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became the younger sister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9
9화
변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부분까지는 예상 그대로였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포탈에 입장하자마자 손등에 생긴 시간을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플로어 층수와 남은 시간.
이건…….
‘탑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똑같은 반응이다.’
탑.
지반을 뚫고 불쑥 튀어나와, 끝까지 오르면 보상을 주고 사라지는 형식의 컨텐츠.
돌발 포탈과 흡사하지만 극악하다 평을 받는 이유는 세 가지.
1. 플로어 별 등장하는 마수 계열이 종잡을 수 없고
2. 세이프티 존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중도 포기할 수 없다는 점
3. 높은 등급일수록 상성에 맞지 않는 공격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는 점.
물론 클리어 보상은 짭짤했지만, 게임을 켜도 할 게 없다는 애카 고인물들을 저격해 내놓은 컨텐츠가 분명해 쌍욕을 먹던 업데이트였는데…….
‘바뀌어도 하필 이따위로 바뀌냐.’
골치가 아팠다.
만약 이게 정말 탑과 같은 구조고, 다음 플로어로 넘어갔을 때 무엇이 바뀔 줄 모른다면 내게는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거지 같은 판에 플로어 미션이 걸리기라도 한다면 그땐 끝이었다.
‘최대한 한층 한층 존버할 수밖에.’
어쨌든 제한 시간 전에 이 층을 넘어가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근데 이걸 어떻게 증명할 수도 없고.
속을 까뒤집어서 보여줄 수도 없고!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게다가.
‘니가 이렇게 새가슴인 줄 몰랐다.’
심히 질겁한 모습에 피로함이 몰려왔다.
이런 네거티브 형 인간 같으니.
유일하게 살아남아 번쩍이는 자판기로 손을 뻗었다.
“여기요.”
냉수나 먹고 속 차리라고.
시원한 물을 내밀자 주춤주춤하다가 이내 받아든다.
내 몫은 콜라.
톡 쏘는 청량감에 속이 조금 개운해졌다.
꼴깍꼴깍 물을 삼킨 놈은 조금 진정 됐는지 아까처럼 중얼중얼 독백을 외진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재활용되는 박스처럼 꼬깃꼬깃 접힌 몸뚱이가 펴질 기미는 없었다.
한숨을 내쉬었다.
“재난이 언제 예고하고 찾아오는 거 봤나.”
강민형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어쨌든 일어난 일이고, 거기서 살아남는 부류는 딱 세 가지예요. 첫 번째. 완벽하게 대비를 마친 사람. 두 번째. 모든 상황에서 살아날 만큼 강한 사람.”
“…….”
“세 번째.”
잠시 텀을 주자 강민형의 고개가 슬쩍 들렸다.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사람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사람.”
“…….”
“어떡할래요?”
내가 너 살려준다고.
강렬한 눈빛으로 의지를 표명했다.
이건 뭐 살려주는 것도 이렇게 빌어서 해야 되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째깍째깍. 시간은 흘렀다.
강민형은 조금 마음이 정리됐는지 오 분 만에 훌쩍이며 일어섰다.
근 180의 거구 덕분에 시선이 위로 쭉 따라붙었다.
등치는 곰 같은 게.
주춤거리는 게 답답해서 놈의 체크 셔츠를 벗으라고 종용했다.
의문스런 얼굴을 하면서도 셔츠를 벗어 건네길래, 재빨리 놈의 손목에 셔츠 소매를 묶었다.
그리고 반대쪽은.
“잘 따라와야 돼요.”
내가 잡고 질질 끌었다.
무슨 강아지 산책시키는 것도 아니고.
영 그림이 찜찜했지만 일단 급히 처리해야 할 건이 있었다.
가장 먼저, 어떻게든 처치해야 할 1층의 보스를 확인해야 했다.
***
“…… 책이네.”
“…… 책이네요.”
쪼르르 따라붙은 두 머리통이 복도 모퉁이에 숨어 스터디룸 안을 훔쳐봤다.
책상을 뒤집고 의자를 부수고 필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는 보스 마수는 분명한 책이었다.
그것도 무슨 칠판만 한 크기의 책.
놈이 한번 책장을 퍼덕이면 강풍기마냥 바람이 휘몰아쳤다.
빳빳하고 번쩍거리는 양장본 겉면에 궁서체로 굵은 글씨가 써져 있다.
.
‘…… 고시생들의 원한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강민형은 너무도 익숙한 표지를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한이 담길 만도 하지. 암.
그 사이, 턱밑에 있던 작은 머리통은 ‘이걸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되는 건가…….’ 하고 다 들리게끔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무슨 생각인지 열심히 교실 안팎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뭐 찾으세요?”
“스프링클러요. 아님 소화전이나, 소화기나, 정수기…….”
“불이라도 끄시게요?”
싸아.
강민형은 공기가 식는다는 문장의 뜻을 이런 곳에서 체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 업신여김은 웨이브를 추겠답시고 꿀렁대다 문지방에 엄지발가락을 찧어 나동그라졌을 때의 누나의 표정 이후로 처음이었다.
괜히 머쓱하게 팔뚝을 비볐다.
어우. 여기 왜 이렇게 추워.
너스레를 떨어 봐도 이모아는 여전히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 기물형 마수는 약점을 파악해서 완전한 형태를 없애야 해요.”
그리고 친절한 설명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서, 아까 전에 따라오던 램프는 안에 든 필라멘트를 끊어놓는 게 공략 방식이에요.…… 제가 쓸데없이 그런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죠, 설마?”
“에, 에이. 그럴 리가요. 저도 다 알고 있던 사실…….”
“그럼 저 책은요?”
하늘이시여. 제게 왜 이런 심판의 길을…….
그 순간 강민형의 뇌 속에는 똑딱이는 타이머 하나가 생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마음만은 무슨 퀴즈쇼 최종 결선까지 나간 사람 같았다.
강민형은 말없이 주춤주춤 눈치만 봤다.
잠시 기다리던 이모아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태워야죠. 불 질러놓고 물로 꺼지면 아무 소용없으니까 주변 기물들 체크 하는 거고요.”
우우우. 야유하는 효과음이 두 귀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부, 분명 공부했는데.
석상처럼 굳은 강민형의 앞으로 이모아가 지나가며 작게 중얼거렸다.
“공부를…… 잘 하시는 편은 아닌가 보네.”
땡땡땡! K.O.
팩트 폭력까지 다채롭게 두드려 맞은 강민형이 비틀거렸다.
그 순간.
깨장창!
천장의 스프링클러를 노린 나무 막대기가 아주 정확하게 목표물을 꿰뚫었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몸뚱이가 콩벌레처럼 말렸다.
깜짝 놀라 펄떡이는 미약한 심장을 붙잡고 눈앞의 헌터를 원망스레 쳐다봤다.
그녀는 계획이 있는 장난꾸러기 꼬마처럼 씨익 웃었다.
손바닥 위로 작은 불꽃이 솟구쳤다.
“아니 뭐, 지금 뭐하는……!!”
말리려는 손이 미처 뻗어지기도 전에 스터디룸 안으로 냅다 불씨를 던져 넣었다.
이 사람 화 속성이었어?!
놀라기도 전에 화르륵.
안 그래도 탈 것 많은 공간이 새빨갛게 타올랐다.
쿵! 쿵!
불길이 옮겨붙은 1층 보스가 난동을 부리며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복도까지 번지는 불을 보며 강민형은 어딘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뭐, 불 지르는 것 까진 알겠는데, 이게 이렇게까지…….
“미쳤어.”
콰앙―!!
헌터의 정석이 벽을 뚫고 똑바로 대치했다.
“시간이 없어서.”
불길을 마주한 이모아가 강민형의 팔을 붙잡고 자신의 등 뒤로 세웠다.
머리 하나는 차이 나는 그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지금이라도 구조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자고 해?’
***
“앗 뜨거!”
풍향을 따라 파도처럼 밀려오는 불을 간신히 뛰어 피했다.
불 벽에 가로막혀 부서진 약한 불길은 형체를 잃지 않고 더 크게 번져갔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열기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팡! 파앙!
책등을 조준해 불덩이를 던지는 지팡이 끝이 거칠게 흔들렸다.
일렁이는 불길에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을 텐데도 그녀의 스킬은 보스에게 정확히 날아가 박혔다.
절대 E등급으로는 보이지 않는 전투 실력.
놈의 패턴을 다 아는 것처럼 여유롭고 노련한 움직임이었다.
이모아는 그렇게 차근차근 헌터의 정석 上편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불가능.
기적에 가까운 장면임에도 불구한데도.
“조심.”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안정감이 들었다.
넋 놓고 전투를 구경하느라 돌진하는 보스를 눈치도 채지 못했다.
머리통을 확 눌러 숙이게 만든 이모아가 팔을 당겨 공격 궤도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몸 위로 까만 재가 후드득 떨어졌다.
‘전투에 미친 귀신 같다.’
홱 밀쳐지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조용히 찌그러져 있지 않으면 못 구해준다고 그렇게 엄포를 놨으면서 하는 행동은 정반대였다.
이모아는 계속 공격을 이어가면서도 보스가 내 쪽으로 옮겨오지 않게 착실히 주의를 끌었다.
불로 인한 지속 피해가 끊이지 않게 유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안전한지 내내 반경을 신경 썼다.
‘필드가 자기 손바닥 안에 있는 사람처럼.’
측정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눈이 여덟 개던가, 팔이 열 개쯤은 되어야 할 법한 태도였다.
전투 센스가 좋은 건가? 아니면 훈련? 그것도 아니면…….
꿀꺽꿀꺽.
한 번 스킬을 날릴 때마다 맥주 마시듯이 목구멍을 열고 마나 포션을 들이켜는 이모아의 목울대가 솟구쳤다.
그 앞으로 불붙은 낱장이 활활 타올랐다.
이제 몇 장 남지 않았다.
책장이 전부 타면 보스도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딱딱한 표지 덕분에 속도가 좀 더 더디긴 했지만 이제 정말 곧 끝이었다.
‘진짜 살았구나.’
저 헌터가 날 살리고 있는 거구나.
불안했던 마음이 불길과 함께 녹아들고 있었다.
파사사삭!
마침내 마지막 낱장이 서서히 새까맣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끝이 보이는 목숨을 불태우며 발광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몸을 부딪치던 하드커버가 마침내 바닥에 툭, 떨어졌다.
【1F 클리어!】
【다음 층의 입장 권한을 부여합니다. (입장 시간 4분 28초)】
“내가 이긴다니까.”
파사삭.
하얗게 날리는 재 아래로 코밑에 검댕이를 슥 묻힌 이모아가 해맑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