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6
36화
“고생했어.”
“오야.”
땀이 나 번들거리는 얼굴을 신하나가 벅벅 닦았다.
찬물을 내밀자 그녀는 그제야 조금 살겠다는 얼굴을 했다.
그렇다.
지금은 새빛중의 하이라이트.
위기대응과의 가을 수행평가 시간.
‘결국…… 이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나는 멍하니 모래바닥 위를 내려다봤다.
방금 전까지 호각을 다투며 겨루던 한별이 웃으며 신하나의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갔다.
“쟤 나랑 1학년 때도 붙었던 거 알지?”
“아, 으응.”
“존나 컸어. 작년엔 스킬도 제대로 못 쓰고 찔찔 짜던 게.”
신하나는 그렇게 말한 것치곤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지은하! 권우영!
이쌤이 다음 타자를 호출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위기는 학교 운동회라고 해도 다를 바가 없었다.
3반으로 나뉜 과 학생들이 모두 나와 실습을 치루는 건 물론이고, 서로의 전력을 분석하고 토론했다.
더워죽겠는데 학생들을 병풍처럼 앉혀놓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한쪽에 아이스박스에 담긴 물이며 에너지 드링크를 통으로 쌓아놔 복지도 좋은 편이었다.
생각해보면 땡볕에 몇 시간이고 앉혀놓던 우리 회사 야유회보다 훨씬 더…….
“어, 한미래 나온다.”
누군가의 소리침과 동시에 등나무 계단 아래 모여 있던 아이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왜지?
전과 다른 분위기에 턱 끝으로 흘러내린 땀방울을 훔치며 슬그머니 귀를 기울였다.
“정확히 13초에 내 소듕한 마이쮸 건다.”
“아, 이 새끼 또 뭣도 모르는 소리하네. 난 10초.”
“응, 아니야~ 나는 8초에 걺.”
“승환이 새끼 불쌍해서 어떡하냐.”
뭐라는 거야? 달리기 하냐?
재미도 없고 시시껄렁한 대화에 관심을 껐다.
자그맣게 보이는 한미래는 요란한 준비 운동도 없이 여느 때처럼 덤덤한 느낌이었다.
팔을 축 늘어뜨린 게 귀찮아하는 거 같아 보이기도 하고.
반면, 상대방은.
“쟤 지금 떠는 거야?”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고 있었다.
내 의아한 물음에 신하나는 관심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럴 만도 하지.”
“응? 왜…….”
휘익!
실습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시이작!” 하고 외치는 앞 녀석의 타이머의 시간도 흐르기 시작.
“…… 4초 77.”
하자마자 멈췄다.
운동장의 인공잔디가 화산 분출물처럼 후드득 떨어졌다.
대자로 뻗어 버린 상대방 앞에서 한미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세로 뚱하게 서 있었다.
“종료! 승환아, 괜찮니? 양호실 가야 될 정도야?”
“아으, 쌤…….”
남은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착착 움직였다.
한미래의 상대는 결국 들것에 실려 나가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말았다.
그녀가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등나무 계단 아래로 걸어오는 동안, 학생들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마른 침을 삼켰다.
‘쨉도 안 된다.’
압도적인 승리였다.
하긴. 한미래는 이미 중학생의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중학생이 뭐야.
이 세계에 존재하는 A등급 헌터들과도 맞먹어도 무리가 아니었다.
현재 최대 전력은 파악할 수 없어도, 딱 보기에도 그냥 강력한 상대라는 뜻이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어.’
한미래가 완전히 애카의 한미래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있다.
분명 미성숙한 부분이 있을 것이니 그 부분을 파고들어야 한다.
만약 시간 내에 내 편으로 끌어오지 못한다면, 그다음엔 저 녀석을 상대할 플랜B, C까지도 생각해 놔야…….
“이모아!”
“으악!…… 넵.”
갑자기 불린 이름에 펄쩍 뛰며 일어섰다.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새 나왔다.
애써 침착한 척하며 고고하게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시작부터 본새 안 나게.
떫은 표정으로 홍영찬을 마주했다.
녀석은 아주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목을 돌렸다.
“사전에 말했었지만 한 번 더 고지한다. 너희도 알고 있겠지만 등급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야.
비슷한 전력을 내는 전투라면 모르겠지만 조금 평가 기준이 다르다.
선생님들이 판단하기에 먼저 유효타를 세 번 이상 내는 사람이 점수를 따가는 형식이야.
그렇다고 봐주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절히. 알지? 선을 지키면서 최선을 다하기.”
“아, 쌤. 저도 그정도는 알죠, 당연히.”
너희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상황만 보면 이건 홍영찬에게 전달하는 이야기였다.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하라고.
놈은 아주 쉬운 사냥감을 앞에 둔 포식자처럼 거만한 태도로 대답했다.
이쌤은 나를 흘긋거렸다.
그럼 어쩌나. 나도 성실하게 답해줘야지.
“네. 적당히 할게요.”
홍영찬의 눈이 세모꼴로 변했다.
마주보는 시선에 스파크가 튀었다.
이쌤은 보이지 않는 기싸움에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휘익!
휘슬이 울렸다.
“다신 못 지껄이게 만들어줄게.”
예상대로 홍영찬은 첫발부터 초보자용 목검을 크게 휘둘렀다.
자만심에 가득 찬 움직임이 허점투성이다.
가볍게 몸을 뒤로 물러 피하자 비릿한 미소가 감돈다.
화르륵. 놈의 검에 시커먼 오오라가 휘감기기 시작했다.
‘무기 의존도도 좀 있고.’
느슨하게 녀석의 공격 패턴을 파악했다.
신하나가 단단히 일러뒀던 가르침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암속성이 몇 없긴 해도 별거 아냐. 어두울 때면 몰라도 우리는 운동장 한가운데 땡볕에서 하니까. 대신 한 가지 거슬리는 스킬은, 쉐도우 어뷰징.’
쉐도우 어뷰징.
그건 나도 알고 있는 스킬이었다.
어떤 사물이든, 동물이든 그림자만 있다면 홍영찬은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분명히 그걸 이용해…….
“뻔하거든.”
뒤통수를 치겠지.
녀석이 눈앞에서 사라지자마자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살벌한 기운이 담긴 검이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다.
뒤로 다리를 뻗어 걸고, 홍영찬이 잠시 비틀거린 사이에 공격 범위를 빠져나갔다.
놈은 예상외라는 것처럼 비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내 공부는 좀 해왔나 보다?”
“할 것도 없던데 워낙 별거 없어서. 아, 좀 쪽팔리면 몇 대 맞아줄까?”
“이 새끼가.”
달려드는 홍영찬을 피하는 건 쉬웠다.
마수의 1픽셀을 감지하며 다음 패턴이 뭘지 판단하던 나에게 이것쯤이야.
하지만 문제는.
‘타이밍.’
홍영찬은 지금 내가 어떤 카드를 쥐고 있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못 하는 E급 이모아.
그게 다다.
가장 임팩트 있게.
모두가 놀랄 만큼 충격적이게.
그동안 너희가 알고 있던 이모아가 아님을 알릴 기회는 단 한 번이면 충분했다.
“쥐새끼처럼 튀어 다니는 건 여기까지.”
다시 내 그림자를 잡은 홍영찬이 정수리 위로 뛰어올랐다.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다는 듯, 직선으로 목검을 찍어 내리는 자세였다.
눈앞으로 두 겹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끝났네.”
“폐급 전보단 오래 버티지 않았냐?”
상황을 지켜보던 학생들이 한두 마디씩 말을 얹었다.
동시에, 공기가 일렁였다.
두웅!
내 몸을 두른 빛이 퍼져 나갔다.
“X발, 뭐야.”
누군가의 탄성이 똑똑히 들렸다.
홍영찬의 얼빠진 얼굴을 마주 봤다.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은 놈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충분히 당황했을 것이다.
“공격이…….”
“지금 맞은 거지, 쟤?”
“이모아가 홍영찬을 밀쳤다고?”
내 마나 파도에 얻어맞아 뒤로 나동그라졌으니.
손아귀 안에서 반짝이는 빛이 홍영찬을 향했다.
놈의 이마 한가운데에 지팡이 끝을 가져다댔다.
“염화.”
날카로운 불꽃이 손끝에서 쏟아졌다.
***
“저게 뭐야?”
“모아가 저런 스킬도 있었나?”
“그럴 리가요.”
구령대 위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위기대응과 선생들이 쑥덕댔다.
언제든지 쓰러진 이모아를 들고 양호실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던 이산용 선생 역시 고개를 갸우뚱 꺾었다.
“쟤가 저런 스킬을 쓸 수 있는 애가 아닌데…… 이거저거 배워보라고 떠 먹여줘도 밑 깨진 독처럼 흘려보내던 녀석이.”
“그러니까요. 마나도 약하고, 진짜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몸에서 튕겨냈잖아요. 스킬 유물이야 화랑 쪽에서 구해줬다고 해도, 저건…….”
“하는 공격이나 움직임이 전혀 E급 같지가 않아요. 완전 다른 사람 같은데요.”
“어어, 저거 봐. 또 영찬이가 말리고 있네.”
한 번 분위기를 잡은 이모아는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홍영찬을 몰아치고 있었다.
거기다, 공격이 통한다.
그 짧은 사이에 등급이 올랐나?
하지만, 그래봤자 E, D급일 아이가 B급을 상대로?
꺅꺅대는 소리가 울려 펴졌다.
학생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모두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비등하게 싸우는 둘의 전투를 지켜봤다.
근접과 원거리.
애초에 스킬 범위로만 따지자면 게임이 안 되는 종류다.
하지만 둘 사이의 존재하는 격차와 그동안의 데이터는 현 상황과 전혀 매치되지 않았다.
이산용 선생은 심각하게 턱을 쓰다듬었다.
“일단 좀 지켜보죠. 둘 다 기초 스킬이긴 해도 마나 소모량이 꽤 있는 종류라. 공격할 수 있는 지점을 잡았다 해도……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요.”
***
그리고, 그 말 그대로였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애써 몸을 곧추세웠다.
내장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이 모든 건 다.
【마나 회복(1단계)…… 01:38:52 소요】
또 마나 때문에.
말도 안 나온다.
부족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종합 등급 올리기도 가혹했는데.
그 짧은 시간에 회복량까지 늘리기는 무리였다.
평가 중에 마나 물약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발목을 붙잡았다.
처음엔 멍청하게 상황파악을 하던 홍영찬도 서서히 감을 잡고 다시 공격할 틈을 노렸다.
쇄액!
녀석의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살벌했다.
사실, 이정도면 잘 버텼다.
근력 등급을 올리지 않았으면 놈의 공격이 스쳤던 순간 뻗었을 건 당연한 얘기고.
제대로 공격을 주고받았으니 낙제 점수도 면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슬슬 한계인 거 같은데 끝내지?”
짓밟아 놔야 기분 째지지.
뜻밖의 상황에 방어적으로 경계하던 놈의 공격이 처음처럼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마나가 부족해 어물쩡거리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하지만.
‘저렇게 나대다가 또.’
처맞지.
학습이 어두운 녀석의 명치 쪽을 조준했다.
빛의 파도가 날아가 홍영찬의 갈비뼈 사이를…….
‘안 닿았다.’
녀석은 두 번은 당하지 않겠다는 듯, 마나 파도의 범위 안에서 재빨리 벗어났다.
젠장.
판단력이 흐려질 만큼 체력이 딸려가고 있었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은 검이 맹렬하게 나를 쫓았다.
쇄액! 쿵! 콰아앙―!!
종이 한 장 차이로 타격 범위를 빗겨나가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형세가 뒤집혔다고 말할 장면이었다.
주변의 분위기는 ‘그러면 그렇지’ 싶은 흐름으로 흥미를 잃어갔다.
단 한 명, 신하나만 빼고.
“야! 이모아!! 정신 차려!!”
목이 찢어져라 응원하는 소리에 옆자리 학생들은 모두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이정도면 너무 잘 싸웠죠. 피해도 비등비등하고.”
이산용 선생의 옆에 온 서이수 선생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를 힐금 바라본 이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 선생은 중요한 로비라도 하듯 귓속말을 남겼다.
“그러니까 이번엔 점수 좀 잘 쳐줘요. 여기까지 왔는데 낙제 받으면 모아 쟤도 불쌍하고, 담임인 나도 불쌍하고, 방과 후에 남아야 하는 이쌤도 불쌍하고…….”
“잠깐만요.”
서 선생이 팔을 뻗어 이 선생의 말을 가로막았다.
뭐야? 기분 나쁨을 숨기지 않고 그의 팔을 툭 쳐낸 서 선생이 시야를 돌렸다.
“끝났네.”
홍영찬의 쉐도우 스킬에 정확히 이모아가 걸려들었다.
지금까진 놀랍다 싶을 정도로 잘 피해왔는데, 조금씩 해가 넘어가며 그림자의 범위가 길어진 것까진 판단하지 못한 것 같았다.
실습 경험치가 배는 높은 홍영찬이 이 기회를 놓칠 리는 없었다.
아무리 이모아가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줬다고 하더라도.
게다가 이모아는 지금 딱 보기에 마나도 부족한 상태였다.
제대로 맞으면 스펙 상 최소 세 시간은 드러누워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미리 들것을 준비…….
“말도 안 돼.”
큰 사고를 막기 위해 분주하게 생각하던 서 선생의 사고가 딱 멈췄다.
끝난 건.
“저걸, 어떻게…….”
이모아의 쪽이 아니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 상황을 예상했다는 것처럼 아이는 찢어지게 웃고 있었다.
그것도 입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