이겸이 진심으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속삭였다.
그때.
“기, 길드장님!!”
누군가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겸과 서윤은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포탈도, 마수도 아닌 빛이 빠르게 이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마치 타오르는 하나의 유성 같았다.
순식간에 전투태세를 마친 그들이 뛰어오르려던 차.
철퍼덕.
겉이 타 버린 것처럼 검은 형체가 지면으로 처박혔다.
그 위로 살포시, 깃털 같은 발걸음으로 한 남자가 섰다.
“드디어, 제가 그리던 완벽한 장면이 완성되었네요.”
온이헌이 말했다.
그가 툭 검은 형체를 발로 건드리자 비틀거리던 얼굴이 드러났다.
“모아야.”
이겸의 믿음이 거기에 쓰러져 있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