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s the wife of an extra who turns evil RAW novel - Chapter 23
19. 외전 루시안
햇빛 한 자락 들어오지 않는 지하실. 그곳에 이제 막 10살이 된 루시안이 있었다.
루시안의 모습은 처참했다.
목에는 사슬이 달린 목걸이가 걸려 있어 모양새가 짐승과 다를 바 없었고, 제대로 먹지 못해 마른 몸은 뼈마디가 다 보였다.
움푹 팬 얼굴에는 커다란 붉은 눈동자만 빛나 어딘가 기괴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린아이의 사랑스러움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끔찍한 모습이었다.
루시안은 갈라진 입술을 우물거렸다.
‘……목말라.’
목을 축이기 위해서는 지하실 바닥에 고인 물을 마셔야 했다.
루시안은 슬쩍 고개를 올려 제 앞에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누워 잠들어 있는 노인은 이 마을의 촌장이었다.
그는 술에 취한 날이면 지하실에 찾아와 루시안을 사정없이 때리곤 했다.
어젯밤도 그런 날이었다.
촌장은 루시안을 발로 차고, 주먹질을 하고, 침을 뱉었다.
루시안은 비명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조금이라도 소리를 냈다가는 폭행이 더 험해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촌장이 잠든 후에야 폭력이 멈췄다.
으르렁.
코를 고는 촌장의 모습을 보며 루시안은 슬쩍 몸을 움직였다.
루시안의 목에 이어진 사슬의 길이는 아주 길진 않았지만, 몇 발자국 움직이는 건 가능했다.
그러나…….
철그렁.
조용한 공간에 쇠로 만든 사슬이 내는 소리는 너무나 선명했다.
촌장은 눈썹을 움찔거리더니 눈을 떴다.
촌장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루시안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촌장의 눈이 진득한 증오심으로 이글이글 불탔다. 촌장은 지긋지긋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죽지 않았구나.”
“…….”
“그렇게 때렸는데도 죽지를 않는다니, 역시 네놈은 흉악한 악마 새끼야.”
촌장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그러니 그렇게 끔찍하게 내 아들을 죽였지. 어떻게든 이 악마 놈을 내 손으로 처리해야 해.”
촌장은 섬뜩한 눈으로 지하실을 나가나 싶더니, 이내 다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칼날이 번뜩이는 낫이 들려 있었다.
루시안은 겁먹은 얼굴로 생각했다.
죄송하다고 빌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제발 용서해 달라고 말을 해야 하나.
하지만 그 말은 쉽게 입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조금도 그에게 미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제게 힘만 있었다면 눈앞에 있는 노인도 그의 아들처럼 찢어 죽이고 싶었다.
촌장이 루시안의 눈빛을 보더니 낫을 번쩍 들었다
“재수 없는 놈. 아무리 악마 놈이라도 심장이 박살 나면 죽어 버리겠지.”
촌장은 여린 몸 위로 낫을 휘둘렀다.
끔찍한 고통이 느껴지는 순간 루시안은 웃었다.
차라리 잘됐어.
루시안이 잠들 때마다 항상 하는 생각이 있었다.
이대로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날카로운 쇠붙이가 몸 위를 스쳐 지나갔을 때, 이번에야말로 제가 바라던 것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살아 있어.’
그 점이 루시안을 절망시켰다.
눈을 뜨면 또 어둠 속이겠지.
이따금 지나가는 다리 많은 벌레 외에는 아무도 없겠지.
목이 바싹 마르고, 지독한 굶주림의 고통이 찾아오겠지.
그러나…….
“괜찮니?”
눈을 뜬 루시안의 앞에 있는 건, 금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소녀였다.
새하얀 얼굴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구원자였다.
그 후 에스텔은 루시안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말과 글…….
그리고 감정.
“루시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고, 따뜻한 햇볕을 쐬고 누워 있으면 편안하지?”
고개를 끄덕이는 루시안을 향해 에스텔이 웃었다.
“그것 봐. 너는 악마가 아니야. 아주 평범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지. 분명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게 될 거야.”
“…….”
루시안은 에스텔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 내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면요?
사람을 죽여 버리는 흉악한 악마가 진짜 내 모습이라면, 당신은 날 좋아해 주지 않을 건가요?
루시안의 마음속에서 대답이 나왔다.
당연하지. 그런 끔찍한 모습을 좋아해 줄 리 없잖아.
아무리 그녀가 성녀님이라도.
그래서 루시안은 제 안에 있는 속마음을 꼭꼭 숨겼다.
그리고 그는 엄마 새를 따르는 아기 새처럼 맹목적으로 에스텔의 말을 따랐다.
약자를 위해 자신을 헌신했고,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는 결코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 않았다.
작은 들꽃의 생명도 소중히 했다.
늘 모든 이들에게 친절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녀가 나타났다.
페르니아.
그녀는 너무나 귀엽고, 예뻤다.
반짝이는 그녀는 루시안을 향해 환하게 웃어 주었다. 저를 좋아한다고 말해 주었다.
에스텔의 말이 사실이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준다고? 믿기지 않아. 정말 기뻐.’
루시안에게는 모든 것이 기적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루시안은 페르니아를 소중히 대했다.
그녀를 누구보다 아껴 주고 싶었다.
사랑하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나 온전한 행복 속에서 사랑의 달콤함에 취할 수 있는 시기는 너무 짧았다.
어느샌가 페르니아는 자신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곤 했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루시안의 마음속에 있는 새까만 감정이 꿈틀거렸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지 마요.’
‘나만 바라봐요.’
‘……나만 사랑해 줘요.’
루시안은 제 안에서 들끓는 감정을 끊임없이 억눌렀다.
‘이러면 안 돼. 그녀가 싫어할 거야.’
하지만…….
점점 그녀에 대한 욕망은 커져 갔다. 결국 참지 못하고 진짜 제 속마음을 내뱉었을 때 그녀는 그를 거부했다.
[우리 시간을 좀 가져요.]그 순간, 루시안의 안에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무언가가 툭 끊겼다.
루시안의 붉은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오래전 처음 사람을 죽였던 그때처럼.
싫어.
이제 참고 싶지 않아.
내가 원하는 만큼 그녀를 가질 거야.
하지만 욕망의 끝은 너무나 잔혹했다.
루시안은 새하얀 빛의 장벽에 갇혀 버렸고, 사랑했던 여인은 그의 곁을 떠났다.
그녀를 당장 쫓아가고 싶었지만, 빛의 장벽은 그를 풀어 주지 않았다.
아무리 주먹이 부서져라 두들겨도, 손톱이 다 나갈 만큼 긁어 대도, 그곳을 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 루시안은 키득거렸다.
“……이것 봐. 누구도 널 사랑해 주지 않잖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왔다.
외전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