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75
75화
“신장(神將)님.”
“티, 팀장님, 이게…….”
불가항력으로 흔들리는 시선들.
하늘을 새카맣게 물들이는 대전란의 문.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눈길이 각각 자신들의 결정권자에게로 박혔다.
무언가 아득한 것을 보듯 감았던 도 학의 눈꺼풀이 서서히 뜨였다.
짜증스러운 얼굴로 단말기를 매만지던 서이본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서로의 입장을 안다는 것처럼 짧은 눈인사를 마친 뒤.
“움직이겠습니다.”
“철수한다.”
등을 돌렸다.
주머니에 양손을 처넣은 서이본이 서두른 보폭으로 걸었다.
“네? 팀장님, 그럼 저 포탈들은…….”
“관할 길드들이 처리할 거야.”
“그, 그래도 보이는 걸 그냥 두고 간다고요?”
그녀의 구둣발 소리가 날카롭게 멈췄다.
X됐다.
주변에 있던 채본 팀원들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서이본이 뒤를 돌았다.
바들거리는 팀원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무표정한 시선이 그를 내리깔았다.
“이상현.”
목에 건 공무원증을 지긋이 누르는 손끝.
서이본이 그의 목걸이 줄을 따라 목덜미까지 손을 쓸어 올렸다.
팍!
목줄처럼 거칠게 붙잡아 당겼다.
강제적으로 숙여진 고개가 후들후들 떨렸다.
목가에는 붉은 자국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멍청한 소리.”
그녀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거 달고 있으니까 네가 진짜 뭐라도 된 것 같이 느껴지나 봐.”
“…….”
“우린 그냥 꼭두각시야. 위에서 하라는 것만 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나?”
“…….”
“진짜 필요한 곳에 적절한 배치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라는 소리야.
서이본이 움츠러든 팀원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렸다.
그녀가 다시 가야 할 길로 떠나는 사이에도, 숙여진 허리는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유니폼을 맞춰 입은 채본 무리가 우르르.
서이본의 등 뒤를 쫓았다.
한편.
“솔개. 아령.”
허리춤에 달린 도 학의 샛노란 노리개가 흔들렸다.
“예.”
“두 팀으로 나눠 한강진과 청파 공략을 우선으로 움직이세요. 다른 구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라 지원을 바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막아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신장님께서는…….”
“나는.”
도학이 두루마기의 고름을 단단히 고쳐 맸다.
“창전으로 갑니다.”
새애액.
구름이 긴 꼬리를 남기며 사라졌다.
신장님! 신장니이임!
밑에서 소리치던 도사들이 허, 하고 짧은 탄식을 냈다.
“그래도 S급인데 신장님 혼자 괜찮으실까?”
그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괜찮을 리가 없었으니.
혼자서 포탈은 어찌어찌 닫아낸다고 해도, 그 이상의 피해를 막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본인들도 아는 걸 그가 모를 리 없다.
관할 구에서 터진 A급 이상 돌발 포탈만 해도 3개 이상.
손이 부족하다는 걸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건 자신들의 우두머리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군말 없이.
“우리도 서둘러 움직이자고.”
도사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
“어디 가요?”
다급하게 움직이려는 등을 이번에는 연이 붙잡았다.
연은 여전히 무전기로 뭔가를 바쁘게 통신 받는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내 팔을 절대 놓지 않았다.
쳐내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고개를 돌렸다.
“포탈이요.”
너무 당연한 걸 물어 당황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을 꽉 쥐었다.
안내 문자는 물론 학교 단톡방이나 화랑에서 오는 연락들도 난리였다.
그만큼 전대미문.
미증유의 사태인 게 분명했다.
나 역시 애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포탈을 몇 번 보긴 했지만…….
‘이렇게 미친놈들처럼.’
뼈가 새하얗게 불거질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채본에서는 포탈 위치를 공유하는 GPS 지도가 링크로 날아왔다.
재빠른 대처였다.
더불어 각성자 동원 문자까지.
【[채대본] 각성자분들께서는 등급에 맞는 주변 포탈을 확인하시고 공략에 적극 동참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협조 부탁드립니다.】
【[채대본] bio.le/1o0cf / 포탈에 입장하실 때에는 반드시 ‘참여’ 버튼을 눌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진입 인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조치해 놓았으니 많은 이용 바랍니다.】
지도 주변에는 포탈들이 수두룩했다.
C, D. 낮은 등급의 소멸부터 A급 이상의 돌발 포탈들이 붉게 점 찍혀 있었다.
현 상황에서 소멸은 큰 위협이 아니다.
문제는 돌발.
그 등급 높은 포탈들을 막을 각성자들의 풀이.
‘존재하냐는 것.’
완벽한 피라미드식의 각성 구조.
각성자들 중에서도 A등급 이상은 거의 상위 1% 안에 든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선천적인 게 아니라면 모든 능력치가 높기 어려웠고, 그만큼 격차가 많이 났다.
하물며 간당간당한 A.
남들보다 조금 더 잘나가는 B+만 돼도 상위 길드에서 모셔가려고 난리가 난다는 판에.
그러므로.
‘한쪽으로 전력이 쏠릴 게 뻔하다.’
지금 청렴이 움직이는 방향만 봐도 급한 불 먼저 틀어막자는 심산이지.
자잘한 낮은 등급 포탈들을 신경 쓸 만한 정신은 없어 보였다.
나는 그것들을 노릴 생각이었다.
빠르게, 그리고.
‘많이.’
어스름한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연의 손을 천천히 붙잡아 내렸다.
“가볼게요.”
뭔가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인지 무전기 속으로 언쟁을 벌이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은 보광동 C급 포탈.
길가에 놓인 자전거라도 훔쳐 타면 5분도 걸리지 않을 위치였다.
나는 연을 뒤로하고 무작정 땅을 박찼다.
지금은 걷는 것도 사치였다.
전속력으로 무릎을 굽히던 순간.
“같이 가요!”
그녀의 소리침이 뒤통수를 울렸다.
끼기긱.
브레이크를 밟은 차처럼 몸통이 멈췄다.
연이 내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쑤셔 넣은 무전기가 그녀의 뒷주머니에서 달랑거렸다.
숨도 차지 않는지 여전히 단정한 얼굴로 옆자리를 꿰차고, 안내하라는 것처럼 눈짓했다.
그 얼굴을 한 번.
여전히 징징 울리는 핸드폰을 한 번 보고…….
“청렴 쪽에 합류 안 하시고요?”
다시 다리를 움직였다.
말하고 싶은 건 많았으나 다른 걸 따져 물을 시간이 없었다.
연은 결정한 걸 무르지 않겠다는 듯 확고한 투로 답했다.
“저 하나 다르게 움직인다고 큰일 날 것 같지 않아서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뭐가 됐든 나로서는 감지덕지한 판단이었다.
연이 합류한다면 C급은 당연하고.
‘적어도 A급까지는.’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았으니.
징, 징, 지잉―.
또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번쩍이는 화면을 슬쩍 확인한 뒤, 뒤집어 주머니에 처박아버렸다.
발신의 주인공에게 작게 사과했다.
‘미안.’
지금은 받아도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부재중 전화 7건 – 서윤언니, 서윤언니, 해이…… / 수신 문자 11건」
***
【MISSION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달성도를 계산 중입니다…… 】
【1000 다이아를 얻으셨습니다.】
“다음.”
【MISSION을 클리어하셨습니다!】
【1000 다이아를 얻으셨습니다.】
“다음.”
【MISSION을 클리어하셨습니다!】
【2500 다이아를 얻으셨습니다.】
“다음.”
“자, 잠깐만요!”
세 번째 포탈을 빠져나온 후.
연이 지친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바닥에 주저앉기까지 하는 걸 보면 이번 B급 포탈 돌파는 좀 빡셌던 모양이다.
하긴.
‘나도 좀 벅차긴 했는데.’
가쁘게 오르내리는 등을 보며 마나 물약과 체력 물약을 입에 쏟아부었다.
뺨에 묻은 끈적한 액체를 대충 닦아냈다.
근 30분 안에 세 포탈.
이동했던 시간을 제외하면 한 포탈 당 약 5분 컷.
그러나.
‘아직 멀었어.’
핸드폰을 들었다.
다음 동선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지도를 딱 보기에도 C, D정도 포탈은 꽤 많이 닫혔는데, B등급 이상 포탈들은 여전히 고전 중이었다.
참여 인원이 아예 찍히지 않은 곳도 종종 보였다.
그 순간, 코끝을 스치는 쇠 냄새.
‘그럼 그 주변은…….’
머리가 무겁게 느껴지며 시야가 어지러워졌다.
누군가 서서히 목을 졸라오는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가만히 서 있는 시간이 두려웠다.
마수들의 앞에 선 것보다 훨씬 더.
쪼그려 앉아있는 연의 등을 쓸어내렸다.
“나는 가야 돼요.”
너는 나를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
그 뜻을 내포한 말이었다.
솔직히 마음이 좀 불편했다.
스스로도 난폭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아니.
멈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근데.
‘연은 굳이 거기에 동참할 필요도, 나랑 갈 이유도 없는데.’
내 옆에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청렴에 합류하고 싶은데 뱉은 말이 있어 괜히 못 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다음은 어딘데요?”
나와 계속 함께 가겠다는 것처럼 연이 다리를 일으켰다.
조금 흐트러진 그 모습을 보며 내색하지 않고 답했다.
눈으로는 여전히 지도를 더듬는 중이었다.
“서빙고요. B+이긴 한데, 소멸이니까 우리 둘이 가면 빨리 정리할 수…….”
“모아 님, 그거!”
연이 놀란 얼굴로 말을 끊었다.
덩달아 놀라 그녀를 쳐다보자 어딘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내 쪽을 향해 있었다.
뭐. 뭐가 있나?
다급하게 뒤를 둘러봤지만, 모두가 대피한 거리는 고요하기만 했다.
그게 뭔데요. 묻기 위해 다시 고개를 돌린 찰나.
“…… 허업.”
연의 손이 뺨에 닿았다.
뭔가를 문지르듯, 볼을 쓸어내리는 부드러운 손길에 무의식적으로 숨을 참았다.
그녀는 내가 그러건 말건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멈추지 않았다.
불만 가득히 앙다문 호두턱.
연의 입술이 달싹였다.
“피나요.”
“…… 피요?”
“네. 엄청 철철.”
확인하듯 보여주는 그녀의 손등이 피칠갑이었다.
아까부터 끈적한 게 마수나 땀이 아니라 피였다고?
그 쇠 냄새가 사실은 진짜였다고?
관자놀이 주변을 더듬었다.
‘진짜네.’
벌게진 손을 보며 무감각하게 생각했다.
언제 상처가 났는지 모르겠다.
아까 마수랑 부딪혀서 좀 세게 박치기를 하긴 했는데.
‘그 때나 저 때나.’
알아서 쓸모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싸우다 보면 피야 좀 날 수도 있지.
내가 그다음에 할 행동이란 뻔했다.
인벤토리에서 체력 포션을 꺼내고.
‘머리 위로 퍼붓기.’
이런다고 멎으려나 모르겠지만.
젖은 앞머리 위로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대충 쓸어 넘긴 뒤 포션이 범벅 된 관자놀이 부근을 문질렀다.
조금이라도 흡수돼 보라고.
그런데.
“…….”
연이 또 괴생명체라도 만난 것처럼 경악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번엔 뭐가 문제냐.
묻고 싶었지만, 그저 머쓱하게 입꼬리를 당겼다.
“갈까요?”
나보다 더 착잡해 보이는 그녀가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