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257
147화
“몸은 좀 괜찮아요?”
아직도 어리벙벙해 보이는 리오의 등을 받쳐 들었다.
사태를 파악하려는 듯 한참이나 사위를 둘러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채희 님…….’ 하고 나를 불렀다.
“저희 제대로 도착한 건가요?”
묻는 얼굴에는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까 잔뜩 걱정이 서려 있었다.
하여간. 깨어나자마자 묻는 거라는 게.
“리오가 잘 안내해준 덕분에 맞게 도착했어요. 여기가 그 최종 보스의 공간이에요.”
“그럼 그자는 어디에……!”
다급히 몸을 일으켜 세우려던 리오의 말문이 순간 턱 막혔다.
뭘 그렇게 충격받은 얼굴로 보고 있나 했더니, 어느새 우리 쪽으로 다가온 이모아가 뒤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채, 채희 님이 둘.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 모르는 시선이 정신 사납게 움직였다.
어깨를 으쓱이고 아이를 가까이 오라 불렀다.
쭈뼛대는 이모아의 어깨를 감쌌다.
“누가 진짜 윤채희게.”
“채희 니임…….”
“장난, 장난.”
더 놀리면 울기라도 하겠다.
푸스스 터진 웃음을 지우고 몇 번 목을 가다듬었다.
“굳이 따져보자면 윤채희가 둘이 아니고 이모아가 둘인 거겠죠. 인사해요. 여기가 이 몸의 진짜 본체. 이쪽은 알고 있겠지만 리오예요.”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둘 다 분위기에 휩쓸려 머쓱하게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댕그란 눈들은 똑같았다.
특히나 이모아는 자기가 잘못한 일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리오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의 상황에 부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듯이 곁눈질하는 시선을 받아내며, 일단 리오에게 대강의 일들을 먼저 설명했다.
은하수에 들어오고 나서 최종 보스를 대면했던 일부터 지금까지.
“그랬군요. 최종 보스가 내민 선택이라는 게.”
그는 꽤 담담히 사태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이모아를 대신하라는 대목에선 몇 번 험상궂게 표정을 구기긴 했지만, 대체로 평온한 낯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리고 잠시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이제부터 말해야 할 이야기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침묵을 지키는 중이었고, 리오는…… 글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골몰히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마침내 눈을 마주친 그는 망설이는 얼굴로 물었다.
“그럼 채희 님께서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싸워야죠, 당연히.”
당연하다는 듯 답하자 리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물론 결심하기까지 많은 멘탈 붕괴가 있긴 했었지만, 지금 내가 그 미묘한 엔딩에 안주할까 봐 이렇게 심각했나?
자기 얘기는 눈치라도 채라고 일부러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묻지도 않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면, 나처럼 아주 당연하게 믿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 모든 시련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모든 죄책감을 벗어던지고,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그때는 정말로 재앙을 불러일으킨 윤산영.
속죄하지 못해 안달이 난 지구의 윤산영이 아니라, ‘리오’.
그 자체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리오.”
울렁이는 가슴을 애써 눌러 삼켰다.
“그 부분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요.”
듣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그를 바라보며 한참이나 입술을 씹었다.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우리가 탑에 들어갔을 때, 내가 리오한테 말하지 않았던 게 있었는데.”
“어떤…….”
“리오의 과거를 봤어요.”
리오가 최종 보스랑 거래하던 그때를.
작게 덧붙이자 그의 얼굴이 파리하게 물들었다.
그동안 대충 이 세계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게 꽤 많다, 미래도 몇 개 알고 과거도 드문드문 안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긴 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너에 대해 봤다’ 이야기해준 적은 처음이었다.
리오가 지나치게 사색에 빠지려 하기에 황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원래도 대강의 사정은 알고 있었어요. 최종 보스가 어떤 조건을 내걸었는지, 리오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무슨 선택을 했는지.”
“……알고 계셨군요.”
“그게 한 번도 리오 탓이라 생각한 적도 없고요.”
이 모든 게 다.
내 말에 허옇게 질린 얼굴로 떨린 숨을 고르던 리오의 얼굴이 조금은 불안감을 덜어냈다.
다만 머리 위에 달린 의문스러움은 떨어져 나갈 기색이 없었다.
리오는 잠자코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힘들었다.
그 얼굴을 보니 더 말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그 생각으로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았다.
손톱 끝으로 손바닥을 아프게 파고들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리오가 떠난 다음의 게나를…… 탑에서 봤어요.”
흐읍.
작은 숨이 멈췄다.
차마 그 얼굴을 확인할 자신이 없어 땅바닥에 시선을 처박고 말을 이어나갔다.
“창조자가 리오만 계약하면 다른 가족들은 살려주겠다고 했었죠. 게나는 더 이상 공격하지 않겠다고. 모든 고통을 너 혼자 짊어지기만 하면 된다고.”
“…….”
“놈의 거짓말이었어요.”
손과 목소리.
어느 부분 하나 떨고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꽉 깨무느라 아려오는 턱 아귀를 간신히 움직여 마지막 사실을 전달했다.
“리오가 알던 게나는 이제 없어요.”
전부 창조자의 손에 파괴됐어요.
리오가 이 세계에 떨어진 순간부터.
네가 지키려던 것.
돌아가려던 곳은 이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그 사실을 전하는 내 입마저 야속하지 않을까.
꼴 보기 싫진 않을까, 그런 생각에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들 수가 없었다.
리오는 탄성 하나 내뱉지 않았다.
그대로 멈춰 버린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버석한 손이 애써 바닥을 지탱했고, 텅 빈 눈이 아득한 곳을 응시했다.
생기를 잃은 리오의 얼굴은 바스락대면 부스러져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낙엽처럼 보였다.
나는 그가 어떤 심정일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어떤 말도.
어떤 이야기도 더 내뱉을 수 없어 그저 조심스럽게 그를 끌어안았다.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절망을 눌러 삼켰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내가.
기도하듯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당연히 당신에게도 행복한 끝이 있을 줄 알았다.
최종 보스를 죽이고 세상을 구원했으니까.
리오가 이 세계에 떨어졌던 전으로 되돌아갔으니까.
그 역시 다시 가족들을 만나고, 풍족하진 않지만, 서로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하는 삶이 이어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불모지에 리오가 혼자 떨어져 있을 거라고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이겸을 구하고 싶어 반복했던 그 세계에 끝엔 언제나 홀로 게나에 서 있을 리오만 떠올리면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를 구할 방법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아 울어 버리고 싶었다.
이미 일어난 일.
과거를 뒤집는 힘은 내게 없었다.
“왜.”
공허한 목소리가 허공을 긁었다.
나는 더 꽈악 리오를 끌어안았다.
이대로 사라져 버리지 않게.
산산조각이 나 단 하나의 마음으로 버텨왔던 리오가 죽어 버리지 않도록.
“왜 그랬을까요. 약속…… 했는데.”
나를 바치는 대신 게나는 건들지 않겠다고.
그렇게 말했었는데.
왜. 어째서.
더듬대는 목소리가 답을 구하듯 반복해 중얼거렸다.
왜.
왜.
“왜.”
그 순간.
꾸울렁.
평평하던 프랙탈 무늬의 바닥이 파도처럼 요동쳤다.
그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뒤편에 서 있던 이모아는 엉덩방아를 찧었고, 나도 반사적으로 리오의 몸을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드드드득.
칠판을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내는 소음이 귓가를 찢었다.
뭐지?
‘창조자의 인내심이 다 되기라도 한 건가?’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창조자의 모습은커녕 반짝이는 은하수가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황급히 화면 쪽으로 시선을 옮겼으나 거기서도 여전히 반절 이상 사라진 세계에서 목숨 걸고 전투하는 바깥쪽 사람들의 모습이 비쳤을 뿐.
혼비백산하고 있는 건 우리들이었다.
약한 너울처럼 꿀렁대던 바닥의 파동은 점점 더 심해져 중심을 낮추지 않으면 쉽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
“저는 또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한 거네요.”
빈 껍데기처럼 중얼거린 리오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마치 이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바닥의 영향을 받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
직감한 건 그 순간이었다.
나와 리오의 위치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나는 여전히 한 곳에 앉아 있는데, 리오가 서 있는 공간만은 계속해서 팽창하듯이 멀리멀리 뻗어 나갔다.
“리오!!”
절규하듯 그의 이름을 외쳤지만, 리오의 시선은 내게 맞닿지 않았다.
그는 널따란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며 이야기했다.
왜.
그런 건.
“이유는 직접 물어보면 되겠죠.”
뚝.
뚜두두둑.
무언가 거대한 나무 같은 것이 부러지는 소리가 창공을 울렸다.
은하수 위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벽에 뚫린 구멍처럼 중앙이 갈라지고, 자잘한 금이 뿌리처럼 옆으로 뻗어 나갔다.
그 틈새로 녹빛 오오라가 새어 나왔다.
치명적인 독약의 색처럼.
혹은 한 번 발을 디디면 빠져나올 수 없는 늪지대의 색처럼 위험한 빛을 띠고 있는 그 균열은 본 적 있는 것이었다.
【호오】
감탄 어린 음성이 뇌를 뒤흔들었다.
찬란한 별의 길 위로 창조자가 부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천천히 눈을 뜨고 균열과 리오, 그리고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진심으로 경탄한 얼굴을 한 뒤 리오의 머리맡 위로 빙빙 맴돌았다.
리오는 처음 맞이한 압도적인 광경일 텐데도, 그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창조자와 맞서고 있었다.
머리가 아찔해져 오는 건 나뿐이었다.
지금 창조자의 앞에서.
‘리오는 먼지만도 못한 존재인 게 분명하다.’
그것이 숨을 한 번 불면 사라져 버릴 정도로 다른 격의 존재였다.
하지만 창조자는 지나치게 리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머리끝이 서서히 그의 목가로 다가갔다.
【네게 내 힘이 조금 전이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감히】
쩌렁쩌렁한 음파가 모든 것을 가라앉힐 것처럼 필드를 울렸다.
하지만 리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재미있게 되었구나】
그것이 말했을 때, 나는 똑같이 생각했다.
‘최악이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