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Pil Heaven RAW novel - Chapter 115
신필천하(神筆天下) 115화
6. 음귀곡주(陰鬼谷主)
진양 일행은 왕방평의 말을 참고해서 곧장 복양현으로 향했다. 우선 가야 할 목적지가 정해지니 그들의 걸음 속도는 어느 때보다도 빨랐다.
이들이 복양현 어귀에 다다랐을 때다.
길가에 낡은 사당이 있었는데, 그 문 앞에서 한 남자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한데 옷차림새가 깔끔하고 얼굴 생김새도 준수해서 걸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서요평이 그에게 다가가 발끝을 툭 찼다.
“어이!”
남자가 깜짝 놀라 눈을 뜨고는 서요평을 바라보았다.
서요평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길을 따라 죽 걸어가면 복양이 나오는 게 맞느냐?”
“그렇습니다.”
남자가 정중히 대답하며 서요평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걸어오는 진양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물었다.
“혹시 사상이협이 아니신지요?”
서요평은 젊은 청년이 자신을 알아보자 이맛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렇다. 내가 사상이협의 서요평이다. 한데 네놈은 날 어찌 알지? 나는 네놈을 본 적이 없는데.”
“역, 역시 사상이협 선배님이시군요! 그럼 저는 이만!”
남자가 갑자기 꾸벅 인사를 하더니 길을 따라 부리나케 달려가기 시작했다.
서요평이 황당해서 불렀다.
“이봐!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하지만 남자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몸이 가벼운 것으로 보아 경공술을 익힌 자임이 틀림없었다.
매사에 부정적인 서요평은 어쩌면 그가 십지독녀의 사주를 받고 자신들을 암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런 새파란 애송이를 굳이 뒤쫓는 것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잠시 뒤 진양이 다가와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물었다.
“누구였습니까?”
“나도 모르네. 길가에 드러누워 자빠져 자고 있는 걸 깨워 길 좀 물었더니 저리 도망가는군. 분명 십지독녀가 우리를 없애려고 사주한 녀석일 게야.”
“음. 이상하긴 하군요.”
진양은 매지향이 사주했을 리는 없을 거라고 여겼지만, 아무래도 이상한 경우라 그저 고개만 갸웃거리고 말았다.
진양 일행은 복양현 변두리에 있는 평범한 객점을 찾아 들어갔다.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여서 그런지 객점에는 유독 무인들이 많았다.
진양 일행이 자리를 잡고 앉자 점소이가 다가와서 물었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드릴깝쇼?”
서요평이 불쑥 나서며 대답했다.
“이곳에서 제일 맛있는 걸 좀 내오게. 무조건 비싼 것만 내왔다가 맛이 없으면 내 혼쭐을 내줄 거야! 대별산을 떠난 뒤로 맛있는 음식을 먹은 적이 없단 말이야.”
“헤헤, 알겠습니다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질 음식을 대령합지요.”
“제발 그러게나.”
점소이가 헤실헤실 웃으며 몸을 돌리려는데 진양이 그를 불러 물었다.
“보시오, 이곳에 무인들이 유독 많은 것 같은데…… 원래 이렇소?”
그러자 점소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양 일행을 바라보았다.
“나리들은 무인이 아닌지요?”
“보면 모르겠느냐? 이 사상이협을 못 알아보다니 자네 눈과 귀도 썩었구먼!”
서요평이 버럭 소리치자, 마침 주위에서 웅성이던 사람들 중 일부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몇몇은 시선을 흘깃 돌려 진양 일행을 응시했다.
진양은 이들의 눈빛에서 호의보다는 적의가 많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한편, 한낱 점소이가 무인들의 별호를 어찌 줄줄 외고 다니겠는가? 점소이가 그저 뒤통수를 긁적이며 답변했다.
“죄송합니다, 나리. 제가 높으신 분을 몰라 뵀습니다. 대신 맛있는 요리 대령해 올리겠습니다요. 헤헤.”
그러더니 점소이는 뭔가 비밀스러운 말이라도 하려는 듯 일행에게 소곤거렸다.
“그리고 이곳에 무인이 많은 이유는 얼마 전 소림에서 무인들을 초청해서 그렇습니다. 이곳 손님들 대부분이 소림사로 가는 무인들입지요.”
“소림사에서 왜 무인들을 초청했소?”
진양이 묻자 점소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거기까진 알 수 없지요.”
“흠. 알겠소.”
점소이가 돌아가고 나자 진양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소림사로 가는 무인들이라면 틀림없이 정파의 사람들입니다. 괜히 시비를 걸어 소란스러운 일은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흥! 보아하니 전부 오합지졸들인데 소란이 일면 또 어떤가? 기분 나쁘면 전부 쓸어 버리면 그만이지.”
서요평의 말대로 객점에 들른 사람들은 그리 유명한 무인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괜한 시비에 말려들어 소동이 일어서는 좋을 것이 없었다.
진양은 서요평을 더 자극시키지 않고 조용히 음식만 기다렸다.
마침 점소이가 따끈따끈하게 구운 오리 구이를 들고 왔다. 음식에서 풍기는 향내가 그윽한 것을 보니 양념이 독특하면서도 맛있을 것 같았다.
서요평이 군침을 흘리며 막 젓가락을 드는데, 갑자기 객점 안이 쥐 죽은 듯 고요해지는 것이 아닌가.
진양 일행이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객점 입구만 바라본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진양 일행의 눈길도 자연히 그들의 시선을 따라 입구로 옮겨졌다.
“호오! 아름답군, 아름다워.”
서운지가 예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그리며 감탄했다.
아닌 게 아니라, 입구에 나타난 여인 세 명은 굴곡있는 몸매가 여실히 느껴지는 얇은 경장을 입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화용월태(花容月態)라 이를 만한 모습이었다.
유설이 단아하고 청초한 아름다움을 내비치고 있다면, 이들은 그보다 관능적이면서도 도발적인 매력을 내뿜고 있었다.
두 여인은 허리에 날이 굽은 만도를 착용하고 있었고, 앞선 여인은 허리에 검정색 채찍을 띠처럼 두르고 있어 이들이 무인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인들 사이에는 젊은 남자도 한 명 끼어 있었다. 제법 준수하게 생긴 청년이었는데, 척 보기에 무공은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다.
여느 때라면 그런 남자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겠지만, 지금 객점의 무인들은 그 청년에게도 불같은 질투의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같은 생각이었다.
‘저 비리비리한 약골이 어째서 저렇듯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거지?’
청년은 객점을 한 번 휘이 둘러보더니 진양 일행을 보고는 흠칫거렸다. 그리고 곧 채찍을 두르고 있는 여인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 모습이 마치 어른을 대하는 시동처럼 공손해 보였다.
그는 바로 앞서 복양현 어귀에서 서요평과 대화를 나눴던 그 남자였던 것이다.
청년의 말에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양 일행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데 그들이 몇 걸음 나아가기도 전에 한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길을 가로막았다. 그는 눈썹이 짙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미남이었다.
여인이 눈썹을 성큼 추켜올리며 바라보자 남자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낭자의 자태가 너무나 아름다워 그만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혹 낭자께서도 소림으로 가는 길인지요?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 나는 태산(泰山)에서 온 송대율(宋大律)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내 사제들인데, 이쪽은 장비룡(莊非龍)이라 하고 여기는 육기릉(陸基陵)이라고 합니다.”
송대율이 한 명 한 명 소개를 하자 장비룡과 육기릉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포권했다.
하지만 여인은 싸늘한 눈초리로 그들을 슬쩍 훑어보았을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반면 주위의 다른 무인들은 송대율의 소개를 듣고 나직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태산파의 송대율과 장비룡, 육기릉은 산동 일대에서 제법 유명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들을 태산삼협(泰山三俠)이라고 불렀는데, 적어도 이 객점 내에서는 이들보다 강한 자가 없었다.
그녀가 아무런 말도 없이 다시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송대율이 얼른 말했다.
“우리는 소림의 초청을 받고 가는 길입니다. 마침 우리는 협의가 바닥에 떨어진 강호 현실에 대해 비판하는 중이었습니다. 낭자께서도 협의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것은 어떨는지요? 정의에 대해서 심도있는 대화를 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송대율이 끈덕지게 붙잡고 늘어지자, 여인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송대율은 여인의 깊고 투명한 눈망울을 마주 보자 그만 머릿속이 멍해지는 듯했다.
이윽고 여인이 입을 열었다.
“정의든 협의든 약한 자는 백날 토론해도 지키지 못하죠.”
옥구슬이 구르는 듯 아름다운 목소리였지만, 어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언뜻 조롱하는 눈빛도 섞여 있었다.
송대율도 상대의 비웃음을 느낀지라 내심 기분이 상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과연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매일같이 무공 수련을 해야 한다고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지요. 마침 낭자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시니 우리와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습니다. 혹 사문이 어찌 되시는지……?”
여인은 송대율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젓더니 심드렁하니 말했다.
“비켜주세요.”
“예?”
“비켜달라고요. 지금 제 길을 막고 있지 않나요?”
“아, 하지만 우리와 대화를 한번 나눠보는 것도…… 게다가 우리와 함께하면 낭자의 안전만큼은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지금껏 여인 뒤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젊은 청년이 불쑥 나서며 화를 냈다.
“비키라는 말씀 못 들었소? 구질구질하게 왜 이러는 것이오? 태산파의 무인이라면 체통을 지키시오!”
그러자 장비룡이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벌떡 일어섰다.
“감히 건방지게 끼어들다니! 구질구질? 도대체 너는 누구기에 그딴 말로 우리를 모욕한단 말인가?”
장비룡은 청년이 마치 여인과 같은 일행이 아닌 것처럼 취급하며 소리쳤다.
아까부터 여인의 까칠한 태도에 은근히 조바심이 나던 차에 이겁없는 청년이 고맙게도 시비를 걸어준 것이다. 게다가 무례한 말을 내뱉었으니, 잠깐 무공을 뽐내며 위협을 준다면 여인의 마음이 돌아설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청년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태산파의 이름을 내걸었으면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썩 비키시오!”
“놈!”
장비룡이 더 참지 못하고 막 검을 뽑아 들려고 할 때였다.
여인이 허리에 두른 채찍으로 손이 간다 싶더니 순간 빛살처럼 무언가 날아들었다.
쒜에엑!
쨍그랑! 쨍그랑! 쨍그랑!
태산삼협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여인이 채찍을 손에 감아쥐고 있었다.
그들의 눈길은 다시 탁자 위로 향했다.
탁자에는 술병과 접시, 그릇 등이 많이 놓여 있었는데, 그중에서 세 개의 술잔만이 가루처럼 부서져 그 파편도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여인의 채찍이 정확히 술잔만을 노리고 날아가 깨부순 것이다.
객점의 누구도 여인이 이처럼 고강한 무공을 소유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저마다 눈치를 보며 수군거렸다.
졸지에 체면이 땅에 떨어진 태산삼협은 어쩔 줄을 몰랐다. 그들도 이 여인의 무공이 자신들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여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언제나 세 번만 참지. 너희는 내게 세 번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 내 길을 가로막은 것. 둘째, 비키라는 내 말을 무시한 것. 셋째, 내 제자에게 폭언을 퍼붓고 협박한 것.”
“제, 제자라니? 누구……?”
송대율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어보다가 문득 청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그럼 이자가…… 당신은 도대체 사문이…….”
그러자 그녀 뒤에 있던 두 여인 중 한 명이 나서며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분은 우리 곡주님이시다! 그대는 예를 갖춰라!”