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08
신필천하(神筆天下) 108화
그런데 돌연 진양의 옆에서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흥! 그걸 알아냈다고 우쭐댈 것 하나 없다!”
뒤미처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더니 부채가 안개를 뚫으며 불쑥 튀어나왔다.
진양이 얼른 몸을 젖히며 피하자, 부채는 다시 수직으로 방향을 틀어 진양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그 순간 진양의 몸이 돌개바람처럼 회전하며 수호필을 휘둘렀다.
챙!
진양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자, 이번에는 매지향이 번쩍 날아오르며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가 뛰어오른 정점에서 검날을 머리 위로 들었을 때, 진양은 그것이 바로 십절류의 야공유성 초식임을 알아보았다.
쒜엑!
검날이 은빛 광채를 흩뿌리며 진양을 향해 떨어졌다. 그 순간 진양은 천근추(千斤錐)의 술법을 이용해 무게를 증가시켜 빠르게 떨어졌다.
쿠웅!
어찌나 세게 떨어졌는지, 진양의 발바닥이 땅바닥에서 이 촌 깊이로 들어갔다.
한편, 진양을 베지 못한 매지향은 그대로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 순간 진양이 바닥을 박차고 뛰어나가 매지향을 향해 수호필을 휘둘렀다. 매지향은 얼른 검을 휘둘러 수호필과 맞부딪쳐 갔다.
까앙!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리면서 불꽃이 번쩍 튀었다.
뒤이어 연속적으로 수호필과 검이 마주쳤지만 쉽게 승부는 나지 않았다.
진양이 사용하는 무공은 바로 능파검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매지향의 검공이 점점 위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후퇴하던 매지향은 공터의 한가운데에 다다르자 이내 몸을 돌려 북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진양이 그녀를 놓칠세라 바짝 뒤쫓았다.
북쪽 바위에 거의 다다를 즈음에 진양은 그녀를 거의 따라잡을 수 있었다.
찰나, 매지향이 몸을 훌쩍 날리더니 우뚝 솟아 있는 바위를 발로 차며 그 반탄력으로 진양의 머리 위를 지나쳐 허공에서 재주를 넘었다.
진양 역시 가속력을 이기지 못해 같은 방법으로 방향을 틀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바위가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절벽 끝에 서 있던 바위가 매지향의 발길질에 낭떠러지 밖으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헉!”
진양이 얼른 걸음을 멈추며 수호필을 바닥 깊이 꽂았다.
콰가가각!
공력을 머금은 수호필이 바닥 깊숙이 박혀들어 갔지만, 전력을 다해 뒤쫓던 진양의 가속력은 쉽게 제어되지 않았다.
콰가가각!
수호필은 바닥에 긴 자국을 남기며 이끌려 갔다.
다음 순간 진양은 몸이 허공에 붕 뜨는 기분을 느끼고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악!”
한데 하늘이 도왔는지 바닥을 긁으며 끌려가던 수호필이 돌연 딱딱한 뭔가에 걸린 듯 금속성을 울리면서 절벽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추었다.
추락할 위기를 겨우 넘긴 진양은 얼른 수호필을 끌어당기며 절벽 위로 올라섰다.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수호필이 꽂혀 있는 바닥을 살핀 진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금속성이 울렸는데 바닥에는 흙뿐이군. 혹시 사상이괴 선배들이 날 도와준 걸까?’
그때 매지향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무슨 짓이냐?”
진양은 순간 자신에게 던진 질문인 줄 알고 어리둥절한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매지향이 다시 소리쳐 물었다.
“무슨 짓이냐고 묻지 않았느냐? 네가 날 속일 생각이냐?”
그러자 안개 속 어딘가에서 모기처럼 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그 순간 진양은 수호필이 끌려가는 것을 막아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이 목소리의 주인은 분명 소담화였던 것이다.
3. 애증의 고통
‘그녀가 날 구해줬구나! 그런데 왜 그랬을까?’
진양이 소담화를 떠올리며 생각하는데, 다시 매지향의 앙칼진 목소리가 안개 속에서 들려왔다.
“네가 이 사부를 배신하겠다는 것이냐?”
“아니에요, 사부님. 다신…… 다신 그러지 않겠어요.”
“이유를 말해보아라! 왜 그를 살려주었느냐?”
“그냥…… 굳이 그를 죽일 이유가 없을 것 같아서…….”
“뭣이? 지금 그것을 이유라고 대느냐?”
“…….”
“내가 죽이고자 했다. 그것이 이유다. 됐느냐?”
매지향이 잔뜩 화난 목소리로 외쳤지만, 소담화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매지향이 다시 말했다.
“만약 한 번만 더 방해를 한다면 널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사부님…… 그를 꼭 죽여야만 하나요?”
“뭣이? 오늘 네가 정말 이상하구나! 도대체 뭐가 문제냐? 왜 그를 살려주지 못해 안달이냐?”
“그건…… 그건…….”
“말해보아라! 무엇이 문제냐?”
“그건…… 사부님을 위해서예요.”
그렇지 않아도 모기처럼 가는 목소리가 더욱 작아졌다. 매지향이 코웃음을 쳤다.
“나를? 그것이 어째서 나를 위한 거지?”
“그를 죽이면…… 사부님은 분명 후회하실 거예요.”
“어째서지?”
“사부님은…… 사부님은 임패각 어르신이 돌아가신 후 줄곧 슬퍼하셨잖…….”
“닥쳐라! 내 앞에서 그자의 이름을 꺼내는 자는 누구든 죽이겠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감히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네가 그런 말을 해?”
매지향의 목소리가 끝나는 순간 바람 소리가 이어졌다. 진양은 그녀가 제자인 소담화를 공격하려는 것을 짐작하고는 얼른 몸을 날렸다.
“조심하시오!”
진양이 안개를 뚫으며 달려가 보니 역시나 예상한 곳에 소담화가 당황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찰나, 진양은 오른쪽에서 강한 기운이 훅 불어오는 것을 느끼고는 얼른 수호필을 후려쳤다.
까앙!
불똥이 튀면서 매지향의 분노한 얼굴이 드러났다. 매지향은 검날이 튕겨 나가자 그대로 왼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내찔러 왔다.
진양은 그대로 벽력섬광도법을 이용해서 찔러 들어오는 부채를 쳐냈다.
매지향은 진양이 이처럼 재빨리 수호필을 휘둘러 올 줄은 생각지 못했기에 몸이 휘청거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뒤미처 진양이 다시 한번 쾌도를 구사하자, ‘깡!’ 하는 청명한 금속성이 울리면서 매지향의 손에서 검이 날아가고 말았다.
“이익!”
매지향은 소담화를 위해 목숨도 돌보지 않고 나서는 진양을 보자 더욱 노기가 치솟았다.
그녀가 곧장 부채를 찔러오자, 진양은 다시 한번 수호필을 들어 막았다.
이어서 매지향의 오른손에 시퍼런 독기가 맺히는가 싶더니, 진양의 가슴팍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하앗!”
진양은 급한 김에 얼른 왼손을 마주 뻗었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의 손바닥이 정확하게 마주친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매지향의 손은 금세 시퍼렇게 물들었고, 진양의 손은 불그스름하게 물들어갔다.
두 사람은 그렇게 손바닥을 마주한 채 석상처럼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는 생사를 건 공력 대결에 들어간 것이다.
진양은 손바닥이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에 더욱 내력을 끌어올렸다.
보통 때와 달리 두 사람의 손바닥 사이에서 검고 푸른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는 매지향의 공력에 독기가 실려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진양으로서는 매지향보다 훨씬 많은 공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자칫 독기가 진양의 내공을 뚫고 들어오게 된다면 중상을 면할 수 없으리라.
평소보다 훨씬 많은 공력으로 맞대응해야 하는 진양은 금방 호흡이 가빠지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매지향은 그녀대로 강한 내공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두 사람 모두 죽을지도 몰랐다. 운이 좋아 한 명이 살아남는다고 해도 틀림없이 깊은 부상을 입을 것이다.
생각 끝에 매지향이 순간적으로 내력을 끌어올린 후 소리쳤다.
“화야! 뭘 그리 멍하니 서 있느냐? 어서 이 녀석을 쳐라!”
“네?”
소담화가 깜짝 놀라 반문하자, 매지향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이 녀석을 베란 말이다!”
진양 뒤에 서 있던 소담화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주춤 물러났다.
매지향은 현재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는 데 소모하던 공력마저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때문에 말을 한마디 할 때마다 그녀의 몸은 곧바로 반응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머리카락 색깔이 점차 하얗게 세어가는 것이었다.
소담화는 검을 뽑아 들고 진양의 곁으로 다가갔다. 만약 그녀가 곧장 검을 내찌른다면 진양은 그 자리에서 즉사할 터였다.
진양은 곁눈질로 소담화를 흘깃 바라보았지만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만약 한마디라도 꺼냈다가는 틀림없이 한 줄기 독기가 자신의 손을 타고 몸 깊숙이 침투할 터였다.
소담화는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녀는 차마 검을 내찌르지 못하고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부님, 제가 지금 이자를 찌르면 세간에서 사부님을 비겁하다고 욕하지 않을까 걱정돼요.”
“흥!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 말아라! 어차피 이 녀석은 내가 한번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데, 네가 이 사부를 무시하고 살려준 것이 아니냐? 그러니 네가 그 매듭을 짓는다면 오히려 세상은 너의 잘못을 묻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자 매지향은 앞머리가 급속도로 탈색되면서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이제는 소담화도 더 이상 핑곗거리를 댈 수가 없었다. 그녀는 심장이 조여지는 것만 같았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망설이는 걸까? 왜 이자에게만큼은 냉정하지 못한 거지? 사부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는데…… 어째서……?’
그녀가 갈등하자 매지향이 또다시 날카롭게 소리쳤다.
“화야! 뭐하느냐? 어서!”
이제 매지향은 눈가에 주름까지 생겼다.
소담화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곧장 검을 내찌르는데,
“비겁하기 짝이 없군!”
매지향의 등 뒤에서 서요평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일검을 내찔러 왔다.
찰나, 진양은 매지향의 기운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고 자신도 얼른 공력을 거두면서 물러나 소담화의 예봉을 피했다.
쉬익!
두 눈마저 질끈 감고 내지른 소담화의 검은 결국 진양을 베지 못하고 허공만 베어냈다.
반면 공력을 먼저 거두었던 매지향은 가벼운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등 뒤에서 급습한 서요평을 부채로 막아내려고 하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끝이 떨려왔다.
찰나, 서요평이 검을 열십자로 후리며 매지향을 파고들었다.
카창!
순간 매지향은 손아귀가 찢어질 듯 아파 저도 모르게 부채를 놓치고 말았다. 동시에 그녀는 반탄력을 이기지 못해 양팔을 활짝 펼치고 말았다.
쉬이잇!
그 틈을 이용해서 서요평이 재빨리 손을 뻗어왔다. 매지향은 몸을 뒤로 눕히면서 발을 뻗었다.
하지만 이 역시 예상한 서요평은 가볍게 몸을 비틀며 피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서요평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 서요평의 일장이 가슴을 치는 순간 숨이 끊어지고 말리라.
털썩!
매지향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런데 그 순간,
물컹!
매지향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눈을 번쩍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