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s the wife of an extra who turns evil RAW novel - Chapter 15
11.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온몸을 장식한 치렁치렁한 장신구였다.
귀, 목, 팔, 허리춤까지 화려한 장신구를 단 남자는 하아암, 하품을 했다.
‘어머머. 심지어 화장까지 했잖아?’
어마어마한 미남은 아니었으나 단정한 얼굴에 화장을 하니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꼭 잘 꾸민 아이돌을 보는 느낌이랄까.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메스가 아니라 마이크를 잡는 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얼굴인데.’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쿤에게 다가가 치맛자락을 잡고 인사했다.
“제국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쿤 님의 에스코트를 맡은 페르니아 라일락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질 거라 생각했던 인사는 들리지 않았다.
쿤은 마치 물건을 보듯 노골적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뭐야. 카르디엔의 약혼녀라고 하기에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가 했더니…… 못생겼잖아.”
……시방 뭐라고 했냐.
내가 못생겼다고?
어이가 없었다.
싸가지 없다는 말을 수두룩하게 듣고, 능력치도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단 하나. 얼굴만큼은 꿀릴 게 없는 나였다.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눈 제대로 안 달고 다니니?’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루시안에게 미리 이야기를 들었잖아. 범상치 않은 성격이라고. 그러니 상대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절대 이놈의 말에 휘둘리지 말자. 중요한 건, 적당히 비위를 맞춰 황제 폐하께 데려가는 거니까.
나는 수없이 갈고닦은 사교 미소를 머금었다.
“(개소리 그만하시고) 가시지요.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행히 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따라왔다.
재수 없는 말을 한마디 더 중얼거리긴 했지만.
“웃는 모습도 못생겼네.”
……그냥 지금 죽여 버릴까.
* * *
성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엄청난 인내를 발휘해야 했다.
그가 끊임없이 개소리를 내뱉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귀족 영애의 고급 스킬을 구사해야 했다. 일명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는 기술이었다.
물론 귀빈이니 아주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영혼 없는 추임새는 넣어 주었지만.
“에스텔이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르잖아. 어마어마한 미인이라더니. 하아…… 그녀의 말을 믿은 내가 바보지.”
“나라마다 미의 기준은 다른 법이니까요.”
이래 봬도 제국에서 꽤 먹히는 얼굴이란다.
힘겹게 미소를 유지하며 대답했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암담했다.
“제국도 취향이 참 특이하군.”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라일락 후작가라고 했지? 제국에서 어느 정도의 가문인 거지. 황실과 연이 깊은가? 아니면 어마어마한 영지를 가지고 있나?”
“그냥 평범한 후작가입니다.”
“뭐? 그럼 도대체 어떻게 너 같은 못난이가 카르디엔의 약혼녀가 된 거야?”
황제가 이어 줬다, 왜!
그 후로도 그의 질문은 계속됐다.
“카르디엔과 사이는 어때?”
“좋습니다.”
“푸핫. 거짓말은 집어치워. 솔직히 말해. 약혼자라고 해도 거의 볼 일이 없었을 거 아냐. 그놈은 끔찍할 만큼 사람에게 무관심한 데다가 여자하고는 담을 쌓은 놈이니까.”
참지 못하고 그를 노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안 그러면 그에게 달려들어 머리를 쥐어뜯어 버릴 것 같았으니까.
나는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편한 대로 생각하세요.”
하아.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구나.
괜한 일을 맡았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행히 곧 황성이었다.
그와의 짧은 만남도 이제 끝이었다.
“외모도 별로에, 가문도 별로라. 성격이라도 좋을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네. 재미없어.”
네놈이 재미있든 말든 내가 알 바가 아니거든.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며 말했다.
“황성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황성의 시종과 함께 가시면 됩니다.”
“너는 같이 안 가?”
“제 역할은 여기까지니까요.”
그러니까 바이바이.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 * *
쿤은 황제의 방을 찾았다.
내 앞에서 방정맞게 떠들 때와 달리,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은 진중했다.
쿤은 황제의 손목을 진맥하더니 신중한 얼굴로 말했다.
“상태가 좋지 않군. 하지만 아주 늦지는 않았어.”
“그 말은…….”
“오늘부터 해독 치료에 들어가지. 이미 독에 망가진 장기를 완전히 고치는 것은 무리지만, 몸속에 남아 있는 독을 제거하는 건 가능해. 그것만 해도 죽지는 않을 거야.”
쿤의 말에 핼쑥한 황제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제 죽은 날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그에게는 기적 같은 말이었다.
황제가 말했다.
“최고의 예를 갖추어 쿤 님을 대하도록 해라.”
그렇게 쿤은 황성에서 엄청난 대접을 받으며 황제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물 한 모금만 마셔도 피를 토했던 황제의 상태가 호전된 것이다.
“황제 폐하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지셨다면서요.”
“정말 대단한 실력이네요. 쿤 님은 제국의 은인이십니다.”
다 죽어 가던 황제를 살린 명의. 외국의 신비로운 의술을 가진 의사.
귀족들 사이에서 쿤은 엄청난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아. 매일 보는 얼굴도, 하는 일도 똑같으니 지겨운걸.”
쿤의 한마디에 황성은 난리가 났다. 어떻게든 변덕스러운 의사의 마음이 떠나지 않게 잡아야 했다.
황태후는 고민 끝에 쿤을 위한 연회를 열었다. 오랜만에 황성의 문이 열린 것이다.
수많은 귀족들이 연회에 참석했다.
화려한 황성의 연회를 즐기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쿤을 보기 위해서였다.
소문의 명의를 볼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난 그 사람 별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요.”
내 말에 아버지는 정색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페르니아. 라일락 가문의 사람이라면 유명 인사의 얼굴 정도는 알아 두어야지. 친분을 맺어 두면 더욱 좋고 말이다!”
정열적으로 눈을 빛내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쿤에게 아는 척해 보고 싶어 날 데려온 거잖아.’
아버지는 내가 쿤을 에스코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청난 인연이라며 나를 추켜세웠다.
그리고는 함께 쿤을 보러 가자며 끌고 왔다.
쿤의 첫인상이 워낙에 재수 없었기에 나는 연회에 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워낙 끈질기게 졸라 대니 어쩔 수 없이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 효도하는 셈 치자.’
솔직히 아버지에게 너무 박정했던 건 사실이니까.
쿤인지 쿰인지, 재수 없기는 해도 아는 척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나는 아버지와 함께 황성의 연회장으로 향했다.
연회장에 들어선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쿤의 취향에 맞춰 연회를 열었다더니 확실히 엄청나네.’
지금까지 황실의 연회는 점잖고 우아했다. 그러나 오늘의 연회는 경박하게 느껴질 만큼 화려했다.
연회장 곳곳에 정교하게 새겨진 장식품으로 반짝였다.
쿤은 연회의 주인공다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찰랑이는 액세서리. 아이라인을 또렷하게 그린 눈매. 화려한 색상의 옷까지. 첫 만남 때보다 더 화려한 모습이었다.
“……화, 화장을 한 겁니까?”
“그래 보이는군요.”
제국의 귀족 남성과는 전혀 다른 그의 모습에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여인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특히 화려한 미남에 약한 소녀들.)
“엄청난 명의라고 해서 배불뚝이 아저씨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젊고 잘생기신 분일 줄은 몰랐어요.”
“그러니까요. 의사는 경험이 중요하다는데,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실력을 가질 수 있으세요?”
여인들의 말에 쿤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난 천재니까.”
……어이없을 만큼 재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게 또 먹힌 모양이다.
“멋있어!”
여인들은 물개 박수를 치며 쿤을 추켜세웠다.
……아주 가관이었다.
그 후로 연회는 개판, 아니 쿤판이었다.
쿤은 주위를 둘러싼 여인들과 희희낙락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쿤 님은 수많은 전쟁에도 참여하셨다면서요?”
“그래.”
“그렇게 위험한 곳에 제 발로 가시다니, 정말 용맹하시네요. 두렵지 않으셨어요?”
“전혀. 난, 의사니까. 의사는 죽음의 친구지. 절대 죽음 따위 두려워하지 않아.”
“꺄아!”
어느새 결성된 그의 소녀 팬들이 소리를 질렀다.
어느 모로 보아도 오늘의 연회는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쿤과 소녀 팬들을 보며 몇몇 귀족들은 혀를 쯧쯧 찼다.
황태후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외국에서 와서 그런지 정말 자유분방하시죠. 저런 분이니 젊은 나이에 그토록 뛰어난 실력을 가질 수 있었나 봅니다.”
할머니, 그러지 말고 속마음을 말해요.
솔직히 저놈, 완전히 개망나니라고 생각하잖아.
쿤은 궁중 예법은커녕 흔한 존댓말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예의를 중시하는 황태후에게 참기 힘든 일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황태후는 쿤에게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쿤은 현재 황제의 생사의 끈을 쥐고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쿤의 눈치를 살피는 건 황태후만이 아니었다. 나이 든 귀족들은 썩은 미소를 지으며 애써 쿤의 편을 들었다.
“연회가 늘 조용했는데, 귀한 손님이 와 주신 덕분에 분위기가 환해졌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하.”
귀족 아재가 부릅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뭐, 아버지의 경우에는 정말 쿤에게 빠져든 것 같지만.’
아버지는 젊은 영애들 사이에 끼어 쿤의 말에 감명을 받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쿤의 밑도 끝도 없는 근자감 토크가 아버지의 취향을 저격한 모양이다.
아버지가 열의에 찬 얼굴로 손을 들고 물었다.
“쿤 님, 카르디엔 경과도 함께 전쟁터를 누비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이십니까?”
“그래.”
“카르디엔 경은 이 제국에서 제일가는 기사입니다. 오랜 전쟁을 3년 만에 끝낸 영웅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워낙에 말을 아끼시는 분이라 카르디엔 경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가 거의 없어요. 혹시 전쟁터에서 겪은 일화가 있으면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부지, 그 질문 하려고 여기 온 거지.
아버지의 질문에 쿤의 주위에서 이야기를 듣던 여인들이 술렁거렸다.
떠오르는 신성 쿤과 이미 우주대스타인 카르디엔의 에피소드라니.
누구라도 궁금해할 이야기였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쿤의 잘난 척을 듣기 싫어 막아 두었던 귓구멍을 일제히 개방했다.
‘내 얼굴이 궁금했다는 것을 보면 저 망나니 놈도 분명 카르디엔의 왕팬이겠지?’
그런 놈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카르디엔이라. 그놈에 대해서는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지.”
‘놈’이라는 호칭이 거슬리긴 했지만 넘어갔다. 저놈은 예의라고는 쥐뿔도 없는 무개념남이니까.
연회장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쿤이 말을 이었다.
“여기에서 탱자탱자 놀던 놈들이야 제대로 알지 못하겠지만, 분쟁 지역의 전투는 치열했어. 매일이 지독했지만 그날은 정말 끔찍했어. 인원을 충원한 적군이 기습을 한 거야. 한밤에 벌어진 일이었지.”
* * *
우아아아아-
어둠 속에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적군이 밀려들었다. 한낮의 전투로 지쳐 있던 이들은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으아악!”
“흐윽!”
이곳저곳에서 고통 어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장비를 갖추지도 못한 아군은 맨손으로 우왕좌왕하다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일방적으로 흘러가던 판도를 바꾼 건 루시안이었다.
“검을 들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군과 대열을 갖춰! 우리는 절대 지지 않는다!”
루시안도 제대로 된 행색은 아니었다.
갑옷도 없이 얇은 셔츠만 걸친 상태였고, 단추도 몇 개 풀어져 있었다.
흐트러진 모습의 루시안은 오직 검 하나를 손에 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루시안은 용맹하게 적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닥치는 대로 적군을 베고, 또 벴다. 승기를 잡아 기고만장했던 적군의 기세가 꺾일 만큼.
“전쟁터에서 굴러먹은 날이 꽤 되지만 그런 광경을 본 건 처음이었어. 고작 한 명의 인간이 그렇게 많은 인간들을 죽일 수 있다니 말이야.”
쿤의 이야기를 듣는 영애들과 아버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전쟁을 직접 겪어 본 적 없는 이들에게는 자극적인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흥분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디엔 경은 이 제국 최강의 기사니까요.”
아버지의 곁에 있던 영애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쿤은 뭐가 웃긴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야. 놀라운 건 그다음부터지.”
루시안의 기세에 적군은 당황했다. 그 틈을 타 아군은 대열을 정비해 전투를 이어 갔다.
지옥 같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왔다.
환한 햇빛이 떠올랐다. 그제야 적군은 후퇴했다.
그러나 전투의 잔상은 진하게 남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
깊은 상처를 입고 신음을 흘리는 병사들.
그 한가운데 한 남자가 있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거친 숨을 내쉬는 루시안이.
“나는 가장 먼저 카르디엔에게 달려갔어. 내 손으로 놈의 상처를 헤집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루시안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도 없었다. 밤사이의 혈투가 거짓이었던 것처럼.
아버지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게 바로 카르디엔 경의 대단한 점 아니겠습니까. 조금의 상처도 용납하지 않는 최강의 기사! 그 누구도 카르디엔 경이 상처 입는 걸 본 적이 없다지요.”
그 말에 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하, 그런 말을 믿어? 이래서 전쟁을 모르는 귀족들은……. 아무리 놈이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해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3년이나 전쟁을 누빈 놈의 몸에 작은 상처 하나 없다고.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사실 루시안이 눈에 띄는 상처 하나 없는 것에 대해 암암리에 이야기가 돌곤 했다.
어떻게 기사의 몸에 상처가 하나도 남지 않을 수 있나.
역시 저주받은 몸인 게 분명하다. 악마와 계약을 한 것이다. 모두 그를 부정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누구도 그 말을 입 밖에 내뱉을 수 없었다.
루시안은 제국 최고의 영웅이었으니까.
그러나 쿤은 거침없이 민감한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카르디엔은 괴물이야.”
쿤이 말을 이었다.
“붉은 눈을 가진 자는 불길하다는 미신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야. 말 그대로, 초월적인 힘을 가진 괴물이라고.”
연회장에 싸늘한 정적이 맴돌았다.
누군가는 쿤의 말에 동조했고, 누군가는 쿤의 말에 혼란을 느꼈다.
그리고 누군가는…….
“당장 그 말, 취소하세요.”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나는 쿤의 앞에 다가가 그를 노려보았다. 쿤은 나를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누구야. 카르디엔의 약혼녀잖아. 못생긴 얼굴을 들고 잘도 연회장에 와 있네.”
그의 비아냥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그가 루시안을 괴물이라고 폄하한 말만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됐고, 취소하라고요. 루시안에게 괴물이라고 한 말.”
“내가 왜?”
“거지 같은 말로 사람을 이상하게 몰고 갔잖아요. 충분히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쿤은 콧바람을 흥 하고 불며 말했다.
“전혀. 괴상한 사람을 괴물이라고 하는 거고, 루시안의 능력은 괴상하잖아.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와, 이런 빡침 오랜만이다.
사실을 말했으니 난 잘못한 거 없어, 라는 안하무인은 칼릭스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난 이런 놈들을 상대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말을 하는 거라면,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
쿤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의 약혼자를 괴물이라고 말한 주제에 뻔뻔스럽기 짝이 없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아버지가 나를 잡아끌었다.
“그, 그만해라, 페르니아. 쿤 님께서 나쁜 의도로 하신 말씀은 아니잖니.”
얼굴이 익은 영애들 몇 명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창백해진 안색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황태후도 보였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쿤을 건드리는 것은 황제와 황태후에게 제대로 찍히는 일이라는 걸.
그러나 할 말은 해야겠다.
‘감히 내 남자 친구한테 괴물이라고 해?’
도저히 난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쿤 님.”
나는 쿤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귀족 영애의 스킬 중 하나인 ‘분명 웃고는 있는데 어딘가 묘하게 재수 없는 표정’이었다.
“왜?”
쿤은 어디 한번 해 보라는 듯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도 이 말까진 안 하려고 했어. 하지만 니가 이렇게 나오니 나도 어쩔 수가 없잖아.
무례에는 무례로 응하는 수밖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 아이라인, 짝짝이예요.”
“……!”
의기양양하던 쿤의 눈이 커졌다.
공격 성공.
* * *
아버지는 울었다.
“으흐흐흑. 이제 우리 가문은 망했어! 300년간 지켜 온 유구한 가문이, 고작 아이라인 짝짝이란 말로 사라지다니……! 너무 부끄러워 조상님께 면목이 없구나. 아니. 내가 왜 죽어? 페르니아, 우리 지금이라도 짐 싸서 도망가 버릴까?”
나는 울먹이는 아버지의 등을 토닥였다.
“아버지, 그만 울어요. 설마 그 한마디 했다고 어떻게 되겠어요?”
아버지는 소리를 빽 질렀다.
“어떻게 되고말고! 네가 그 말을 하는 순간 쿤 님이 안색이 창백해져서 연회장을 나가지 않았느냐. 황태후님도 놀라 쿤 님을 쫓아가고.”
그렇게 연회는 갑작스럽게 중지되어 버렸다.
쿤을 따라간 황태후에게서 별다른 말이 내려오진 않았지만, 연회장에 있던 이들은 모두 똑같은 눈으로 나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곧 죽을 사형수라도 보는 눈빛이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뻔하다.’
황제의 목숨을 쥐고 있는 쿤의 심기를 거슬렀다. 그것도 제대로.
쿤이 이대로 더는 황제의 진료를 하지 않겠다고 하기라도 하면, 우리 부녀는 대역 죄인이 되는 셈이었다.
아버지는 연회장을 나오면서부터 전례 없는 가문의 위기라며 흐느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왔다가 큰일을 당한 아버지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루시안에게 괴물이란 말은 가슴 아픈 말이었으니까.
어린 시절 내내 그를 괴롭혀 온 말.
필사적인 노력으로 기사가 됐고, 목숨을 걸고 전쟁에서 이겨 겨우 떼어 낸 말이었다.
그런데 쿤은 그 말을 너무 쉽게 입에 담았다.
‘절대 용서 못 해.’
당장 황제가 찾아와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해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루시안이 떠올랐다.
당장이라도 루시안을 찾아가 모든 걸 다 말하고 싶었다. 감히 그런 이야기를 주절거린 쿤을 발로 뻥 차 달라고 이르고 싶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오늘 벌어진 일을 몰랐으면 싶었다. 괜한 말을 듣고 그가 속상해하는 건 싫었으니까.
그렇게 긴 밤이 지나갔다.
결국 나는 퀭한 얼굴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런 내게 황제의 시종이 찾아왔다.
밤새 수척해진 아버지가 창백한 얼굴로 시종의 앞을 막아섰다.
“세, 세상에는 법이 있고 규율이 있는 법입니다. 그 누구도 아이라인이 짝짝이라고 말했다고 사람을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지엄하신 황제 폐하라도 말입니다!”
무표정한 시종을 향해 아버지는 소리쳤다.
“절대 안 돼!”
새삼 아버지의 사랑을 절절히 느낀 순간이었다.
시종은 황제의 분노를 전하는 대신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
“쿤 님께서 페르니아 영애와 정식으로 대화를 나누시길 희망하십니다.”
시종이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차라리 황제에게 끌려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 * *
‘그냥 무시하고 가지 말까.’
생각을 했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어쨌건 쿤과 내가 한 방씩 주고받은 탓에, 애꿎은 아버지와 황제에게 불똥이 튄 셈이 되어 버렸으니까.
차라리 오늘 둘이서 끝장을 내자.
나는 시종을 따라나섰다. 시종이 안내한 곳은 황성의 별궁이었다.
‘엄청난 귀빈 대접을 받는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이 정도였어?’
별궁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어마어마하게 꾸며져 있었다.
쿤의 취향에 맞춰, 화려함의 극치로.
누가 보면 일개 의사가 아니라, 총애하는 애첩을 위해 꾸며 준 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뚜벅뚜벅 걸어간 나는 응접실에 들어섰다.
번쩍이는 보석이 주렁주렁 매달린 방에 쿤이 앉아 있었다.
어제보다 화려한 의상에, 진한 화장을 하고.
쿤은 나를 보더니 화사하게 웃었다.
“어서 와, 페르니아.”
‘도대체 왜 저래?’
도저히 어제 초강력 쪽팔림을 준 사람에게 할 법한 행동이 아니었다.
쿤은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짓했다.
“어서 앉아. 이 황성에서 가장 솜씨 좋은 파티셰가 준비한 다과니까.”
그의 말대로 동그란 테이블에는 눈이 부실 만큼 화려한 디저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생크림이 듬뿍 올라간 조각 케이크. 설탕에 절인 사과가 듬뿍 들어간 타르트. 보기만 해도 달콤사 할 것 같은 진한 쇼콜라까지.
평소라면 ‘마이, 프레셔스!’라며 달려들었겠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쿤을 향해 물었다.
“제가 이래 봬도 절대 미각이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지?”
“케이크에 독이라도 탔으면 한 입만 먹어도 안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헛된 짓 하지 말라고.
그 말에 쿤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고개를 까닥거리며 말했다.
“잊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의사야. 죽어 가는 놈을 살리는 데만 관심이 있지 멀쩡한 놈을 죽이는 덴 흥미 없거든. 그러니 안심하고 먹어.”
“…….”
에라이 모르겠다.
나는 얌전히 의자에 앉아 포크를 들었다.
“그래서, 왜 나를 부른 건데요?”
“왜 불렀겠어. 당연히 어제 일 때문에 불렀지.”
나는 포크로 폭신한 조각 케이크의 뾰족한 부분을 자르며 말했다.
“사과라도 받으시려고요?”
“그러라고 하면, 사과할 거야?”
“쿤 님도 사과를 하시면요.”
나는 동그랗게 입을 벌려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달콤한 케이크를 우물거리는 나를 향해 쿤이 말했다.
“이상하네. 첫 만남 때는 얌전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건방져졌지.”
“그때는 열심히 내숭을 떨었으니까요.”
“왜 지금은 안 떠는데?”
쾅!
나는 봉긋한 쇼콜라 케이크의 한가운데에 포크를 박아 넣으며 말했다.
“당신이 내 남자 친구를 모욕했잖아요!”
나는 사나운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루시안은 괴물이 아니에요. 그 사람은 그냥…….”
“…….”
“조금 많이 특별한 힘을 가진 것뿐이라고요.”
둘 사이에 정적이 맴돌았다. 잠시 후 크크큭 하고 사람을 약 올리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쿤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이거 진짜 골 때리네. 평범한 귀족 못난이를 약혼녀로 둔 줄 알았더니 아니었어.”
“…….”
“제국에서 카르디엔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는 타국의 의사인 나조차 알고 있어. 제국의 영웅, 천재 기사. 그런데 그것들은 모두 표면적인 칭찬일 뿐이잖아. 그렇게 존경스럽다면서 놈에게 준 것이라고는 조그만 땅 하나와 경이라는 허접한 지위뿐이지. 제국의 귀족 놈들은 카르디엔을 절대 인정할 생각이 없는 거야. 갑자기 쳐들어온 이방인이 놈을 모욕해도 입을 꾹 다물 만큼.”
고작 그 정도의 존경과 허울뿐인 애정이란 이야기지.
그 말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에.
쿤은 가라앉은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볍게 말했다.
“뭐, 흥미진진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고. 본론으로 돌아가지.”
본론이라는 말에 나는 어깨를 움찔했다.
어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는 거다.
내가 보기에 저놈은 ‘우리 서로 한 방씩 먹였으니 사과하고 잘 지내보자.’라고 할 놈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내게 사과를 받을 셈인가 싶어 침을 꿀꺽 삼키는데 쿤이 말을 이었다.
“오늘도 짝짝이야?”
“……네?”
“오늘도 내 눈 꼬라지가 엉망이냐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쿤을 바라보았다.
오늘 처음 제대로 본 쿤의 얼굴은 평소처럼 진한 화장을 한 상태였다.
그리고 여전히…….
“……젠장. 오늘도 짝짝인가 보네.”
쿤이 눈썹을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민망할 만큼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너 못난이긴 해도 화장술 하나는 봐줄 만하더라. 시녀가 해 준 거야?”
“아뇨. 제가 직접 한 거예요.”
그 말에 쿤이 눈을 크게 떴다. 처음으로 오만하기 그지없던 얼굴이 흔들렸다.
그 표정에서, 나는 그와 얽힌 감정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냈다.
* * *
제국은 색조 메이크업이 발달하지 않았다.
단아함과 청순함을 최고로 쳐주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귀족들은 대부분 맑은 피부와 혈색 있는 입술을 표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진한 눈 화장은 딱히 매력 있는 화장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쿤 님, 당신…….”
나는 화장을 지운 쿤의 얼굴을 보며 입을 막았다.
화장을 지운 쿤의 맨얼굴은…….
“누구세요?”
“놀리는 거냐.”
“아, 아뇨. 그게 아니라 화장한 후와 전이 너무 달라서.”
초절정 화려한 미남이었던 쿤은 놀랄 만큼 순진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순진한 얼굴이냐 하면, 이 사람이 쿤인 줄 몰랐으면 ‘너 돈 좀 있냐?’라고 나도 모르게 삥을 뜯어 버릴 정도였다.
‘좋게 말하면 순진이고, 나쁘게 말하면 호구, 그 자체로다.”
나는 쿤의 얼굴을 보며 감탄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쿤은 그런 나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더니 눈을 치켜떴다.
메이크업을 한 상태였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겁먹고 눈이 동그래진 얼굴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눈 화장 하는 법을 알려 줄게요.”
그렇다. 쿤은 자라나는 메이크업 새싹이었던 것이다!
호구상…… 아니, 순진상이었던 쿤은 자신의 얼굴에 엄청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메이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화장을 하는 순간 저를 보며 풋, 하고 웃던 여인들이 꺅, 하며 달려들었다고.
“사내놈들은 남자가 무슨 화장이냐며 질색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덜 깝치더군. 전에는 한껏 날 무시하다가 내가 수술 나이프를 든 후에야 입을 다물었거든.”
“암요. 그게 눈 화장의 매력이죠.”
나는 그의 말에 구구절절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양이상이라 맨얼굴로도 어디 가서 꿀리진 않지만, 진한 눈 화장을 하면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격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쳐다볼 뿐이었는데, 사람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것이 바로 악녀 메이크업의 정석이었다.
내 손에는 앤에게 가져오라고 한 화장 도구가 들려 있었다.
나는 진지한 눈으로 의자에 앉은 쿤을 바라보며 말했다.
“눈을 감으세요.”
지금부터 호구가 악당이 되는 마법을 보여 주지.
* * *
그날 나는 내가 가진 악녀 메이크업의 모든 것을 쿤에게 전수했다.
쿤은 센스가 좋고, 무엇보다 의사답게 손재주가 좋았다.
반나절 만에 그는 눈 화장을 마스터했다.
조금도 삐뚤어지지 않고 하루 종일 땀을 흘려도 번지지 않는, 극강의 메이크업을.
쿤은 거울 속의 얼굴을 바라보며 흡족한 얼굴로 웃었다.
“마음에 들어.”
씨익 웃는 모습이 마계를 주름잡는 악당 같았다. 누구라도 그의 부리부리한 눈매에 압도당할 것이다.
나는 쿤에게 오늘 메이크업 때 사용한 도구를 건넸다.
“사용하던 제품이라 찝찝하실 수도 있지만, 새 제품을 구하려면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때까지만 쓰세요.”
쿤은 그답지 않게 감동받은 얼굴로 말했다.
“너, 생긴 건 엄청 성격이 더러울 것 같은데 의외로 착하네.”
“제가 좀 그래요. 쿤 님과는 반대죠?”
쿤은 내 말에 분노 대신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이지 웃긴 여자라니까. 한마디를 안 져.”
“져 주길 바라세요?”
“됐어. 지금이 재미있으니까.”
쿤이 눈매를 휘며 말했다.
키득거리는 쿤의 얼굴에 나에 대한 뒤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황제에게 달려가 ‘쟤가 나보고 짝짝이라고 놀렸어요. 당장 때찌해 주세요.’라고 말할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안심한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에이, 벌써 가려고? 좀 더 놀고 가지.”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가 노닥이는 사이였다고.
급 태세 전환을 한 그의 모습이 황당해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바빠요.”
“그럼 언제 시간 되는데?”
“계속 바빠요.”
“지금 나를 피하는 거야?”
알았으면 좀 닥쳐 줄래.
나는 눈빛으로 대답을 한 후 가방을 챙겼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쿤이 말했다.
“이봐, 다른 뜻은 없다고. 그냥 화장을 가르쳐 준 것에 대한 답례를 하고 싶어서 그래. 이래 봬도 내가 염치가 있거든.”
“…….”
나는 쿤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고 나는 서 있었기에 그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답례를 하고 싶으시면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뭔데?”
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내가 무슨 부탁을 할지 한껏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눈을 반짝이는 화려한 남자를 향해 말했다.
“며칠 후면 루시안이 수도에 돌아와요. 루시안을 만나게 되면 어제 일을 사과하세요.”
“…….”
“저도 쿤 님께 사과할 테니까.”
나는 그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 순간 쿤은 어떤 얼굴을 했을까.
적어도 비웃거나 정색을 하지는 않았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되는 거겠지?
* * *
예상대로 쿤의 보복은 없었다.
쿤은 예전처럼 성실하게 황제를 치료했다.
황태후의 진노도 날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아버지도 걱정을 거두고 투머치토커로 돌아갔다.
그런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이 흉물만 제외하면.’
나는 팔짱을 끼고 약초를 노려 보았다. 오늘 쿤이 보낸 선물이었다.
약초는 생김새부터 특이했다. 꼭 사람처럼 생겼는데, 근육맨처럼 울끈불끈한 것이 속옷이라도 하나 입혀 줘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다.
그 와중에 약초는 코끝을 아리는 엄청난 향기로 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마디로, 흉측했다.
나는 경멸 어린 얼굴로 약초를 보며 생각했다.
‘도대체 왜 이런 무서운 걸 보낸 거야? 뒤끝 없는 척하더니 날 먹이는 거야?”
그의 의도를 의심하며, 흉물을 들고 캠프파이어를 하려는 순간 아버지가 다가와 소리쳤다.
“으아니! 이, 이건 와일드트리 아니냐! 깊은 산골짝에서만 자란다는 다이아몬드보다 귀하다는 전설의 약재! 이것 한 뿌리만 먹으면 아무리 시름시름 앓던 사람도 근육맨이 되고, 바닥을 기어다니던 이도 벌떡 일어난다고 하더구나!”
이 흉물이 그렇게 귀한 것이란 말야?
아버지는 정색한 얼굴로 와일드트리를 조심스럽게 가져가며 말했다.
“아주 섬세한 약재라 관리를 잘 해 주어야 해. 오염되지 않은 이끼에 싸서 햇빛을 받지 않게 해야 한다고.”
“…….”
“그리고 사랑과 애정을 듬뿍 주어야 하지. 우쭈쭈, 놀랐지? 이제부터 내가 돌봐 주마.”
아버지는 따스한 얼굴로 와일드트리를 품에 안고 사라졌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이마를 짚었다.
‘도대체 왜 저런 걸 내게 보낸 건데?’
화장을 가르쳐 준 것에 대한 보답인가? 그건 루시안에 대한 사과로 달라고 했잖아.
내 말을 들어주기 싫다는 건가.
아직 그날의 앙금이 남아 있는 건가.
‘지랄 맞은 놈.’
나는 눈을 내리깔며 한숨을 쉬었다.
‘뭐, 상관없어.’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오늘은 루시안이 돌아오는 날이니까!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화장을 하고, 고심 끝에 고른 드레스를 입었다.
‘예쁘게. 예쁘게.’
오랜만이니까, 더 예쁘게.
가슴이 콩닥거렸다.
신기했다.
어떻게 이렇게 매일매일 가슴이 두근거릴 수 있을까.
루시안은 수도에 돌아오자마자 나를 보러 온다고 했지만 얌전히 기다리기는 너무 힘들었다.
나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저택을 나왔다.
성문 앞으로 루시안을 마중 나가기 위해서였다.
일 초라도 빨리 그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