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s the wife of an extra who turns evil RAW novel - Chapter 35
3. 카르디엔 공작가의 후일담 -루나 편-
현재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기사단 중 하나를 꼽으라면 ‘붉은 눈 기사단’일 것이다.
만든 지 3년도 채 되지 않아 제국에서 ‘가장 강한’, ‘가장 꼴통인’, ‘가장 무서운’ 등의 수식어로 불릴 만큼 기사단은 악명을 떨쳤다.
그리고 그 기사들을 이끄는 단장은 여자였다.
루나 카르디엔.
카르디엔 공작가의 차녀였다.
게다가 귀를 덮은 청보라색 머리카락과 선명한 붉은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빼어난 미인이기까지 했다.
여인이 기사단장이 된 것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가 최고의 기사라는 사실에 토를 달 수 없었다.
카르디엔 공작의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녀는 무지막지하게 강했으니까.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1,000명의 사람을 베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붉은 눈의 괴물.
루나는 제게 붙은 별명에 입꼬리를 올렸다.
“나 정도 강하면 그 정도 말을 들을 만하지. 마음에 드네.”
섬뜩한 미소를 본 부하들은 창백한 얼굴로 굳어 버렸다.
몇 년을 모신 상관이지만 그녀는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 * *
루나가 땀범벅이 되어 훈련장을 나왔다.
“으, 찝찝해. 어서 옷 갈아입어야지.”
훈련장에 딸린 탈의실은 남성용 여성용 구분이 없었다. 그럼에도 루나는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어차피 이런 이른 시간에 훈련장에 있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탈의실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막 씻고 나왔는지 남자는 알몸이었다. 골반 위로 얇은 수건 한 장만을 두른 채.
“……!”
“……!”
루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굳어 버렸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돌처럼 굳어 버린 남자는 토미. 얼마 전 들어온 신입 기사였다.
그는 ‘아, 어, 아.’ 하고 말을 더듬더니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몹쓸 꼴을 보여 드려 죄송합니다, 단장님! 자리를 비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번개 같은 속도로 옷을 챙기더니 탈의실을 나가 버렸다.
탈의실에 혼자 남은 루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사실 루나가 이런 식으로 남자의 벗은 몸을 본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사 짬밥이 몇 년인데.
그럴 때마다 루나는 한 번도 당황한 적이 없다.
오히려 부하들의 늘어진 몸을 보고 요즘 훈련을 게을리했냐며 잔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루나는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닌…….
“세상에, 몸매가…….”
루나는 모았던 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물론 기사들은 대부분 몸이 좋다. 매일 훈련하고 검을 휘두르는 이들이니 당연했다.
그러나 방금 본 토미의 몸은 제법 좋다, 정도로 평가할 것이 아니었다.
부드러운 곡선의 승모근. 단단하게 자리 잡은 대흉근.
보기 좋게 갈라진 복근.
군살 하나 없이 근육으로 꽉 채워진 상체는 예술가가 만든 조각상처럼 아름다웠다.
팔은 또 어떠한가.
튀어나온 이두근과 삼두근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완벽한 라인을 자랑했다.
쭉 뻗은 다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튀어나온 대퇴근과 비복근은 최고 품종의 말 같았다.
이 정도로 완벽한 근육의 조합은 죽어라 운동만 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타고난 뼈대와 체형이 절묘하게 어우러졌을 때 나오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루나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토미 녀석. 지나가는 엑스트라처럼 평범하게 생겨서 저런 근육을 숨기고 있었다니. 역시 사람은 얼굴만 봐서 모르는 거구나.”
* * *
……그냥 이 정도의 시시껄렁한 에피소드로 넘겨야 했다.
그러나 루나는 그럴 수 없었다.
집에 오는 길에도, 식사할 때도,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도, 오늘 본 토미의 몸, 그 완벽하고도 절묘한 근육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 좀! 부하 상대로 더러운 생각 그만하고 자자.”
루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눈을 꾹 감았다.
그러나 그날 밤, 루나는 결국 잠을 잘 수 없었다.
루나는 퀭한 얼굴로 창문을 바라보았다. 아침 해도 뜨지 않은 새벽이었지만 루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대로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검을 휘두르다 보면 정신이 깨끗해지겠지.’
기사단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루나는 곧장 훈련장으로 향했다.
휙! 휙!
조용한 훈련장에는 검이 바람을 베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검을 휘두르는 루나의 모습은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달인답게 위압감이 넘쳤다.
그러나 겉모습과 달리 속마음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머릿속에 자꾸 토미의 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드넓은 대흉근!’
‘울룩불룩 이두근!’
‘우람한 대퇴근!’
“아, 좀 없어지라고!”
사라지지 않는 잡념에 루나가 소리를 지른 찰나, 진짜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단장님!”
“…….”
루나는 멍하니 제 앞에 나타난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젯밤부터 내내 생각했던 ‘근육 놈들’의 주인인 토미였다.
루나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대답했다.
“별일 아니야.”
퉁명스러운 대답에 토미가 안심한 얼굴을 했다.
“그렇습니까?”
“그래.”
“다행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정적이 맴돌았다.
루나는 부하에게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어색함에 몸 둘 바를 모르며 입을 열었다.
“이른 시간부터 넌 왜 이곳에 있는 거냐.”
“훈련하러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상급 기사들이 올해 들어온 신입 기사 중에 쓸 만한 놈이 있다고 했지.
바보만치 성실한 놈이 있다고.
아마도 그게 토미였던 모양이다.
루나는 새삼스럽다는 듯 토미를 바라보았다.
흰색 셔츠를 입은 토미는, 체격이 좋은 평범한 남자로만 보였다.
흑갈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길거리에 가면 몇 번이나 마주칠 만큼 흔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루나는 알고 있었다.
저 평범한 얼굴 아래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근육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루나의 뜨거운 시선에 토미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제 옷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아니.”
“그럼 왜 그렇게…….”
토미가 곤란한 질문을 하기 전에 루나가 선수를 쳤다.
“사람도 없는데 대련이라도 할래?”
루나의 말에 토미의 눈이 커졌다.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게 루나는 대륙에서 손꼽히는 기사였다. 그런 그녀와 한 번이라도 검을 맞댈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영광이었다.
정식 기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토미에게는 더더욱.
토미는 흥분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토미와 루나는 검을 든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주 서 있는 두 사람의 체격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검으로 다져진 루나의 몸은 건강하고 탄탄했으나, 그녀는 여자였다. 남자 중에서도 뼈대가 굵은 토미와 비교하면 가녀려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토미는 그 차이를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루나에게서 느껴지는 엄청난 박력 때문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검을 잡은 손은 떨렸다.
그와 달리 루나는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루나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먼저 공격해.”
“그래도 되겠습니까?”
긴장이 가득한 목소리에 루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토미의 검이 루나를 향했다. 루나는 일부러 피하지 않고 그의 검을 받았다.
챠앙-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루나의 눈이 빛났다.
‘힘이 제법이네.’
하긴 그런 이두박근을 가진 팔인걸. 이 정도 힘은 내야지.
‘기술도 좋아.’
토미 정도의 나이에 이만한 솜씨는 흔치 않다.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어지간히 노력한 게 분명했다.
지금은 일개 말단 기사지만 몇 년 후면 꽤나 이름 날리는 기사가 될 것이다.
이 녀석은 키울 만하겠어.
루나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머물렀다.
그렇게 토미의 검을 몇 차례나 받아 주었을까.
“허억, 허억.”
어느새 토미는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반면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는 루나가 물었다.
“힘들어 보이네?”
“괜찮습니다.”
“버티기는.”
루나는 코웃음을 치며 검을 바로 잡았다.
“오늘은 이만 끝내자.”
“네?”
토미에게 먼저 공격을 하라고 했던 건 루나의 배려였다. 그가 먼저 공격을 해야만 대련이 가능했으니까.
루나가 먼저 공격을 하는 순간 결투는 끝나 버린다.
바로, 지금처럼.
촤악!
루나가 한 발짝 발을 내디디며 검을 지탱하는 팔을 쭈욱 뻗었다.
토미는 그녀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어느새 그녀의 칼끝은 토미의 턱 아래에 가 있었다.
루나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겼다.”
과연 괴물이라고 불릴 만한 어마어마한 실력이었다. 동시에 무서운 별명과 어울리지 않는 장난스러운 얼굴이었다.
토미는 멍하니 루나를 바라보다가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루나가 그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왜, 왜 그래? 먼지만큼도 스치지 않았잖아!”
토미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긴장이 풀려서 그만.”
그러더니 토미는 루나를 바라보며 눈꼬리를 휘었다.
“대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장님. 평생 잊지 못할 영광입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상기된 목소리에는 존경하던 이와 합을 나누었다는 기쁨이 여실히 드러났다.
루나는 어딘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생각보다 귀여운 녀석이잖아.’
루나는 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토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라.”
다른 기사들이 보았다면 기함할 일이었다. 그 루나 카르디엔이 쓰러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다니.
루나는 그런 친절한 위인이 아니었다. 특히 같은 기사에게는 더더욱.
루나는 제 앞에 쓰러진 기사가 있으면 허약한 놈들이라고 고함을 치며 등을 후려치곤 했다.
아직 기사단에 들어오지 않아 그 사실을 모르는 토미는, 한껏 감동받은 얼굴로 루나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그 순간 루나는 현기증이 밀려들었다.
루나의 의도는 정말 순수했다.
자신을 존경하는 귀여운 부하에게 손을 내민 것뿐이다. 절대로…… 절대로 저런 것을 보고 흥분할 생각은 없었다.
마주 잡은 토미의 손등에는 핏줄이 살짝 불거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손가락은 길고 단정했다.
야성적이면서도 섬세한, 여자의 본능을 자극하는 남자의 손이었다.
‘제기랄. 손도 내 취향이라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이렇게 머리부터 손끝까지 내가 바라던 몸을 가진 자가 눈앞에 있다니.
더, 더 만져 보고 싶어.
그러나 토미는 매정했다. 루나의 마음도 모르고 그는 일어서자마자 손을 떼려고 했다.
루나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떨어지지 않는 손에 토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장님?”
이게 무슨 개수작이냐고 묻는 대신, 왜 그러냐고 묻는 순진한 남자.
루나는 마침내 흐리멍덩한 얼굴마저 잘생겨 보이는 기적을 맛보았다.
루나가 말했다.
“나랑 사귈래?”
뜬금없이 부하에게 고백이라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루나는 그 말을 정정하지 않았다.
제 안에 있는 욕망을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루나는 토미에게(정확히 말하면 그의 몸에,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근육에) 강렬하게 끌리고 있었다.
예상 못 한 공격을 당한 토미는 그대로 돌이 되어 버렸다. 흑갈색 눈동자 속에 담긴 감정을 읽은 루나가 말했다.
“미친 거 아냐.”
“…….”
“술 마신 것도 아니고.”
“…….”
“장난치는 것도 아니다.”
“……진심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미는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루나를 바라보다가,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혹시 요즘 외로우십니까?”
“뭐?”
“그런 거라면 단장님의 주변엔 저보다 적합한 상대가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
토미의 말은 사실이었다.
루나의 주변에는 온통 남자들이었다.
부하도 남자, 친구도 남자.
개중에는 당연히 토미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멋진 남자도 많았다.
조각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거나, 루나와 견줄 만큼 검술이 뛰어나다거나,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가진 이들까지.
제국의 수많은 여인이 그들에게 열광했지만, 루나만은 예외였다.
루나가 정색한 얼굴로 소리쳤다.
“끔찍한 소리 하지 마! 나보고 형제 같은 놈들이랑 사귀라는 거야?”
“…….”
“그리고 네가 날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난 아무나 붙잡고 교제 신청을 하는 여자 아니야. 엄연히 취향이라는 게 있다고.”
“취향이요?”
토미는 눈썹을 찡그렸다. 세상에서 제일 어이없는 말을 들은 듯한 얼굴이었다.
“설마 제가 단장님의 취향이라는 건가요?”
“그래!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내 취향이지.”
“어느 부분이요?”
루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눈을 내리깔고 중얼거렸다.
“네 몸.”
“…….”
아 씨, 모르겠다.
어차피 루나는 무언가를 숨기는 데는 재주가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어제 벗은 네 몸을 보고 정말 놀랐어. 잔근육부터 대근육까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내 취향이었으니까. 늘 꿈꿔 왔던 근육이 현실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지. 그래서일까. 하루 종일 네 몸이 자꾸 아른거렸어. 한 번 더 보고 싶고. 더 자세히 보고 싶고.”
직접 만져 보고 싶고.
이건 속으로만 생각하자.
“그래서 너한테 교제 신청을 한 거야.”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더더욱 불쾌합니다!
라고 경멸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게 제 진심이니까.
그런데 예상과 달리 토미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조금 놀란 얼굴을 했을 뿐이다. 어째서인지 귓가도 살짝 붉어져 있었다.
토미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그렇군요.”
착각일까. 어딘가 좀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적어도 경멸이나 분노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루나는 거기에서 희망을 느꼈다.
루나 카르디엔은 공격할 타이밍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여자였다.
루나는 토미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할게. 나랑 사귀어 볼래?”
붉은 눈동자에 어린 감정은 애틋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러나 장난도 아니었다.
토미는 루나에게서 어린 소년에게서 느껴질 만한 단순하고 선명한 욕망을 느꼈다.
그럼에는 토미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이 존경하는 기사이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사단의 단장이며, 자신은 이런 식으로 여자와 사귀어 본 적이 한 번도…….
토미의 눈이 커졌다.
루나가 여태 잡고 있던 토미의 손을 제 얼굴 위로 가져간 것이다.
그리고는 토미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마치 사냥감을 살살 꾀어내는 고양이처럼.
그 순간 토미는 숨이 턱 막혔다.
루나는 빼어난 검사인 동시에 미인이었다.
고양이처럼 치켜뜬 눈을 부드럽게 휘고 생기 넘치는 입술을 보기 좋게 올린 얼굴은, 야릇하기 짝이 없었다.
저런 얼굴을 보고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 본 적 없는 순진한 청년이라면 더더욱.
‘아아. 도저히 거절하지 못하겠어.’
토미는 결국 마녀에게 홀린 생쥐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가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토미를 와락 껴안았다.
“고마워!, 앞으로 잘해 줄게!”
루나는 단단한 등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내 남자 친구는 큰마름근과 넓은등근도 더없이 훌륭하구나. 정말 최고야.
* * *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낮은 목소리에 루나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옆에는 결혼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파릇파릇한 새신랑이 누워 있었다.
토미였다.
루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처음 사귀게 된 날을 생각해 봤어.”
그녀의 말에 토미는 아찔한 얼굴을 했다.
“루나 님의 공격이 너무 거세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교제를 승낙할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후회해?”
토미는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말하면, 그 후에 겪은 루나와의 연애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토미의 몸에 집착하나 싶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루나는 토미의 모든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토미가 다른 기사들과 이야기만 나눠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덕분에 토미는 기사단 생활이 무척 외로웠다. 사람들은 토미에게 말 한번 거는 것도 조심스러워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루나는 매일 밤 훈련이 끝나면 제집으로 유혹을 했다. 결국 그녀의 반협박, 반미인계에 넘어가 그녀와 함께 밤을 보내면 아침이 곤혹스러웠다. 그녀는 토미를 안고 헤어지기 싫다며 훌쩍였으니까.
그래서 결국 연애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순식간에 진행된 결혼에 토미는 얼떨떨했건만, 정작 부모님은 아들 한 명 잘 키워 가문이 살아났다며 환호했다.
‘부모님이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 처음 봤다니까.’
결혼식 날 두 손 모아 만세를 외치던 부모님을 떠올리며 이마를 감싸는데, 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대답을 안 해? ……설마 정말 후회하는 거야?”
그렇다고 하면, 앙 하고 목덜미를 물을 것 같은 앙칼진 얼굴이었다.
그러나 토미는 그녀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토미가 조용히 있자 루나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으니까. 그녀의 얼굴에 어린 감정은 선연한 두려움이었다.
전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강해서 황제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그녀는, 토미에게만큼은 한없이 약했다.
루나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금 와서 후회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이제 우린 부부니까. 귀족의 이혼은 고작 싫다는 이유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고.”
절대 이혼 같은 건 허락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 같기도 하고, 토미가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토미가 웃음을 터뜨리며 루나의 귓가에다 속삭였다.
“전혀 후회하지 않으니까 걱정 마세요.”
“……정말?”
“그럼요. 늘 생각하는걸요. 내 몸이 당신의 취향이어서 다행이라고요.”
진심이었다.
루나는 집착도 심하고,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화낼 때는 성난 사자보다 무섭다.
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점도 많았다.
그녀는 남녀노소 넋을 놓고 바라볼 만큼 미인이었으며,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기사 중 한 명으로 손꼽힐 만큼 강했다.
돈과 권력은 덤이었고.
그제야 루나가 안도한 얼굴로 토미를 와락 껴안았다.
“좋은 대답이야. 그러니까 내 곁에서 천년만년 사치하면서 살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내의 품속에서 토미는 웃었다.
루나 편,
fin.
특별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