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45
135화
콰가가가각!
발밑으로 흙을 뚫어내는 광포한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구드는 똬리를 틀어놓은 땅 깊숙한 곳부터 서서히 나선을 돌며 올라오고 있었다.
가장 먼저 치솟아 오른 삼각형 지느러미가 지면을 내리치자 토사가 폭발한 것처럼 비산했다.
모래더미가 비처럼 쏟아지고, 곧 흑요석 같은 비늘들이 너울처럼 일렁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차르르륵.
표피 하나하나 자의식을 가진 것처럼 결이 흐르는 구드의 몸통은 움직일 때마다 구슬로 촘촘히 짜인 문발을 손등으로 쓸어내리는 것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흙더미 밑을 마치 물속이라도 되는 양 유연하게 유영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하루 종일 감상해도 질리지 않겠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경이로운 장면이었다는 소리였다.
물론 질릴 정도로 모니터 너머로 보긴 했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역시 감동이 남다른데.’
흙먼지에 버석한 코끝을 매만지며 아직도 검은 강처럼 끝없이 흐르고 있는 구드를 한 번.
하라는 대로 몸통 너머 넓은 땅에서 얼어 버린 것처럼 방패를 들고 서 있는 리오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오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손바닥을 내밀어 잠자코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금으로선 얌전히 떨어져 전투를 방해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도움이었다.
아마도 이제 곧 바깥으로 튀어나올 두 대가리가…….
‘내가 아는 마수가 맞다면.’
그 순간.
파아앗!
거대한 형체가 분수처럼 폭발하듯 흙바닥을 뚫고 튀어 올랐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겨우 몇 발짝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밑으로 무너지는 유사에서 [염화]로 간신히 벗어난 뒤,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은 갈라진 두 개의 그림자를 올려다보았다.
안개마저 그의 앞에서는 모습을 감춘다.
삼지창처럼 솟아오른 능선을 부드럽게 타고 오르고, 놈이 지나가는 곳마다 으스러진 돌조각만이 남았다.
‘1 관문의 수호자, 구드.’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
【MISSION】
▷ 무지의 유죄 (1)
― 분류 : 서브
모든 죄인들은 들어라.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고,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다.
이곳에 잡혀 온 이유를 ‘모른다’면 그것이 너의 죄명일지니.
–
구드를 처치하고 증거를 수집하기 (미완료)
성공 시, ■ 해금.
실패 시, 사망.
#
【MISSION이 자동 수락되었습니다.】
예?
무심코 눈을 비비고 미션을 채 다 읽어나가기 전에.
꽈아아아앙!
구드의 한쪽 대가리가 아가리를 벌리고 내가 선 자리를 찍어 내렸다.
몸을 엄습한 찌릿한 위협감에 본능적으로 피하지 않았다면 벌써 저 날카로운 송곳니에 갈기갈기 찢겨 소화되고 있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이상하다.’
분명 뒤로 물러나며 공격한 머리가 어느 쪽인지 확인하려고 눈을 부릅떴는데, 내가 본 건 비늘과 닮은 새까만 형체뿐이었다.
석류 같은 붉은 눈이나 에메랄드 같은 푸른 눈이 쉽게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는데.
하지만 다시 살펴보기도 전에, 구드는 내가 쉽게 보지 못할 정도로 대가리를 높이 쳐들고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채희 님!
어디선가 이름을 부르는 리오의 절박한 외침이 들리는 듯도 싶었으나, 곧 나를 감싸며 사위를 조여 오는 구드의 몸짓에 모든 혼란스러움을 밀어둬 버렸다.
일단.
‘한 턴 피하고 보자고.’
대가리로 돌진 찍기를 해오는 구드를 회피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모든 공격에는 시전 모션이 존재한다.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놈의 아래턱.
그 방향만 살피면 되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오른쪽.’
꽈아아앙!
예상대로 두 대가리 중 오른쪽 놈이 매섭게 땅으로 하강했다.
거대하지만 느리진 않다.
그러나 그만큼의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나는 대가리의 왼편 안쪽으로 파고들며 구드의 목젖 부근에 [심판]의 화살을 내리꽂았다.
퀘애애애액!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는 놈의 혓바닥이 낼름거리며 바닥을 마구잡이로 후려쳤다.
생긴 건 천 같이 나풀거리게 생겼는데, 내리치는 소리만 듣는다면 채찍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집중하는 건 그 비단처럼 아름다운 혓바닥이 실제로는 어떤 색을 띠고 있는지.
진짜 맞으면 얼마나 아플지 고려해보는 그런 잡다한 생각 같은 게 아니었다.
“예엠병.”
마침내 구드의 삼각형 대가리를 정확히 맞닥뜨린 느린 목소리가 욕지거리를 지껄였다.
“저게 뭐냐, 진짜.”
지지직. 지지지지직.
이제는 듣기만 해도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은 소음이 마수의 면상 위로 깔렸다.
거기에는 구드의 눈 같은 건 없었다.
대신.
‘노이즈 낀 빈 화면.’
모자이크처럼 뱀 머리 위로 여러 개의 사각 창이 떠올라 있었다.
그건 뭐랄까.
오류 난 게임 화면을 보는 것처럼 이질적인 장면이었다.
뭉그러진 뱀의 얼굴 위로 글리치 효과같이 자글거리는 화면을 보는 건 불쾌하기까지 했다.
‘뭔가 잘못됐다.’
생득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까.
내가 미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악몽 같은 형체였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본능적으로 리오의 쪽으로 고개를 꺾었다.
리오가 계속 날 보고 있었기 때문인지 눈을 마주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수와 그의 거리를 적당히 확인하고 구드를 유인하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리오, 방금 새 미션 받았어요?”
큰 소리로 외치자 폭발하는 흙더미를 뚫고 답이 돌아왔다.
“아니요!”
그럼 이건 나만 받은 게 분명하고.
‘보상이 ■라고 했지.’
이를 악물고 기억을 더듬었다.
현재 내 상태 창에서 저 검은 네모로 가려진 정보라고는 칭호에 관련된 것뿐이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적 있었지만, 캐릭터가 칭호를 얻는 경우는 단 두 가지.
‘캐릭터의 주요한 설정들을 거칠 때.’
그리고.
‘엔딩의 분기가 나뉠 때.’
처음 검은 사각형을 발견했던 건 한미래를 뒷골목에서 꺼내준 뒤, 라는 칭호를 얻었을 때였다.
그다음에는 랭킹 1위를 달성하고 나서 라는 가려진 칭호를 하나 또 받았고, 에서는 ‘드’라는 글자를 하나 얻었었다.
의도적으로 가려진 글자가 내내 신경 쓰이긴 했었지만, 가만히 놔둔 이유는 단순했다.
‘밝혀낼 방법을 몰랐으니까.’
다른 미션이 주어진 것도 아니고, 랭킹 1위를 달성한 것처럼 무지막지하게 이모아의 인생을 쥐고 흔들 일을 또 만들어내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어차피 칭호라는 건 이름 앞에 다는 트로피 같은 것.
아나 모르나 큰 효과를 주는 것도 아니니 엔딩으로 향하다 보면 열리겠거니, 허술하게 여겼던 것뿐인데.
‘이런 미션으로 뒤통수를 치네.’
구드가 부순 돌 파편에 긁힌 뺨을 손등으로 대충 훔쳤다.
가늘고 긴 핏자국이 묻어나왔다.
계속해서 도망치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가려놨던 정보를 떠먹어 봐라. 숟가락을 대 입 앞에 밀어 넣어주고 있다는 건.
‘내가 알아야 하는 순간이 왔다는 것.’
그걸 시시각각 다양한 행태로 알려주는 이 시스템에 조금 신물이 났을 뿐.
“그럼 면상! 이 뱀 대가리 생긴 건 어떻게 보여요!”
눈치껏 범위를 유지하며 뒤따라오는 리오에게 또다시 물었다.
생김새 역시 내게만 보이는 환상인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이는 방식인 건지 확인해둘 필요가 있었다.
리오는 짧은 텀을 두고 대답해왔다.
“좀…… 이상합니다! 채희 님이 말씀하신 눈 같은 건 확인할 수가 없어요!”
“네모? 이상한 지지직거리는 사각형 모양?”
“그렇습니다!”
“오케이.”
마지막 말은 리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홀로 작게 중얼거렸다.
얼굴이 있든 말든 내 몸통의 세 배 정도 될 만큼 커다란 송곳니로 바닥을 찍고, 강한 물줄기로 돌을 녹이는 산성을 내뿜는 구드를 맞서 발걸음을 멈췄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건 뒷발에 작은 먼지 연기가 흩날렸다.
기괴한 모습에 기분이 좀 잡쳤을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공격 패턴은 내가 알던 구드와 같았다.
쉬익. 쉬시시식.
놈의 소름끼치는 숨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내 뒤를 정신없이 뒤쫓던 뱀 역시 몸가짐을 한 번 채비하는 것처럼 머리를 털어내고, 두 개의 목을 길게 들어 올렸다.
솔직히 말해선 숨이 턱 막혀올 정도로 위압적인 크기였다.
한눈에 담기도 벅찬 마수를 상대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 흉포한 존재감은 그 앞에 마주 선 내가 우주의 먼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글쎄.
“내가 못 오게 막고 싶었으면 잡몹 패턴부터 뜯어고쳤어야지.”
1 관문 보스를 한순간에 잡몹으로 취급해 버린 윤채희는 별달리 긴장하지 않았다.
독 안에 든 쥐를 구경하듯 멈춰있는 구드의 대가리 옆으로 스스스슥. 긴 몸통이 돌며 내가 설 땅의 범위를 조금씩 좁혀왔다.
도망칠 공간조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리오 제발 가만히 빠져 있어!”
보이지 않는 윤산영에게 경고하며 펜타곤 지팡이의 손잡이를 닦아 쥐었다.
구드의 쉭쉭대는 소리에 맞춰 고요히 숨을 죽였다.
이 면상 없는 놈이 언제 달려들게 될지.
그것만을 예측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기억해라.’
긴장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이 세계에서 내가 가진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낼름. 낼름낼름.
구드의 혓바닥이 깃발처럼 펄럭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여기서 한 대라도 맞으면 고인물 타이틀 다 뗀다, 새끼야.”
핏발 선 눈으로 지면에 처박히는 놈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지혜의 표적】.”
끼이이잉―
뭔가 작동되는 얇은 현 소리와 함께 번쩍.
구드의 독선 뒤쪽, 생선 아가미처럼 벌어져 있는 숨구멍 아래로 샛노랗고 작은 점이 하나 떠올랐다.
저곳이 바로.
‘구드의 약점.’
타앙!
단발마의 강렬한 총성이 울렸다.
잠시 뒤.
쿠우우우웅.
꼿꼿하게 세워져 있던 구드의 한쪽 머리통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땅바닥으로 처박혔다.
그 위로 타박.
작은 발소리가 자신보다 큰 비늘을 밟고 섰다.
쏘 이지.
“너무 쉽네.”
[심판]의 총을 쥔 윤채희는 눈썹을 까딱였다.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