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04
신필천하(神筆天下) 104화
진양은 두 눈을 부릅뜨는 것과 동시에 얼른 자양진기를 끌어올려 왼손으로 장력을 마주쳐 갔다.
퍼엉!
큰 폭음이 울리면서 진양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 충격으로 서요평은 어쩔 수 없이 수호필을 놓고 뒤로 훌쩍 물러갔다.
내공 싸움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진양이었기에 서요평이 받은 충격은 제법 컸다.
하지만 진양 역시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의 서요평이라면 절대로 이런 식의 공격은 해오지 않았을 것이다. 허초를 주로 구사하면서 은밀하게 상대의 허점을 노려오는 공격만을 즐기던 그다.
한데 지금은 눈에 보이지만 강맹하기 짝이 없는 장력을 발출한 것이다. 무공이 음의 성격에서 양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진양은 재차 바닥을 박차고 수호필을 곧게 찔러 나아갔다. 찰나, 서요평의 발이 바닥을 박차더니 진양을 향해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검을 열십자로 휘두르며 마치 유성이 떨어져 내리듯 진양을 덮쳐 갔다.
진양이 곧바로 월야검법 중 군조비상을 펼치며 날아올랐다. 이는 새 떼가 무리를 지으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지은 검초로,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공격에 대응할 때 좋은 초식이다.
진양의 수호필이 어지럽게 춤을 추며 날아오르자, 서요평은 곧바로 검세를 바꿨다. 열십자로 교차하던 검날이 순간 뚝 멈추더니 무겁고 강하게 떨어져 내린 것이다.
까라라랑!
단 일 검이 무겁게 떨어졌지만 쇳소리는 여러 번 울렸고, 수호필과 검날 사이에서는 불티가 무수히 흩날렸다. 이는 진양이 검날을 여러 번 휘둘러야 하는 군조비상 초식을 펼쳤기 때문이다.
진양이 버틸 수 없음을 느끼고 얼른 뒤로 물러나자, 그대로 떨어져 내린 서요평의 검이 바닥에 ‘콰직!’ 소리를 내며 박혔다. 그러고도 검기가 거두어지지 않아 그대로 땅을 타고 전진하면서 마치 논바닥이 갈라지듯 진양이 서 있는 곳까지 파고들어 갔다.
진양이 수호필을 바닥에 꽂아 맞대응을 하자 비로소 검기는 와해됐다.
진양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해 포권하며 소리쳤다.
“후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서요평 선배님의 무공이 훨씬 강맹해지셨군요!”
조금 전 서요평이 펼친 무공은 틀림없이 양의 기운이 강한 무공이었다. 일전에 언제나 음험한 공격만을 일삼던 서요평으로서는 놀라운 변화라고 볼 수 있었다.
서요평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흥! 네놈은 졌다!”
“어째서 그런지요?”
“너는 운지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잖느냐?”
그제야 진양이 주변을 살피다가 서운지가 자신의 뒤에서 검을 겨누고 서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진양은 뒤늦게 뒤통수를 때리는 무언가가 떠올라 입을 딱 벌렸다.
“하면…… 설마 처음부터……!”
서운지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검을 거두었다.
“그렇소. 이해해 주시오, 양 관주.”
그제야 진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었다.
서운지는 진양이 서요평과 싸우기 시작할 때부터 단 한 순간도 진양의 등 뒤를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진양의 등에서 두 장 이상 멀어진 적도 없었다.
본래 양의 성격만을 가진 그의 무공이 이처럼 음의 성격을 가질 줄 그 누가 알았으랴? 게다가 서운지는 독상을 입은 몸이라 운신이 용의치 않았을 것임에도 이만큼 은신술을 펼친 것이다.
진양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역시 후배가 졌습니다. 두 분을 상대하려면 저 또한 더욱 정진해야겠습니다.”
“흥! 네깟 녀석이 정진한들 우리 사상이협을 이길 수 있겠느냐?”
진양은 그저 부드럽게 웃었다.
사실 서요평의 말대로 앞으로 자신이 사상이괴를 동시에 상대해서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예전의 사상이괴라면 어떻게 해서든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예전과 전혀 다른 무공을 익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운지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게 다 양 관주 덕분이오. 우리는 누구도 서로에게 무공을 가르쳐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소. 형님 성격이야 원래 그러니 말할 필요도 없고, 나 역시 내 무공에 항시 만족했을 뿐이라오. 하지만 양 관주가 우리에게 그렇게 요구하고 나서 익히게 된 것이 아니겠소?”
이야기를 듣던 진양은 문득 궁금한 것이 있어 고개를 갸웃거리고 물었다.
“제 생각에 두 분이 서로를 가르치게 되면 틀림없이 성품에도 변화가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한데 그건 아닌 것 같군요. 이유를 여쭤봐도 될는지요?”
“허허허, 그건 우리가 어디까지나 심공의 요결을 가르친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오. 나는 형님께 무공의 이치만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고, 형님은 투덜거리면서 배웠소. 형님 역시 내게 초식 등의 이치만을 가르쳐 주었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익혔을 뿐이오. 결국 우리는 자신이 가진 심공을 기반으로 삼아 다른 초식의 무공만 받아들인 셈이지요. 해서 우리는 지금 익힌 것들을 조화신공(調和神功)이라고 이름 지었다오.”
진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게 된 것이군요. 어쨌거나 두 분께서 큰 성취가 있었으니 좋은 일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하오.”
서운지가 껄껄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진양으로서는 내심 아쉬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이들이 서로를 가르쳐 성품에 조화가 생긴다면 차후 아이들을 가르치기에도 좋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한데 이들의 성품에 변화가 없으니 이제 사상이괴에게 아이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할 일은 물 건너간 셈이다.
그런데 그때 마침 학립관 정문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서요평이 이맛살을 잔뜩 구기며 말했다.
“또 뭐지? 이놈의 학립관은 조용할 만하면 시끄러워지는구먼. 웬 놈이 또 와서 설치는 거야? 혹시 무적관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또 온 거 아냐?”
진양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럴 리는 없을 텐데요. 우선 가봐야겠군요.”
“흥! 만약 그놈들이라면 이번엔 내가 혼쭐을 내주지! 양 관주, 그 정도는 해도 되겠지?”
“알겠습니다. 만약 무적관에서 왔다면 선배님께서 나서서 해결해 주십시오.”
진양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무적관주인 장도식을 보나 그 제자인 여동추를 보나 다시 학립관을 찾아올 만큼 배짱이 있을 위인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단지겸은 몹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학립관 정문에 나타난 이들은 그야말로 막무가내였다. 게다가 이 다섯 사람은 모두 덩치가 황소만 하고 등짝에 커다란 도를 메고 있었는데, 성정마저 몹시 거칠어 보였다.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글쎄, 우리는 학립관주를 만나고 싶다니까!”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외친 자는 턱수염이 가시처럼 빳빳하게 돋아 있었고, 키가 보통 사람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커 보였다.
그 앞에서 단지겸이 쩔쩔매고 있으니, 마치 어른 앞에서 꾸중을 듣는 아이와 같았다.
단지겸이 말했다.
“좀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곳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거참, 우리가 방해라도 한다고 했소? 단지 관주께 말이나 해보면 될 것 아니오? 당신이 우리가 누군지 몰라서 그러나 본데, 우리는 복건에서 나름 알아주는 무인들이오. 혹시 무이오도(武夷五刀)라고 들어봤소? 내가 그중에서도 맏형인 일도귀(一刀鬼)요.”
하지만 단지겸은 무이오도라는 자들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만약 그가 무인이었거나 복건 지방에서 살았더라면 틀림없이 이들을 바로 알아보았으리라.
사실 무이오도는 복건의 무이산(武夷山)에서 악명 높은 자들이었는데, 모두 칼날이 넓은 도를 쓴다고 해서 무이오도라는 별호로 불렸다.
특히 그들은 자신들에게 시비를 거는 상대가 있다면 결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는데, 다섯 명이 반드시 한 번씩 잔인한 상처를 입혀서 상대를 죽이기 때문에 무이오악(武夷五惡)이라는 별호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일도귀부터 오도귀(五刀鬼)까지 이름을 정해서 서로 의형제를 맺었는데,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무조건 무공 실력이 높고 낮음에 따라 서열을 정했다.
하나 평생 학립관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단지겸이 이러한 사실을 어찌 알고 있으랴.
마침 무이오도 중에서 성질이 가장 급한 사도귀가 불쑥 한 걸음 내딛더니 말했다.
“대형, 이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찾아가 봅시다!”
이에 단지겸이 화들짝 놀라서 그를 막아섰다.
“지금 관주님께서는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중입니다. 소동을 피우시면 곤란합니다.”
그러자 오도귀가 콧방귀를 뀌며 소리쳤다.
“우리가 언제 소동을 피운다고 했소? 우리는 그저 직접 뵙고 이야기를 드리고 싶을 뿐이오! 만약 당장 비키지 않으면 힘을 써서라도 들어가야겠소!”
무이오도 중에서 가장 뚱뚱해 보이는 오도귀가 도를 꺼내 들고 휘두르자 ‘웅웅!’ 하는 파공음이 울렸다.
단지겸은 해쓱한 얼굴이 되어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쒜에엑!
그때 어디선가 바람 가르는 소리가 울리더니 반짝이는 은륜이 날아와 오도귀의 도날을 ‘땅!’ 하고 튕겨냈다. 그 힘이 어찌나 센지 뚝심이 누구보다도 대단해 보이는 오도귀조차 균형을 잃고 옆으로 서너 걸음이나 뒤뚱거리며 물러났다.
느닷없는 기습에 일도귀가 대로해서 소리쳤다.
“누구냐?”
그가 바라본 곳은 학립관 정문 바깥쪽이었다.
정문 밖, 나무로 우거진 숲길에서 거뭇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평범한 체구를 가진 사십대쯤으로 보이는 중년인이었는데, 머리에는 학사모를 썼고 손에는 한 자루의 쥘부채를 쥐고 있었다.
특히 눈썹이 짙고 단정한 콧수염 아래로 한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은 매우 강직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단지겸은 갑자기 또 낯선 손님이 찾아오자 내심 당황하면서도 얼른 말을 건넸다.
“이곳은 학립관입니다. 무슨 용무로 찾아오신 분인지요?”
한데 중년인이 대꾸도 하기 전에 일도귀가 성큼 나서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기습으로 내 아우의 도를 쳐냈는가?”
중년인은 그를 힐끔 보더니 냉소를 지었다.
“흥! 무이오악은 무식해서 용감하다고 하더니 딱 그 말이 맞군! 고작 그딴 실력으로 학립관을 찾아와 무례를 저지르다니!”
“뭣이? 네놈이 우리가 무이오도라는 것을 알고도 지껄이는 것이냐?”
“약한 놈들 다섯이 모여서 뭉쳐 봐야 그 나물에 그 밥이지!”
시종일관 냉랭한 말투에 일도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무이오도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면서도 신중한 성격의 삼도귀가 얼른 나서서 물었다.
“귀하께서는 누구시오?”
“나, 전학수(田學秀)요.”
중년인은 삼도귀의 정중한 태도 때문인지 다소 누그러진 말투로 대꾸했다.
삼도귀는 눈썹을 슬쩍 찌푸리더니 곧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하면…… 설마 당신이 바로 그 접선선생(摺扇先生)……?”
“그렇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