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이제 1분 정도밖에 안 남았네요.”
초조해 보이는 연의 옆모습을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포탈이 생길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길 사이.
우리는 도둑처럼 은근히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힐금 곁눈질하더니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짓고 있던 안온한 미소는 어디 가고, 근심 섞인 얼굴이 팔짱을 꼈다.
정해진 자신의 위치로 가 있지 않아서 불안한 건지.
아니면 진짜 포탈이 터질까 봐 불안한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불안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명암.’
그 미친 집단이 정말 무슨 짓이라도 해낼까 봐.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권해이에게 언질을 넣어놨었는데, 재촉하듯 현재 상황을 캐묻자 주서윤과 집무실에서 회의하고 있는 사진이 실시간으로 날아왔다.
그 모습을 보자 조금 안심이 됐다.
어쨌든 이 장소에 그녀가 오지 않았다는 건 확실했다.
가장 최악의 가정은 피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그리고 이걸 확인하기 위해, 나는 구구절절.
‘연에게 모든 것을 떠들어놓아야 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천문진리회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우리도 편지가 거기서부터 시작했다는 걸 알고 있고(우리가 누구인지는 어물어물 넘어가기로 했다.), 그 미친 사이비들이라면 고작 포탈을 예언했다는 것만으로는 안 끝날 것이다.
공식적인 협조 요청을 넣으려고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청렴까지 잘못 얽힐 가능성이 있어 어쩌구저쩌구…….
절절하게 토로하는 나를 연이 조금이나마 믿어줘서 다행이었다.
(다 뻥이지만.)
정말 다른 짓 하지 않고 예언 시간까지 지켜보기만 하겠다.
몇 번이고 비굴하게 매달리니, 그 착한 심성이 어디 가지 않는다고.
연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옆에서 감시 아닌 감시를 하겠다는 단서가 따라붙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거기다.
‘포탈이 생성될 장소를 안다고 말하는 나를 무시할 수 없었겠지.’
솔직히 믿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는데.
연은 대충 ‘정보를 입수했다’고 갈무리해 버린 내 말을 여전히 의심스러워했다.
자신들도 얻지 못한 정보를 이 애가 알고 있다고 하니 분명 더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어떡해.
‘그게 진짜인 것을.’
미래에서 봤다고 하면 미친놈 취급받을 게 뻔하니 그 정도는 이해해주었으면 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연은 내 옆에 있었고,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약.
‘30초.’
시간은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숨이 긴장감으로 가라앉았다.
20. 10. 그리고.
“…….”
오후 3시 33분.
주변은 고요했다.
하. 기가 차다는 것처럼 짧은 숨이 터졌다.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머리를 쓸어 넘기는 연의 옆에서, 나는 여전히.
집요하게 광장 위를 바라봤다.
그녀의 무전기에서 노이즈가 새어 나왔다.
―『“T1938. 아직입니다.”』
―『“C802. 이상 없습니다.”』
―『“K2014. 여기도…….”』
연은 자신의 믿음이 틀렸다는 걸 초마다 확인사살 받는 중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10초, 20초, 30초.
그리고.
딸랑―.
어디선가 방울 소리가 울렸다.
투명한 물에 물감이 화악 퍼지는 것처럼 스며드는 기시감.
순간 가물가물한 이미지가 잡음처럼 머리에 낀다.
‘어디…….’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소리.
어디? 어디서?
떠올리기도 전에 등을 돌린 연의 팔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황당으로 상기된 얼굴이 나를 노려본다.
까딱.
앞으로 한번 턱짓했다.
“이게…… 무슨.”
경악한 연이 입을 틀어막았다.
깨진 유리조각 같은 균열.
‘포탈.’
예언대로, 신문대로. 포탈이 생성되고 있었다.
그들의 눈앞에서.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왜.
‘재난 문자가…….’
포탈이 생긴 지 몇 초가 지났는데도 사이렌이 울리질 않았다.
혹시나 싶어 스마트폰을 열었지만 알림 같은 것도 없었다.
기계가 고장 났나? 잠시 생각했지만, 주변에서도 하나도 경보음이 울리지 않는 건 이상했다.
‘그럼 저건 뭐야.’
폰포탈?
그 사이, 완전히 아가리를 벌린 포탈 안으로 배치 팀원들이 뛰쳐 들어갔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도 학을 포함한 청렴 소속(아마도) 사람들은 3분도 되지 않아 다시 바깥으로 돌아 나왔다.
빠르고 정확했다.
머리카락 한 올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포탈을 빠져나온 도 학은 어딘가를 보고 허리를 숙였다.
서서히 걸어오는 한 여자가 보였다.
‘서이본.’
여전히 모든 게 시시하고 재미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녀를 보자 톱니바퀴 맞춰지듯 상황 파악이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채본은 지금.
‘이태원 포탈을 묻을 생각이구나.’
이제야 그렇게 인간 방벽을 세운 이유와 오지 않는 재난 문자를 이해했다.
만약 예언이 맞을 경우, 불어 닥칠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채본과 청렴이 짜고 움직이고 있었던 거겠지.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그런다고 사람들이 바보처럼 속아 넘어갈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서이본은 포탈 공략을 마친 팀원들에게 보고를 받기 시작했다.
멀리서 잘 들리진 않았지만, 필사의 노력으로 입 모양을 읽어보니 ‘똑같았다’, ‘다른 건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 정말로.
‘끝난 건가?’
그렇게 긴장한 것치곤 너무 순식간에 정리된 상황에 기분이 좀 얼떨떨했다.
서서히 철수하기 시작하는 각성자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딘가 찜찜하다.
이렇게 순탄하게 마무리되는 게 너무 찜찜한데…….
‘이게 맞는 거겠지.’
쉽게 간다고 불안해하는 내가 웃길 지경이었다.
그동안 너무 하드모드에 적응한 게 분명하다.
머리를 몇 번 털며 생각을 정리했다.
어쨌든 이태원 포탈로 정확히 알게 된 사실 한 가지.
‘신문은 내가 바꾼 서사를 반영하는 게 아니다.’
그저 정해져 있는 설정.
이 세계의 ‘본래 서사’를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일 뿐.
흐음. 작게 탄식했다.
힐긋 연을 살폈다.
그녀 역시 지금 이 상황을 머릿속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진짜 포탈이 생성된 사실부터, 내가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 것까지.
작게 툴툴거리며 스마트폰을 열었다.
‘몰라줘도 된다.’
주서윤 사망 플래그는 이제 완벽하게 끝이었고,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개운했다.
진리회고 명암이고 사실 별거 아니…….
삐이이―.
뒤늦은 경보음이 울렸다.
“엥?”
머쓱하게 스마트폰을 매만졌다.
새빨간 소리는 나뿐만이 아니라 사방에서 울리고 있었다.
이태원 포탈 문자가 지금 도착했나?
이러면 앞에서 멋있는 척 추리했던 게 좀 부끄러워지는데…….
화면을 확인하려는 찰나.
삐, 삐, 삐이이―.
평소에는 들어본 적 없는 소리로 사이렌이 끊겨 울렸다.
쉴 새 없이 갈아 치워지는 화면을 보며 손이 잘게 떨렸다.
“어…….”
거짓말.
【구로 고척로 31길, 고척동 249 S-S급 포탈 신호 감지. 위험 지역에서 즉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반경 3km 이내 민간인의 이동이 제한됩니다.】
【강남 봉은사로 16길, 역삼동 614, S-A-급 포탈 신호 감지. 위험 지역에서 즉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반경 3km 이내 민간인의 이동이 제한됩니다.】
【광진 영화사로 7길, 중곡동 100-16 NE-C+ 포탈 출현. 인근 주민 여러분들은 안전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반경 1km 이내 민간인의 이동이 제한됩니다.】
…….
…….
눈앞이 불투명한 메시지창들로 뒤덮였다.
【예정된 서사를 벗어나 페널티가 부과됩니다.】
【상태 및 세부 사항이 조정됩니다.】
#
【MISSION】
▷ 포탈을 공략하라!
― 분류 : 서브
성공 시, 1000 ~ ?? 다이아 지급.
(단, 신체의 일부가 손상될 때마다 100 다이아 씩 차감됩니다.)
실패 시, 엔딩.
(※위 미션은 각 포탈마다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중복 미션 수행이 가능합니다.)
#
비틀거리며 몸의 중심이 무너졌다.
바닥이 물컹거리며 나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숨이 턱 끝까지 가빠졌다.
‘그럴 리가.’
패닉에 빠진 머리가 새하얘졌다.
‘주서윤이 이곳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명암과 주서윤이 접촉하지 않았기 때문에?’
‘포탈이 폭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머릿속에 우다다다 떠오른 장면들.
생각할 수 있는 가정이 너무 많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정보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골랐다.
모든 시작은.
‘잠실 참사.’
거기서부터.
‘지금 와서 왜.’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강하게 짓눌렀다.
사실, 잠실 참사를 그렇게 마치고 언제라도 후폭풍이 닥치지 않을까 걱정했던 건 맞았다.
종로 때에도 그랬듯이 미래에도.
그러니까, 에도 영향을 미칠 법한 서사 변동은 크게 나비효과가 온다는 걸 이미 체감해 봤으니까.
그러나 내가 믿고 있었던 건 단 몇 가지 상황들이었다.
첫 번째.
‘내가 직접 포탈 공략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
그때 내 등급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일부러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나는 잠실 참사의 엑스트라였을 뿐.
진짜 포탈을 닫고 싸운 주역은 이겸을 비롯한 상위 랭커들과 길드들이었다.
그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진짜 주서윤의 마음만 살짝 비튼 정도의 영향력에 불과했으니.
두 번째.
‘크게 서사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이건 내가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많은 사상자와 부상자를 낼 잠실 참사.
그것을 막아 볼 방법도 있었으나…….
‘하지 않았지.’
아직도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속이 뜨끔거리는 것도 그 탓이었다.
나는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 같아서.’
갑갑하게 조여 오는 심장 부근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나는 잠실 참사에서.
‘다이아를 받지 않았다.’
그것이 가장 큰 방증이라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서사가 바뀌고 내가 무언가를 휘저어놨다면, 시스템이 다이아를 지급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반대로 그 말은 무언가 크게 바뀌지 않았고.
‘내가 한 선택들이 크게 스토리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뜻.’
…… 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이렇게.
‘지금.’
속이 울렁거렸다.
지금 터지는 포탈들은 순전히 내가 만든 재앙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이태원은 그저 잠실 참사에 부가적으로 딸려오는 서사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멍청했다.
후폭풍은 이미 불어 닥치고 있었다.
아마도.
‘잠실 참사가 끝났을 그때부터.’
머리 위가 점차 흐리게 물들었다.
먼 하늘에서 마수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운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