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47
47화
“설화 차원 배치가 됐다고? 모아 너한테?”
“네.”
서 선생은 삐뚤어진 안경을 고쳐 썼다.
그녀의 표정이 당황으로 역력했다.
주말 내내, 학교 선생님들 몇을 모아놓은 메신저가 왜 이렇게 소란스럽나 했더니.
화제의 주인공은 역시나 이 앞에 있는 아이였다.
갑자기 선발전 1등을 거머쥔 것으로도 모자라 온갖 구설수의 주인공이 되고, 정작 본인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등교했다.
학교 앞을 어슬렁거리는 기자들을 치우느라 아침부터 무슨 난리를 피웠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 아이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태연하게 교무실로 와서…….
‘또 폭탄을 터트리는구나.’
이 기구한 제자의 운명에 위로를 던져야 할지,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주변 선생들만 해도 안 그런 척. 이쪽으로 뒤통수가 쏠려 있었다.
아이가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그 주에 몇 번 결석하게 될까 봐 미리 말씀드리러 왔어요. 저도 이런 건 처음이라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잘 모르겠어서…….”
“아, 그, 그렇지. 설화 차원이면 보통 며칠은 걸리지.”
“네. 출석 처리는 차원 증명서 떼 오면 되는 거죠?”
“그래…… 체크 해놓을게.”
“감사합니다.”
용건을 마친 아이는 담백하게 인사를 건네고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고개들이 휙휙 돌아가는 게 보이자 제가 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크흐흐흠.”
부러 큰소리로 헛기침을 냈다.
몇몇 선생들이 화들짝 놀라며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숙였다.
안다.
모두가 악의를 품은 게 아니라는 것도.
그저 호기심뿐인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도.
하지만…….
‘왜 이렇게 저 애 주변에만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은지.’
탁.
소리 나게 교무실 문이 닫혔다.
‘아, 나 이놈의 스타성.’
가볍게 혀를 한번 찬 나는 주변을 의식하듯 더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복도로 빠져나오는 짧은 사이에도 다닥다닥.
소름끼치는 시선들이 따라붙었다.
등교할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내 눈앞에서 쑥덕거리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도 선발전 전에는 보이든 말든 무관심한 놈들이 더 많았는데…….
‘아주 공공재 났다 이거지.’
뒤에서 ‘야, 야.’ 하며 친구를 툭 치거나 ‘쟤야?’ 하는 소곤거림을 듣는 건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도 전보다 조금 달라진 건, 그 시선들 사이에 시기와 멸시만이 섞여 있진 않다는 것.
“쟤. 이번에 C등급 1등한 애.”
“미쳤다. 난 B로 올라오기 전에도 탑백 든 적 없는데.”
호기심과 엷은 추앙의 사이.
그래. 그게 바로 나예요. 으스대며 걷고 싶은 걸 간신히 붙잡았다.
아니, 원래 학교에서 인재 나고 그러면 현수막 같은 거 붙여주지 않냐?
‘인재 취급은 무슨 사기꾼 취급이나 받고.’
그러나 어찌하리.
‘이미 각오한 일이다.’
이 아무것도 모르는 중생들은 고작 C등급 1등에 술렁거리고 있을 뿐이다.
내가 앞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채로.
그렇지만, 이것만큼은 무시가 안 됐다.
“…….”
“…….”
계단 한복판에서 한미래와 따악.
눈이 마주쳤기 때문에.
그녀는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그 상태 그대로 발걸음을 멈췄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피하지 않는 어색한 분위기에 입이 바싹 말랐다.
‘인사? 인사해야 되냐?’
순간 머릿속으로 수백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떤 전투를 앞뒀을 때보다도 지금이 긴장됐다.
만약, 그녀가 ‘낙하산’이라는 이유로 이모아를 싫어하는 게 맞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노력했다’.
인정해 줬을까?
땀이 배어 나온 손을 머쓱하게 들어 올렸다.
“아, 안녀…….”
그 순간, 난간을 붙잡고 계단을 오른 한미래가 옆을 지나쳤다.
스치는 눈길.
나도 모르게 숨을 집어삼켰다.
짙은 악의가 살갗에 서리처럼 내렸다.
소름이 돋았다.
한미래가 떠나간 자리에도 나는 못 박힌 듯 움직이지 못했다.
‘틀렸다.’
뭐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됐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모아가 낙하산이라 싫어한다는 첫 번째 추측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갈아엎었다.
모든 작전은 폐기다.
분명히 무언가 더 있을 것이다.
한미래에게는 조금 더 복합적인 이유가.
‘한미래에 대해서 더 파봐야 한다.’
죽지 않기 위해선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세검정로4길 32」
파란 도로 표지판을 확인하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아니, 더 이상 확인할 것도 없었다.
요란스럽게 쳐진 폴리스 라인이 무슨 선물 포장이라도 한 것처럼 골목들을 칭칭 감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거미줄도 아니고…….”
툴툴대며 라인들 사이를 허리 숙여 지나갔다.
말하자면, 지금 난 상당히 기분이 더러운 상태였다.
‘내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한미래도, 지금 이 상황도.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차원 입구 앞에서 쭈그려 앉아 있는 한 남성이 보였다.
인상을 살피며 가까이 다가갔다.
설화 차원은 한 파트 당 서너 명 씩 팀이 배정되기 때문에, 나와 같이 차원에 들어갈 헌터일 확률이 높았다.
자세가 좀 불량해 보이긴 해도 채본에서 검증된 각성자일 테니 큰 걱정은 없지만…….
‘방해된다 싶으면 미리 묶어놓고 시작해야 하니까.’
그게 차원 진입 일수를 줄이기 위한 나의 이번 계획이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앉아 있던 남성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입에 물고 있는 사탕 손잡이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눈이 마주치고.
‘…… 아이씨.’
이럴 줄 알았다.
나는 강하게 밀려오는 덫의 기운을 느꼈다.
익숙한 얼굴, 익숙한 분위기.
‘정아성.’
놈은 채본의 공무원이자, 이겸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이놈은 애카에서도 이겸 관련 미션이라면 사사건건 따라붙기 일쑤였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중간 보스가 된 이겸을 잡으러 갈 때도 가장 먼저 팔 걷어붙이고 나선 인간.
한때 영웅이었던 이겸을 규탄하는 데에 목숨을 걸고, 뭐만 하면 ‘화랑’의 이름을 들먹이고.
더럽히고, 조사 나오고…….
심지어 채본도 이겸 때문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흉흉했다.
비정상적인 집착에 이유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충분히 납득이 갈 사안은 아니지.’
정아성은 이겸이 자신의 동생을 ‘죽였다’고 말하고 다녔으니까.
‘그러니까, 이 자식도 용의자 후보 중 하나다.’
복수심에 눈이 돌아 이모아를 죽였다 해도 크게 놀랍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한숨을 되삼켰다.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지만 다 짜놓은 판에 말리고 있다는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설화급 차원부터 관리자가 붙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비슷한 레벨의 각성자를 붙여주기 마련이었다.
우투리는 고작 C등급짜리 설화 차원.
그리고 정아성은?
‘A.’
이정도면 얘가 혼자서 개돌 작전으로 닫아도 상관없을 등급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두 정보 중에 뭘 경계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채본? 아니면 정아성?
…… 둘 다?
“차원 때문에 오셨어요?”
정아성이 아무 감정 없는 무표정으로 물었다.
나 역시 태연함을 가장해 경계를 늦추지 않고 대답했다.
“네. 여기 등록증이요.”
“…… 확인되셨어요. 서류 읽어보시고 표시된 곳에 체크 해주시면 돼요.”
평이한 톤으로 내뱉는 말투가 진정 공무원 뺨쳤다.
정아성이 내민 건 내게도 익숙한 ‘전사 시 후처리’에 대한 각서였다.
안 봐도 뻔한 말들에 체크해 나가며 시야각으로는 계속해서 정아성을 살폈다.
등록증을 보고 이름, 나이, 주거지를 확인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어떤 반응도 없다.
내가 이모아임을 알아도 완벽한 포커페이스였다.
대충 마지막 장으로 서류를 넘기자, 그는 지독히 지루한 얼굴로 안내 멘트를 줄줄 읊기 시작했다.
“싸인 다 하셨으면 앞에서 조금만 대기해주시면 되구요.
여기 동의해주신 대로 차원 안에서 발생한 피해는 국가가 배상해드리지 않는다는 점, 완벽히 차원을 닫았을 시 공적을 인정받아 훈장 및 보상이 지급될 수 있다는 점 등 다시 한번 안내드립니다. 또…….”
집 가고 싶다.
벌써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재 시각, 14시 04분.
벌써 집합 시간이 4분이나 지난 때였다.
여전히 중얼거리고 있는 정아성의 말은 한 귀를 스쳐 한 귀로 빠져나갔다.
빌라들의 까진 벽돌이나 세고 있던 나는 다급한 발소리 하나를 느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정아성도 그걸 눈치챘는지, 그늘져 어두운 골목 사이를 동시에 쳐다봤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얼굴이 새빨간 남자 하나가 비죽 튀어나왔다.
“허억, 커억, 허어어억…….”
곰돌이가 그려진 검정 반팔.
꾸러기 같은 빨강 캡 모자.
숨 가쁘게 공기를 채워 넣던 남자는 손에 부서져라 붙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여러분, 후우.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설화 차원 우투리 앞!”
“…….”
“지각해서 처벌받는 거 아니냐고? 에이,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그렇게 1, 2분에 야박한 나라였습니까.…… 그렇죠, 선생님들?”
화면과 우리 쪽을 번갈아 보며 말하는 꼴을 보니 상황 파악이 됐다.
이 자식 지금.
‘방송 중이네.’
슬쩍 봐도 남자의 화면 속 댓글들이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남자와 거리를 벌려 섰다.
지금이야 주변을 둘러본다고 정신이 팔려있다고 해도.
‘내가 이모아인 걸 아는 순간.’
안 봐도 뻔한 가시밭길이 깔리는 것 같았다.
현실에도 저런 놈들은 쎄고쎘다.
자극적인 소재들만 찾기 마련이고, 나는 지금 상황에서 딱 물어뜯기 좋은 화제였다.
그런데 문제는.
‘피할 길이 없다.’
오늘은 뒤집어 쓸 모자도, 안경도 없다.
얼굴이 사방에 다 팔린 내게 관심을 가지는 순간 그냥 끝이었다.
나는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 정아성 쪽을 썩은 얼굴로 쳐다봤다.
“안 막아요? 그냥 이렇게 다 보여도 되는 거예요?”
“…… 불법은 아니에요. 금지 조항에 없으니까.”
하지만 싹수없이 말하는 놈의 표정도 가히 좋지는 않았다.
정아성은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남자에게 다가가 신원을 요구했다.
꾸러기남은 신이 난 건지 어쩐 건지 상기 된 얼굴로 냉큼 헌터증을 꺼내 보였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매정하게 등을 돌렸다.
별 의미 없는 행위지만, 적어도 차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소란을 버텨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어…….”
“…….”
“맞죠? 씨발, 맞네! 와, 진짜 대박!!”
뒤에서 저 사람도 차원에 들어가는 사람이냐, 등급이 뭐냐, 속성이 어느 쪽이냐 쑥덕대는 소리를 들을 때부터 불안했다.
꾸러기남.
그러니까, 박주철은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계속 몸을 돌리는 나를 끈질기게 따라왔다.
결국 어깨를 붙잡혀 돌려 세워졌다.
놈은 나를 확인하자마자 호들갑을 떨더니, 머리를 쥐어뜯으며 카메라에 대고 소리쳤다.
“여러분 특종. 진심 개특종. 여기 우투리 차원에 같이 팀원으로 움직일 사람이 누구냐면, 진짜. 내 구독자수 다 걸고 대박이거든요? 공개하기 전에 빨리 추천 한 번씩 눌……!!”
빠각.
졸지에 손을 주먹으로 얻어맞은 박주철이 벙찐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고 떨어진 놈의 스마트폰 옆에 섰다.
떨어지며 깨진 화면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리고 확인사살 하듯.
우지지직.
발로 밟아 부숴 버렸다.
박주철의 표정이 아연실색했다.
나는 신발 밑창을 바닥에 직직 털며 고개를 들었다.
“차원 끝내고 보상해드릴게요. 됐죠?”
두 사람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박혔다.
그러나 나는 당당했다.
왜냐면 나 못지않게.
‘우투리 팀. 이게 최선이냐?’
얘네 둘의 상태도 좋지 않았으니까.
순식간에 싸해진 분위기를 즐기며 눈썹을 까딱거렸다.
이미 이 판에 속한 한, 절대.
‘손해 안 본다.’
형형한 안광이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