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73
73화
휙! 휘익―!
호루라기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자, 자. 여기 멈춰 서 계시면 안 됩니다.”
경광봉을 든 남자가 계속해서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띄엄띄엄 세워진 칼라 콘과 인간들로 세워진 방벽.
1시부터 통행을 막는다더니, 아직 12시도 채 안 됐는데 경계 태세를 갖춘 청렴 소속 헌터들이 꽤 보였다.
그리고, 나는.
‘이태원이 얼마나 넓은데 이렇게 무식하게 다 막는다고.’
돌려보내는 인파 속에 섞여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1시간 정도 먼저 출발했는데 잘한 선택이었다.
이 숫자를 보니 청렴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닌 거 같고.
채본이나 그냥 경찰들도 섞여 이태원 바깥으로 보호막을 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예언에서도 이태원이라고만 했지 무슨 음식점 앞이라던가. 어디 대사관 주변이라던가.
정확한 위치를 특정한 게 아니었으니 이정도가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정확한 위치를 아는 건.
‘나뿐이다.’
이태원역 근처, 퀴논길 중앙광장 위.
그곳이, 포탈이 터질 중심지였다.
근데.
‘알면 뭐하냐.’
가는 길이.
‘뚫을 수가 없겠는데.’
퀴논길 쪽으로 가기 위해선 한참이나 안쪽으로 더 들어가야 했다.
겹겹이 쌓인 인간 방어막.
이모아의 작은 체구로는 몸빵으로 뚫기도 불가능해 보였다.
만약에 뚫고 나더라도, 소란을 피워 내보내 지면.
‘그건 그걸로도 또 문제고.’
지금이야 평소답지 않게 머리도 양갈래로 곱게 땋고, 마스크며 모자로 덕지덕지 얼굴을 가려놨는데.
‘붙잡히는 순간 그런 게 어딨어.’
선글라스라도 벗겨지면 이모아 라고 소문이 쫘악 날 게 뻔했다.
이태원 예언 자리에 나타난 화랑 이모아.
‘이거야말로 완전 대박 어그로 떡밥이잖아.’
물고 뜯길 걸 상상만 해도 등골이 짜릿했다.
대충 경계가 약한 부분을 몰래 찔러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분위기가 심각했다.
설정 몇 줄로만 상상하던 느낌은 전혀 아니었고.
턱을 매만지며 고심했다.
그렇다면 방법이. 저 안까지 들어갈 방법이…….
‘결국 그 루트를 밟아야 하나?’
마른 입술을 혀로 한번 축였다.
사실, 이태원에 도착하기 전부터 주책맞게 둥둥 떠오르는 기대감이 하나 있었다.
그게 생각대로 잘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는 해볼 만하지.’
먼저 주위를 휙휙 둘러봤다.
저 각진 놈은 왠지 채본 사람 같고.
그 옆에는 무지하게 고지식하게 생겼고, 또 그 옆에는…….
‘쟤다.’
목표 설정 완료.
가장 청렴 쪽 도사처럼 보이는 한 놈 앞에 떡하니 마주 섰다.
눈이 마주치자 이름 모를 도사는 뭐냐는 표정으로 나를 내리깔아봤다.
당당히 그 시선을 맞받아쳤다.
“죄송한데 연이는 어디 배치됐어요?”
내게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나는 뻔뻔하게 인맥을 사용하기로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
혈연, 지연.
그리고.
‘학연.’
…… 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충 성균관에서 몸을 부대꼈으니 학연으로 칠 수 있을 거라 비벼본다.
같이 합을 맞춰 본 정이 있는데.
그 이름이 네 입에서 왜 나와.
얼굴로 묻고 있는 도사를 보며 샐쭉 웃었다.
쐐기를 박듯이 한 번 더 물었다.
“우리 연이 어디 있냐니까요?”
그러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이씨, 놔 봐! 놔 봐요! 당신들 내가 누군지 알면 이렇게 못 해? 이거 진짜야?”
“자꾸 이러시면 바로 철창행이십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상황이 불리할 때 걸핏하면 튀어나오는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감성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런 사람이 많았는지 어쨌는지.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어깨를 밀어내는 도사에게 계속 몸싸움을 걸었다.
등으로 어떻게 밀고 들어가 보려고 하면, 툭.
팔을 마구 휘저으며 틈을 노려보려고 하면…… 또 툭.
용수철처럼 몸이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휘청거리는 중심을 발끝으로 애써 멈춰 세웠다.
‘이런 철두철미한 새끼들.’
어디 한번 해보라는 듯이 쳐다보는 얼굴이 자신만만했다.
입술을 악물고 속삭였다.
“내가 진짜 약속을 했다니까요. 거기 청렴 길드 도 학 동생, 도 연이랑.”
“따로 연락받은 것 없습니다.”
“아, 진짜 말 안 통하네. 그러니까, 지금 연락을 해보라고. 해보면 되잖아요. 따악 한 번이면 다 끝인데 그걸 안 하네?”
하아……. 도사가 신물 난다는 한숨을 면전에 내쉬었다.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지 몇 번이나 내 얼굴을 흘겨보다가, 결국 귓가로 손을 가져다 댔다.
그녀의 반대쪽 손에서 무전기 같은 게 들려 나왔다.
“N1794. 연 님 혹시 응답 가능하십니까.”
답을 기다리는 짧은 몇 초가 몇 시간처럼 느껴질 무렵.
―『“네. 무슨 일이세요?”』
노이즈가 섞인 상냥한 목소리.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
“이쪽에 연 님이랑 무슨 약속을 했다는 괴한이 하나 있는데…….”
“연이 씨! 저예요! 기억나죠? 우리 그때 경합에서, 악!”
쏟아질 것처럼 크게 뜬 눈.
말 대신 얼굴로 경악을 표현하는 도사에게 목덜미가 붙잡혔다.
도사는 다급하게 무전기를 잡아채고 내 어깨를 팍 떠밀었다.
씩씩대며 기계와 나를 번갈아 노려보는 꼴이 영 심상치 않았다.
워워. 무슨 일 난 것도 아닌데 왜.
그녀를 달래듯 인자하게 웃으며 다가갔더니.
“의심 분자로 체포하겠습니다.”
도깨비처럼 눈을 부라리며 내 팔을 잡아 꺾었다.
압박해오는 힘에 항복하듯 도사의 팔꿈치에 탭을 쳤다.
“지인짜 죄송.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진실을 증명하려고……!”
“변명은 서에 가서 따로 하십쇼. 여기요!”
“아니, 선생님! 저 진짜 연이 친구 맞다니까요? 만나기로 약속했다니까!”
그 약속이 좀 일방적이긴 한데!
소란에 사람들의 이목이 점점 모이기 시작했다.
멱살이 붙잡혀 짤짤 흔들리는 사이 뒤집어쓴 모자도 떨어지고, 선글라스도 슬슬 콧잔등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이거까지 벗겨지면 난 끝이다.
최후의 수단으로 도사를 걷어차고 도망 갈 시뮬레이션을 마친 사이.
“이게 무슨 일이에요?”
난장판을 보고 뛰어왔는지 숨이 잔뜩 차 보이는 연이 소리쳤다.
뚝.
나를 막무가내로 붙잡던 손길이 멈췄다.
“연이 씨.”
흘러내린 선글라스를 비밀 요원처럼 바짝 추켜올리며 인사했다.
반가움이 눈 밑으로 그렁그렁 매달렸다.
“오랜만이에요.”
그리고 짧은 침묵.
“……누구세요?”
인상착의를 살피려는지 위 아래로 고개를 움직여대던 연이 의심 가득하게 물었다.
젠장, 이걸로는 못 알아보는구나.
목덜미를 쥔 힘이 좀 더 의기양양하게 변했다.
다시 철창행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 나.
도사의 손을 팍 떨쳐내고 연에게 바짝 다가섰다.
어떻게 막기도 전에 휘리릭 선글라스를 내려 얼굴을 확인시켜주었다.
깜빡깜빡.
두 눈이 마주쳤다.
“모아 님?”
그녀가 놀란 토끼 눈으로 물었다.
이정도 아는 척이면 됐겠지.
묻는 연을 뒤로하고 나를 막아서던 도사와 아이컨택을 시도했다.
곧 졸도할 것 같은 표정.
사색이 된 낯빛이 시체처럼 허옇게 질려 있었다.
그러니까.
‘진짜라니까.’
가볍게 어깨를 치고 연의 옆자리에 섰다.
“일단 가면서 얘기해요.”
순식간에 기세등등해진 어깨를 쫘악 폈다.
연의 손을 붙잡고 골목 사이사이를 헤쳤다.
인간 방벽들에게서 멀어지자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일단 포탈 장소와 사람들의 분리를 우선이라고 생각한 건지, 안쪽에는 돌아다니는 헌터들의 수가 훨씬 적었다.
실랑이를 벌이느라 남은 시간은 약 20분여.
다행히 이곳에서 포탈이 터질 현장까지는 멀지 않아 근처까지 가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길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까.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리며 발걸음을 좀 더 빨리했을 때.
“잠시만요.”
내 손에 붙들려 얌전히 따라오던 연이 우뚝 멈춰 섰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삐걱대는 목 관절로 고개를 돌렸다.
날카로운 시선이 온몸을 난도질했다.
“정말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공손하지만 단호한 태도였다.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면 당장에라도 내쫓을 준비를 하고 있는 저 눈빛.
연은 평소보다 더 날카롭고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편으로는 저렇게 경계하는 게 이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이태원은 진리회 놈들의 수작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상태.
그게 장난식이든, 장난이 아니든 청렴의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다가올 게 뻔했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
작은 꼬투리라도 잡히면 비난의 중심이 되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얘네 입장에선 포탈이 정해진 시간에 터지지 않는 게 가장 베스트일 거고.
근데. 그런데도.
‘…… 약간 서운한데.’
자꾸 아랫입술이 비죽 튀어나오려는 걸 꾸욱 참아야 했다.
나는 사실 어제부터 좀 들떴었는데.
혹시나 만날 수 있을까, 오랜만에 보는 도 연은 어떤 모습일까 조금 가슴 뛰면서 왔는데.
‘완전 쌩하네.’
생전 처음 본 남보다 더 못한 두 번째 만남이라니.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런 걸 알면서도 못내 씁쓸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눈썹을 몇 번 문질렀다.
준비해 온 예상 질문의 답변을 내뱉었다.
“천문진리회.”
가벼운 언질에도 눈에 띄게 태도가 흔들렸다.
역시 아는구나.
청렴이 그 정도 조사도 하지 않았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천천히 눈썹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냥 포탈 예언. 그게 끝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녀의 눈이 점점 더 크게 벌어졌다.
무슨 뜻이냐고 되묻지도 못하는 입술이 달싹였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작게 속살거렸다.
그리고.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고 했잖아요.”
벌써 잊어버렸냐는 것처럼 연을 올려다봤다.
***
―『“1분 남았습니다.”』
무전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긴장감에 차 있었다.
이태원 상공 중심.
구름을 타고 있는 도 학은 고요한 얼굴로 밑을 내려다보았다.
앞으로 1분.
‘조금만 있으면 이 망할 장난질도 끝이야.’
편지가 도는 근 몇 주 내내 얼마나 이 일로 시달렸는지 모른다.
하필이면 이태원.
자신의 길드가 관할하는 그 지역에, 선전포고를 하듯이.
‘포탈 예언.’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그동안 몇 번이고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지만 단 한 번도 진짜였던 적이 없었다.
다 물 밑에서 떠다니는 뜬구름 잡는 소리.
‘이번처럼 대대적으로 떠들어댔던 적도 없었지만.’
이건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포탈이 생기고 약 10년.
이제야 혼란스럽던 체계가 제대로 정돈되고 일상을 회복하는 과도기였다.
아직까지 물렁한 토대 위에서 또다시 각성자와 비각성자를 나누고, 공포를 조장해 사람들을 선동하고, 그로 인해 이득을 보려는 무리가 존재한다면.
‘썩은 뿌리 끝부터.’
솎아낼 수밖에.
숨을 죽이고 초침이 60번 흐르길 기다렸다.
똑, 딱, 똑, 딱.
손목시계의 얇은 바늘이 12를 지났을 때.
“……포탈 나타난 곳 있나?”
도 학이 무전기를 쥐었다.
N2941. 없습니다. T1938. 아직입니다.
순차적으로 전달되는 목소리들이 평온함만을 야기했다.
이제, 3시 33분 24초.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내내 시달렸던 고통이 끝나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3시 33분, 30초.
똑. 딱.
똑.
“말도 안 돼.”
구름이 쏜살같이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