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66
66화
인자한 얼굴을 한 문 선생이 매미처럼 철봉대에 매달려 있던 아이를 붙잡아 내렸다.
귀엽게 만두머리로 묶어놓은 뒤통수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아솜아, 이럴 땐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는 거라고 했지요?”
“…… 감사합니다아.”
“옳지.”
아무래도 하는 행동을 보니 손녀가 맞는 것 같았다.
근데 왜 애카에서는 한 번도 못 봤지?
‘커서 안 데리고 다녔나…….’
그럴 수도 있다.
애카는 몇 년 후 시점이니까, 이 애도 초등학생이었을 거고.
‘근데 가족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었는데.’
인생에 오로지 철봉뿐인 남자.
그런 설정인 줄 알았더니.
이번엔 문 선생이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학생 없었으면 우리 애 진짜 큰일 날 뻔했어요.”
그 정중함에 당황한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저도 놀라서, 순간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네요.”
“이 녀석이 그렇게 위험하다, 위험하다 말을 해도, 보고 배운 게 나밖에 없어서.”
문 선생은 다정한 손길로 손녀를 쓰다듬었다.
다리에 매달린 아이가 나를 힐금힐금 살폈다.
“…… 요즘 자주 보이는 거 같던데. 철봉에 관심이 좀 있어요?”
문 선생이 은근히 물어왔다.
그 즉시 나는 알아챌 수 있었다.
‘왔다. 미션 플래그.’
최대한 얌전히 손을 모으고 답했다.
“네. 저도 근력을 좀 키우고 싶은데, 철봉만 한 게 없는 것 같아서요.”
“그렇지요. 이 철봉이라고 말할 것 같으면, 한 치도 집중을 흩트려서는 안 되고. 몸의 균형을 알고, 내가 내 몸을 어떻게 제어할지 스스로 알아야만, 제대로 된 동작을 할 수 있는 운동이에요.
이게 쉬워 보여도 보통 일이 아니에요. 아주 오랫동안 갈고닦은 사람만…….”
“예, 예. 그렇죠, 어르신.”
여기선 적당히 비위를 맞춰줘야 할 타이밍이었다.
게임 스크립트에서도 느꼈었지만, 고수들은 항상.
‘말이 많아.’
솔직히 듣거나 말거나.
다 아는 내용이라 적당히 한 귀로 이야기를 흘렸다.
아솜이 역시 처음에는 좀 듣는 척, 하다가 문 선생의 손아귀를 빠져나가 또 철봉 아래로 매달렸다.
거꾸로 쏟아진 팔이 달랑거렸다.
눈앞으로 창이 하나 떴다.
#
【MISSION】
▷ ‘달인 문 선생’의 기초 테스트 통과하기.
― 분류 : 서브
성공 시, 스킬 ‘공중 뒤돌아 차기’ -1 진행.
실패 시, ‘달인 문 선생’의 호감도 하락.
#
‘오케이.’
속으로 작게 쾌재를 불렀다.
애기를 구해준 게 호감도에 좀 도움이 됐나?
예상보다 3일이나 빨리 뜬 미션창이 이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기쁨에 씰룩이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내렸다.
“가르쳐 주신다면 감사히 배우겠습니다.”
【MISSION을 수락하셨습니다.】
내 공손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문 선생은 다부진 포즈로 허리를 짚었다.
“그렇다면 기초 테스트를 잠시 해보지요.”
“네, 좋아요.”
그게 어떤 스킬이든지 스킬을 배우기 위해서는 항상 연계 퀘스트가 존재했다.
이 정도는 놀랄 정도도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었기도 했고.’
문 선생의 기초 테스트는 그야말로 체력전.
딱히 어려운 과제는 없었지만 번거롭기로 유명했다.
100초 이상 달리기.
철봉과 상호작용 60초 이상 3번 하기.
주변 나무에 발차기 50회 이상 하기…….
‘이런 것들.’
차라리 마수 몇 마리 때려잡기.
이랬으면 시원하게 해왔을 텐데, 저 사부작거리는 걸 못 참아서 알아도 건너뛰는 유저들이 많았다.
게다가.
“그럼, 이거 먼저.”
문 선생이 물약 하나를 내밀었다.
작은 플라스크에 담긴 보라색 액체.
내가 빤히 들여다보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설명했다.
“아, 이건 그냥 약화 포션인데, 이게 훈련할 때 주로…….”
“감사합니다.”
문 선생의 말을 자르고 단숨에 뺏듯 물약을 받아왔다.
.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일주일 내내 기다렸던 아이템.
쾌활한 소리와 함께 뚜껑을 따고 망설임 없이 들이켰다.
꿀꺽꿀꺽.
목울대가 움직일 때마다 시큼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즉시 팔다리가 돌덩이라도 맨 것처럼 무겁고 뻐근해졌다.
불투명한 알림창들이 울렸다.
【‘약화 포션’의 효과로 속도가 30% 저하됩니다.】
【‘약화 포션’의 효과로 체력이 25% 줄어듭니다.】
【‘약화 포션’의 효과로 근력이 40%…… 】
‘이거지. 내가 원했던 거.’
중력이 나에게만 2배로 작용하는 느낌.
누군가 정수리부터 온몸을 찌그러트리는 기분.
다리에 더 뻣뻣이 힘을 주고 섰다.
‘이왕 고난과 역경일 거면 완벽해야지.’
숨쉬기도 뻐근했지만, 만족스러운 효과였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얘긴데, 사실 이 문 선생의 기초 테스트는 숨겨진 수련 맛집이었다.
바로.
‘약화 포션 때문에.’
약화 포션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 중 하나였다.
돈이 있어도 물량이 없어 구매할 수 없는 것.
나 역시 애카 플레이 중에서도 하늘의 별따기로 한 번? 두 번 정도 구해본 적 있는 아이템이었다.
굳이 굳이 능력치를 깎아 먹는 포션을 사용하는 이유인즉슨.
‘약해진 그대로 수련치가 산정된다.’
–
【상태】
이름 : 이모아 / 15세
칭호 : –
종합 헌터 등급: C
근력 : D (E)
지능 : BBB (CC)
민첩 : CC (DDD)
(* 약화 포션의 효과를 받고 있습니다.)
전용 스킬 : 미약한 온기(Lv.2)(잠금)
–
종합 헌터 등급은 그대로 표시되지만, 대충 계산해 보자면 C-, 혹은 D+ 정도 되는 능력치.
그렇다면?
‘같은 동작을 해도, 등급이 낮기 때문에 숙련도는 더 쌓인다는 소리.’
한마디로 수련용으로는 개꿀 포션이었다.
그러나, 인간들 어디 안 간다고.
악용의 여지가 있어 ‘금지 물약’으로 취급된 후, 제조법이 완전폐기되었다고 들은 적 있다.
그래서 값도 그렇게 천정부지로 뛰는 거고.
근데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문 선생 미션하는 동안에는 꾸준히 물약을 얻을 수 있다.’
비록 교환 불가에.
다른 스킬에는 안 먹히고, 문 선생이 진행하는 미션 스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근력을 올릴 절호의 찬스나 다름없다.’
조금 움직이고, 더 많이 얻기.
근데 그런 범인의 마음을 이 문 선생이 알 리가 있나.
그는 열의가 가득 찬 나를 보며 흐뭇한 포즈로 요구했다.
“우선, 팔굽혀펴기 30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철봉 턱걸이도 해내는 몸뚱인데 팔굽혀펴기 정도야.
거기다 딱히 시간제한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 힘들면 쉬엄쉬엄 쉬어가며 할 생각이었다.
강제로 학교에 이송되면?
내일 와서 다시 하면 되고.
그런데.
몸을 딱 바닥에 댄 순간.
‘네?’
뭔가 잘못됐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납작 엎드린 자세에서 아무리 힘을 줘도 땅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바닥을 짚은 팔이 와들와들 흔들리고 종아리가 당겼다.
이를 악물고, 간신히 용을 써 몸을 일으킨 순간.
‘내가…… 내가 자만했다.’
딱 하나 카운트가 올라간 미션 창을 보며 후회의 길을 걸었다.
내가 또 까먹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현실인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근력 좀 올랐다고 E급 시절 이모아의 몸뚱이를 생각 못 했다.
뭐만 하면 픽픽 쓰러지던 그때.
좀 달렸다고 머리가 핑 돌던 그때!
‘윤채희, 이 멍청한 자식.’
뭐 한 것도 없으면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모래주머니를 온몸에 덕지덕지 매달고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중간에는 혹시 아솜이가 내 등에 앉아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착각마저 들어 등을 살피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혼자 착각하고 잠시 원망했던 아솜이에게는 속으로 심심한 사과를 전했다.
내가 죽어가는 걸 봤는지 문 선생은 응원인 척.
옆에서 똑같이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흐랴압!
기합 소리가 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더 팔 쫙쫙 피고! 등 구부러지지 않게!”
“아니, 저기, 잠시…….”
“내려갈 땐 끝까지 내려가야지요?”
“선생님!!”
저 못 하겠어요.
턱 끝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스스로 자초한 불행에 불과 5분 전 윤채희를 마구 쥐어 패주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약화 포션의 효과는 약 30분.
그러니까.
‘앞으로 30분은 이 지옥 속에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건.
【‘근력’ 숙련도: +0.7374%】
‘근력이 잘 올라.’
거의 1%가 오른다고 봐도 나쁘지 않은 수치.
보이는 성과가 있으니 버틸 만하다…… 고 스스로를 토닥였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이 산책길을 뛰쳐 내려갈 것 같았다.
【팔굽혀펴기 30/30】
카운트가 딱 떨어지자마자 흙이 묻는 건 신경도 쓰지 않고 바닥으로 굴렀다.
하늘을 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으려니 문 선생이 불쑥 시야를 가렸다.
막 떠오르는 해를 등져 역광인 얼굴 위로 시커멓게 그늘이 졌다.
“다음은…… 윗몸 일으키기 50개 정도?”
사탄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쿨럭, 컥.”
“수고했어요.”
문 선생이 건네는 물병을 건네 받았…… 받으려고 했는데?
‘안 잡혀.’
팔을 들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걸 알았는지 손아귀까지 배달해준 물병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지금 누군가 길가에 걸어 다니는 넝마라고 손가락질해도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흙과 땀에 절어 있는 나…….
그에 비해 문 선생은 더 활기가 돌아 보였다.
누가 봐도 개운하다는 표정으로 물 3통을 단숨에 끝장내버리더니, 은은하게 뿌듯함을 표출하며 나를 들여다봤다.
그의 얼굴에 번쩍번쩍 광이 났다.
‘마수…… 아니야?’
운동마수 같은 거.
“아주 잘 따라왔어요. 솔직히 조금 힘든 감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요. 암. 철봉을 배우려면 이 정도 끈기는 있어야지.”
“하핫, 예에…….”
딱히 할 말이 없어 바람 빠지듯 웃고 말았다.
사실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 줄 몰랐다.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 30분이 지나 약화 포션의 효과가 끝났을 때.
‘이걸 먹어 말어.’
나는 보라색 병을 들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문 선생의 체력 테스트는 계속되지만, 약화 포션은 실상 한 번만 먹어도 판정이 이어졌다.
테스트만 진행할 거라면 더 먹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
효과가 끝나자 그렇게 몸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입고 있던 철 갑옷을 던져 버린 것 같은 기분.
진짜 날아갈 것 같은 느낌에 괜히 제자리에서 몇 번 폴짝 뛰어보기도 했다.
팔굽혀펴기? 윗몸 일으키기?
몇백 개도 쑥쑥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근력’ 숙련도: +0.0945%】
얻을 수 있는 숙련도 퍼센티지가 수직낙하했다.
수치를 보자 잇속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민했다.
알다시피, 지금의 나는 극강의 가성비를 추구하는 고인물.
얻을 수 있는 숙련도를 알면서도 손실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근데 그럼 몸이 너무 힘들어.
막 죽을 거 같아.
그래서 결국 선택한 방법은…….
【‘약화 포션’을 사용하였습니다.】
‘먹고 죽자.’
다시 한번 이번 미션의 목표를 되새겼다.
단순. 무식.
그렇게 꾸역꾸역 올린 근력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각성자 ‘이모아 의 근력이 한계를 돌파합니다…… 】
【‘근력’ 등급의 변동이 있습니다…… 결과 : CCC】
한 단계 올라줘서 망정이지.
이것마저 없었다면 그저 힘만 쓴 사람이 될 뻔했다.
여전히 널브러져 있는 내 앞에 문 선생이 쭈그려 앉았다.
흡족하게 웃고 있는 얼굴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치들었다.
마치.
‘적임자라도 찾았다는 얼굴.’
“그럼 이제 진짜로 가볼까요.”
문 선생이 목을 뚜둑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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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 ‘달인 문 선생’에게 배우기 -1
― 분류 : 서브
성공 시, 스킬 ‘공중 뒤돌아 차기’ 습득.
실패 시, 습득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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