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s the concubine of an obsessed emperor, and she's about to die. RAW novel - Chapter (50)
50. 제 위에 올라타십시오
2022.04.25.
엘리제와 데몬의 입장을 알리는 시종의 고함이 시에델의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이미 자이드와 연회장에 도착해 있던 루시아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그동안 그녀는 여러 차례 데몬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는 좀처럼 혼자인 시간이 없었으며, 조금도 틈을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라도 보고 싶어서 그런 데몬을 바라보다 알게 된 사실이 루시아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엘리제 님을 보시는 눈빛이 달라.’
속이 쓰렸다. 항상 무표정하고 진지한 그인데, 엘리제를 바라볼 때만은 달랐다.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붉은 눈이 반짝였다. 진득한 시선이 늘 엘리제를 좇았다.
꿀이 떨어질 것 같다는 말은 저런 눈빛을 이르는 말이리라.
그것이 루시아의 질투에 불을 붙였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 함께 연회장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니 더욱 속이 뒤집히는 것 같다.
자신의 눈으로 보아도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어서, 등장만으로도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특히 엘리제를 바라보는 이들은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말을 잃을 뿐이었다.
“아아!”
숨을 참는 이들과 감탄에 절로 말문이 막힌 이들로 연회장이 순간 정적에 사로잡혔다.
엘리제의 모습은 한눈에 보아도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우실 수가!”
“세상에!”
은빛 머릿결이 그녀의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숄 위를 거쳐 가슴 아래로 눈부시게 흘러내렸다. 고운 얼굴에 커다란 금안이 살아 있는 사람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다.
여신이 계신다면 분명 이러한 모습이실 것 같았다.
자이드가 그동안 그들에게 절대적인 미의 최고치였다면, 이제 이 순간부터 시에델의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이는 오늘 데뷔를 치르는 엘리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시에델의 영식 몇은 이미 현기증에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곧, 옆에 선 데몬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어머! 저분 너무 멋있으신 거 아니에요?”
“그러게요! 자이드 왕태자님도 엄청난 미남이시지만 저분은…….”
무척이나 위험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데요!
연회장에 입장한 것뿐인데, 데몬의 존재감이 공간을 압도했다. 그를 슬쩍 본 여인들이 벌써 소리를 죽여 감탄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데몬은, 위험할 것을 알지만 빠져보고 또 정복해보고 싶은 거친 파도와 같아 보였다. 그녀들의 눈이 스릴과 아찔함을 기대하는 모험심으로 가득했다.
데몬에 대한 칭찬은 루시아의 기분을 들뜨게 했지만, 엘리제에 대한 찬사는 반대로 그녀의 기분을 곤두박질치게 했다. 데뷔하기 전부터 엘리제가 벌써 모든 이의 눈길을 사로잡은 듯해서.
예상했던 일임에도 공주의 마음이 질투와 불안으로 타올랐다.
‘하지만 곧 관심을 끌어모은 만큼 큰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야.’
그녀가 실수하면 엘리제를 꽤나 마음에 들어 하는 왕후는 분명 안타까워할 것이다. 어쩌면 왕후는 엘리제의 부러진 구두 굽을 탓하다가 루시아까지 추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주는 일부러 엘리제를 칭찬하는 말로 매일같이 왕후에게 점수를 따놓았다.
‘이제 어마마마께서는 내가 엘리제 언니를 무척 좋아하는 줄로 알고 계시지.’
그러니 오늘 발생하는 엘리제의 실수가 루시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미 특별히 공들여 만든 구두를 신은 엘리제가 연회장에 등장했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쇼가 시작되면 될 뿐.
왕과 왕후의 등장을 마지막으로 데뷔탕트가 시작되었다.
많은 시에델 귀족들의 박수와 환호가 이어지고, 왕 페르만과 왕후 그레이스의 축사가 끝나자 춤곡 연주가 시작되었다.
공주 루시아와 파트너인 자이드가 먼저 홀의 중앙으로 나오자 오늘 데뷔를 하는 영애들 역시 파트너의 손을 잡고 하나둘씩 나타났다.
“엘리제 님.”
데몬이 낮고 그윽한 음성으로 엘리제를 불렀다. 엘리제는 붉은 눈을 올려다보았다.
“데뷔 무대의 첫 춤을 제가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그녀의 모든 춤은 자신의 것이면 좋으련만.
진지하고 따스한 눈빛에 긴장으로 얼었던 엘리제의 몸과 마음이 녹는 기분이었다.
그녀를 잡아주는 그의 큰 손이 무척 따뜻하고 든든했다.
“제가 더 감사해요.”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니 순간이 멈춘 듯 연회장에 오직 단둘만 있는 기분이 든다.
데몬이 먼저 발을 내디뎌 엘리제의 몸을 이끌었다.
가볍고 우아한 몸놀림으로 그녀가 빙그르르 돌아 그를 바라보며 거리가 지척이 되었다. 곧 두 사람은 음악과 함께 춤추는 이들 사이로 녹아들 듯 어울렸다.
“아, 정말 아름다운 두 분이네요.”
소곤대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레이스가 뿌듯하게 엘리제를 바라보았다. 기특하게도 힘든 수업을 잘 견디고 무사히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대견했다. 게다가 오늘 동작은 평소보다 더 깔끔하고 우아했다.
‘상대의 리드가 훌륭하여 다행이구나.’
엘리제의 파트너인 데몬은 척 보아도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절제된 동작이 군더더기 없이 훌륭했다.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것도 그렇지만, 엘리제 동작의 부족한 부분을 기막히게 메워서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열 쌍에 가까운 젊은 남녀가 연회 홀에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어느새 모두가 엘리제와 데몬만 바라보는 형국이 되었다. 아름다운 것에는 절로 시선이 가기 마련.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모두 탄성을 자아내며 황홀해하는 그때.
툭.
엘리제의 구두 굽이 부러졌다.
***
휘청.
갑자기 몸이 아래로 쑥 꺼지나 싶었는데, 데몬이 나를 확 끌어안았다.
‘앗, 뭐지?’
지금은 턴하는 차례가 아니다!
그런데 데몬이 내 허리를 꼬옥 끌어안고 가볍게 한 바퀴를 돌았다. 덕분에 내 발이 공중에 들렸다.
“어머!”
갑자기 화려해진 우리의 동작에 사람들이 작게 탄성을 질렀다.
“왜…….”
그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그의 대답에 도로 입이 다물어졌다.
“잠시 제 위에 올라타십시오.”
네? 뭘 타요?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내 두 발이 그의 발 위에 올려져 있었다. 드레스가 길어서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당황스러웠다.
“신으신 구두 한쪽 굽이 부러졌습니다.”
그가 작게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세상에! 귀에 대고 속삭이니까 목소리 더 좋아!’
기절할 만큼 황홀한 음색. 정말 듣기만 해도 몸이 떨리는 저음이었다.
그 덕에 내 굽이 부러졌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정신 못 차리게 멋진 그의 목소리와, 가까워진 그와의 거리, 맞닿은 몸에 호흡이 가빠지고 뜨거워질 뿐이었다.
‘죽을 것 같아.’
너무 좋아서. 그가 너무 멋져서. 그리고 너무 가까워서!
안 그래도 춤을 추느라 그와의 거리가 매우 가까웠는데, 지금은 아예 밀착된 채로 그의 발 위에 올라타 있다.
순식간에 마리오네트가 된 기분이다.
이성은 날아가고 몽롱하고 아득한 가운데, 데몬의 팔과 다리에 보이지 않는 실로 온몸이 묶여 조종되는 느낌.
‘그런데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아. 오히려…….’
행복하다. 게다가 이렇게 그에게 올려져 있으니 얼마나 그가 춤을 잘 추는지 잘 알 것 같다. 몸에 힘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있는데 동작이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이어진다.
“발 아프시지 않아요?”
“너무 가벼우셔서 전혀 아픔이 없습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는 말이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원래 이렇게 잘 추셔요?”
분명 내 얼굴 붉어졌겠지?
“몸으로 하는 모든 것을 잘합니다.”
“!”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사실인지 꼭 확인해보고 싶어지는 말이었다.
어디까지 잘하시는지 알아보고 싶어요. 뱉을 수 없는 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차차 하나씩 확인시켜드리겠습니다.”
“!!”
이제 마음도 읽는 거야?
어안이 벙벙한 내 귓가에 그가 다시 한번 속삭였다.
“마지막 동작입니다.”
조금 전까지 혼을 쏙 빼놓고는, 이제 내 머릿속 열기를 식히듯 그가 마지막 동작을 천천히 우아하게 마무리 지으며 나를 내려놓았다.
덕분에 나는 굽이 부러진 한쪽 발을 뒤로 빼고 파트너에게 올리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무사히 춤을 마칠 수 있었다.
정지한 상태에서 두 발을 내리니, 부러진 구두의 높이차가 생각보다 컸다.
‘이 상태로 그냥 췄으면 크게 넘어졌겠구나!’
데몬이 내 몸을 들어 자기 발 위에 올린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내가 춤을 잘 추는 고수였어도 이 정도의 높이면 분명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제가 또 한 번 빚을 졌어요.”
인사를 마치고 그의 손을 잡고 앉을 수 있는 자리로 향했다.
“부디 갚아주십시오.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앗! 오늘 왜 이렇게 직설적이세요?
‘하는 말 하나하나가 유혹적으로 들려.’
유독 오늘 그렇게 느껴지는 건 내가 이상한 건가?
예상치 못한 대답에 그를 바라본 채로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달아오르는 내 얼굴이 느껴지는데, 뭐가 좋은지 데몬이 날 보고 웃는다.
아…….
웃으니까 더 멋지잖아.
심장이 아파 죽을 것 같다. 내 남자가 너무 멋져서.
‘안 돼. 그의 곁에서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은데.’
수명이 반으로 줄어든 기분이다.
***
루시아와 자이드 역시 춤을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홀의 중앙에서 좌석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루시아, 괜찮느냐?”
아까부터 안색이 좋지 않은 누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자이드가 물었다.
춤을 출 때도 여동생은 데몬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론 안타까웠으나 자이드는 그게 짝사랑 중인 누이의 당연한 반응이라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춤을 추고 있으니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겠지. 자신도 엘리제가 데몬과 손을 잡고 입장하는 모습부터 아름답게 춤을 추는 모습까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당연히 질투를 느꼈지만, 그럴수록 자이드는 티를 내지 않았다.
이럴 때는 티를 내는 쪽이 더 궁해지는 법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최후에 엘리제를 갖는 자가 승자가 되는 것이니 그때 마음껏 웃어주면 될 일이다.
‘어차피 나의 반려가 될 엘리제이니, 이 정도쯤이야 눈감아줄 수 있지.’
자이드가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은 이것 때문이었다.
엘리제가 무사히 데뷔하고 나면 왕후가 그녀를 양녀로 들일 것이고, 엘리제는 그 달콤한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후 자신과의 혼인은 일사천리일 것이 분명했다.
정령의 힘이 각성을 시작한 이상, 엘리제는 시에델 밖에서는 오래 살지 못한다. 그레이스의 양녀가 되어 시에델에 남으려면 자신과 혼인을 올려야 할 것이다.
‘엘리제에게는 그 이상의 선택지가 없을 것이다.’
아니, 솔직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그러니 자이드의 생각대로 그녀는 자신의 운명의 짝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니 이 정도는 이해해주는 너그러운 정혼자가 되어주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루시아는 사정이 좀 달랐다. 물론 공주가 대공을 갖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이뤄지는 일은 아니었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루시아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아까 데몬과 엘리제의 춤 동작이 조금 더 화려해지는 순간부터 루시아의 표정이 더욱 관리가 안 되는 것이 느껴졌다.
‘지나치게 둘이 어울리긴 했지. 지나치게 춤을 잘 추었고.’
또 지나치게 두 사람의 몸이 가깝기도 했다.
아무래도 역시 거슬린다. 성가신 데몬을 이왕이면 치워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누이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루시아, 도와줄까?”
분노와 질투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누이에게 자이드가 살며시 말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