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10
신필천하(神筆天下) 110화
그가 여전히 알아듣기 힘든 말을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매지향은 그를 무시한 채 전학수를 바라보았다.
“지금 나를 상대하기 위해 여럿이서 덤비겠다는 것인가? 세상이 알면 그대들을 비웃겠군.”
“흥! 매 선배께서는 이미 세상의 원망을 들을 만한 일을 하고 계시지 않소? 양 관주를 이렇듯해하고 있으니, 앞으로 어딜 가든 당신은 모든 사파인들의 원수가 될 것이오.”
매지향이 눈알을 굴려 힘겹게 서 있는 진양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라는 건가?”
“매 선배가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분이라는 것만은 확실하오.”
“그래서 지금 나를 방해하겠다고?”
“만약 관주님을 해할 생각이라면, 그 전에 우리부터 상대해야 할 것이오. 또한 이곳 아래에 학립관의 무인들이 대다수 포진하고 있으니 무사히 빠져나가긴 힘들 거요.”
그때 진양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매 선배를 이대로 보내면 안 됩니다. 소 낭자를 치료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자 매지향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호호호! 네깟 놈들이 감히 나를 생포해? 어림없는 소리지!”
말을 마친 매지향이 바닥을 박차더니 질풍처럼 전학수를 향해 질주했다.
전학수가 순간 뒤로 물러나며 몸을 팽이처럼 팽그르르 회전시켰다. 동시에 부채를 활짝 펼치자, 은륜 열 개가 ‘씽!’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매지향은 얼른 부채를 휘둘렀는데, 그녀가 부채를 한 번 펼쳤다가 접으니 날아드는 은륜이 모두 부챗살 사이에 끼워지며 감춰졌다.
이 귀신같은 손놀림에 깜짝 놀란 전학수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때 매지향의 등 뒤에서 ‘후웅!’ 하는 파공음이 들리더니 어느새 허공 높이 뛰어오른 죽반승이 선장을 후리며 떨어져 내렸다.
매지향이 발끝으로 땅을 툭 차고 날아오르자, 죽반승의 선장은 비어 있는 바닥을 거세게 후려쳤다.
꽈장!
그 힘이 어찌나 센지 대별산 정상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듯했다.
움푹 파인 바닥에서 자갈과 흙 따위의 파편이 사면팔방으로 튀어 올랐다.
매지향은 다시 부채를 활짝 펼쳐 날아드는 파편을 쳐냈다. 그와 동시에 부챗살 사이에 끼워져 있던 은륜이 사면팔방으로 흩어지며 날아들었다.
죽반승에 이어 달려들던 자들은 바로 무이오도였다. 그들은 선장에 튕겨 나간 파편들을 막아내고, 또 매지향이 흩뿌린 은륜을 쳐내느라 제대로 공격을 하는 것도 벅차 보였다.
사도귀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이 멍청한 죽반승!”
그러는 사이 진승이 얼른 진양에게 달려가 그의 상처를 살폈다.
독공을 익힌 그로서는 결코 매지향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대신 독에 당한 진양의 상처를 살피기에는 그보다 적합한 자도 없었다.
매지향은 그 틈을 타서 재빨리 몸을 날렸다. 사위가 안개로 휩싸여 있었기에 이 혼란한 틈에 그녀가 몸을 빼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가벼운 내상을 입은 그녀였기에 싸움이 길어진다고 해서 좋아질 것은 하등없었다.
전학수가 얼른 소리쳤다.
“십지독녀가 도망친다!”
그가 매지향을 쫓아서 달려가자 무이오도와 죽반승이 그 뒤를 따랐다.
진양은 정상이 잠잠해진 것을 보고 이미 매지향이 멀찍이 달아났으리라 짐작했다.
그가 진승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어찌 알고 여기에 오셨소?”
“사상이협 선배님들이 돌아와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상에서 관주님이 십지독녀와 함께 있다고요.”
“그분들은 지금 어떻소?”
“저희는 그 이야기를 들은 직후 유 총관님의 지시에 따라 곧장 올라온지라 잘 모르겠습니다.”
진승은 사상이괴가 돌아오자마자 그 사실을 알리곤 곧장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갔노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마침 흑표는 마을에 볼일이 있어 내려간 후였기에 이곳에 오지 못했노라고 전했다.
대략의 이야기를 들은 진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우선 나보다는 저기 쓰러진 소 낭자의 상처부터 봐주시오. 나보다 그녀가 훨씬 많이 다쳤으니.”
“알겠습니다, 관주님.”
진승은 얼른 소담화에게 다가갔다.
그는 소담화의 상처를 보고는 흠칫 떨었다. 옆구리에 난 다섯 개의 구멍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가 가만히 보니 소담화는 독기에 대한 내성이 강한 듯한데, 문제는 직접적으로 당한 상처와 지나친 출혈이었다.
“이건…… 정말 심각하군. 심각해.”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옆에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낭자, 운기를 할 수 있겠소?”
소담화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진승을 보았다.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제 몸에 손가락 하나라도 댔다간 그 손을 평생 못 쓰게 만들어주겠어요.”
진승이 어깨를 움츠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아무래도 그건 다음에 해야겠소. 손가락 하나도 안 댔다간 낭자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게 생겼으니까.”
그러더니 진승은 그녀가 뭐라고 말도 하기 전에 재빨리 손을 뻗었다.
탓탓탁!
순식간에 소담화의 혈도를 점해 출혈을 막은 것이다. 그녀가 뭐라고 말하려 입을 여는데, 진승이 재빨리 그녀의 아혈마저 점했다.
“말은 아끼시는 게 좋겠소. 원망은 나중에 들읍시다.”
그러고는 진양에게 다시 다가갔다.
“우선 응급처치는 했습니다만, 빨리 안전한 곳으로 옮겨 치료해야 할 듯합니다.”
진양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여자를 잘 다루시는군요.”
“하하, 제 매력이 좀 치명적이긴 하지요.”
그때 산 아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관주님! 어디 계십니까?”
진양과 진승은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바로 흑표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진양이 관주가 되고 나서 흑표 역시 정식으로 학립관의 무인으로 자리 잡게 되자 호칭도 자연스럽게 바뀐 것이다.
진승이 소리쳐 불렀다.
“형님! 여깁니다! 관주님은 무사하십니다!”
그러자 안개 속을 뚫고 흑표가 바람처럼 달려왔다.
그는 잔뜩 경직된 얼굴로 진양을 내려다보며 다그쳐 물었다.
“어찌 된 겁니까? 괜찮으신지요?”
“괜찮습니다. 자세한 것은 내려가서 이야기하지요.”
진양의 대답에 흑표는 그저 걱정 서린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진승이 소담화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형님, 그럼 관주님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여기 또 환자가 있어서…….”
흑표는 아무 말도 없이 진양을 안아 들었다.
진양이 괜히 염치가 없어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흑표는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를 내뱉고는 묵묵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진승이 소담화를 안아 든 채 따랐다.
4. 고비는 넘겼는데
진양과 소담화는 같은 침실로 옮겨진 뒤 바로 응급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유설은 그가 돌아오자 대문까지 달려와 눈물을 글썽였다.
진양과 소담화의 치료는 주로 진승이 도맡았는데, 독공에 대해서는 그가 가장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의 위기를 넘긴 진양과 소담화는 침상에 누워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며 매지향을 쫓아갔던 전학수가 돌아왔다.
진양이 그를 보고 몸을 일으키자, 전학수가 얼른 손사래 치며 말했다.
“그냥 편히 누워 계십시오, 관주님.”
“매 선배님은 어찌 됐소?”
진양이 묻자 전학수가 면목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놓치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양이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분이 쉽게 잡힐 리가 없지요. 고생 많으셨소.”
“몸은 좀 어떠십니까?”
“괜찮소. 걱정 마시오.”
그때쯤 서서히 의식을 회복한 소담화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더니 곧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금방 어지럼증을 느끼고는 다시 털썩 드러누워 버렸다.
이를 본 진승이 얼른 그녀에게 말했다.
“당분간 어지러울 것이오. 그래도 독에 대한 내성이 강해서 다행이오.”
소담화는 진승을 힐끗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제 몸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아요. 그보다 여긴 어디죠?”
시종 쌀쌀맞은 그녀의 태도에 진승도 기분이 언짢았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여긴 학립관이오. 저기 계신 관주님의 명만 아니었다면 그 봉우리에서 당신이 죽든 말든 내버려 뒀을 거요. 조금은 고마워하시오.”
소담화는 고개를 돌려 진양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진양의 침상 곁에 아리따운 여인이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바로 유설이었다.
소담화는 일전에도 그녀를 본 적이 있지만, 당시의 유설은 비교적 초췌한 모습이었다.
한데 이렇게 단정하게 차려입은 평상시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야말로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소담화는 저도 모르게 진양과 유설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질투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기분이 상한 그녀는 시선을 휙 거두고는 차갑게 말했다.
“흥! 누가 도와달라고 했나?”
진승은 소담화를 보면서 혀를 차고는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말이 통할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사상이괴가 불쑥 들어왔다. 서요평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진양을 보고는 다가왔다.
“자네, 살아 있었군. 그 악녀는 어찌 됐나? 설마 죽이지는 않았겠지?”
“예,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진양이 웃으며 답하자 서요평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그랬군. 다행이야. 하면 그 악녀는 지금 어디 있는가?”
“저도 모르겠습니다.”
“뭣이?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가 그녀를 제압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분은 당장의 화를 피해 어디론가 달아났습니다. 저는 그분을 쫓지 못했구요.”
“이런! 그게 정말인가?”
서요평이 탄식을 터뜨리며 안타까워했다.
진양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물었다.
“선배님은 그분에게서 해독약을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왜 지금도 그분을 찾으시는지요?”
서요평이 침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해독약을 가져오긴 했지. 한데…….”
말끝을 흐린 서요평이 약병 두 개를 꺼내 보였다.
“그 악녀에게 약병이 두 개가 있더군. 한데 이것이 해독약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거니와 어떤 것이 운지의 해독약인지도 알 방법이 없어서 그렇다네.”
진양이 보니 과연 약병이 두 개였다.
겉으로 보기에 크기와 모양은 비슷했는데 마개를 열어보니 서로 다른 약향이 풍겨 나왔다.
진양이 진승을 불러 물었다.
“이 두 가지 약병 중에서 어떤 것이 서운지 선배의 해독약인지 아시겠소?”
하지만 진승도 자신이 없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연구를 해봐야겠는데…….”
그러자 서요평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약물도 얼마 없는데 이걸 가지고 연구했다간 모조리 증발해 버리고 말겠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쩌면 소 낭자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승의 말에 진양이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내 직접 물어보지. 나를 좀 부축해 주시오.”
진승과 흑표가 얼른 양옆으로 와서 진양을 부축해 주었다.
진양과 서요평이 함께 소담화에게 다가갔다.
그때까지 소담화는 시선을 돌리고 진양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진양이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낭자, 이 두 가지 약병이 각각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있겠소? 무엇보다 낭자가 지금 위독하니 해독약을 복용해야 하지 않겠소?”
진양의 마지막 말에 소담화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마지못한 듯 시선을 돌려 진양의 손에 들린 약병 두 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