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이해운 총장이 불빛을 등진 상태로 천천히 말했다.
“어쩔 생각인지 궁금하네요. 우리랑 한 약속, 잊지는 않았을 텐데.”
이겸의 시선이 사진들을 더듬었다.
포탈에서 막 빠져나오는 모아.
체육복을 입고 훈련을 받고 는 모아.
친구와 웃고 있는 모아.
…… 이겸도 본 적 없는 차원 안의 모아.
지하철 안에서, 마수와 대치하는 모아.
동영상을 캡쳐한 것 같은 흐릿한 사진들로 눈동자가 고정됐다.
그걸 눈치챈 총장이 싸늘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걸 회수하느라 어떤 인력이 갈아 넣어졌는지 아실까 싶네요.”
침착하게 말하고 있지만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선을 넘지 마라.
모아가 움직이기 시작한 때부터, 채본은 몇 번이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겸이 느릿한 손길로 사진 하나를 들어 올렸다.
엄지로 사진 속 아이의 얼굴을 애틋하게 쓸어내렸다.
“…… 회수가 아니라 약점이겠죠.”
원본은 따로 있을 테니.
꽈과광!
회의실 안이 순간적인 빛으로 하얗게 날아갔다.
우레 같은 소리에 귀가 찢어졌다.
재가 된 사진들이 바닥에 흩날려 떨어졌다.
테이블 위로 나무뿌리 같은 번개무늬가 남았다.
갑작스러운 강력한 전류에 터진 형광등 몇 개가 깜빡거렸다.
“저야말로 잊고 계신 게 아닌지 묻고 싶은데.”
낡아빠진 목줄을 찬 포식자의 속삭임이 뺨에 닿았다.
“제가 참고 있는 건, 오로지 그 애를 위해서입니다.”
그 순간.
이해운 총장은 전장에서 살아 돌아왔음에도, 한 치의 두려움이나 공포심이 느껴지지 않았던 이겸의 어린 눈빛을 떠올렸다.
그 애는 그저.
『‘지켜주세요, 제 동생.’』
악에 받쳐있었다.
핏발이 선 눈으로, 더 이상은 잃지 않겠다는 듯이.
떠나는 인영을 이번에는 붙잡지 않았다.
혼자 남은 회의실 안.
지진이 난 것처럼 물건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올라가 있던 화분이며 보드마카, 마이크 같은 것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이해운 총장의 손아귀에서 종이가 와그작 구겨진 순간.
쨍그랑!!
깜빡이던 형광등이 결국 터져나갔다.
완벽한 암흑.
그 사이에서 살기가 찬 형형한 눈빛이 빛났다.
똑똑.
누군가 다시 회의실의 문을 두드렸다.
“총장님.”
태연한 척하지만, 겁에 질린 말단 사원의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바깥의 빛줄기가 회의실 안으로 가늘게 새어들었다.
“말해요.”
어느새 차분해진 이해운 총장이 문 앞으로 다가갔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내미는 서류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신원 불명자인 것 같습니다.”
이해운 총장의 손에 윤산영의 얼굴이 들려 있었다.
※「이름: 리오 / 각성: 기사 / 등급: C+(추정)」
***
“수상자, 한미래.”
쩌렁쩌렁한 마이크 소리가 강당을 울렸다.
학생들 사이에서 기계적인 박수가 터져 나왔다.
새빛중학교, 아침 조회시간.
뒤에 걸린 조잡한 현수막이 나부꼈다.
「2-1 이모아, 한미래 채널대책본부 특별 공로 표창장 수상」
그러나 무대를 오르는 발걸음은 한 명뿐이었다.
정석대로 빳빳한 교복 차림을 한 한미래는 단상 앞에 섰다.
가식적인 웃음과 감흥 없는 얼굴들이 엇갈렸다.
한 사람만을 조명한 핀라이트가 걸음을 따라 움직였다.
“위 학생은 돌발 상황에도 각성자의 의무를 다하여 포탈의 공략과 수많은 시민들을 구출하는 데 공헌하였으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채널대책본부 총장, 이해운.”
곳곳에서 셔터음과 플래시가 터졌다.
기름기가 낀 교장의 악수와 격려를 받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지겹다, 고.
보상금과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표창장을 품에 안았으나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한미래는 여전히 교실 한구석에서 배경처럼 앉아 있었고, 학생들은 그녀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아도.
“야, 미친, 대박. 이거 봤음?”
“이게 언제 뜬 건데 지금 보고 있냐. 그거 말고 이게 더 잘 보여.”
한미래는 이모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교내는 하루 종일 소란스러웠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역시 이모아가 있었다.
학생들은 피범벅이 되어 바닥을 구르고, 처절하게 마수와 전투하는 그녀의 모습을 수없이 재생시켰다.
누군가 찍어 올린 30초가량의 짧은 영상.
2호선 지하철 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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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917개 ∥ 정렬기준 인기 댓글 순
ㄱㅎ 11시간 전
또 얘냐?
MOON GOM 2시간 전
이제는 동생까지 언플지리네 역시 이겸민국
▲ 답글 43개 숨기기
민수 2시간 전
이겸이 님한테 뭔 죄지었나요ㅠㅠ 열등감이 화면을 뚫고 느껴짐
가을군고구마 2시간 전
이겸민국? 고게맞쥐ㅋ
_킹쩔티비 2시간 전
꼬우면 니가 1등훼덴걔~~
ㅇㅇ 3시간 전
ㅈㄴ구르네. 개불쌍
▲ 답글 28개 숨기기
타사르Tasarre 3시간 전
뭐가 불쌍하냐 ‘그’ 분이신데ㅋㅋ
루루 3시간 전
탑랭커 걱정하는 천민 수준 잘봤습니다
ㅁㄴㅇㄹ 3시간 전
@루루 머가리에 아무것도 안든거 여기서 홍보하네
소금TV 3시간 전
@루루 랭커 걱정하면 천민인 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wow ~~
깨 16시간 전
0:12 이거 뭔스킬임??
▲ 답글 141개 숨기기
백수 16시간 전
걍 익플인듯
귀혀니 16시간 전
@백수 알못ㅋㅋ 익플은 이렇게 이펙 하얗게 안나옴
ㅁㅎㅈ 16시간 전
ㄹㅇ뭐냐 얘 전에 보니까 신성계던데
Haro 16시간 전
스킬 시전되면서 회오리치는 방향이나 주변 안개 봤을 때 익스플로전은 아닌 것 같네요.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천심과 더 유사하지 않을까 싶은데 연계되는 동작이 보이지 않으니 또 그건 아니구요.
힙뿌 GAME 15시간 전
화속이랑 신성이랑 섞인 거 같은데 각성자들은 알거다 저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스킬인지 따로따로 쓰는 건 ㅇㅋ여도 섞인 스킬은 한번도 본적 없음
주댕이 14시간 전
@힙뿌 GAME ㅇㄱㄹㅇ 이게 가능하면 랭커들 벌써 속성 2개씩 썼지
ㄴㅇㄱ 15시간 전
@Haro 모른다는 얘기를 뭐이렇게 길게하누
kz e 1시간 전
얘 학교에서도 유명하자너~ㅋㅋ
▲ 답글 4개 숨기기
킹걸리 1시간 전
? 뭐로??
ㄷ_ㅇ 30분 전(수정)
@킹걸리 E급따리 ㅅㅂㅈ 입학 곧 펑함
말랭떡 9시간 전
이와중에 이걸 찍을 생각을 한 놈이 ㄹㅈ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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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그녀를 물어 뜯어댔다.
누군가를 구해낸 이모아의 행동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소수였다.
얼굴을 뿌옇게 칠한 이겸의 사진들이 ‘논란’, ‘의혹’등의 이름을 달고 끌려 나왔다.
화랑의 딸, 이겸 동생, 각성수저…….
이모아를 지칭하는 표현은 그런 것들뿐이었다.
한미래는 싱거운 손길로 창을 닫았다.
“학교 안 나오는 거 봐. 지도 뭔가 찔리니까 안 나오는 거 아니겠음?”
그러나 밖에서 들리는 소리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손안에 담긴 작은 화면으로만 상황을 본 아이들은 입을 쉽게 놀려댔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유일한 증인.
한미래는 침묵했다.
콰앙―!!
뒷문이 떨어질 것처럼 거세게 열렸다.
“X발, 말들 존나 많네…….”
“…….”
신하나였다.
그녀가 교실 안으로 들어오자 시시덕대던 아이들의 입이 딱 다물어졌다.
신하나는 이모아가 없는 공간에서도 아이를 감싸느라 혈안이었다.
슬슬 눈치를 보며 학생들이 흩어졌다.
♪♬♪♩―.
종이 울렸다.
“지금부터 파트너 보고서 나눠준다. 이름 부르면 나와라.”
느긋하게 스트레칭하며 등장한 서 선생이 낮은 교단에 몸을 기댔다.
아이들의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병규.”
“나라.”
“준이.”
종이를 받아든 아이들은 언제 살벌함에 물들었냐는 듯이 금세 왁자지껄해졌다.
야, 이딴 걸 쓰면 어떡해.
원망하다가도 장난스럽게 서로를 때리고 웃었다.
한미래는 턱을 괸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이 장면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것처럼, 동떨어지고 먼 얼굴로.
그날 이후, 사흘째.
이모아는 한 번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누구의 의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랬다.
보고서도 내지 않았을 것이고, 이름이 불릴 일도 없을 것이다.
한미래는 이대로 없던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이모아가 증발해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미래.”
서 선생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한미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담임의 얼굴을 쳐다봤다.
서 선생은 뭐하냐는 표정으로 눈썹을 한 번 추켜올렸다.
손에는 노란 종이 한 묶음이 달랑거리고 있었다.
『파트너 보고서 – 작성자: 이모아』
동글동글한 손 글씨로 적힌 표지를, 한미래는 아주 오랫동안 내려다보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 몇 번이나 지나고, 점심시간이 다 끝나갈 때까지도.
아주 오랫동안.
그녀의 손이 드디어 종잇장을 넘겼다.
종례 시간이 가까워진 마지막 7교시였다.
수없이 지우고 쓴 흔적들.
보고서를 꽉 채운 글씨들이 고스란히 한미래의 눈에 담겼다.
『난무 쓸 때, 속도나 궤도는 훌륭한데 회전력이 너무 커서 그냥 위로 흘려보내는 검기가 조금 있는 것 같아.
의식적으로 몸을 웅크려서 움직이면 더 효과가 클 것 같고 또…… 』
『파쇄는 시전 동작이 길어서 그런지 폭류로 연계되기 전에 종종 씹히는 경우가 있더라.
어쩔 수 없는 것 같지만 검을 위로 찍는 타이밍에 의식적으로 손목을 내리면 조금 더 빨리 공격이 가능할 것 같아.』
『쌍검의 장점은 멋있기도 하지만 남들이 한 번 찌를 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거잖아.
지금도 충분하지만 그걸 더 장점으로 살리기 위해 공속 세팅이 어떨까 제안해보고 싶어.…… 』
중간중간 서 선생이 동의한다는 것처럼 별표나 체크를 해놓은 부분도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고 성실한 피드백이었다.
천천히.
아주 꼭꼭, 모든 글자를 씹어 삼킨 한미래가 보고서를 덮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반의 모든 아이들이 그녀의 행동에 주목하고 있었다.
찢어버릴까. 아니면 태워버릴까.
자기들끼리 내기를 건 놈들이 작게 키득거렸다.
한미래의 경멸을 익히 알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지이이익―.
가방 지퍼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얌전히 보고서를 가방 안에 챙겨 넣고, 다시 지루한 얼굴로 앞을 응시했다.
놀란 아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한미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 미워하지 마.’」
녹음된 테이프처럼.
지하철 포탈 이후, 한 번도 잊히지 않았던 목소리가 귓가에 왱왱거렸다.
한미래는, 가끔 자신이 이모아이길 상상했었다.
내가 이겸의 동생이었다면 달랐을 텐데.
너처럼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헤매는 인간은 아니었을 텐데.
나는 지금보다 수월하게, 높이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
질투하고 열망했다.
모든 걸 쥐었으면서도 노력하는 이모아가 고까웠다.
그것마저도 빼앗긴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지만.
「‘이모아도…… 이모아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닐 테니까.’」
우리는 비슷하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이유를 이제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모아는 이겸 덕분에 성장하고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옆에서 전투를 지켜본 순간부터 체감했다.
그런 건 누군가 억지로 심어준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부딪치고 부서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
뭉쳐진 시간만이 주는 견고함.
그렇기 때문에.
‘말을 얹을 것도. 해명할 것도 없다.’
나서지 않아도 이모아는 알아서 증명할 것이다.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땀으로 쌓아 올린 실력으로.
‘절대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한미래는 각오를 되새겼다.
노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 애가 올라가는 만큼, 나도 올라갈 것이다.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큼은, 마지막 남은 그녀의 자존심이었다.
한미래의 가라앉은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보고서가 든 가방이 달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