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26
116화
컴컴한 기왓장 아래.
대들보 곳곳에 띄워놓은 촛불이 일렁거렸다.
흐린 주황빛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술협회 현자들은 비록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각자의 화면 속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집중한 상태였다.
누군가는 스포츠 경기라도 보듯이 ‘그게 아니지, 이쪽으로 가야지. 그래, 그래!’ 입으로 감독하기 바빴고, 또 누군가는 두 손을 움켜쥐고 ‘제발, 제발’ 간절히 기도했다.
모두 다른 행동을 하는 것 같았지만, 일제히 탄식이 터지는 순간만은 같았다.
물밑으로 은밀하게 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른 내놔.”
여전히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파닥파닥 손만 내밀어 재촉하는 목소리.
그 위로 초록, 노랑색색깔의 지폐들이 한 움큼 쥐여졌다.
구깃한 돈들을 손끝으로만 매만지던 마법협회의 최고 현자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호령했다.
“김 현자, 신 현자. 어딜 도망가요? 다 아니까 빨리 내놓고 가요.”
“에이씨…….”
대가리만 긁적이던 먹튀 법사들까지 모조리 판돈을 내놓은 뒤, 향관청 안은 드디어 고요해졌다.
흐흐흐.
어쩐지 악랄한 목소리로 웃어대는 최고 현자가 내기에서 딴 금액들을 세는 사이, 그 모습을 조금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제자 마법사가 물었다.
“현자님께선 어떻게 알고 계셨습니까?”
“응? 뭐가요?”
한껏 돈 냄새를 맡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던 최고 현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에이, 다 끝났는데 아직도 연기하실 필요가 뭐 있습니까. 이모아가 이길 거라고 어떻게 알고 계셨냐구요.”
그 순간.
데엥― 데엥― 데엥―…….
깨어 있는 생물도. 잠들어있는 생물도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밤하늘을 꽈악 채운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제자의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머리맡의 종이 창호를 열어젖힌 최고 현자는 그 소리를 음미하듯 몸을 기대 턱을 괴었다.
사그락.
종잇장이 넘어가는 듯한 효과음과 함께 불투명한 전체 알림창이 열렸다.
『랭킹이 업데이트 되는 중입니다…… 』
음흠흠. 작은 콧노래가 종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나도 몰랐는데요?”
“예?”
이번에는 반대로 돈 따는 비법 좀 빼내볼까 손바닥을 파리처럼 비벼대던 제자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당황한 팔이 허공을 지휘자마냥 휘저어댔다.
“아니, 그럼 어떻게 그렇게 확신에 차셔서…… 상대가 이겸인데 현자님은 처음부터 계속 그 애가 이긴다고 단언하셨잖아요. 뭐, 술수, 이런 거 부리신 게 아니시고요?”
“술수? 무슨 술수?”
푸핫!
얼굴을 가리고 웃던 최고 현자가 안경을 들썩이며 눈꼬리에 고인 눈물을 닦아냈다.
한바탕 비웃음 당한 제자 마법사는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찻잎 점이나 행운의 수정구나 그런 거 있잖아요…….’ 하고 중얼거렸으나, 한결 더 큰 웃음소리를 흘려 넘겼어야 할 뿐이었다.
“그런 걸 할 수 있었으면 내가 지금 이 코딱지만 한 협회에 앉아 있겠냐구. 내 마음대로 세상을 휘두르느라 바빴겠죠.”
“아…….”
“그리고.”
그녀의 몸만 한 지팡이 끝이 제자의 이마 정 가운데를 콕콕 찔렀다.
“유 법사도 봤잖아요? 마지막까지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겨우 버저비터로 이긴 거.”
꿀꺽.
제자의 목울대가 크게 넘어갔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온 한국 국민들을 과몰입하게 만든 가족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벌어진 피 튀기는 사투는 방금 전까지 오빠, 동생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 두 사람이 맞나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살벌했다.
그것도 중반까지는 올라가는 포인트는 보이는데, 번쩍거리는 섬광 때문에 하얀 화면밖에 보이지 않아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급하게 필터 시스템이 업데이트 되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차원 이 자식 또 수신료만 받아먹고 일은 거지같이 한다며 한 바가지 욕을 쏟아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처음 확인한 제대로 된 광경이란.
‘이게 멸망인가?’
그런 생각부터 들 정도였다.
모든 것이 무너질 때까지 끝나지 않는 낙뢰.
그에 대항하듯 소용돌이 치고 있는 여덟 개의 빛을 머금은 태풍.
평범한 사람이라면 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의 충격파 속에서, 부딪히고 있는 두 개의.
‘섬광 덩어리.’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이모아와 이겸은 인간의 차원을 넘어선 다른 층위의 존재들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끌어모으려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 주인임을 인정한 마력들이 그들의 주위로 모여들었고, 그 유수 같은 마나들 속에서 캐스팅에 얽매이지 않은 횡열의 고대 문자들이 자유롭게 헤엄쳤다.
모든 것이 최대의 효과, 효력을 내고 있었다.
각성이 시작되고 약 십여 년 만.
이제는 익숙해진 이 힘이 사실은…….
‘저 정도까지 출력해낼 수 있는 거구나.’
모두의 가슴을 새삼스럽게 달아오르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어쨌든, 저러다 차원이 깨지기라도 하는 게 아니냐며 심심한 우스갯소리까지 올라올 무렵.
법사들의 유구한 전통. ‘싸우는 애들 두고 돈 걸기’가 시작됐다.
그때는 이겸이 약 20점 이상 점수를 벌려 놓고 유지하던 상태였다.
몇몇 현자들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이겸의 몸값을 올려놓았고, 한쪽에만 돈이 몰리면 게임이 안 되는 게 아니냐며 툴툴대기도 했다.
이 마술 협회의 최고 현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수중에 있는 돈 전부 올인.”」
당당한 걸음으로 돈다발을 바닥에 내리친 그녀의 두루마기에서 오방색 뱃지가 반짝였다.
일순 흐르는 미묘한 적막과 함께.
푸하하하!
최고 현자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들이 가벼웠다.
「“아이, 현자님두 참. 저희 이번에 고생했다고 용돈 주시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죠? 말씀을 하시지.”」
「“그러니까. 그럼 그냥 주시지 뭘 또 도박을 걸고 그러세요. 잘 나눠 갖겠습니다.”」
「“어딜.”」
성급히 돈뭉치를 가져가려는 다른 현자들의 손등을 아프게 내리쳤다.
그대로 꾸욱.
손모가지 날리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으라는 경고의 눈빛을 쏘아붙인 최고 현자는 그렇게 말했었다.
「“난 진심으로 배팅한 거거든요.”」
한순간에 적막해진 공기.
뒤이어 최고 현자를 따라 만원, 오 만원쯤 걸어보는 법사들도 있었으나 소수에 불과했다.
어느덧 선발전은 중반으로 치닫았고, 점수는 여전히.
【각성자 이겸 pt : 487】
【각성자 이모아 pt : 418】
현저한 격차를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이쯤 되자, 지금 최고 현자에게 비법을 묻고 있는 제자 현자 역시 슬그머니 이겸에게 용돈을 걸었음은 물론이었다.
갓 SSS로 등급이 오른 아이가 이겸과 호각을 벌인다는 것.
그 자체가 놀라운 건 분명했으나, 넘어온 전장의 횟수나 경험치의 차가 존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해운이나 온이헌과 벌였던 전투처럼 뾰족한 수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한, 승기는 이겸의 쪽에 기울었다고 모두가 확신했다.
특히나 PVP 형식의 선발전은 몸에 지닌 장비 외 다른 소모품을 사용하는 게 제한되어 있기에 더더욱.
그러나.
「“말도 안 돼…….”」
「“따, 따라 잡는다!”」
얼이 빠져 터져 나온 누군가의 목소리를 기점으로, 이모아는 굉장한 기세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항상 마나를 감지하기 위해 수련하는 마법사들조차 쉽게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순도 높은 빛.
다른 이들은 아마 이모아가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여길 테지만, 아마 현자의 타이틀을 단 이들은 모두 같은 장면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뽀그륵.
마나와 일체화된 이모아의 형체가 투명한 물처럼 연회장을 가득 채우고.
【유니버스】.
최고 현자는 세상을 여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모아의 포인트는 폭발적으로 치솟고 있었다.
천장에 열린 작은 창 아래로 별빛이 쏟아졌고, 아무것도 없어야 할 연회장 바닥에 일렁이는 물그림자가 졌다.
그건 경이로움을 뛰어넘어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광경이었다.
방대한 자연을 만난 인간이 초라하다 느끼는 감정처럼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느껴졌다.
그 순간, 모두 깨달았던 것이다.
‘졌다…… 고.’
그러니까 선발전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다들 돈을 내고 나간 거겠지.
최고 현자는 통쾌함을 곱씹으며 아직도 어리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자를 바라보았다.
사실, 자신 역시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랐던 건 마찬가지였다.
중반쯤에는 옆의 현자들을 꼬드겨 ‘이모아한테 배팅하라고 할까, 그래야 내가 잃는 돈이 좀 적으니까’ 그런 생각도 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최고 현자는 하늘을 가린 구름 너머, 새는 달빛 아래로 누웠다.
“그 애가 자기한테 걸라고 그랬거든요.”
여전히 그 말을 잊지 않았을 뿐이었다.
***
그리고, 태양만큼 세상을 밝게 비출 달이 걸린 광화문 위.
털그덕.
사람 하나 없는 드넓은 광장에 두 개의 인영이 창공에서 내뱉어졌다.
비도 한 방울 오지 않았는데 축축이 젖은 모습들에게서 물이 뚝, 뚝 떨어졌다.
하나는 연신 쿨럭대며 마른기침을 토해냈고, 또 하나는.
“……오빠.”
그를 불렀다.
이겸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이모아는 거기에 서 있었다.
아이는 달을 등에 업은 채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잡으라는 듯 내미는 손이 새하얗게 빛났다.
이겸은 이 장면을 평생 잊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변하지 않는 운명이라는 건 정말로 존재하는 거구나.’
그날, 네가 아니었다면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눈을 감았을 나를.
사룡에게 물어 뜯겨 처참한 죽음을 맞았을 나를.
모든 걸 포기해 버렸을.
‘나를.’
언제나 구하는 건 너구나.
모아야.
작게 읊조리며, 아이의 미지근한 손을 붙잡았다.
『(알림) 서버 B127.37 ― 새로운 1등의 탄생을 모두 기뻐해 주십시오!』
=
《실시간 랭킹》
― (서버: B127.37)
1. 이모아 (-)
2. 이 겸 (↓1)
=
“네가 이겼어.”
팡! 파앙!
하늘 위로 거대한 축포가 쏘아졌다.
무지개처럼 터지는 색색깔의 불꽃 속에서 이모아는 웃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라고 했잖아.”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