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2
22화
“이번엔 진짜라니까. 너도 쉽지 않을걸?”
“아, 안녕하세요…….”
도연은 내 쪽을 보며 작게 인사했다.
곤란한 듯이 늘어진 눈썹을 보아 그녀 역시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온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둘은 나를 앞에 두고 영문 모를 실랑이를 이어갔다.
종종 이야기에 끼는 내 이름을 들으며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여기서 만날 줄 몰랐다.’
도 연.
도술의 초석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길드 의 마스터, 도 학의 동생.
여기까지만 보면 이모아와 비슷하지만, 연은 이미 각성 재능을 꽃피운.
적어도 스타트 시점에서 B급 이상의 재량을 보여주던 각성자였다.
가지고 있는 특성은 도술 중에서도 화(畵)계.
먹을 이용한 유려하고 아름다운 스킬이 특징이기도 했다.
근데 얘랑 지금 뭘 하라고?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도망가려면 지금밖에 없다.
직감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곁눈질하며 자꾸만 미안한 눈인사를 보내는 도연에게 문 쪽으로 눈치를 줬다.
나는 나가겠다. 그런 신호였다.
도연은 단번에 내 뜻을 알아들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참! 맞다, 현자님 저희…….”
그녀가 일부러 부산스레 박수를 치며 현자의 주의를 끌었다.
그 상냥함에 감복하며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려던 그 순간.
“저놈이냐? 우리 연이한테 결투 신청한 놈이?”
괄괄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등 뒤가 헉헉대며 뛰어 들어온 큰 덩치에 가로막혔다.
젠장.
망한 조짐과 함께 철렁 내려앉는 가슴.
본능적으로 고개를 꺾었다.
법사 계의 최고참이 현자라면 이쪽은 도사 계의 마스터.
‘도사 신령’이라 부르는 놈이 내 뒤에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어느 정도 시기가 되면 다음 후계자로 넘어가는 현자직과 달리, 도사 신령은 더 잘난 실력자가 ‘니 자리를 뺏겠다’하고 덤비지 않으면 승계되지 않는 체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놈은 애카에서도 도사 신령이었다.
분명 아는 얼굴이었는데 반갑지도 않았다.
양 사이드에 마주 선 마나 계의 거장들을 보자 잠시 머리가 굳었다.
도사 신령은 안 그래도 화강암을 사람으로 깎아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적대감을 잔뜩 품고 사람을 깔아보는 시선이 사나웠다.
멍한 어깨를 잡아챈 건 최고 현자였다.
“해보자고.”
누구.
…… 설마 나?
“아닌데요. 그럼 전 이만.”
재빨리 이 상황을 손절하려다 뒷덜미를 붙잡혔다.
그 어느 때보다 신나 보이는 현자에게 억울함을 잔뜩 담아 소리쳤다.
“제가 B급이랑 어떻게 싸워요!”
이모아의 현재 헌터 등급은 D+.
스킬, 다이아, 무기…….
당장 눈 앞에 펼쳐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급급했지, 지능 외 다른 능력치는 신경 쓰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아까 마나 쓰는 것도 봤으면서.’
일반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합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물약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었다.
스킬도 제대로 못 쓸 텐데 B급이랑 D급짜리를 붙여?
이건 각성계에서도 상도가 없는 매칭이었다.
그러나, 현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이 내 어깨를 꽉 쥐었다.
그리고 내가 아닌 도사 신령을 똑바로 쳐다 보며 딜을 걸었다.
“상대 바꾸는 건 이의 없지? 경합 당일에 바꿨다고 나중에 뒷말하지 말고 지금 말해.”
“우리야 이놈이나 저놈이나 연이한테 쉬운 건 똑같지 않나. 하하. 근데, 그쪽은…….”
“아니, 나는……!!”
여기 사람도 아니라고.
변명하기 전에 현자가 입을 틀어막았다.
빠르다. 그리고 강하다.
“내가 키우는 녀석이야. 떡잎부터 파릇파릇한.”
“호오…….”
도사 신령은 그 말을 믿는 건지 흥미로운 얼굴로 나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대신 룰을 좀 바꾸자고. 유의미한 등급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니까.”
“뭐, 그러지. 아무리 우리라도 힘없는 마법사 갖고 놀았다는 소린 듣기 싫거든.”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야기는 착착 진행됐다.
도연은 먼발치에서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 역시 더 이상 어떻게 빠져나가게 해줄 구멍은 더 이상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 이 불안과는 별개로, 현자는 무슨 자신감인지 의지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공표했다.
“버티기.”
“버티기라.”
“이 애가 정해진 시간 동안 쓰러지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의 승리. 그 전에 나가떨어지면 당연히, 당신네들 승리.”
“흐음…….”
X바, 싫다고. 안 된다고 해라…….
욕을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 절망 속에서 현자가 무슨 비밀이라도 말할 것처럼 은근히 다가왔다.
어깨동무를 하고 속삭였다.
“십오 분만 버티면 마력 숙련도 대폭 지원.”
“…….”
“덤으로 마나 파도 숙련도 따블까지.”
#
【MISSION】
▷ ‘도 연’과의 전투에서 15분 이상 버티기.
― 분류 : 서브
마법사들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입니다.
성공 시, 스킬 숙련도.
실패 시, 마법계 NPC들의 호감도 하락.
#
그리고, 나는 잠시 미래의 윤채희를 향해 사과했다.
미안하다. 개고생할 채희야.
“…… 진짜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거죠.”
【MISSION을 수락하셨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욕한 것이 무색하게 빠른 태세전환에 현자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현자는 다 계획이 있구나.
내가 마지막에 튀면 어쩌려고.
뭘 믿고 이렇게 몰아세우나 했더니…… 나는 결국 꿀 같은 보상 앞에 무릎 꿇고 말았다.
사실 수락하면서도 입안이 썼다.
하지만 이대로 모른 척하고 지나가기엔 결코, 밤에 눈 감으면 생각 날 조건이었다.
안 그래도 지지부진 노가다 뛰느라 힘들었던 나에게 고작 십오 분으로?
숙련도를?
두 개나?
어디서도 이런 파격 조건을 찾아보기 어렵다.
구미가 당기는 미션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스킬이나 레벨을 생각하면, 등급 업도 노릴 법한 정도의 보상 수준.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그만큼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라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도 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단순히 ‘버티기’ 만이라면.
내 모든 데이터와 경험을 토대로, 이모아의 몸뚱이로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미약한 가능성이 나를 붙잡았다.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크게 잃을 것도 없겠다.
호감도야 뭐, 좋아하는 선물 몇 번 찔러주면 쑥쑥 올라가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눈 딱 감고 한 번 해볼 만해.’
“우리는 합의 됐는데, 어때?”
“뭐, 가끔은 이런 심심풀이도 나쁘지 않지. 연이 너는 어떠냐?”
“아, 다들 괜찮으시면 저도 괜찮아요.”
그러나 스무스하게 경합이 성사되자 오히려 머뭇대며 나를 쳐다보는 건 연의 쪽이었다.
자본이 낳은 괴물을 쳐다보는 듯한 시선에 잠시 양심이 찔렸지만 애써 딴청을 피웠다.
현자는 말을 바꾸기 전에 빼도 박도 못할 상황으로 나를 몰아넣으려는지, 내 팔을 붙잡고 어디론가 이끌기 시작했다.
익숙한 길과 함께 시야에 들어오는 건 흩날리는 모래.
목적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육일각.
그러나 전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관객이…… 있네.”
그것도 아주 많이.
경합 당일 어쩌구 하더니 이런 얘기였냐?
넓은 모래판 주위를 도사들과 현자들이 꽉 채우고 있었다.
편을 갈라 앉았는지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딱 반 반.
모습만 보자면 흡사 사내 체육 대회 현장과 비슷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덕분에 몇 미터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딱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무감각하게 스쳐 지나는 호기심 어린 시선.
혹은 도사 놈들 쪽에서 울려 퍼지는 약간의 비난과 야유.
손가락질과 박수, 그리고…… 소리 소문없이 오가기 시작하는 지폐 더미들.
‘보상받으려고 장난감 된 거임, 나 지금?’
세상에서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다곤 하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섣부르게 내린 판단을 약간 후회했다.
이래서 계약서는 작은 글씨까지 꼼꼼히 따져보고 사인해야만…….
어둠의 투기장에 잘못 참여한 것 같은 기분에 잊고 있던 피로감이 조금씩 몰려왔다.
그러다 도연과 눈이 마주쳤다.
맞은편에 반듯이 서 있던 연은 이런 일이 익숙한지 생긋 웃기만 했다.
입 모양으로라도 말을 걸려던 찰나, 현자가 다가왔다.
한참 도사 신령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더 정확한 대회의 룰이라도 정한 모양이었다.
“하여간 도사 놈들 양심 없는 건 알아줘야돼. 바락바락 시간만 늘리려고 하더라니까?”
“…… 이런 일이 원래도 가끔 있는 거죠?”
“가끔은 무슨, 경합은 심심하면 있어요. 근데 연이랑 싸우는 녀석들은 오 분도 못 버티고 나가떨어지는 게 대부분이라, 우리가 내리 졌지. 지금까지. 계속.”
말끝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분명 덤덤히 말하고 있는데 그 안에 담긴 호승심이 따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까 복수가 어쨌느니 소리치더니 진심이었나.
‘나야 상관없지만…….’
도대체 현자가 뭐 때문에.
본 지 이틀도 채 안 된 나를 이 판에 세워놨는지 알 수 없었다.
무조건적인 신뢰.
감당하기 어려운 기대의 눈빛이 느껴졌다.
“영웅이 돼 줘요. 난 될 것 같거든.”
부담스런 믿음을 퍼붓는 현자를 잠시 응시했다.
“제 뭘 믿고 이러세요?”
현자는 그런 걸 물을 줄 몰랐다는 눈치로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눈을 몇 번 데굴데굴 굴리고 푸스스 웃었다.
“감.”
“…….”
“최고 현자라고 이름 붙은 사람으로써의 감이에요. 처음부터 그랬지.”
이유 없는 자신감에 찬 현자가 종종걸음으로 멀어졌다.
머리를 다시 한번 질끈 고쳐 묶었다.
감. 감이라…….
‘사람 한 번 되게 잘 보시네.’
문득 도믿걸에게 붙잡힌 줄 알았던 첫 만남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마법사들의 명예고, 자존심이고, 그런 건 별로 관심 없다.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숙련도.’
너희들이 나를 여기에 재미로 몰아넣은 만큼 나도 단물 쪽쪽 빨아 먹고 튀겠다.
십오 분. 딱 그거면 된다.
“저기요!”
내 소리침에 현자가 잠깐 뒤를 돌았다.
“나한테.”
돈 나한테 걸라고.
입으로 벙긋벙긋 의사를 전달하자 피식 웃은 그녀는 손으로 오케이 모양을 만들었다.
홍색 깃발을 든 진행자가 걸어 나와 연과 나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양 선수 모두 준비…….”
소란스럽던 모래판 위가 살벌하게 고요해졌다.
갑자기 등장한 이방인에게 보내는 무시와 얕잡아보는 시선들.
뒷덜미가 따끔거린다.
도연은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붓 한 자루를 꺼내 준비 자세를 취했다.
반면, 나는.
“마법사 측, 준비 완료되셨습니까?”
“네.”
맨손이었다.
무기를 꺼내길 기다리던 진행자가 재차 되물었지만 내 대답은 같았다.
준비는 끝났다.
사람들이 조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자존심이 상한 건 연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심정이 어떤지는 알겠으나…… 이게 나의 최선이다.
“시작!”
붉은 깃발이 하늘로 솟구쳤다.
연은 상한 기분을 만회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곧장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내가 집중하고 있는 건 그녀가 아니었다.
오로지 그 붓끝.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매끄럽게 산맥을 그려나가는 허공의 먹물을 보며 달리던 방향을 정반대로 틀었다.
도술은 일종의 환각을 베이스로 한 마나 기술.
연의 스킬은 직접 그린 그림을 실체화 해 공격할 수 있는 부류의 것들이 많았다.
특히나 저 진경산수화는 적의 뒤로 산봉우리를 배치해 퇴로를 막거나 가두고 싶을 때 주로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한마디로 가둬놓고 때리겠다. 그런 수작인데…….
‘내가 바보는 아니거든.’
연의 스킬은 모두 내 머리 안에 있다.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나 스킬 타이밍쯤은 죄다 꿰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내 한계를 알기 쉽다.’
지금 상태에서 공격하는 건 쓸모없는 짓이다.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연은 못해도 B등급 헌터.
나와 등급 차이는 4단계 이상.
그걸 알기 때문에 그들 역시 이 경합의 조건을 ‘시간 안에 버티기’로 합의했을 것이다.
거기다가 연이 그냥 헌터야?
알파벳으로 보이는 등급만 낮다 뿐이지, 그녀는 도사계의 성골, 에서 길러진 숙련자였다.
판을 읽는 순간순간의 노련함만큼은 뒤지지 않는다는 뜻.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것만큼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그 누구보다 월등할 거란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내가 해낼 수 있는 가장 가능성 있는 방법은.
‘존중하며 버티기.’
존버 뿐이다.
무기를 갖다 치운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이길 수 있으면 존버가 뭐야.
안간힘을 써서라도 공격을 시도했을 것이다.
스킬은 도망치기 위해 사용하는 정도가 빠르다.
자칫 빈틈을 찔러보겠다고 설치는 순간 움직임을 지배당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물론 아직 도연이 어떤 스킬들을 가지고 있을지 보는 시간이긴 하지만…….
“풍(風).”
공중에 그려진 한자에서 칼바람이 쏟아졌다.
강한 풍력에 몸이 비틀거릴 정도였다.
일단 서예 스킬의 기본기가 아주 탄탄하다는 건 알겠다.
연의 기술들은 적는 곳이 종이가 아닐 뿐이지, 부적처럼 글자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은 같았다.
그 말은 즉, 스킬을 시전 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 찰나를 잡아야 한다.’
바람에 파묻혀 모습이 흐린 그녀의 인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짐하듯 주먹을 한번 꽉 쥐었다.
‘버틴다.’
【남은 시간…… 14분 27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