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12
신필천하(神筆天下) 112화
갑작스러운 말에 무인들이 저마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진양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소 낭자가 나 때문에 독에 당하지 않았소? 이대로 그녀를 두고만 볼 수는 없게 됐소. 어떻게든 십지독녀 매 선배님을 만나서 설득을 해볼 수밖에요.”
“흥! 그 악랄한 년이 자네 말을 들을 것 같은가?”
서요평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진양이 진중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말로 안 되면 힘으로 빼앗을 수밖에요.”
그의 말에 무인들이 저마다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거렸다.
진양이 지금껏 이처럼 단호한 어조로 무력을 쓰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 학립관 관주로서의 모든 권한은 지묵당주에게 넘기도록 하겠소. 여러분은 단 당주를 도와 이곳 학립관을 잘 이끌어주시기 바라오. 그리고 호신위는 이곳에 남아 단 당주를 보호해주도록 하시오.”
진양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천장에서 비연리가 뚝 떨어져 내렸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관주님!”
진양이 비연리를 보며 변함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명령이오, 비 대주.”
“하지만…….”
“싫다면 천상련으로 돌아가시오. 내 명에 따르지 않는 수하는 필요가 없소.”
전에 없이 진양의 차가운 말투에 비연리도 흠칫했다. 주위 사람들 모두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진양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애초에 이곳을 아이들을 가르칠 서예당으로 삼으려고 했소. 하지만 여러분이 나를 찾아오면서 그 계획에 조금 차질이 생겼소. 나는 이곳을 떠나 있는 동안 학립관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할 것이오. 그리고 돌아오는 대로 학립관을 재정비할 생각이오. 그때까지 여러분은 내 뜻에 따라 단 당주를 도와 학립관을 잘 이끌어주시오.”
진양의 말투는 여느 때처럼 부드럽지 않았다.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려 알 수 없는 위엄이 느껴지고 있었다.
좌중의 무인들은 저도 모르게 경직되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관주님.”
전학수가 일어나 포권하며 말했다.
“관주님께서는 아무런 걱정 하지 말고 다녀오십시오. 이곳은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단 당주님을 모시고 학립관을 잘 이끌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그제야 진양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때 사상이괴 중 서운지가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가 양 관주를 따라갔으면 하오.”
“두 분은 왜 저를 따라가시려는지요?”
“나는 죽을 위기에서 양 관주의 은혜를 받고 이렇듯 건강을 되찾았소. 이제 그 은혜를 갚을 때가 아니겠소?”
진양이 고개를 저었다.
“은혜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두 분은 저를 따라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자 서요평이 콧방귀를 뀌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흥! 은혜는 무슨 은혜냐? 너를 살린 것은 이 형님이 십지독녀에게서 해독약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왜 약은 나한테 받아먹고 감사는 엉뚱한 곳에다 하느냐?”
진양이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오히려 은혜를 받은 것은 저지요. 선배님께서 해독약을 빼앗지 않았다면 저 역시 산목숨이 아니었을 겁니다.”
“알긴 아는구나!”
“물론이지요.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두 분은 괜히 저를 따라서 고생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흥! 그깟 일이 무슨 고생이라고? 우리는 널 따라갈 것이다.”
진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서요평마저 따라오겠다고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왜 저를 따라오시겠다는 겁니까?”
“내 아우는 네게 은혜를 받아서 도와줄 생각인 것 같지만,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십지독녀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내가 그년 때문에 이날 이때껏 마음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반드시 그년을 만나서 혼뜨검을 내줘야겠다! 그러니 너는 나를 막을 생각일랑 하지 마라! 이건 그저 우리의 문제일 뿐, 네 목적과는 무관하다!”
진양은 서요평이 저렇게까지 생각한다면 분명 자신이 말려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결국 그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두 분 뜻대로 하십시오.”
“물론 그럴 것이다. 너는 언제 여길 떠날 생각인가?”
“사흘 뒤에 떠날 겁니다.”
서요평은 쇠뿔도 단김에 빼라며 당장 떠날 것을 촉구했지만, 옆에서 서운지가 가만히 말렸다.
진양은 마지막으로 진승을 돌아보며 물었다.
“소 낭자의 치료는 어찌 되고 있소?”
“독기를 완전히 제거하진 못했지만, 전보다 몸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소?”
“앞으로 길면 일 년이겠습니다.”
“그렇군. 진 형이 수고 좀 해주시오.”
“명 받들겠습니다.”
진승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진양은 좌중을 둘러보며 그 외에도 자신이 없는 동안 주의할 사항들을 간략하게 알려준 뒤 회의를 정리했다.
그날 밤 유설은 진양을 찾아왔다.
막 잠자리에 들려고 했던 진양은 문 앞에 선 유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겠어요.”
“함께라니? 매 선배님을 찾아가는 일을 두고 말하시는 거요?”
유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일요.”
“하지만 이 일은 매우 위험하오. 매 선배님과 큰 싸움을 벌여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오. 그러니…….”
“무슨 말씀을 하셔도 전 따라가겠어요.”
유설의 표정이 단호한 것을 보고 진양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혹시 소 낭자를 위해 내가 이처럼 나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소?”
진양으로서는 줄곧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유설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그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살려준 은인인 걸요. 결국 제 은인이나 다름없죠. 전 은인을 돕기 위해 당신과 함께 가겠다는 거예요.”
진양은 잠시 유설을 보다가 부드럽게 웃었다.
“알겠소. 함께 갑시다.”
5. 거룡방(拒龍?)
사흘 뒤 진양은 유설, 사상이괴와 함께 학립관을 나섰다. 단지겸을 비롯한 무인들은 대별산 아랫자락까지 내려와 진양 일행을 배웅해 주었다.
겨울이 지나고 초봄이 시작될 즈음이라 주위에는 어린잎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싱그러운 봄바람이 불어와 여행을 떠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길을 걷던 서운지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날씨가 참 좋군요. 이런 날이면 천 리 길을 가더라도 힘들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서요평이 툭 쏘아붙이듯 말했다.
“니미럴! 좋긴 뭐가 좋단 말이냐? 봄 날씨가 다 이렇지! 우리는 지금 놀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 쳐 죽일 년을 만나서 결판을 내려는 것이다! 안일하게 생각하지 마라!”
“예, 예, 알겠습니다.”
서운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진양과 유설은 사상이괴의 언행을 보면서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우선 진양 일행은 마을로 내려가서 십지독녀를 본 사람이 없는지 수소문했다.
하지만 좀처럼 그녀를 봤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진양 일행은 마을 어귀에 위치한 객점에 들렀는데, 그곳 점소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글쎄요, 그런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걸요. 게다가 그처럼 예쁘다면 제가 기억을 하지 못할 리가 없죠. 헤헤.”
이번에도 허탕을 친 진양은 점소이에게 철전 한 닢을 던져 주고는 돌려보냈다.
점소이가 헤실헤실 웃으며 꾸벅 인사하고 물러가자, 서요평이 탁자를 탕 내려치며 소리쳤다.
“제미랄! 이년이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대별산을 내려왔다면 이 마을을 가장 빨리 거쳤을 텐데…….”
유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른 길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진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확률은 매우 희박하오. 당시 매 선배는 내상을 입고 있었소. 비록 가벼운 증세라고는 하나, 험한 산길을 추적을 피해 오랫동안 달리기에는 힘들었을 거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본 사람들이 없을까요?”
“매 선배는 변장술에도 능한 분이오. 어쩌면 노파로 변해서 이 마을을 지나갔을 수도 있겠지요.”
“내상을 입고도요?”
“내력을 계속해서 소모하는 경신술보다는 그 편이 더 수월했을 거요.”
“그렇군요. 과연 대단하군요. 내상을 치료하지도 않고…….”
“그러게 말이오. 비록 그 증세가 가볍다지만 치료를 하는 것이 좋을 텐데…….”
말을 하던 진양은 순간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그는 곧장 점소이를 다시 불러 물었다.
“혹시 인근에 의원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약초를 파는 곳이라도 좋네.”
“이 마을에는 없습니다요. 대신 옆 마을로 가면 약초를 파는 곳이 있지요.”
“고맙네.”
진양이 다시 철전을 던져 주자, 점소이는 입이 귀밑까지 벌어져서 돌아갔다.
서요평이 퉁명스레 물었다.
“갑자기 약초는 왜 그러나? 여행길에 오르자마자 어디 탈이라도 난 게야?”
“아닙니다. 매 선배님은 내상을 입었지요. 그러니 빨리 치료할 생각이었다면 틀림없이 약초를 구해 복용하려고 했을 겁니다.”
서운지가 손뼉을 짝 마주쳤다.
“옳거니! 그렇다면 틀림없이 그곳으로 갔겠구려!”
“확실하진 않지만 가능성은 있지 않습니까?”
진양의 말에 서요평이 벌떡 일어났다.
“그럼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니지! 어서 가세나!”
“그러지요.”
진양 일행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객점을 나섰다.
그들이 나는 듯이 달려가 옆 마을에 도착하니, 과연 점소이의 말대로 갖가지 약초를 모아 파는 곳이 있었다. 정식 의원이나 약방은 아니었지만 약초꾼이 직접 캔 것들을 진열해 파는 곳이었다.
진양은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약초꾼을 불러 물었다.
“이곳에서 황기, 길경, 고삼, 사인 따위를 산 여인이 있소? 꼭 여인이 아니어도 좋소. 시일은 사흘 전쯤일 것이오.”
그러자 약초꾼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이내 대답했다.
“아, 한 명 있었지요. 정확히 손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사서 가져갔습니다.”
“혹시 그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소?”
그러자 약초꾼이 이맛살을 구기며 말했다.
“그녀요? 그놈은 남자인뎁쇼?”
“남자라고?”
“그렇습니다. 이 동네에서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걸인이지요. 한데 그날따라 우리 집에서 약초를 사가지고 가기에 이상하다 여겼습지요.”
약초꾼의 말에 진양 일행은 서로를 번갈아보았다.
그때 유설이 말했다.
“어쩌면 십지독녀가 그에게 심부름을 시킨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러자 서운지가 손뼉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렇군! 과연 그 말이 틀림이 없겠소, 낭자!”
진양도 유설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기고 다시 약초꾼에게 물었다.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소?”
“음, 글쎄요. 늘 북쪽 마을 어귀에서 서성이고 있으니 그곳에 가면 볼 수 있을 겁니다.”
“고맙소.”
진양은 그에게도 철전 몇 닢을 주고는 일행과 함께 북쪽 마을 어귀로 향했다. 역시나 마을 어귀에는 약초꾼의 말대로 걸인 한 명이 한쪽 길 구석에 드러누워 있었다.
진양이 그에게 다가가 정중히 말을 걸었다.
“실례가 아니라면 한 가지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걸인은 진양을 흘깃 돌아보더니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는 아예 몸을 돌려 누웠다. 괜히 무안해진 진양이 다시 말을 걸었다.
“혹시 사흘 전에 어떤 사람을 만나지 않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