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56
56화
최근 한미래를 쫓아다니면서 발견한 사실 몇 가지가 있는데,
1. 한미래는 봐주지 않는다.
“끄흑, 끄허어억…….”
족히 180은 넘어 보이는 거구가 한미래의 손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 사연을 보자 하니, 불과 30초전.
“아, 좆같게 여기로 지나가고 그래.”
“야. 니 그 드러운 후드로 저분 지나가신 길 좀 닦아라. 닦고 좀 빨어, 새끼야.”
낄낄대는 소리가 은은하게 깔렸다.
들으라는 것처럼 내뱉은 욕지거리들이 한미래의 뒤통수에 따라붙었다.
복도가 지들 건 줄 아는지 양 사이드에 붙어 위화감을 조성하는 무리들.
웬만하면 돌아갈 법도 한데, 한미래는 상관없는 사람처럼 그 사이로 걸어갔다.
그러나.
“기생충 새끼.”
멱살을 붙잡은 건 그 순간이었다.
한 손으로 모가지를 틀어쥔 한미래는 점점 새빨개지는 남학생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올려다봤다.
남자가 손아귀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수속성의 각성자인지 뭉친 물풍선들을 쏘아댔지만, 한미래가 그런 미숙한 공격을 맞아줄 리 만무했다.
고개만 비틀어 가볍게 공격을 피하는 그녀를 보며 놈은 점차 두려운 얼굴을 했다.
구조 요청 하듯 주변에 있던 무리들을 쳐다보는 눈에 핏발이 섰다.
“…… 큭.”
“이, 이씹…….”
하지만 다른 남학생들은 쉽게 공격하지 못하고 주춤댔다.
왜냐면, 이미 달려들었던 몇 놈이 개 박살 나 복도 한 편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에.
공중에 매달린 남자의 얼굴색이 검붉어졌다.
눈알이 히뜩거리고 입가에 잔거품이 꼈다.
진짜 기절할 것 같은 찰나.
“……! 께흑! 쿨럭, 쿨럭, 커헉!”
바닥에 내던져진 남자가 헛구역질을 해댔다.
한미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천천히 자리를 벗어났다.
2. 한미래는 학교 내에서 가는 곳이 정해져 있다.
B동 별관 뒤.
훈련 시설들과는 모두 동떨어져 있는 시설이었다.
그래도 나름 학교의 구색을 갖추겠다며 몰아넣은 음악실이나 미술실들이 모여 있는 건물 뒤쪽.
심심찮게 비행 행위를 저지를 법한 골목에 한미래는 쉬는 시간마다 등장했다.
그런데 무슨 나쁜 짓을 하는 건 아니고.
‘또 저거.’
풀숲에서 꺼내온 반질반질한 나뭇가지 두 개를 휘둘러댔다.
주변에서 보기 어려운 통이 굵은 나뭇가지였다.
손때가 묻고, 정성 들여 깎은 티가 나는 것.
실습 시간 외에는 장비를 소지하는 게 금지였기 때문에 대강 쓸 만한 무기 대용을 숨겨둔 것 같았다.
‘순전히 연습만을 위한.’
한미래의 주요 공격 방법은 쌍검술.
둔탁한 나뭇가지들이 내내 일정한 간격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허공을 갈랐다.
3. 한미래는.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닌다.’
그것도.
‘의 이름으로 지급되는.’
한 번도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던 1층 로비의 작은 액자들을 보고 있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새빛중은 ‘각성 귀족 학교’로 유명했다.
돈 좀 있고, 각성 좀 됐다 싶은 부모면 어떻게든 아이를 들여보내고 싶어 하는 그런 곳.
이모아 만큼은 아니어도 유명한 길드의 각성수저 자식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명색이 학교는 학교.
개천에서 용 난다고.
유능하지만 학비가 없어 입학을 하지 못하는 각성자들을 위한 지원 체제도 존재했다.
그리고, 현재 이 새빛중에서 그 유일한 장학금의 수혜자가.
‘한미래였다는 걸.’
나는 몰랐다.
교장실 안.
뒤에 걸린 화랑 현수막과 활짝 웃고 있는 교장 선생.
그 옆에 서 있는 한미래.
고분고분 사진 속에 담긴 그녀의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
관계만 두고 보면 참 애매한 상황이긴 했다.
돈도, 뭣도 없지만 오로지 재능과 실력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애.
어마어마한 돈이랑 빽은 있는데, 재능과 실력이 없어 바닥을 기는 애.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길드 빵빵하고, 등급도 높은 수저 애들이 날 싫어하는 건 이해 한다고 쳐도.
‘한미래는 왜?’
그녀는 누군가에게 절대 굽히고 들어가는 캐릭터가 아니니, 이모아를 좋아하지 않는 건 OK.
근데 화랑에게 수혜를 입고 있다면…….
‘좋아하진 못해도 싫어하기 까지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물론 그 돈을 내가 주는 건 아니지만.
여러 생각이 복잡하게 얽혔다.
분명히 무언가 더 있을 것이다.
한미래에게는, 이모아를 적대할 만한 조금 더 복합적인 이유가.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지.
‘벌써 3일 지남.’
퀭한 얼굴로 급식 줄을 기다렸다.
그동안 계속해서 한미래를 미행했지만 별다른 큰 소득은 없었다.
한미래는 조용히 훈련하고, (시비 거는 놈들을 족치고), 조용히 밥을 먹고, (뒤에서 씹는 놈의 멱살을 잡고), 조용히 수업을 듣다 하교했다.
혹시 몰라 학교에 관련된 이모아의 기억도 몇 개 더 사봤지만 죄다 꽝.
덕분에 이모아가 방학 보충 수업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쥐꼬리만큼의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수련했는지나 알게 됐다.
‘그게 다 얼마짜리 기억인데…….’
또 허공에 흩뿌려진 다이아를 생각하면 한숨이 팍 샜다.
앞에서 미니 돈까스 작작 받아가라며 삿대질하고 있는 신하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냥 미쳤다 생각하고 얘한테 물어봐?’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신하나는 이모아의 유일한 찐친이니 한미래의 ‘한’ 자만 말해도 우다다다 정보를 쏟아내 주겠지.
나중 가서 한미래가, 혹시나 내가 뒤를 캔 걸 알게 된다면 그땐 관계의 파탄이겠지만…….
‘지금 바빠 죽겠는데.’
여기저기 거를 타선이 없었다.
문제는, 내가 이미 그 방법을 시도해봤다는 점이었다.
「‘저기, 하나야, 그, 미래 있…….’
‘뭐. 한미래가 너한테 또 뭔 짓 했어?’
잖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싸늘함이 번지던 얼굴.
그 살기에 순간 당황해 입을 닫은 내가 문제였다.
‘아니, 미, 미래에도 우리가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고 그게…….’
‘아이, 뭐야 진짜 갑자기이. 부끄럽겡.’」
사르륵 녹던 그 눈가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아직도 머릿속에 자동재생 됐다.
그러나, 내가 집중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라.
‘또.’
신하나는 또, 라고 말했었다.
분명하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모아와 한미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게 이 관계의 열쇠가 될 것 같은데, 카더라 같은 소문조차 들리지 않으니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한미래와의 관계 개선.
그리고.
‘명암 전력 빼 오기 싸움.’
식판을 들고 다른 친구들 반찬을 뺏어오고 있는 신하나를 먼저 지나쳤다.
복작복작한 급식실 안에서 텅 빈 공간은 저곳만이 유일했다.
한미래의 자리 세 칸 떨어진 곳에 식판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
착각일까.
소란스럽던 급식실 내부가 급격하게 적막해졌다.
아니.
이건.
‘착각이 아니다.’
급식실의 모든 인간들이 나와 한미래 쪽을 보고 있다.
딱딱하게 정면만 응시하고 있던 한미래와 눈이 마주쳤다.
【상점에 업데이트 내역이 있습니다.】
【(☆특별★)(!하루 한정!) 이모아의 떠오른 기억 / 3,000 다이아 (23:59:59)】
질겁한 얼굴의 신하나가 정적을 깼다.
“야, 너……!”
신하나는 식판도 냅다 내다 던지고 손목을 잡아끌었다.
내가 급식실 바깥으로 나와 거칠게 벽에 밀쳐지고 나서야, 얼음.
땡.
한 것처럼 떠드는 소리들이 시작됐다.
나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미쳤어? 너 또 욕 처먹고 싶어서 환장했냐? 니가 만인을 사랑하는 박애주의자야, 뭐야.”
“…….”
“얘 봐라? 완전 발뺌하네. 뭔 짓 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고, 또.”
맞다. 나는 아직 하나도 모른다.
답답한 얼굴로 벅벅 마른세수를 한 신하나가 소리쳤다.
“제발 각자 살아. 그냥 건드리지 말고 조용히. 그게 너한테도, 쟤한테도 좋은 일이라고 내가 몇 번이나……!”
“하나야, 미안. 오늘은 밥 다른 애들이랑 먹어.”
“야, 너 어디가! 야! 이모아!”
소리치는 소리도 무시하고 달음박질쳤다.
3천 다이아?
그깟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당장.
‘저 기억을 확인해야만 한다.’
***
【‘이모아의 떠오른 기억’을 구입하셨습니다.】
알림창이 떠오름과 동시에 감았던 눈을 팍 떴다.
똑같은 복도.
똑같은 교복의 학생들.
똑같은 냄새. 소음.
그러나.
‘다른 느낌.’
광화문 기억을 구매했을 때와 같다.
나는 걷고 있었으나, 자의적인 움직임은 아니었다.
이건 이모아의 기억.
그러니까, 윤채희가 아닌 ‘진짜 이모아’의 행동.
이모아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내 일상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스쳐 지나는 경멸과 무관심.
복도 모퉁이를 꺾어 돌아가려는 때, 작은 말소리가 들렸다.
“화랑이 키우니까 화랑이 데려가겠지, 뭐.”
이모아는 화랑의 이름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슬쩍 끄트머리로 눈을 내밀었다.
인적 드문 복도에서 두 학생이 킥킥대고 있었다.
“와, 근데 진짜 존나 어이없다. 누구는 어릴 때부터 쌔빠지게 굴러도 화랑? 씨발, 발끝도 못 대보죠?”
“미친 새끼. 그럼 너도 거지처럼 살던가. 누나가 집안 풍비박산 한 번 내줘?”
“아, 진짜 또라인가.”
이모아의 가슴이 싸하게 내려앉았다.
놈들의 대화가 계속됐다.
“근데 그래 봤자 이모아 따까리나 하는 거 아님? 왜. 그 맨날 데리러 오는 기사 있잖아.”
“맞아. 걔도 A+라던데? E급 짜리 하나 때문에 인력 낭비 조졌죠? 이겸 동생인 게 존나 벼슬이죠?”
“아, 근데 존나 웃기겠다. 한미래 고고한 척 지리는데 완전 화랑 개새끼 되는 거 아니야. 이리 오라 그러면, 헥헥헥. 저리 가라 그러면, 또 헥헥헥.”
푸하하하!
귓속을 파고드는 신랄한 웃음소리.
안정적으로 내쉬던 호흡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를 악 문 턱이 저릿했다.
이모아는 화를 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진심으로.
아이가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이 온몸에 힘을 꽉 줬다.
‘나가지 마!!’
나는 들리지도 않을 비명을 처절하게 내질렀다.
아니, 지금은 진짜 E급인데 니가 나가서 뭐 어쩔 건데.
저놈들의 발길질 한 번에도 이모아는 근 이 주를 앓아누워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내가 구구절절 여기까지 끌어 올려서 이 정도지, 진짜 그 정도 스펙이었다고, 처음에는!
게다가.
‘지금 맞으면 나도 아픈 거 아니냐?’
난 맞는 거에 취미 없다.
그런 4D 액션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 기대를 배반하듯 이모아는 한 발자국.
“개.”
다른 목소리가 벽 너머에서 내리 꽂혔다.
발이 우뚝 멈춰 섰다.
“누가 누구 개새끼인지.”
한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