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2
42화
“괜찮아요?”
너무 세게 밀었나.
조금 추잡스럽게 넘어져 있는 윤산영을 붙잡아 일으켰다.
몇 번 포탈에서 떨어져 봤다고 나는 중심을 잡고 잘 안착했다.
아직도 정신이 없어 보이는 놈을 살피며 주변을 확인했다.
사방이 암흑이었다.
나와 윤산영이 도착한 반경만 핀포인트 조명이 딱 떨어진 것처럼 새하얬다.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에서 기묘한 공기가 맴돌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진짜 들어왔다.’
바짝 마른 침을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빛의 끝에는 문이 있었다.
한눈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철문.
‘모니터로 보는 거랑은 비교도 안 된다.’
적막한 분위기가 정수리를 짓눌렀다.
크기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저 문은 절대 윤산영과 내가 열 수 없다.
그러니까, 여기를 나갈 유일한 방법은.
‘죽거나, 저 히든보스 놈을 죽이거나.’
조금 밑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내 키의 족히 세 배는 될 법한 돌로 만든 검.
그리고, 위풍당당한 기세로 그 검을 쥐고 있는 문지기 석상.
“노력…… 해보겠습니다.”
어느새 상황 파악을 마친 윤산영이 옆에서 다짐하듯 속삭였다.
그래. 못 하겠다느니, 죽겠다느니 기운 빠지는 소리는 안 해서 좋다.
하지만 우리는 광대함에 질식한 채 한참을 아무 말도 나누지 못했다.
상식에서 벗어난 초월적인 광경이란 이다지도 압도적이다.
턱턱 막혀오는 숨을 억지로 가다듬었다.
“저 문지기 약점은 머리랑 이어지는 목 틈 사이에요. 무조건 헤드를 노리는 쪽으로.
아, 그리고 갑옷 두른 부분은 대미지도 반값으로 깎여 들어가니까 참고 하구요.
검 휘두르는 게 위협적이긴 한데, 그만큼 속도가 떨어져서 피할 만은 해요. 그렇다고 초장에 너무 맘 놓고 있지 말고…….”
손가락을 풀며 기본적인 정보를 늘어놓았다.
아는 걸 줄줄 외니 차라리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넋 놓고 듣던 윤산영의 눈빛도 서서히 결의로 물들었다.
지팡이를 굳세게 쥐었다.
더 이상은 지체할 시간이 없다.
윤산영에게 가볍게 눈짓하고 문지기의 앞으로 걸어갔다.
따라오지 말라는 신호를 알아들었는지 놈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지켜봤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온몸의 근육들이 뻣뻣이 굳었다.
이 마수의 등급은 C+.
히든이라는 이름을 단 것 치고는 급격한 변동이 없는 소소한 수준이었으나, 그건 순전히 공격력만을 평가한 수치일 뿐.
녀석의 피통은 당장 어떤 A급 마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만큼 장기적인 싸움이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오랜 집중력을 요하는 만큼 위험 부담이 높았다.
‘한 번만 삐끗해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저 무지막지한 칼에 맞는 걸 상상만 해도 뼈 한구석이 시린 기분이었다.
다가온 거리를 가늠하며 문지기의 칼에서 시선을 놓지 않았다.
실수는 없다.
지금부터는 실전이다.
모두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이 마수를 작동시키는 조건은 단 하나.
‘침입.’
콰아아앙!
고막이 터질 것 같은 폭음과 함께 땅이 거세게 진동했다.
균형을 잃고 무너질 뻔한 걸 간신히 버텼다.
먼지바람이 몸을 뒤덮었다.
불과, 코 3cm 앞.
‘…… 미친.’
거대한 돌검이 박혀 있었다.
후두두둑.
느리게 검이 뽑히며 베인 바닥의 상처를 드러냈다.
벼락처럼 삐죽삐죽 솟은 새까만 균열 사이가 끝도 없는 절벽 같았다.
저기에 발이라도 헛디디면 죽는다.
그런 생각을 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몇 발자국 떨어지자 칼날을 아래로 향하게 들고 있는 문지기의 모습이 완전히 눈에 들어왔다.
번쩍.
침입자를 감지한 문지기의 눈이 뜨였다.
입술을 감쳐물며 잊지 말아야 할 조건들을 되새겼다.
1. 공격은 되도록 위쪽으로 유인할 것.
2. 늦어도 30분 안에 돌파할 것.
3. 문 쪽으로는 가까이 가지 말 것.
***
“길드장님! 길드장님!”
이겸은 사색이 돼 회의실 안으로 뛰쳐 들어온 구서복을 보며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다.
1시간 정도는 선발전 송출 화면 앞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또 등장할 거라던 확신이 무색하게,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는 자신의 여동생을 생각하며 업무로 복귀한 참이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내내 순위표를 확인하고 난처한 기색을 표하던 구서복에게도 조금 쉴 틈을 만들어주고자.
“무슨 일이 생겼나?”
“아니, 그건 아닌데…….”
이겸이 굳은 얼굴로 묻자 구서복은 여전히 우물쭈물거렸다.
눈치를 살피다가 에라 모르겠다, 싶은 얼굴로 들고 있던 작은 단말기를 건넸다.
침착하게 받아든 이겸이 확인한 건 마수와 싸우고 있는 헌터 둘.
한 명은 마스크와 안경으로 얼굴을 꽁꽁 숨기고, 다른 한 명은 천으로 만든 복면을 뒤집어썼다.
싸우고 있는 마수가 설화급 레벨인 것이 좀 위화감이 들긴 해도, 평범한 전투 현장이었다.
그런데?
이겸의 시선이 다시 구서복에게 향했다.
구서복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마치 자기가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말했다.
“거기 싸우고 있는 마스크…… 그거 아가씨 같아요.”
“…… 뭐?”
“아무리 생각해도 나갔을 때 입고 계셨던 옷이랑 똑같아요. 거기다가 싸우고 있는 마수가…….”
히든 보스예요.
덧붙여진 말에 이겸의 몸이 잠시 비틀거렸다.
***
똑. 똑.
바닥으로 땀방울이 떨어졌다.
턱가를 대충 손으로 훔쳤다.
온몸이 땀으로 번들거려 닦이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시선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온다.’
계산한 검의 궤적을 피해 바닥을 굴렀다.
후우우욱 ̄!
둔탁한 강풍이 머리 위를 종잇장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무게에 비례한 원심력.
공격이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있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다리에 힘을 줘 벌떡 일어섰다.
당겨진 허벅지가 감전된 것처럼 찌릿찌릿 울렸다.
나비처럼 뛰어올랐다.
문지기의 팔을 밟고 어깨 부근까지 전력질주했다.
“염화.”
솟구치는 불길이 녀석의 헬멧 사이를 물어뜯었다.
윤산영과 협공을 벌인지도 15분 째.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있나?’
나는 문득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생각은 아무래도.
‘없다.’
하지만 없어도 있게 만들어야 한다.
하물며 마나나 스킬이 부족한 건 전혀 아니었다.
몇 번 위험한 순간이 있긴 했지만 해왔던 전투들에 비하면 그저 체력과 정신력의 싸움일 뿐.
내 공격에 뒤이어 등 쪽을 거슬러 오른 윤산영이 목 부근에 칼을 찔러 넣었다.
잘 빠지지 않는 검에 애를 먹다가 문지기에게 기척을 들켰다.
광포하게 움직이는 마수 덕분에 윤산영의 다리가 깃발처럼 휘날렸다.
자칫하면 빛 바깥으로 튕겨 나갈 것 같다.
“조심해라, 조심해…….”
윤산영을 주시하며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만약 놈이 저 사태에서 혼자 벗어나지 못한다면 내가 미끼가 돼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윤산영은 다행히, 아주 아슬아슬하게 돌검의 날을 밟고 바닥으로 추락하다시피 착지했다.
칼보다는 오히려 뭉툭한 둔기의 느낌이 강하지만…….
콰아아아앙!
파괴력만큼은 엄청났다.
우지끈 부서진 바닥이 저 밑.
뭐가 있는지 모를 암흑 속으로 떨어진다.
끝에 닿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발 디딜 곳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불리한 건 우리다.
하지만 항상 실전이 머릿속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듯이.
‘이제 바닥 절반은 날아갔다.’
조각난 쿠키처럼 깨져 있는 바닥을 보면 정신이 아찔해졌다.
하지만 문지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확신할 수 있는 건, 마수의 움직임이 단순히 침입자를 경계하기 위해 휘두른 것이 아닌, 사살을 목표로 둔 내려찍기 페이즈로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이것만 버티면 된다. 이것만.’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래도 윤산영과 번갈아 공격하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수월하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한 명이 밑에서 어그로를 끌면, 한 명이 위에 올라가서 공격하고.
또 바턴 터치한 다음에 반복, 반복, 반복…….
움직이는 거리만 보면 힘만 빼는 헛짓 아니냐 싶겠지만 문지기의 특성 때문이었다.
놈은 문에서 일정 거리 이상 멀어졌다 싶으면 본래 위치. 문 앞으로 돌아가 잠시 동상 상태로 돌아갔다.
그때는 공격이 먹히지 않는 건 물론이고 피통이 2% 회복됐다.
퍼센티지만 보면 많아 보이는 양이 아니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놈의 피통은 50만 이상.
나와 윤산영이 적어도 스무 번 이상은 이 짓을 더 반복해야 할 수치였다.
‘사람 미치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거리를 계속해서 적당히 유지해야 했다.
지금까지는 잘 해냈다.
이제 정말 조금만 더…….
생각하는 순간 머리 위로 윤산영이 날아갔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머리카락도 잡을 수 없을 속도였다.
그렇게 날아가서 어디라도 처박히면 좋으련만, 문제는.
‘여기는 벽이 없다.’
깨닫는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윤산영은 바닥 끄트머리를 붙잡고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마땅히 걸리는 부분도 없어 자꾸만 손바닥이 뒤로 직직 끌려갔다.
그 순간 거대한 발걸음이 땅을 울렸다.
공격할 목표물을 잃은 문지기가 문 앞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두 가지 선택지로 머릿속이 명료해졌다.
누구에게 먼저 갈 것인가?
스트레스에 명치끝이 쓰라렸다.
‘진짜 죽이고 싶다.’
그게 누가 됐든.
나는 바닥을 박차고 윤산영의 쪽으로 달렸다.
매끈한 바닥에 운동화 밑창이 끼긱 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쿵. 쿵. 쿵.
문지기의 발소리가 내 심장 박동과 비슷한 속도로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 윤산영은 손 끝 마디로만 몸을 떠받들고 있다.
손가락이 하나씩 밑으로 떨어진다.
하나, 둘.
“정신 츠리라그.”
셋.
지팡이를 입에 물고 우물거렸다.
허공에서 달랑거리는 윤산영의 팔목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놈은 두려움과 안도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
무게 중심이 쏠린 탓에 내 몸도 함께 밑으로 기울어졌다.
지팡이를 문 고개를 살짝 옆으로 비틀었다.
이것 때문에 내가.
“염화.”
불길이 솟구치는 반동에 의해 나와 윤산영의 몸이 순간 붕 떴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놈을 앞으로 메다꽂았다.
붙잡은 팔을 놓을 시간 같은 건 없다.
윤산영을 어깨에 들쳐 메다시피 안고 용수철처럼 가볍게 뛰어올랐다.
놈과 공중에서 눈이 마주쳤다.
“가서 막아요.”
염화와 함께, 그대로 앞으로 던져 버렸다.
부스터처럼 힘을 받은 윤산영이 문지기의 근처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달려가면서도 이를 꽉 깨물었다.
윤산영이 1차로 시선을 끌어주기만 하면 다시 문지기의 방향을 돌리는 건 어렵지 않다.
완전히 도착하기 전까지만 붙잡으면 된다.
“제발, 제발, 제발!”
나 이 짓거리 그만하고 싶다고!
간절한 염원이 목구멍 바깥으로 쏟아져 나왔다.
윤산영이 문지기의 몸통을 밟고 어깨로 올라가는 게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
그는 안간힘을 쓰며 문지기의 여기저기를 썰어댔다.
상처도 나지 않는 스킬들이 흩어졌다.
조금만. 조금만 더.
문지기의 등이 서서히 돌아갔다.
나는 날아올랐다.
“염화.”
【스킬 ‘염화’가 각성자 이모아의 성장에 공명하여 ‘광염’으로 2단계 성장합니다.】
문지기에게 쏟아진 불꽃이 폭발했다.
【마수 처치 +27000 pt】
【관문 보상 +10550 pt】
【추가 보상 +2000 pt】
【실시간 랭킹 순위 : 1 (↑1805)】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